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악무도-25화 (25/143)

25화. 신투

2017.06.29.

동호객잔의 오 층에 위치한 가장 넓고 호화스러운 방.

황룡표국의 행수를 맡고 있는 은소연과 남 표두가 심각한 표정으로 커다란 지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앞으로 표행의 행로에 대한 의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남 표두는 조심스럽게 지도에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뗐다.

“이곳이 녹림이 주로 출몰한다는 지역입니다.”

남 표두가 가리킨 곳은 청협곡이라 쓰여 있었다.

표행의 목적지인 절강으로 가기 위해서는 청협곡을 지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경로였다. 절강으로 가로질러 갈 수 있기 때문에 거리도 가장 가깝고, 길도 그리 험하지 않았다.

허나 아쉽게도 그곳에는 녹림이 자리하고 있었다. 청협곡은 완전히 녹림의 지배하에 있는 곳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은소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계속하세요.”

“제 생각에는 녹림을 피해 우회로를 선택하는 것이 안전할 것입니다. 물론 돌아서 가는 것이다 보니 길이 험하고 시간이 더 걸리겠으나, 녹림을 만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입니다.”

남 표두의 손가락이 지도에서 청협곡보다 조금 더 아래쪽을 가리켰다.

“무아산이라는 곳입니다. 이곳을 가로질러 표행을 진행시키는 것이 가장 낫다고 생각됩니다.”

은소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도로 본다면 무아산은 꽤나 험난한 산으로 보인다. 또한 가까운 마을까지의 거리 또한 상당히 멀다.

‘분명 쉽지 않은 길로 보이지만, 녹림을 만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

게다가 이번 황룡표국의 표행에 참가한 표사들은 모두 경험이 풍부한 자들이다. 어느 정도 열악한 환경이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허나 여전히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은소연 특유의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회로를 선택하는 것은 찬성이지만, 상대는 녹림이에요. 저희의 진로를 눈치챈다면 그들은 쉽게 저희를 따라잡을 거예요.”

“그 또한 생각해둔 바가 있습니다.”

“말해보세요.”

“지금 가장 좋은 방법으로 사료되는 것은, 표행을 둘로 나누는 것입니다.”

“어떻게 말이죠?”

남 표두는 또박또박 자신에 계획을 설명했다.

“녹림은 뛰어난 무력을 가지고 있지만 머리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러니 저희는 일행을 둘로 나눠서, 겉모습만 비슷한 가짜 표행을 만들어 청협곡을 지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짜 표행을 담당해야 하는 표사들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물론 가짜 표행을 담당하는 자들은 모두 날랜 표사들로 배치해야 할 것입니다. 녹림이 나타나는 순간 물건을 버리고 도망친다면 충분히 위험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은소연이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고, 남 표두의 말이 이어졌다.

“어차피 녹림은 표물이 목적일 테니, 그것을 두고 도망치는 표사들을 오래 쫓지는 않을 것입니다. 허나 녹림이 손에 넣은 표물은 저희가 만든 가짜일 것이니, 표국이 잃는 손해 역시 크지 않을 것입니다.”

남 표두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은소연이 말했다.

“그 사이에 진짜 표행은 무아산을 거쳐서 절강으로 향한다는 것이군요.”

은소연은 남 표두의 계획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완벽하게 가짜 표행을 꾸린다면, 정보력이 떨어지는 녹림으로서는 이 계획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무아산은 원래 녹림이 자주 출현하는 곳이 아니다. 즉, 진짜 표행의 존재가 들킬 염려도 없다.

다만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날랜 표사들을 가짜 표행이 있는 곳으로 보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들이 이탈한다면 당연히 무아산을 지나는 진짜 표행 쪽에 힘이 약해진다.

허나 녹림이 아니라면 근방에 딱히 위협적인 대상은 없었다. 어느 정도 표사들을 뺀다고 해도 딱히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생각이 정리된 은소연이 말했다.

“이대로 진행시키면 되겠네요. 이 계획을 믿음직한 표사들에게 먼저 알리고, 서둘러 준비를 끝마치세요.”

“알겠습니다. 행수님.”

은소연의 입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 평소 잘 웃지 않는 그녀에게 흔치 않은 일이었다.

“정말 훌륭하시군요. 아버지께서 언제나 남 표두님을 두고 천군만마라 부르셨는데, 그 말이 사실이네요.”

“과한 칭찬이십니다.”

남 표두가 방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표국의 사람들에게 뜻을 전달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비천검문에서 온 자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음…….”

