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악무도-10화 (10/143)

10화. 소문 (2)

2017.05.07.

남궁세가의 의방을 책임지고 있는 노인, 왕삼이 정성스레 달인 보약을 들고 견무겸의 방을 찾았다. 견무겸은 여전히 의식을 되찾지 못한 상태였다.

“서하 아가씨,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유서하는 얼른 문을 열고 나와 약을 들고 있는 왕삼을 맞았다.

유서하는 왕삼을 방 안으로 안내하면서, 그의 손에 들린 보약을 보고 겸연쩍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일은 저에게 시키지 그러셨어요.”

왕삼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노부의 일인 것을요.”

왕삼은 침상 옆 작은 탁자의 달인 약을 올려두고, 견무겸의 맥박을 확인했다.

“아가씨께서 밤새 간호해주셔서 그런지, 환자의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유서하는 벌써 며칠째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견무겸을 간호하고 있었다.

어젯밤 역시 하루를 꼬박 새서 견무겸을 간호했으나, 유서하는 전혀 그런 기색 없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다행이네요.”

“허허. 아가씨께서 웃으시니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이제 이곳은 제가 보살필 테니, 아가씨께서도 조금 쉬시지요.”

“아니에요. 제가…….”

“환자는 의원인 제가 돌볼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서하는 왕삼의 호의를 거절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무겸을 잘 부탁해요.”

진무량과 유서하는 남궁세가를 나와서 간단히 식사할 수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나섰다.

유서하와 함께 거리를 걷던 진무량은 이상한 시선을 느꼈다. 주변 사람들이 계속해서 자신을 힐끔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의아함을 느끼고 주변을 천천히 다시 돌아보았다.

거리에는 유독 사람들이 많았는데, 군중들의 시선이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유서하에게 쏠려 있었다.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유서하를 바라보는 순간 마치 홀린 듯이 눈을 떼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유서하는 평소에 넓은 죽립을 쓰고 다녔으나, 방금은 경황이 없어 죽립을 의방에 두고 와버렸던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쭉 훑어보던 진무량이 유서하에게 말했다.

“인기가 대단한데?”

유서하는 놀리는 듯한 진무량의 말에 딱히 대답하지 않고, 난처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걸음을 더욱 빨리했다.

다행히 객잔은 얼마 가지 않아 있었고 유서하와 진무량은 그곳으로 들어갔다.

바깥에 거리와 마찬가지로 객잔에도 사람이 가득 차 있었다.

거의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 찬 객잔 내부의 풍경은, 바라만 봐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진무량이 불만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뭐 이렇게 사람이 많아?”

“글쎄요. 이 근방은 꽤 자주 와 봤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 처음이네요.”

유서하가 난처해하고 있던 찰나, 다행히 객잔 구석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일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무량과 유서하는 인파를 헤치고 방금 생긴 빈자리에 앉았다.

평소와 달리 몰린 인파를 바라보며 유서하가 의문을 가졌다.

‘무슨 일이 생겼나?’

그때 객잔의 점소이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주문을 받기 위해 찾아왔다.

“주문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유서하가 묻기 전에 진무량이 먼저 말했다.

“난 아무거나 상관없어.”

유서하는 점소이에게 간단한 음식을 시켰다.

점소이는 유서하의 주문이 끝나자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얼른 다른 손님들의 주문을 받기 위해 움직였다.

유서하가 진무량을 향해 말했다.

“혹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뭐든지 더 시켜도 돼요.”

“잠깐 사라졌던 것에 복수를 한다고 하더니, 그건 끝난 건가?”

“정정해두죠. 당신을 쉬지 못하게 하려고 의방에서 밤을 새운 것이 아니라, 무겸의 간호 때문에 그랬던 거예요. 만약 당신이 말없이 사라지지 않았더라도 제 행동은 똑같았을 거고요.”

“호오, 그런 것치곤 꽤 화가 난 것 같던데.”

“그때는 당신이 말없이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라 저도 조금 흥분했던 것 같네요. 그러니까 앞으로 말없이 따로 행동하는 것만은 삼가주세요.”

그때 마침 점소이가 주문한 음식을 가지고 나왔다.

