32화. 신투의 정체
2017.07.23.
“아, 아니 이게 도대체…….”
번을 교대하기 위해 찾아온 황룡표국의 표사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확인하고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번을 서던 표사들이 모두 쓰러져 있었고, 표물들 또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상태였다.
상황을 파악한 황룡표국의 표사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표물이 사라졌다!”
고요한 새벽의 정적을 깨면서 다급한 표사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듣고 주변에서 숙면에 빠져있던 표사들은 즉시 잠에서 깨었다. 그리고 긴급한 상황에 대비해서 미리 훈련했던 대로 표사들은, 네 개의 조로 서로 뭉치기 시작했다.
명령의 체계가 잡혀 갈 때쯤, 어느새 다가온 남 표두가 서둘러 명령을 내렸다.
“일조와 이조는 주변을 돌면서 표물을 훔쳐간 놈의 흔적을 찾고, 삼조와 사조는 서둘러 주변을 수색하라!”
“알겠습니다!”
“모두 빨리 흩어져라!”
남 표두의 긴급한 외침과 함께, 황룡표국의 표사들은 각자 자신이 맡은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쏜살같이 주변으로 흩어져갔다.
남 표두는 어질러진 표물들을 보면서, 비천검문의 유서하 일행들을 떠올렸다.
유서하는 신투를 잡을 대책이 있다고 은소연과 의논한 적이 있었다. 주변을 물리고 단둘이서만 대화를 나눈 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은소연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난 뒤에 달라진 점이라고는, 몇몇의 표사들이 사라진 것밖에 없었다.
‘신투를 잡을 만한 대책이 무엇이란 말인가.’
대책을 세워 놓은 것이 있다면, 지금이야 말로 움직여야 할 때였다.
표물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퍼지자마자, 은소연은 유서하가 있는 곳을 찾아왔다.
은소연은 바쁘게 달려오느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헉, 헉, 신투가 함정에 걸려들었어요. 미끼로 쓰기 위해서 미리 준비한 표물을 가지고 도망쳤어요.”
유서하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진무량이 끼어들었다.
“그게 무슨……. 아니, 그런 건 상관없고, 신투가 훔쳐간 물건이 무엇이오?”
“이번 표행에서 가장 값이 나가는 보검들이에요.”
신투를 유인하기 위해 만든 표물인 만큼, 은소연은 값이 비싸고 무거운 물건들을 한곳에 모아놓았다. 그리고 신투는 정확히 그것을 훔쳐낸 것이다.
잃어버린 표물을 확인하자, 진무량은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서하는 자신의 금을 등에 걸치면서 신투를 추격할 준비를 끝냈다. 그녀가 은소연을 향해 말했다.
“뒷일은 제게 맡기고, 안전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으세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은소연은 깊이 인사를 하고, 남 표두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본격적으로 신투를 쫓기 전, 유서하가 진무량을 향해 물었다.
“같이 가시겠어요?”
진무량은 잠깐 내비쳤던 다급한 기색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내가 같이 가봤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야. 그러니 신투는 너희들끼리 알아서 잡아와.”
금제를 풀지 않는 한 진무량은 내공을 사용할 수 없기에, 당연히 경공술도 펼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막상 진무량을 혼자 남겨 두고 가려고 하니, 유서하는 괜히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유서하가 말했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반드시 신투를 잡아올게요.”
“그런 건 나한테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되니까 빨리 신투를 쫓아.”
허리춤에 찬 검을 확인하면서 견무겸이 유서하를 향해 말했다.
“저는 준비를 끝냈습니다.”
“출발하자.”
휙.
유서하는 힘차게 땅을 박차면서 유성비보를 펼쳤다. 그녀의 신형이 바람을 타듯이 빠르게 움직였고, 그 뒤를 견무겸이 따랐다.
진무량은 유서하와 견무겸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들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 진무량 또한 걸음을 떼었다.
“자, 그럼 나도 슬슬 움직여 볼까.”
* * *
“휴우우. 오랜만에 달리니 숨이 차네.”
신투는 거칠어진 호흡을 정돈하면서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뒤를 돌아 황룡표국의 표행이 있는 곳을 돌아봤다.
신투는 무조건 빠르게 움직이는 것보다는 완벽하게 자신의 흔적을 지우면서 도주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그리 멀리까지 달아나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황룡표국의 표사들은 결코 알아채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다.
“아마 지금쯤 고생 좀 하고 있을 거다.”
이런 한밤중에 지워진 흔적을 찾아 자신을 쫓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황룡표국의 추격에 대한 부담을 벗어버리니 저절로 웃음이 났다. 그러자 자연스레 등에 메고 있는 봇짐에 손이 갔다.
봇짐 안에는 황룡표국의 표물들 중에서도 가장 값비싼 것만 추려낸 보물들이 들어있었다.
