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악무도-11화 (11/143)

11화. 백검문

2017.05.11.

어두운 방 안.

흔들리는 촛불의 옅은 불빛이 주변을 비췄다.

휑한 방 안에 덩그러니 놓인 책상 위에는 무언가 잔뜩 쓰인 문서들이 정돈되어 있고, 그 옆에는 검은 수염을 기른 노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노인의 이름은 적무혁.

적무혁은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생김새였다. 그에게서 단 하나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귓불에 귀걸이처럼 생긴 큰 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글씨가 빼곡히 적힌 문서들을 한 장씩 살펴보던 적무혁이 돌연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흐음.”

유일하게 어두운 방을 밝히고 있는 촛불이 미세하게 떨렸다.

적무혁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렸다.

“어찌된 일이냐?”

적무혁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아무것도 없던 방 안에 갑자기 부상을 입은 사내가 나타났다.

온몸이 검으로 난자당한 것 같은 상처를 입은 그 사내는, 진무량과 겨뤘던 소천광이었다.

소천광이 말했다.

“송구합니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소천광의 행색을 살피던 적무혁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안휘에서 너를 그 꼴로 만들 수 있는 상대가 있더냐? 남궁세가의 가주와 만났더라도 그 모양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소천광의 몸이 떨려왔다.

“저와 겨룬 자는 마교의 귀혈악인이었습니다.”

소천광의 대답을 듣고, 적무혁의 검은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일렁였다.

“귀혈악인이라……. 살아있었던가.”

적무혁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후, 고개를 돌려 소천광의 행색을 다시 한번 살폈다.

“그와 겨뤘다면 지금 네놈의 한심한 꼴도 이해가 가는구나.”

소천광의 몸이 또다시 미세하게 떨렸다.

소천광의 반응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적무혁이 말을 이었다.

“귀혈악인의 위치는 파악했느냐?”

“혈월회의 살수들에게…….”

적무혁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소천광의 말을 잘랐다.

“지렁이 새끼에게 용을 감시하라 시킨 게냐?”

소천광은 어떤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쯧.”

짧게 혀를 찬 후에 적무혁은 소천광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문서들을 살폈다.

문서를 한 장씩 넘기던 적무혁이 입을 열었다.

“서찰을 가져간 남궁세가 놈은 처리했느냐?”

“…….”

또다시 소천광이 대답하지 못하자, 적무혁의 몸에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세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살벌한 눈동자로 소천광을 바라보며 노인이 말했다.

“쓸모없는 놈. 내 너를 그리 아꼈거늘……. 더 이상 보기 싫으니 썩 꺼지거라.”

소천광은 자신의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제가 다시 가서…….”

“분명.”

노인의 입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흘러나왔다.

“꺼지라고 했을 텐데.”

망설이던 기색의 소천광은 즉시 노인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소천광은 마치 유령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노인은 내뿜고 있던 살벌한 기운을 갈무리했다.

그러고는 전부터 살피던 문서들을 책상 위에 던졌다.

파르르륵.

허공을 어지러이 흩날리던 종이들이 점차 바닥으로 떨어졌다.

노인은 흐트러진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갑작스러운 진무량의 출현은, 분명 예사로운 일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허나 당장 그의 대해 조사하는 것보다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잃어버린 서찰을 되찾는 것.

우연히 남궁헌의 손에 들어간 서찰을 되찾는 것이 지금은 무엇보다 시급했다.

노인은 허리를 숙여 떨어진 문서 중에 한 장을 집어 올렸다.

“이놈 정도면 실수 없이 처리하겠지.”

노인이 집은 종이 위에는 철전패왕(鐵錢覇王) 손무엽(孫武燁)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 * *

백검문(百劍門).

강호에 이름난 명문 문파는 아니었으나, 백검문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문파였다.

안휘를 기반으로 명성을 쌓기 시작한 백검문은 잇달아 좋은 평판을 받았다. 조금씩 정파무림에서도 그들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백검문은 어엿한 하나의 문파로 자리 잡게 되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활기찬 일상을 보내고 있던 백검문에 돌연 중년의 사내가 방문했다.

저벅. 저벅.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무복 사이로 다부진 근육이 눈에 띄는 그 중년 사내의 이름은 손무엽이었다.