유서하와 진무량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차려진 음식 쪽으로 옮겨갔다.

두 사람은 음식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꽤나 많은 양의 음식이었으나, 밤을 새워서 그런지 진무량과 유서하는 어렵지 않게 그릇을 비워갔다.

음식을 먹은 뒤, 유서하가 진무량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이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지금까지 신경 쓰을 못 썼는데, 몸은 괜찮은가요?”

“보다시피 별문제 없어.”

유서하는 의문이 들었다.

연주를 통해 돌아온 내공을 사용하고 나면 진무량에게 끔찍한 고통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아버지인 유월천에게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혈마옥에서와 달리 이번에는 통증이 없으셨나요?”

“연주가 멈췄을 때 찾아오는 통증은 비슷했어. 다만 몸 상태가 그때보다 나았고, 한 번 경험해본 통증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대비할 수도 있었지.”

진무량이 찻잔에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말을 이었다.

“원래 고통이라는 게 겪으면 겪을수록 무뎌지거든.”

“그렇다면……. 실신할 정도의 괴로움을 느끼면서도 저희를 남궁세가로 데려가 주신 건가요?”

“그렇게 되는 건가.”

무미건조하게 말을 하는 진무량을 향해 유서하가 갑작스레 머리를 굽혔다.

“왜 이래?”

“미안해요. 당신이 아무렇지 않게 행동해서 정말 괜찮은 줄 알았어요. 그리고 너무 늦은 인사지만, 그때 저희를 구해준 것 정말 고마워요.”

진무량은 냉랭한 태도를 유지하며 말했다.

“인사는 필요 없어. 당장 네가 죽으면 내가 곤란해지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 것뿐이니까.”

“상황이 어찌되었든 저를 구해준 것은 사실.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보답할게요.”

“뭐, 그러든지.”

진무량은 유서하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행동을 통해 유서하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에게 빚을 지는 것이 되니, 괜히 나중에 입장이 불리해질 수도 있는 일.

진무량은 유서하의 행동에 의미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유서하의 의도를 생각해보았다.

허나 그 생각은 갑작스레 들려오는 어느 사내의 외침으로 인해 깨졌다.

“정말 귀혈악인이 살아있단 말인가!”

진무량과 유서하가 앉아있는 자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좌석에서 들려온 외침.

진무량과 유서하의 시선이 동시에 목소리의 주인공을 쫓았다.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무림인으로 보이는 두 명의 사내가 있었다.

방금 소리쳤던 사내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일행이 목소리를 낮추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예끼, 이 사람! 목소리를 낮추지 못하겠는가. 떠도는 소문일 뿐이야.”

무림인들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허허, 아무리 그래도 이토록 끔찍한 소문이 돌다니……. 귀혈악인이 살아있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그가 내 근처에 있을 거라는 상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다 돋네.”

말을 마친 사내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벌써 몇몇 문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하니, 곧 진상이 밝혀지지 않겠는가.”

“헌데 만약에,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 괴물이 정말 안휘성에 숨어있다면…….”

사내는 도저히 생각도 하기 싫은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말을 멈췄다.

“귀혈악인이 정말로 살아있다면, 아마도 이 근방의 모든 문파들이 들고 일어서겠지.”

“그야말로 안휘성 전체가 난리가 나겠구먼.”

유서하는 두 무림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불안한 마음이 일었다. 대충 상황을 파악한 그녀는 자리에서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서둘러서 돌아가야겠어요.”

* * *

쉴 새 없이 내리쬐던 태양이 구름 옆으로 숨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오후, 진무량과 유서하는 객잔에서 빠져나와 남궁세가로 향하고 있었다.

걸음을 서두르던 유서하의 눈에 익숙한 무복을 단체로 입고 있는 일련의 무리가 들어왔다.

하얀 무복에 파란 허리띠를 둘러멘 그 의복은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입는 옷이었다.

“아니, 이게 누구시오?”

선두에서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통솔하고 있던 사내가 돌연 유서하를 향해 아는 척을 해왔다.

“유 소저. 오랜만에 뵙소.”

가볍게 포권을 취하면서 유서하에게 인사를 건넨 이는 남궁천추(南宮千秋)였다.