시간이 없어 모든 표물들을 들쳐보지는 못했으나, 다행히 귀한 표물들을 모아놓은 상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숱한 도둑질을 통해서 신투는 대충 외견만 봐도 그 값을 예상할 수 있었다. 봇짐 속에 들어있는 명검들은 모두 부르는 것이 값일 정도의 고가품이 확실했다.
‘이 정도면 사부님도 분명 칭찬하실 거야.’
신투는 함박웃음을 흘리며 몸을 돌렸다.
다시금 경공술을 펼치려 할 때, 아주 미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다행히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은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우연히 주변을 뒤지던 표사들인가.’
무슨 상황이건 간에, 신투는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신투는 두 다리에 바짝 힘을 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경공술인 암흑은신보(暗黑隱身步)를 펼칠 준비를 마쳤다.
암흑은신보는 어둠속으로 스며들 듯이 은밀하나, 그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파밧!
신투는 본격적으로 경공술을 사용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띠리리리링―!
그때 금을 튕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서하의 내공이 실린 금의 연주소리는 일반적으로 현을 켤 때 만들어지는 소리보다 몇 배는 더 멀리 퍼져나간다. 하여 멀리 떨어진 신투의 귀에도 그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소리로 미루어보면, 상대는 황룡표국과 녹림이 겨뤘을 때 활약했던 여인으로 보였다. 신투 또한 녹림과 황룡표국이 겨루는 모습을 은밀히 살피고 있었기에 유서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어둠속을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가던 신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설마 내 위치를 알고 있는 건가.’
그저 주변을 수색하며 자신을 찾고 있는 것뿐이라면, 굳이 금을 켜면서 본인의 위치를 노출시킬 필요가 없다.
‘허나 어떻게 내 위치를 알고 있단 말인가.’
표물을 훔친 뒤에 그곳을 빠져나오면서 자신은 완벽하게 흔적을 지우고 도망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서하는 너무 빨리 자신의 위치를 추적하고 있었다.
표물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아는 데도 시간이 걸렸을 것인데, 이렇게 빨리 쫓아올 수 있다니. 어떻게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투는 당황한 만큼 속도를 올렸다.
‘어떻게 나의 위치를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절대로 날 잡을 수 없을 것이다!’
녹림과 겨룰 때 유서하가 사용했던 음공은 신투에게 있어서도 낯선 것이었다. 하여 신투는 더욱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파바바바밧!
신투는 엄청난 속도로 산속을 헤치며 달렸다.
얼마쯤 그렇게 달리다보니, 더 이상 금의 소리도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따돌렸나.”
신투가 잠시 발걸음 멈추고 뒤를 돌아볼 때.
띠리리리링―!
다시 유서하의 연주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제기랄!”
신투는 자기도 모르게 짜증스러운 말투로 소리를 내뱉으며, 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내가 있는 곳을 알고 쫓아오는 거야!’
기척소리로 미루어 볼 때, 자신이 경공술을 사용하면 분명 거리가 벌어졌다. 속도는 자신이 한 수 위인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이 넓은 산 속에서 당연히 자신의 위치를 놓치는 것이 정상이다. 헌데 제아무리 거리를 벌려도 어떻게 눈치채는지, 유서하는 정확히 자신을 향해 쫓아오고 있었다.
띠리리리링―! 띠리리리링―!
유서하의 금을 튕기는 소리는 계속해서 주변을 울려 펴졌다.
신투가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젠장! 지긋지긋하네, 저 소리!”
금을 튕기는 소리와 함께 뒤를 쫓아오는 인기척을 주시하는 것에 신투의 신경은 완전히 집중되어 있었다.
그렇게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며 달리던 신투의 눈앞에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바로 지척의 거리에서 황룡표국의 표사 두 명의 모습이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니, 이럴 수가!”
당황한 신투가 자기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기감이 뛰어난 신투에게 있어, 황룡표국의 표사들이 이렇게 근접할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신투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두 명의 황룡표국의 표사들은 검을 뽑아들었다.
챙! 챙!
“잡아라!”
두 표사는 신투를 향해 뛰쳐나가며 우렁차게 외쳤다.
파밧!
“흥, 어림없다!”
신투는 급격하게 방향을 꺾었다. 당장 눈앞의 표사들을 피할 생각에 반대편으로 움직인 것이다.
허나 당황한 신투가 순간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쪽은 바로 유서하가 신투를 쫓아오고 있는 방면이었다. 금을 켜면서 요란하게 쫓아오던 유서하가 기척을 완전히 감추고, 은밀히 움직여 신투에게 당도한 것이다.
티딩―!
짧게 현이 튕기는 소리와 함께 유서하의 음파가 신투에게 정확히 적중했다.
“커억!”
달리던 중에 유서하의 음파에 적중당한 신투는 괴성과 함께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짙은 그늘 속에서 유서하와 견무겸의 모습을 드러내며 신투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뒤이어 신투를 쫓던 황룡표국의 표사들이 나타났다.