손무엽은 거침없이 백검문의 현판이 걸린 입구를 향해 다가갔다.

보초를 서던 백검문의 무인이 거침없이 다가오는 손무엽을 막아섰다.

“누구…….”

백검문의 무인의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손무엽 주먹이 움직였다.

퍽!

손무엽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앞을 막고 있던 백검문 무인의 가슴에 주먹을 꽂았다.

반응할 새도 없이 손무엽에게 불의에 일격을 맞은 무인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지면서 절명했다.

손무엽은 자신이 죽인 상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허공에 손을 한 번 털고 난 뒤 백검문 입구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근처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다른 무인은 순간 넋이 나갔다. 재빨리 정신을 차린 그는 엄지와 검지를 입에 넣고 세게 불었다.

삐익―!

새가 시끄러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듣고 흩어져 있었던 백검문의 무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무인들의 수가 점점 늘어났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동료의 처참한 시신.

채앵!

장내를 가득 메운 백검문의 무인들이 동시에 손무엽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여유롭게 그 광경을 지켜보던 손무엽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다 모인 건가.”

손무엽은 한차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소리를 내뱉었다.

“흐하아아압―!”

손무엽이 일갈을 내뱉는 순간, 그곳에 있는 백검문 무인 모두가 귀를 틀어막았다.

“으악!”

“끄으으윽!”

손무엽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단순한 외침이 아니었다.

사자후(獅子吼).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내뱉는 무공. 그 외침을 듣는 것만으로도 내력이 약한 자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히는 치명적인 손무엽의 무공이었다.

게다가 손무엽은 완벽하게 내공을 안배해서, 백검문 내부에만 사자후가 울려 퍼질 수 있게 조절했다.

손무엽의 사자후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이 몸은 너희를 전부 죽이러 왔다아아아―!”

백검문의 무인들 입장에서 손무엽이 내지르는 사자후는 고통 그 자체였다. 손무엽이 말을 내뱉을 때마다 마치 귀가 찢겨져나가는 것 같았다.

털썩.

몇몇은 손무엽의 사자후를 견디지 못하고 귀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손무엽은 쓰러진 이들을 한심하게 쳐다보더니, 사자후가 아닌 평범한 목소리로 외쳤다.

“너희가 나를 만나게 된 건 단순한 불운! 그런 너희를 위해, 숨이 끊어지기 전에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는 기회를 다섯 번 주겠다.”

손무엽은 그 말을 끝으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있었다.

백검문의 무인들은 난감한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혀 판단하지 못했다.

문득 궁금증이 인 무인 하나가 무의식에서 흘러나오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왜 하필 다섯 번이지?”

손무엽의 대답이 들려왔다.

“내 마음이다. 이제 네 번 남았다.”

혼잣말을 중얼거렸던 백검문의 무인은 너무 놀라서 뒤로 자빠져버렸다.

바로 옆 사람조차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였는데, 손무엽은 정확히 그 소리를 듣고 반응한 것이다.

그때 소란을 듣고 백검문의 문주가 뛰쳐나왔다.

백검문의 문주는 자신을 호위하는 무사들을 지나서 손무엽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백검문의 문주가 손무엽을 향해 물었다.

“그대의 이름이 무엇이오?”

“철전패왕(鐵錢覇王) 손무엽(孫武燁)이다. 질문은 이제 세 번 남았다.”

손무엽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문주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그뿐 아니라 연배가 있는 무인들 모두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철전패왕 손무엽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손무엽은 이십 년 전 사파에서 사천왕(四天王)이라 불렸던 고수.

수없이 많은 천하의 고수들을 모아놓고 서열을 매겼을 때, 사파의 사천왕으로 불린 손무엽은 능히 상위 백 명안에 들 수 있는 이름이었다.

언젠가부터 은거에 들어가 젊은 무인들은 그 이름을 알지 못했지만, 그 시절 강호에서 활동했던 무인들은 손무엽의 악명을 아직까지도 잊지 못했다.

백검문의 문주는 놀란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손무엽을 향해 물었다.

“무림을 떠나 은거했다던 그대가 왜 백검문을 찾아온 것이오?”

손무엽이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가 말을 이었다.

“대답이 두 가지이니, 두 개의 질문으로 받아들이겠다. 첫째, 난 은거에 들어간 적이 없다. 둘째, 너희를 전부 죽이기 위해서이다.”

