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거짓말
2017.05.25.
모습을 드러낸 건 유서하와 견무겸뿐이 아니었다.
혼란이 점차 잦아들면서 모인 남궁세가의 무인들도 속속들이 손무엽이 있는 의방 앞으로 모여들었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모여든 남궁세가의 무인 중 한 명이 다급하게 남궁지에게 다가가 물었다.
남궁지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는 검 끝을 손무엽에게 겨누면서 외쳤다.
“이제 얌전히 항복하시오!”
손무엽이 주변을 돌아보며 상황을 살폈다.
의방으로 가는 길목은 남궁지가 막고 있었고, 반대편에는 유서하와 견무겸이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자리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하는 남궁세가의 무인들까지.
손무엽은 결국 남궁헌의 목숨을 빼앗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장 이 근처에 있는 자들을 모두 합쳐도 자신에게 크게 위협이 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으나, 분명 이들을 상대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보면 결국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떼거지로 몰려올 것은 자명한 사실.
‘예상했던 것보다 혼란이 너무 빨리 진정되고 있구나.’
남궁현일이 없으니 이런 혼란 상황을 쉽게 수습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분명 틀린 판단은 아니었음에도 그의 판단이 빗나간 이유는, 바로 남궁지의 존재 때문이었다.
남궁지의 침착하고 훌륭한 지휘로 인해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더 빨리 안정을 되찾고 반격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단 물러나야겠군.’
상황을 살피며 어떻게 행동할지 고민하던 손무엽은 결국 후퇴하는 것을 선택했다.
허나 한심한 꼴로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건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했다.
손무엽이 본격적으로 내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버러지들 몇몇이 모인다고 이 몸이 두려워할 것 같으냐?”
우웅.
손무엽을 중심으로 맹렬한 기세가 퍼져나가기 시작하더니, 기묘한 소리와 함께 그의 양손에 미세하게나마 기(氣)가 맺혔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남궁세가의 무인 중 한 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저건!”
손무엽의 주먹을 감싸고 있는 미세한 기운은 분명히 권기(拳氣)였다.
무림에서 흔히 오대세가라 불리는 남궁세가에서도 육안으로 보이는 기운을 만들 정도의 무인은 많지 않았다.
검기나, 권기를 발현하는 것은 모든 무림인들의 꿈이나 다를 바 없었다.
물론 그보다 더 위의 경지인 강기(剛氣)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했으나, 그건 그야말로 전설속의 경지.
현 무림에서도 절대자의 오른 극소수의 고수들만이 강기를 실현할 수 있다고 전해지기는 하나,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하여 사실상 최고의 경지로 꼽히는 것이 바로 검기였다.
‘큰일이군.’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술렁이는 것을 느끼며 남궁지가 우려의 기색을 내비쳤다.
여기 모인 무인들은 남궁세가의 정예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세가의 정예고수들은 대부분 남궁현일과 함께 천탕산으로 향했고, 몇몇 남아있는 자들은 따로 세가의 주요한 장소에 방비를 맡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 없었다.
허나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손무엽을 향해 한 발자국 걸어 나오며 남궁지가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큰소리를 칠 수 있는지 내가 직접 시험해보겠소.”
“흥, 미안하지만 너 따위에겐 관심 없다.”
손무엽은 권기를 남궁지가 아닌, 주변에 모여 있는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향해 날렸다.
“피해라!”
남궁지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러고는 손무엽의 권기가 날아드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펑!
손무엽이 날린 권기와 남궁지의 검이 부딪치면서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의 여파는 주변으로까지 퍼져나갔고, 근처에 있던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휘말렸다.
“쿨럭!”
“으으으…….”
여기저기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들려왔다.
주변이 어수선해진 사이, 손무엽은 미리 도주로로 봐두었던 좌측 방향의 골목을 향해 몸을 날렸다.
멈칫.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손무엽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누군가 먼저 나서서 쫓지 못했다.