은소연은 잠시 생각을 거치고 말했다.

“그들은 진짜 저희 표행에 합류시켜 주세요.”

딱히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여겨서 유서하 일행을 진짜 표행에 합류시키는 건 아니었다.

그들을 위험한 가짜 표행 쪽에 보냈다가 녹림에게 당하기라도 한다면, 괜히 비천검문과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표행을 하는 동안 적당히 비위나 맞춰줘야겠네.’

어쨌든 유서하 일행은 명망 높은 비천검문의 사람. 표행을 하는 동안 좋은 관계를 쌓아두면, 나중에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생각을 확실히 정한 은소연이 남 표두를 향해 말했다.

“그럼 서둘러주세요.”

* * *

구름 하나 없이 맑은 하늘. 햇볕이 내리쬐어 평소보다 뜨거운 기운이 슬며시 올라왔으나, 시원한 바람이 한 번씩 불어와 불쾌함을 덜어주었다.

은소연은 척척 준비가 끝나가는 표행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녹림의 눈을 속이기 위해 만들어진 가짜 표행은 얼마 전에 출발한 상태였다.

지금은 귀한 표물을 실은 진짜 표행의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몇몇의 표사가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표행의 준비는 아주 순조로웠다.

준비가 막바지로 흐르던 중, 표물을 싣고 있는 쟁자수들을 바라보던 은소연의 시선이 살짝 일그러졌다.

쟁자수들 틈에서 죽립을 쓴 채 표물을 옮기고 있는 유서하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유서하와 함께 찾아왔던 견무겸도 표물 운반을 돕고 있었다.

은소연은 비천검문의 손님인 유서하가 직접 짐을 나르는 것을 필사적으로 말렸다. 허나 그녀는 조금도 듣지 않았다.

은소연의 만류에 유서하는 이렇게 대답했다.

ㅡ간단한 일이라면 저희도 돕게 해주세요. 숙식을 제공받는 것에 대한 값도 치르고 싶고, 고생하시는 분들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처음에는 예의상 하는 말인 줄 알았다. 하여 저러다가 적당히 쉬러 갈 줄 알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유서하의 태도는 한결같았고, 실제로 지금 짐을 나르고 있는 중이었다.

무거운 표물들을 싣고 나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건만, 유서하는 스스로 나서서 돕겠다며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은소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괜히 나서서 고생을 하는 걸까.’

가만히 있다고 해서 흉볼 사람도 없는데, 굳이 표사들을 돕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은소연은 유서하에게서 신경을 쓰지 않으려 다른 곳에 시선을 두었다.

‘음?’

그러고 보니 비천검문의 일행은 세 명이었는데, 지금 보이는 것은 두 명밖에 없었다. 젊은 무사는 이곳에 없는 것이다.

‘어디선가 일을 돕고 있겠지.’

은소연은 더 이상 유서하 일행에 관심을 두지 않고 표행의 준비 상태를 살폈다.

표행의 출발 준비는 순조롭게 이뤄졌다. 그 상태를 확인한 남 표두가 은소연을 향해 다가가서 말했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럼 출발하지요.”

은소연은 가장 앞쪽에 위치한 마차에 올라탔다.

남 표두도 같은 마차의 마부 자리에 올라타고서 큰 소리로 외쳤다.

“황룡표국의 표행이다!”

남 표두의 외침을 듣고서 표사들과 쟁자수들이 동시에 그 말을 따라서 외쳤다.

“황룡표국의 표행이다!”

왁자지껄한 거리 속, 잘 보이지 않는 뒷골목에 평범한 인상의 사내가 서있었다.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그 사내는 황룡표국의 표행이 출발하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은밀히 황룡표국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사내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드디어 움직이는 건가. 따분해 죽는 줄 알았네.”

보랏빛이 미세하게 맴도는 눈동자를 반짝이며 사내가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슥.

그리고 그 사내는 연기처럼 모습을 감췄다.

딱히 그를 주시하는 사람은 없었으나, 설령 주시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헛것이라고 여겼을 정도로 날쌘 움직임이었다.

* * *

절강으로 가는 길목 중 하나인 청협곡에서 가장 산세가 깊은 곳. 온통 초록의 수풀로 우거진 장소에 거대한 산채가 은밀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비탈진 언덕에 세워진 산채는 몇 겹의 울타리와 천연의 지형을 이용해 만들어져 있었다. 요소마다 적당한 인력을 배치시켜 놓은 모습을 보면 절로 난공불락이라는 말이 떠오를 만한 훌륭한 산채였다.