백검문의 문주는 검집에 꽂혀있는 자신의 검을 세게 움켜쥐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일갈을 내지르며 검을 뽑아 손무엽의 무례함을 응징하고 싶었다.

허나 그렇게 행동할 수가 없었다.

겨뤄보지 않았음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자신과 손무엽의 실력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백검문 전부가 덤빈다 해도…….’

백검문의 문주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다.

강호에서 검을 잡고 나서부터 꾸준히 무공을 수련하고 은자를 모아, 노년에야 겨우 만든 문파가 바로 백검문이다.

이제야 조금씩 명성도 쌓고, 주위에 인정도 받고 있었는데…….

삶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만든 소중한 백검문이 하루아침에 멸문에 위기에 처했다는 이 사실을 도저히 믿고 싶지가 않았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당연히 이어질 것이라 여겼거늘…….’

“흘흘.”

백검문의 문주는 돌연 자조적인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저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남을 짓밟을 수 있는 곳이 강호라는 것을 사무치게 마음속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자신은 그리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지독한 씁쓸함을 남겼지만.

백검문의 문주는 자신을 상징하는 하얀 검을 뽑아들며 말했다.

“내 직접 나설 테니, 다른 이들은 건드리지 말아 주겠는가?”

“거절한다.”

다섯 번째 대답이 끝나는 순간, 손무엽은 내공을 끌어올렸다.

바위마저 가루로 만들어 버릴 것 같은 기세가 손무엽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움켜쥔 주먹을 들어 올린 채 손무엽이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한 놈도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할 것이다.”

* * *

대못으로 머리를 쑤시는 것 같은 통증과 함께, 견무겸의 의식이 희미하게 돌아왔다.

“크윽.”

견무겸이 나직이 신음을 흘렸다.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이다 보니 화살이 꿰뚫렸던 어깨에서 극심한 통증이 일었다.

어깨를 부여잡으며 견무겸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 안이 넓다는 것을 빼면 달리 특별한 것은 없어 보였으나…….

그의 시선이 한쪽에서 편안한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있는 진무량에게서 멈췄다.

진무량은 견무겸이 깨어나건 말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고통을 참으며 견무겸이 어렵게 진무량을 향해 말했다.

“네놈이 어찌……. 아니, 그보다 아가씨는 어디 있느냐?”

“글쎄?”

견무겸은 진무량의 반응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설마 네놈, 아가씨에게…….”

진무량이 견무겸의 말을 가로챘다.

“무슨 짓이라도 했을까 봐?”

견무겸이 매서운 시선으로 진무량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마주하며 진무량이 불길한 웃음을 지었다.

“네가 말하는 아가씨가 무방비 상태로 꽤나 오래 쓰러져 있긴 했지.”

“네 이놈!”

견무겸은 당장 진무량을 향해 튀어 나가려 했으나, 부상당한 몸이 따라주지 못했다.

“크윽!”

견무겸이 신음을 흘리며 극심한 통증이 이는 어깨를 부여잡았다.

가만히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진무량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놀리는 재미가 쏠쏠한 놈이군.”

금세 관심이 사라진 진무량이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기는데, 밖에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유서하였다.

밖에서 견무겸의 목소리를 들은 유서하는 재빨리 방문을 열었다.

의식이 돌아온 견무겸의 모습을 확인한 유서하가 한걸음에 다가갔다.

“무겸!”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다친 부분을 바라보는 유서하를 향해 견무겸이 말했다.

“아가씨, 무사하신 겁니까?”

의문스런 기색을 내비치며 유서하가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두 사람의 대화에 진무량이 끼어들었다.

“남궁세가의 가주는 만난 건가?”

진무량의 반응을 보고서야, 견무겸은 자신이 오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서하는 무사했고, 그는 유서하의 행방에 대해서도 다 알고 있던 것이다.

‘끄응.’

견무겸이 분한 듯이 진무량을 쏘아보았다. 허나 진무량은 그에게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진무량의 물음에 대한 유서하의 대답이 이어졌다.

“가주님께서 자리를 비우고 계신 상황이라 만나지 못했어요.”

남궁세가도 지금 정신이 없을 법했다.