그는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현일의 둘째 아들이었다.

남궁천추는 삼십 대가 조금 넘어 보이는 외모로, 유독 돌출된 입이 눈에 띄었다.

남궁천추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유 소저를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되다니, 참으로 좋은 징조인 것 같소.”

남궁천추와 유서하는 겨우 얼굴만 알 뿐, 그다지 가까운 관계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궁천추가 유독 유서하를 반기는 이유는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 때문이었다. 남궁천추는 유서하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녀의 빼어난 외모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남궁천추가 과장된 몸짓을 곁들이며 유서하를 향해 말했다.

“유 소저께서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소. 부상을 입으셨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쳐드리게 했네요. 이제 괜찮습니다.”

남궁천추는 뭐가 그리 좋은지,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오. 무림이 큰 보물을 잃을 뻔했소!”

남궁천추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부터 귀하게 자라 왔다. 남궁현일의 둘째 아들이란 이유로 주위의 모든 이들이 그를 떠받들었던 것이다.

마땅한 훈육도 없이 자란 그가 가장 즐기는 것은 스스로를 과시하는 것이었다.

과시할 만한 능력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겠으나, 불행히도 그는 어떤 면에서도 뛰어난 면모를 보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궁천추는 누군가가 자신을 떠받들어 주는 것을 좋아했다. 때문에 남궁세가에서 그에 대한 평판은 아주 좋지 못했다.

유서하는 남궁천추의 과한 표현이 부담스럽게 느껴졌으나, 굳이 분란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과찬의 말씀이시네요.”

유서하가 예의상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녀가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주변을 살피는데, 남궁천추 뒤에 모여 있는 십여 명의 남궁세가 무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유서하가 물었다.

“세가에 무슨 일이 생겼나요?”

“근래에 귀혈악인이 이 근방에 숨어있다는 괴소문이 돌고 있소. 별것 아닌 소문에 모두 신경을 쓰는 것 같기에, 내 몸소 수하들을 이끌고 소문의 진상을 파악하러 가는 중이었소.”

유서하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우려의 기색이 스쳤다.

남궁세가를 비롯한 문파들이 다같이 움직이다 보면, 혹시라도 진무량의 정체를 의심하는 자가 생길까 걱정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남궁천추는 순간적으로 유서하의 얼굴에 비친 우려의 기색을 보고 크나큰 착각을 했다.

‘유 소저가 내 걱정을 하고 있는 게로구나.’

남궁천추가 호방하게 외쳤다.

“하하! 제가 있는데 무엇이 걱정이십니까?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 남궁천추가 귀혈악인을 단숨에 붙잡아올 것입니다! 그러니 유 소저께서는 아무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서하는 딱히 남궁천추의 언행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는 이곳에서 남궁천추와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네. 그럼 전 이만…….”

유서하가 떠나려는 기색을 보이자, 남궁천추는 난처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는 우연히 만난 유서하와 더 담소를 나누고 싶었다.

이야깃거리를 찾던 남궁천추의 눈에 유서하의 뒤에 있는 진무량이 들어왔다.

남궁천추가 한껏 목소리를 내리깔며 진무량에게 말을 걸었다.

“흐음, 그대가 유 소저의 호위무사인가?”

뜬금없이 날아든 남궁천추의 질문에 진무량은 가볍게 대답했다.

“그렇소.”

“음, 유 소저의 호위를 맡기에 자네는 영 믿음직해 보이지 않는군.”

남궁천추는 못마땅한 시선으로 진무량의 이곳저곳을 흘겨보았다.

“네놈이 지키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분인지 충분히 인지하고 호위를 해야 할 것이야. 만약 유 소저께서 위험에 처할 것 같으면 곧바로 나를 찾아와 도움을 청해야 한다. 알겠느냐?”

남궁천추는 아랫사람을 꾸짖는 듯한 어조로 진무량을 향해 말했다.

예를 중시하는 정파에서, 처음 보는 상대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큰 실례에 해당한다.

허나 남을 깔보는 것이 자신을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남궁천추에게는 그런 실례가 아주 흔한 일이었다.