압도적인 무공차이를 실감하면서 생긴 망설임 때문이었다.
손무엽이 공격해왔다면 결사항전을 각오하고 어떻게든 겨뤘을 것이나, 그는 도망치는 중이었다.
‘놈을 쫓아봤자 잡을 수 없을 거야.’
‘만약 붙잡는다고 하더라도 저런 놈을 어떻게 상대할 수 있겠어…….’
‘이대로 도망쳐주는 것이 다행일지도 몰라.’
주변에 있는 남궁세가 무인들의 머릿속에서는 이런 생각들이 맴돌았다.
그때 남궁지가 우렛소리 같은 호통을 내질렀다.
“뭣들 하는 것이냐!”
손무엽이 날린 권기를 가로막아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남궁지가 몸을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지금 저자를 놓치면 언제 또 다시 이런 만행을 저지를지 모른다. 너희는 정녕 그것을 모르는 것이냐!”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자연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도 불타고 있는 건물들과 그로 인해 연기를 마시고 쓰러진 사람들. 검을 차고 있지 않음에도 검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검을 쥐고 사는 것은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더냐? 눈앞에서 뻔히 이런 짓을 저지르는 자를 놓친다면, 어찌 스스로 남궁세가의 무인이라 칭할 수 있겠느냐!”
남궁지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다시 말을 이었다.
“적이 강하다고는 하나, 우리가 힘을 합치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는 상대다!”
남궁지의 진심 어린 호통은 남궁세가 무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충분했다.
점차 두려움에 젖어있던 그들의 눈빛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두 번 다시 이런 만행을 저지르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것은 지금 이곳에 있는 너희들밖에 없다!”
남궁지가 자신의 검을 치켜들며 외쳤다.
“함께 싸우자!”
남궁지는 그 말을 끝으로 곧바로 손무엽의 뒤를 쫓았다.
"도련님을 따르라!"
주변에 자리하고 있던 남궁세가의 무인들 또한,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순식간에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빠져나가면서, 의방에는 유서하 일행만이 남겨졌다.
진무량은 지붕에서 훌쩍 땅으로 내려와 유서하를 향해 다가갔다.
“뭐, 대충 끝난 것 같네.”
유서하는 근심어린 목소리로 진무량에게 말했다.
“당신이 보기엔 지금 쫓아간 세가의 사람들이 어떻게 될 것 같나요?”
“모르지.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손무엽과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겨루면 어떻게 될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으니까.
유서하는 자신의 질문에 진무량이 어떤 대답을 할지 알면서도 갑갑한 마음에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었다.
승부의 승패를 떠나 확실한 것은, 손무엽과 겨루다 보면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많이 죽거나 다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유서하는 지금부터 자신이 내뱉을 말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또 다시 고민했다.
결론을 내린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신의 내공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줄게요.”
“뭐?”
진무량은 안색이 바뀌면서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유서하는 확고하게 뜻을 굳혔다.
언젠가 다시 지금 순간을 돌아보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당신이 남궁세가의 사람들보다 먼저 그 노고수를 상대해주세요.”
방금까지만 해도 진무량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서 조금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허나 방금 유서하가 내뱉은 말로 인해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진무량은 자신이 입은 내상의 치료법은커녕 원인조차도 파악하지 못했다.
지금 당장 이 내상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유서하뿐.
그렇기에 한 번이라도 더 유서하의 연주를 듣고 자신의 내공을 사용해보는 것이야말로 지금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었다.
그녀가 연주할 때 내공이 다시 나타나는 원리를 알 수 있는 방법, 혹은 그 어떤 작은 단서라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의외의 유서하의 제안에 진무량이 조소를 흘리며 대답했다.
“좋아. 그 늙은이를 확실하게 죽여 주지.”
“조건이 하나 더 있어요. 그 노고수가 아닌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돼요.”