남궁헌은 혈월회에게 습격을 당해 아직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무림공적인 진무량이 나타났다는 소문마저 돌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유서하는 남궁현일을 만나서 진무량이 살아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된 경위를 알아보려 했으나, 아쉽게도 만나지 못했다.

‘가주님께서는 어디로 가신 걸까?’

* * *

남궁현일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아무도 없는 남궁세가의 넓은 연무장이었다.

남궁현일은 연무장 한가운데 우두커니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복잡한 문제에 당면하게 되었을 때 남궁현일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이었다.

그저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보다 보면 지금까지 생각지 못했던 것을 발견할 수도 있었고, 조금 더 넓어진 시각으로 복잡한 문제에 대해 접근할 수 있었다.

무수히 많은 별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나 격려를 건네주는 아주 고마운 존재였다.

저벅 저벅.

바람이 스치는 소리만이 들리는 연무장에 일정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갈한 옷차림의 총명한 눈동자를 빛내는 그 사내는 남궁현일의 첫째 아들이자, 남궁세가의 대공자 남궁지(南宮地)였다.

남궁지가 남궁현일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쉬고 싶은 마음에 조금 일찍 나온 것이니, 괘념치 말거라.”

남궁현일의 목소리는 지쳐있다는 것을 나타내듯이 많이 가라앉아있었다.

남궁현일의 눈가에 새겨진 깊은 주름을 바라보던 남궁지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헌이의 일이라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렸을 적부터 제가 혹독하게 단련시켰으니, 곧 훌훌 털고 일어날 것입니다.”

남궁현일은 남궁지의 갸륵한 마음을 안다는 듯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래, 분명 그럴 것이다.”

“헌이를 그 지경으로 만든 자들에 대해서는 알아내셨습니까?”

“서하에게 듣기로는, 헌이가 혈월회의 습격을 받고 있었다고 하더구나. 헌데 석연치가 않아. 뭔가 더 숨겨진 일이 있는 것 같구나.”

“분명 헌이가 제 몸 하나 지키지 못할 정도의 아이는 아니긴 합니다만…….”

남궁지의 얼굴이 조금씩 심각해지면서 마음에 걸리는 것을 토로했다.

“아버님께선 소문처럼 귀혈악인이 안휘에 숨어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쎄, 아직 무엇 하나 확정지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천추가 알아본다고 나섰으니 일단은 지켜보는 수밖에.”

남궁현일의 입에서 남궁천추가 언급되는 순간, 남궁지의 얼굴에 근심이 서렸다.

“요새 말썽이 없기는 했지만, 천추 그 녀석을 생각하면 항상 걱정이 앞섭니다.”

남궁현일은 가볍게 웃음을 지으며 남궁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래, 허니 네가 천추에게 조금 더 신경을 써 주어라. 비단 천추뿐만 아니라, 세가에 어떤 변고가 찾아온다 하더라도 네가 앞장서서 가족들을 지켜야 하느니라.”

남궁지의 어깨를 두드리며 남궁현일이 말을 이었다.

“내 항상 너를 믿고 있다.”

남궁지는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남궁현일의 큼직한 손이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맞닿은 그 손을 통해 세가의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남궁현일의 마음이 전해져왔기 때문이다.

남궁세가에 당면한 문제들을 천천히 돌이켜보던 남궁지의 머릿속에 문득 남궁천추가 떠올랐다.

남궁지에게 남궁천추는 항상 골칫덩이였다.

그런 남궁천추가 혼자 귀혈악인의 대한 소문을 파악하러 나섰으니 더욱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천추 녀석, 별 일이 없어야 할 텐데.’

* * *

곡언무는 혈월회의 살수들을 모두 이끌고 은밀한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가 소천광에게서 받은 명령은 손무엽을 따르라는 것이었다.

철저하게 주변을 경계하던 혈월회의 살수들 앞에 늠름한 체구를 가진 중년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혈월회의 살수들이 기다리고 있던 철전패왕 손무엽이었다.

손무엽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혈월회인가?”

곡언무는 곧바로 한쪽 무릎을 꿇고 양손을 모아 예를 취했다.

“도련님께 대충 상황은 전해 들었습니다.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게 해주십시오. 철전패왕 손무엽 대협.”

“그래, 모든 준비는 끝내놓았으니 너희들은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이제부터…….”

철전패왕 손무엽의 목소리가 어둠속에서 조용히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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