거대한 정파의 세력 중에서도 크게 위세를 떨치고 있는 남궁세가. 그곳에서 이공자의 자리에 있는 데다가 특유의 자만심으로 가득 찬 남궁천추의 눈에, 진무량은 별 볼 일 없는 무사일 뿐이었다.

진무량은 눈앞에 애송이가 가소로워 보일 뿐이었다.

진무량과 마주한 채 그를 대놓고 깔볼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현 강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소림사의 장문인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일을 남궁천추는 아무렇지 않게 해낸 것이다.

진무량과 남궁천추의 명성을 비교한다면 가히 보름달이 내뿜는 빛과 반딧불이의 불빛 정도의 차이.

감히 그런 것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어불성설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라고 생각하고 그냥 무시할 수도 있었으나, 진무량의 성격상 사소한 것이라도 당하고 넘어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진무량이 유서하를 향해 말했다.

“저놈은 누군데 이렇게 나대는 거야?”

남궁천추는 예상치 못한 진무량의 반응에 얼굴이 붉어졌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유서하는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아보려 했다.

“남궁세가의 이공자 남궁천추 소협이에요. 그리고…….”

유서하의 말을 자르며, 남궁천추가 거만한 태도로 진무량을 향해 말했다.

“자, 이제 이 몸이 누군지 알았으니 어서 머리를 숙여 사과해라.”

남궁천추는 당연히 진무량이 싹싹 빌 줄 알았다. 허나 들려온 건 전혀 의외의 대답.

“철모르는 원숭이 새끼한테 내가 왜 사과를 해야 하지?”

제 분을 못 이긴 남궁천추의 손이 진무량을 향해 움직였다.

“이놈이!”

진무량의 눈에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남궁천추의 손이 마치 멈춘 것처럼 천천히 보였다.

그는 간단히 몸을 돌려 남궁천추의 손을 피하려 했다.

허나 내공을 사용할 수 없는 그의 몸이 뜻대로 반응해주지 못했다.

콰득.

남궁천추의 손이 순식간에 진무량의 어깨를 낚아챘다.

“일개 호위무사 따위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까부는군. 자, 다시 똑바로 용서를 빌어봐.”

진무량은 자신의 몸 상태를 너무 간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래의 실력이라면 남궁세가의 가주라 할지라도 그의 몸에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겠으나, 그는 지금 내공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지금까지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누군가와 겨뤄본 적은 없었다. 이렇게까지 자신의 몸이 느릴 줄 알았다면, 진무량은 미리 충분히 경계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남궁천추는 내공을 이용해 진무량의 어깨를 쥐고 있는 상황.

진무량은 남궁천추의 손을 뿌리칠 힘이 없었다.

“이놈이, 이래도?”

어깨가 붙잡혔음에도 진무량이 전혀 사과하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자, 남궁천추는 더욱 화가 치밀었다.

남궁천추는 아예 진무량의 어깨를 부숴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팍!

남궁천추가 손아귀에 힘을 더욱 주려는 순간, 유서하의 손날이 남궁천추의 손목을 내리쳤다.

갑작스레 일격을 당해 진무량의 어깨를 놓친 남궁천추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유 소저……?”

방금까지 유서하에게 느껴졌던 온화한 기색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유서하는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남궁천추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정도가 너무 지나치시군요. 저의 호위무사이고, 비천검문의 사람이에요. 이자를 욕보이는 건 비천검문과 저를 무시하는 일입니다.”

남궁천추는 갑자기 급변한 유서하의 태도에 당황했다.

“그, 그것은 절대 그렇지 않소. 저 호위무사가 너무 건방지게 굴기에 제가 가볍게 혼을 내주려 했던 것뿐이었소.”

남궁천추는 유서하의 화를 가라앉히려 했으나, 돌아오는 그녀의 대답은 더욱 싸늘했다.

“가볍게 혼을 내든, 심지어 잘못을 꾸짖어 목을 벤다 하더라도, 그것은 남궁천추 소협의 권한이 아니고 제가 결정할 일이에요.”

“…….”

남궁천추는 마땅한 변명거리가 떠오르지 않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유서하는 우물쭈물하는 남궁천추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제 호위무사가 남궁천추 소협에게 무례를 끼친 것도 사실. 하지만 그에 대한 남궁천추 소협의 행동이 잘못된 것도 명확하니, 서로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죠.”