입가에 섬뜩한 조소를 유지하면서 진무량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
진무량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안한 마음이 다시 일었으나, 유서하는 남궁세가의 사람들을 구하는 것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
견무겸 역시 유서하와 비슷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녀를 만류하지 않았다.
그때 돌연 진무량이 유서하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유서하를 어깨에 앉힌 채, 그녀의 무릎이 있는 부분을 팔로 단단하게 고정시켰다.
“네 이놈! 뭐하는 짓이냐!”
견무겸은 갑작스런 진무량의 행동에 펄쩍 뛰며 일갈을 내뱉었다.
“이제 놈을 쫓아가야 하는데, 이 여자를 여기 두고 갈 수는 없잖아.”
아무런 예고 없이 벌인 진무량의 행동에 당황하기는 유서하도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사내의 어깨 위에 앉게 된 유서하는 너무 놀라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외간 사내와 이렇게 가까이 붙어있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릎을 감싼 진무량의 팔의 감각, 그리고 허벅지 아랫부분에서 받치고 있는 그의 단단한 어깨의 감촉이 느껴지자, 알 수 없는 민망한 감정이 일었다.
“뭐하고 있어? 빨리 금을 켜지 않고.”
무심한 어조로 진무량이 말하자, 유서하는 잠깐의 딴생각을 서둘러 지웠다.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손무엽을 쫓아야 했다.
유서하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금은 아주 예민한 악기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는 순간 전혀 다른 음이 만들어진다.
유서하는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긴 손가락을 현 위에 올려놓았다. 정신이 온전히 금과 하나가 된 순간, 그녀의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디리리링―!
“크게 흔들리지는 않을 거야.”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진무량이 유서하를 향해 말했다.
“엄청 빠르겠지만.”
* * *
서서히 해가 솟아오르며 미명이 비추는 새벽.
진무량은 유서하를 어깨에 앉힌 채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금을 연주하느라 겉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유서하는 진무량의 경공술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눈을 한 번 깜빡일 때마다 주변의 풍경이 휙휙 바뀌었다.
실제로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으니, 만약 누군가에게 전해 들었다면 거짓말이라고 여겼을 것이 분명했다.
손무엽의 흔적을 쫓으며 그야말로 바람처럼 날아가던 두 사람은 어느새 산길로 접어들었다.
진무량은 힘껏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주변에서 가장 높은 나무 위로 몸을 날렸다.
높은 곳에서 전경을 내려다보니 사방은 온통 나무로 둘러싸인 숲이었다.
일반인의 눈에는 그저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숲으로 보이겠으나, 진무량의 눈에는 다른 것이 들어왔다.
‘저기군.’
안력을 집중한 진무량의 시선이 흔들리는 숲의 일부를 향했다.
사실 바람이 불어오면서 나무가 흔들리는 건 숲 전체가 모두 비슷했으나, 진무량은 바람이 아닌 사람이 움직이면서 흔들리는 숲의 모양을 정확히 식별해냈다.
진무량이 어깨에 앉은 유서하를 향해 말했다.
“앞에 남궁세가 놈들이 보이는 걸로 보아, 거의 다 온 것 같군.”
진무량은 남궁세가 무인들의 위치를 파악했음에도 곧바로 그곳을 향해 달려가지 않고, 올라타고 있던 나무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지면으로 내려온 그는 바닥에 있는 작은 돌멩이를 한손 가득 쥐었다.
금을 켜고 있던 유서하는 진무량의 갑작스런 행동에 의문을 느꼈다.
하지만 진무량은 유서하가 미처 질문을 하기도 전에,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있는 곳을 향해 다시 달려 나갔다.
* * *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전력을 다해 손무엽을 추격하고 있었다.
남궁세가 무인들의 선두에서 그들을 통솔하고 있는 자는 검혼관주 이상백이라는 사내였다.
이상백과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남궁지의 비해 한참 뒤처진 상태였다.
남궁지의 무공수준이 그들의 비해 월등하게 높았으므로, 같은 경공술을 펼친다하더라도 거리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급해진 이상백이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향해 우렁차게 외쳤다.