그 산채는 강호에서도 악명 높기로 유명한 녹림의 것이었다.

청협곡에 자리하고 있는 녹림도의 수뇌부들이 정중앙에 위치한 산채로 모여들었다.

가장 상석에 자리잡은 사내는 일귀라 불리는 괴팍한 인상의 사내였다. 일귀는 청협곡의 산채에서 가장 서열이 높아 채주라 불리고 있었다.

그는 얼굴을 뒤덮고 있는 검은 수염을 씰룩이며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황룡표국 놈들이 이곳을 향해 오고 있다는 말은 틀림없는 것이겠지?”

“정찰하는 놈들이 모두 황룡표국의 표행이 확실하다고 올렸소.”

“그렇다면 시간이 없수! 당장 내가 부하 놈들을 이끌고 가서 요절을 내버릴 테니 명령만 내려주슈.”

일귀의 말에 대답한 자들은 그와 의형제를 맺고 있는 이귀와 삼귀라고 불리는 자들이었다.

강호에서는 그들 셋을 탈명삼귀(奪命三鬼)라 불렀다.

일귀가 가뜩이나 험악한 인상을 더욱 찌푸리며 말했다.

“황룡표국놈들, 미친 것이 틀림없군. 감히 겁도 없이 우리의 앞마당으로 찾아오다니!”

“유명한 표국이다 보니, 제법 실력 있는 놈들을 데려왔다고 우리를 깔보는 게 틀림없소!”

“이귀 형, 그 말이 사실이우? 내 이놈들을 그냥!”

이귀의 말에 삼귀가 콧김을 뿜어내면서 격하게 반응했다.

일귀는 마음에 결정을 내리고는, 왼손바닥을 쫙 편 뒤 오른손으로 주먹을 만들어 서로 부딪쳤다.

착.

“흥! 건방진 놈들. 제깟 놈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시험해봐야겠구나.”

일귀가 말을 이었다.

“최소의 인원으로 산채를 지키고, 나머지는 모두 이번 황룡표국 사냥에 참가한다!”

“알겠습니다!”

그곳에 모인 수십 명의 녹림도 수뇌부들이 한꺼번에 대답했다.

걸걸한 외침과 함께 일귀의 몸에서 흉흉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그때 어디선가 빠르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스락. 바스락.

수풀을 밟으며 달리는 소리가 이어지더니, 이내 다급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채주님! 긴급한 일입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일귀는 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괜한 호들갑처럼 느껴졌다.

“일단 들어와!”

일귀가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로 외치던 사내는, 재빨리 산채 안으로 들어와서 일귀를 향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머리를 조아리던 사내의 모습을 확인한 이귀가 그를 향해 말했다.

“너는 주령(柱嶺)이 아니더냐? 네가 왜 여기 있는 것이냐?”

주령이라 불린 사내는 이귀의 수하로서, 멀리 떨어져 있는 녹림의 다른 산채들과 연락하는 일을 담당하는 자였다.

주령이 다급한 목소리로 이귀를 향해 보고를 올렸다.

“무아산에서 황룡표국 일행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을 확인하는 즉시 이리로 달려온 것입니다!”

뜬금없는 보고에 이귀가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막 청협곡으로 쳐들어온 황룡표국을 사냥하러 갈 참인데, 갑자기 무아산에서 황룡표국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무슨 말인가?

일귀가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진정하고 똑바로 말해 보거라!”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주령이 한차례 호흡을 정돈하고 재빨리 말했다.

“이귀 님의 명령에 따라 무아산 근처를 수색하다가 수상한 일행을 발견했습니다. 대규모로 움직이는 인원을 수상하게 여겨 파악해보니, 전부 황룡표국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뭣이라! 확실한 게야?”

삼귀는 믿을 수 없는 주령의 보고에 버럭 성질을 냈다.

주령이 머리를 더욱 깊이 조아리면서 대꾸했다.

“제가 겁도 없이 왜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제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사실입니다!”

“흐음!”

일귀가 짧은 신음을 흘렸다. 그의 머리로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귀가 나직이 혼잣말을 했다.

“이상하군. 내 수하들이 분명 청협곡으로 들어오는 황룡표국의 표행을 확인했는데.”

일귀 역시 생각에 잠겼고, 그 답답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삼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뭔지 모르겠지만 둘 다 잡아서 족쳐버리면 되지 않겠수?”