유서하는 남궁천추가 원래 가려던 길을 흘겨보고는, 다시 차가운 시선으로 남궁천추를 쏘아보았다.

“급하게 이동하시던 중 아니었나요.”

남궁천추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 그렇소. 그럼 저는 급한 임무가 있어서 이만 가보겠소.”

유서하는 눈만 살짝 내리깔아 인사를 대신했다.

남궁천추는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데리고 도망치듯 그곳을 벗어났다.

남궁천추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 유서하가 진무량을 향해 다가갔다.

“상처 좀 봐요.”

갑작스런 유서하의 말에 진무량이 대꾸할 틈도 없었다. 그녀는 거침없이 다가가 상의를 잡아 당겨서 어깨의 상처를 살폈다.

진무량의 어깨 주변은 어느새 퍼렇게 부어올랐고, 남궁천추의 손가락이 직접 닿았던 곳은 색이 검게 변했다.

“뼈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유서하는 미안한 마음에 말을 끝맺지 못했다.

금을 연주해서 금제를 풀어주지 않으면 진무량은 본래의 힘을 사용할 수 없는 몸이다.

때문에 본래의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 동안 진무량을 지키는 건 자신의 몫이었다.

남궁천추의 행동을 미리 예측하고, 그를 말려서 이런 상황을 막았어야 했다.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유서하가 말했다.

“미안해요.”

진무량은 유서하의 사과를 보며 당황했다. 도무지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방금만 하더라도 그녀가 잘못한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서하는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기색을 나타내고 있었다.

진무량은 가끔 유서하의 행동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자신의 주위사람들은 거의 두 가지 부류 중 하나였다.

이용하거나, 이용당하거나.

처음에는 자신이 내공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을 이용해 뭔가 노리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허나 자신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방금의 부상에 그녀가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헌데 저 여인은 진솔함이 느껴지는 사과를 하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어깨의 상처를 바라보고 있다.

누군가가 진심으로 걱정해준다는 것은, 진무량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진무량은 유서하의 손길을 치우며 흘러내린 상의를 제대로 입었다.

“별 것 아니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진무량은 유서하가 자신을 걱정하든 말든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그녀를 이용해 내상을 없애는 방법을 알아내거나,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 내공을 사용하기 위해 이용하는 존재일 뿐.

진무량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헌데 그렇게 결론을 내리니, 왠지 다친 어깨가 더 쑤셔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안휘성을 기반으로 괴이한 소문이 점점 퍼지기 시작했다.

귀혈악인이 살아있다.

아주 간결한 내용의 소문이 가져온 파장은 엄청났다.

안휘성 주변의 거대 문파들은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을 파견했고, 중소 방파들은 일단 검을 잡고 닥치는 대로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다른 지역의 무인들도 하나둘씩 안휘로 모여들었다.

안휘성 일대에 흉흉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문은 안휘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중에 위치한 현암사에도 흘러들어갔다.

소문을 들은 검선 유월천은 지체하지 않았다. 그는 크지 않은 봇짐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며 현암사를 떠날 채비를 마쳤다.

유월천이 길을 나서려고 할 때, 한 동자승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어르신!”

유월천의 앞을 막아 선 동자승이 말을 이었다.

“곧 있으면 주지스님이 돌아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어르신께서 부탁하신 일도 다 끝마치지 못했습니다.”

유월천이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특유에 그의 처진 눈매가 더욱 휘어 완연한 초승달 모양이 되었다.

“급한 일이 생겨 모두에게 인사를 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을 네가 잘 좀 말해주렴. 내 부탁한 일은 꼭 잊지 말라고 당부해두고.”

동자승은 유월천이 이미 떠날 결심을 굳혔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동자승이 더 이상 그를 만류하지 못하고, 인사를 대신해 합장을 했다.

“꼭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어르신의 행선지를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딱히 정해진 행선지는 없구나. 누가 내 행선지를 묻는다면…….”

푸근한 웃음을 지으며 유월천이 말을 이었다.

“오랜만에 보기 싫은 옛 친우를 만나러 갔다고만 전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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