유서하가 황룡표국 표사들을 향해 말했다.
“일단 신투가 가진 표물부터 확인하세요.”
표사들은 쓰러진 신투의 등에 메여 있는 봇짐을 빼앗아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물건은 확실합니다.”
표사의 말에 유서하가 대답하기 전, 신투가 끼어들었다. 그는 눈이 시뻘개진 채, 아직 바닥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나의 위치를 알았던 거지? 완벽하게 흔적을 지웠을 텐데.”
바닥에 쓰러진 신투를 내려다보면서 유서하가 말했다.
“표물을 훔친 순간부터, 당신은 제가 만든 덫에 걸려든 거예요.”
신투가 훔칠 만한 표물에 잠혼향을 묻힌 뒤, 유서하는 황룡표국에서 가장 날랜 표사들과 만났다. 은소연의 명령으로 표사들은 모두 유서하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었다.
유서하는 은밀히 표사들을 표행 주위로 넓게 배치시켜두었다. 그리고 금을 켜는 소리를 통해 주변에 흩어진 표사들을 모은 것이다.
신투는 시끄럽게 울리는 유서하의 연주소리에 완전히 신경이 쏠려 있었으니, 미리 몸을 숨기고 은밀히 다가오는 표사들의 기척을 완전히 놓칠 수밖에 없었다.
봇짐을 확인한 황룡표국의 표사가 쓰러진 신투를 결박하기 시작했다.
신투가 억척스럽게 외쳤다.
“제기랄, 이거 못 놔!”
아직도 기운이 남았는지 억척스럽게 날뛰는 신투를 묶고 난 뒤, 황룡표국의 표사가 유서하를 향해 다가갔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말 완벽한 작전이었습니다.”
유서하는 녹림과의 격전을 벌일 때 직접 눈으로 보았던, 믿을 수 있는 황룡표국의 표사들을 선별했다. 그리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그들도 짝을 지어 놓고 긴급한 상황에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방법까지 모색해 놓았다.
유서하의 작전은 빈틈없이 완벽했고, 신투는 완전히 거기에 걸려든 것이다.
유서하가 황룡표국의 표사들을 향해 말했다.
“표사님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신투를 잡을 수 있었던 거예요. 고생하셨습니다.”
“그렇게 말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럼 서둘러 돌아가시죠. 혹시 더 없어진 물건이 있는지도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 * *
유서하와 표사들이 신투를 쫓고 있었던 시각.
황룡표국의 표사들은 각각 남 표두의 명령으로 신투를 잡기 위해서 따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하여 당연히 황룡표국의 일행이 야영을 했던 곳의 경비는 완전히 허술해진 상태였다.
몇몇의 황룡표국 표사들만 남아서 산처럼 쌓인 표물들을 지키고 있는 형태였다.
그때 남 표두가 다섯 마리의 말을 이끌고, 표물을 모아둔 곳을 찾아왔다.
적은 인원이었으나, 삼엄한 경비를 펼치던 황룡표국의 표사들이었다. 그 중 한 명이 다가오는 남 표두를 향해 다가가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무래도 신투가 다시 이곳을 노릴 것 같구나. 행수님께 미리 허락을 구했으니, 내가 말하는 표물들을 모두 말에다가 싣도록 해라.”
“표물들을 다른 곳에 숨기실 생각이십니까?”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그러는 것이다. 어서 서두르거라.”
“알겠습니다.”
남 표두의 지시에 따라서 표물들을 말에 싣기 시작했다.
남 표두가 챙기라고 말하는 표물들은 모두 최상급으로 분류되는 것들이었다. 또한 챙기라는 표물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세 마리의 말을 더 데리고 와야 할 정도였다.
표물들을 모두 말에 싣고 나서야, 남 표두가 표사들을 향해 말했다.
“그럼 난 미리 행수님과 계획했던 곳으로 가있겠다. 너희는 이곳을 벗어나지 말고 철통처럼 지켜야 한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남 표두와 마주보고 있는 표사가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남 표두는 그 모습을 보고서 대견스럽다는 듯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표물을 실은 말들을 데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상급의 표물을 실은 말들을 이끌고, 남 표두는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산속 깊은 곳에 발길이 닿았다.
무슨 그리 좋은 일이 있는지 연신 웃음을 흘리며 걷던 남 표두를 향해, 거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두가닥! 두가닥!
남 표두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말을 탄 모습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진무량의 모습이 보였다.
남 표두가 진무량을 향해 말했다.
“비천검문의 무사분께서 이곳은 어인 일이십니까?”
진무량이 말 위에서 거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남 표두라 그랬나? 네가 가지고 있는 표물 중에 볼일이 있는 것이 있어서 말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말길을 잘못 알아먹는 걸 보니 내가 호칭을 틀리게 말해서 그런 것 같군.”
진무량의 입에 사악한 비웃음이 걸리며 말했다.
“가진 거 다 내놔. 신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