가만히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주령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소인의 생각으로는…… 제 아무리 황룡표국이라고 하더라도 감히 우리가 있는 청협곡을 대놓고 찾아오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이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을 했다.

“하긴, 이제껏 청협곡을 지나가려고 했던 놈들은 눈에 띄지 않는 길을 이용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돌아갔거늘. 이번 황룡표국의 표행은 너무 눈에 띄는 것이 사실이다.”

조용히 생각에 잠겼던 일귀가 이귀를 향해 말했다.

“설마하니 청협곡을 지나려는 놈들은 함정이고, 무아산에 있는 놈들이 진짜 황룡표국의 표행이란 말인가?”

“형님, 아무래도 그런 것 같소.”

쿵!

삼귀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발로 땅바닥을 힘껏 찼다.

“이 자식들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잔머리를 굴리다니!”

“모두 들어라!”

일귀가 큰 소리로 외치고서는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황룡표국 놈들이 같잖게도 함정을 꾸민 것 같구나! 내 직접 이귀와 삼귀를 데리고 무아산으로 가서 놈들을 완전히 도륙해버리겠다.”

일귀는 그곳에 모인 소두목 중 한 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넌 이곳에 남아 산채를 지키면서, 청협곡을 지나려 하는 황룡표국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어라. 무아산에 있는 놈들을 모조리 죽이고 난 뒤에, 그놈들도 같이 처리해야겠다.”

“알겠습니다!”

일귀는 이귀와 삼귀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는 즉시 정예 녹림도들을 선별해라. 즉시 무아산으로 가서 얄팍한 잔머리를 굴리는 놈들을 쓸어버려야겠다.”

이귀와 삼귀가 동시에 대답했다.

“알겠소, 형님!”

믿음직한 얼굴로 동생들을 바라보던 일귀가 고개를 돌려 녹림도들을 향해 외쳤다.

“이번 황룡표국의 물건들은 그 가치를 가늠할 수 없는 것들이다!”

가뜩이나 우락부락한 얼굴에 일귀가 한껏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외쳤다.

“늘 그렇듯이 모조리 빼앗고 마음대로 죽여라!”

“오우!”

“알겠습니다!”

녹림도 수뇌들의 걸걸한 대답이 이어졌다.

* * *

무아산에 황룡표국이 있다고 알렸던 주령은, 회의가 끝나자 주변에 인적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

‘확실히 아무도 없겠지?’

주령은 좌우를 돌아보며 주변에 인기척이 없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그는 풀들로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갔다.

우드득! 우드득!

주령이 몸을 감춘 수풀 속에서 뼈끼리 부딪치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고는 점점 주령의 몸이 변해가기 시작했다.

키부터 시작해서 몸집의 크기 자체가 변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내 손가락과 같은 미세한 부분까지 바뀌었다.

뼈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멈추자, 방금까지 있었던 주령과는 전혀 다른 사내가 수풀 밖으로 나왔다.

그는 마지막으로 얼굴에 쓰고 있는 인피면구를 벗었다.

찌이이익!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얼굴 인피면구가 찢어지더니, 그 안에 전혀 다른 얼굴이 나타났다.

옅은 보라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그는 강호에서 신투라 불리는 도둑이었다.

“머저리들. 하여간 힘쓰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단 말이야.”

신투는 방금까지 같이 대화했던 녹림도들이 떠올랐다.

아무리 멍청한 녹림이라 하더라도 황룡표국의 작전을 의심이라도 할 것이라 여겼다. 허나 녹림도 놈들은 그런 것은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모양이었다.

‘멍청한 놈들.’

“후후후.”

무의식적으로 코웃음이 나왔다.

자신은 녹림도들을 멍청한 놈들이라 생각했지만, 앞으로 그들을 만나게 될 황룡표국 놈들은 함부로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눈앞에 나타난 녹림도들은 무시무시하게 강할 테니까.

무식한 놈이 힘은 좋다. 그 말은 녹림도들을 위한 말이나 다름없다.

신투는 절로 웃음이 일었다.

황룡표국이 이기든 지든 그런 것은 상관없다.

그들도 준비를 많이 하고 왔으니 결코 일방적인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누가 이기든지 간에 서로 죽고 죽여서 힘이 약해졌을 때, 자신은 값비싼 물건들만 챙기면 그만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은자는 사람이 챙기는 법.

결국 모두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출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눈치챘을 땐 이미 내 손에 모든 보물들이 있겠지.’

“캬하하하하!”

신투가 큰 소리로 웃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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