“서둘러 도련님의 뒤를 따르자!”
쐐액―!
그때 파공음과 함께 무언가가 날아왔다.
“모두 피해……!”
이상백이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무언가 단단한 물체가 허벅지에 박혔다.
“윽!”
짧은 신음과 함께 이상백은 날아온 물체가 무엇인지 살폈다.
“돌멩이?”
쐐액―!
이번에는 수없이 많은 돌무더기가 동시에 날아왔다.
퍽! 퍽! 퍽! 퍽!
“크엑!”
“으악!”
남궁세가 무인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날아오는 돌멩이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허벅지, 정확히는 허벅지에서 조금 아래쪽에 위치한 백해혈(白海穴)에 박혔다.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이상백은 날아오는 돌멩이들을 쳐내서 동료들을 구하려 했다.
허나 몸을 움직이려고만 하면 저릿저릿한 감각이 찾아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돌멩이에 적중당한 다른 남궁세가 무인들도 이상백과 똑같이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이상백은 어떻게든 남은 힘을 쥐어짜내 외쳤다.
“적이다! 모두 피해라!”
허나 그의 명령을 따를 수 있는 남궁세가 무인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돌멩이에 적중당해서 움직일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제기랄!”
이상백은 쉴 새 없이 저릿 거리는 몸을 움직이기 위해 애썼다.
상대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런 짓을 하는 것을 보면 적이란 것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모두를 행동불능으로 만들어놓았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공격해 올 것이 틀림없었다.
허나 이상백의 예상과는 반대로 근처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뭐지?”
그때 먼 거리에서부터 아주 잠깐 금의 연주소리가 울렸으나 아쉽게도 그는 듣지 못했다.
이상백과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지나친 유서하는 황급히 금의 연주를 멈췄다.
“지금 뭐하는 짓이죠? 남궁세가의 사람들을 공격하면 어떻게 해요!”
진무량이 돌멩이를 던진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그의 행동이 너무 빨라서, 유서하가 금을 멈췄을 때는 이미 그에 손에서 돌멩이가 날아간 후였다.
진무량은 유서하의 반응을 무시한 채 제자리에 서서 자신의 몸 상태를 관찰했다.
이번에도 역시 유서하의 연주가 멈추는 순간 내공이 모조리 사라져버렸다.
자유자재로 운용했던 내공이 사라지는 원인은 알 수 없었으나, 지금까지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연주가 끝날 때마다 지독하게 느껴지던 통증이 덜했다.
‘내공을 사용하는 만큼 통증이 찾아오는 것인가.’
소천광과 겨뤘을 때와 지금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뿐이었기에, 진무량은 자신의 가설이 틀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진무량은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파악하고 나서야 유서하의 질문에 대답했다.
“걱정할 필요 없어. 모두 정확히 점혈을 찔렀으니까 곧 움직일 수 있을 거야. 내가 왜 그랬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테고.”
“무공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인가요.”
“역시나 잘 알고 있군. 혹시라도 내가 그 노인네랑 겨루는 모습을 보게 되면 저놈들은 내게 먼저 검을 들이대겠지.”
“…….”
“위험한 싹은 미리 잘라 놓는 게 서로에게 좋잖아.”
정심한 내공을 바탕으로 하는 정파의 무공과 진무량이 익힌 마교의 마공은 정반대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분명 진무량이 마공을 사용하는 모습을 본다면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그 사실을 눈치챌 것이다.
곧바로 진무량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의심을 할 것은 분명하다.
유서하가 진무량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진무량의 행동에 대한 이유는 그녀 역시 알 수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분명히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분명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겠다고 저와 약조하지 않았나요?”
표정이 굳은 채 질문을 던지는 유서하를 향해 진무량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어떤 거짓말이라도 해. 그러니까 그걸 믿을지 말지는 네가 알아서 선택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