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악무도-5화 (5/143)

5화. 혈월회 (1)

2017.04.20.

혈월회의 살수 곡언무(曲彦珷)는 높은 지대에 거만한 자세로 앉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화려한 보석들로 온몸을 치장하고 있었으며, 얼굴에는 여인들이 사용하는 허연 분을 마구 칠해 놓은 행색이었다.

곡언무의 거만한 시선의 끝에는 스무 명이 넘는 인파가 한 사내를 포위하고 있는 광경이 펼쳐져있었다.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

곡언무는 성대를 긁어서 억지로 여자 목소리를 흉내 냈다.

포위를 당하고 있는 사내는 곡언무의 역겨운 목소리를 듣고서 이빨을 갈며 응답했다.

“비열한 놈들. 한꺼번에 덤벼라! 나 백의유협(白衣儒俠) 남궁헌(南宮憲), 졸렬한 사파의 무리에게 머리 숙일 생각은 추호도 없다!”

호방한 남궁헌의 외침에, 곡언무는 가소롭다는 듯이 그를 조롱했다.

“어머? 점점 더 마음에 드네. 더 힘껏 발버둥 쳐봐. 어차피 곧 내 발밑에서 기어 다니게 될 테니까.”

곡언무는 혓바닥으로 입술을 훔치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 행동을 신호로, 남궁헌을 둘러싸고 있는 혈월회의 살수들이 동시에 검을 치켜들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남궁헌의 뒤쪽에 있는 살수가 순식간에 움직였다.

남궁헌은 뒤쪽에서부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살수의 기척을 눈치채고, 얼마 남지 않은 내공을 모조리 쥐어짜서 검 끝에 실었다.

‘경파검(驚波劍)!’

남궁헌이 쥐고 있는 검이 지면을 뚫었다. 그와 동시에 지면을 이루고 있던 돌멩이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파아아앗!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돌멩이에는 모두 남궁헌의 정심한 내공이 실려 있었다.

남궁헌을 압박해 오던 살수들은 마구잡이로 튀는 돌덩이를 쳐내느라 움직임이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남궁헌은 그 찰나의 순간을 기회로 삼았다.

그는 순식간에 전방으로 달려 나가며,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살수들을 모조리 검으로 쳐냈다.

단번에 포위를 빠져나온 남궁헌은 곡언무가 있는 곳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그는 한껏 눈을 부라리며 모든 힘을 다해 곡언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죽어라!”

놀랄 만한 남궁헌의 기세에도 불구하고, 곡언무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호호.”

남궁헌의 검이 지척에 다가왔을 때에야 비로소 곡언무가 움직였다.

그는 남궁헌의 공격을 미리 읽어내고, 몸을 비틀어 가볍게 일검을 피해냈다.

곡언무의 번개 같은 움직임은 단순히 검을 피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순식간에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휘어진 곡도를 뽑아 남궁헌의 복부를 향해 찔렀다.

푸욱!

공격을 실패해 빈틈투성이였던 남궁헌은 미처 곡언무의 움직임에 반응할 수 없었다.

“크허어억.”

곡언무는 남궁헌의 복부를 쑤시는 기분을 만끽한 뒤,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지르며 말했다.

“꺄하하하! 그런 중상을 입고 검을 휘둘러봐야 뻔히 보이지. 평소라면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상대에게 무참히 당하는 기분이 어때? 으응?”

남궁헌은 고통 때문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수치스러움과 고통이 겹쳐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강인한 의지로 아직 혼절하지 않은 남궁헌을 향해 곡언무가 얼굴을 들이밀며 조롱했다.

“도련님의 몰골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자, 이제 반항하지 말고 가지고 있는 서찰을 돌려주실까? 그건 애초에 네놈 따위가 가져서는 안될 물건이거든.”

남궁헌은 적의를 가득 담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곡언무를 노려보았다.

심한 부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으나, 그럼에도 결코 곡언무에게는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행동이었다.

필사적인 남궁헌의 모습을 보며 곡언무가 조롱했다.

“아직도 반항하려고?”

“퉤!”

남궁헌은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모든 힘을 긁어모아 피가 잔뜩 섞인 침을 곡언무에게 뱉었다.

허나 그마저도 곡언무의 옆에 있던 살수가 순간적으로 움직여 몸으로 가로막아버렸다.

곡언무의 얼굴이 환희에 차서 부들부들 떨렸다.

피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발악하는 남궁헌을 바라보는 것이 곡언무에게 신선한 재미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곡언무의 눈에 광적인 이채가 돌며, 만족스럽다는 듯 말했다.

“마음에 들어! 이놈, 굴복시키는 맛이 있겠어. 참고로 난 사람을 단칼에 죽이는 걸 좋아하지 않아. 자, 과연 언제까지 내게 그런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 호호호!”

얼굴을 얇은 천으로 가린 혈월회의 살수가 곡언무의 옆으로 다가와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

“일단 잃어버린 서찰부터 찾는 것이…….”

곡언무는 방금 말을 건넨 살수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 가득했던 잔혹한 웃음은 순식간에 완전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싸늘한 무표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헛소리 말고, 네가 죽고 싶지 않으면 이놈을 잘 포박해서 가둬놔.”

곡언무에게 말을 건넨 살수는 얼른 머리를 숙였다. 그러고는 남궁헌을 묶기 위해 다가갔다.

디리리리링―!

그 순간 청아한 금의 연주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살수들은 의문을 느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허나 소리가 사방에서 울렸기 때문에 정확한 근원지를 찾을 수 없었다.

아름다운 금의 선율은 단순히 곡조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었다. 현이 튕기며 만들어지는 소리에는 막대한 내공이 담겨 있었다.

연주가 조금 더 이어지자, 혈월회 살수들에게는 그 소리가 마치 뇌성벽력처럼 들려왔다.

디링―! 디리리링―!

혈월회 살수들이 양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으나, 전혀 소용이 없었다.

뇌성벽력과 같은 금의 연주 소리는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부터 들려왔기 때문이다.

“커억!”

“으아아악!”

이윽고 음공의 방비를 하지 못한 네다섯 명의 살수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곡언무는 즉시 내공을 끌어올리며 경계 자세를 취했다.

“음공이다! 모두 내공을 끌어올리고 구금진(九禁進)을 펼쳐라!”

곡언무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살수들은 그를 둘러싼 채 기묘한 대형을 갖추며 방어태세를 취했다.

살수들은 잔뜩 긴장한 상태로 사방을 경계했다.

그 순간 시끄럽게 울리던 금(琴)의 울림이 갑자기 멎었다.

곡언무가 허공을 향해 외쳤다.

“누구냐!”

이어지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당황하고 있는 것을 숨기지 못하는 여타 혈월회의 살수들과 달리, 곡언무는 음공을 사용한 상대를 찾기 위해 냉철하게 어둠이 깔린 숲을 세밀하게 살폈다.

곡언무의 시선이 숲의 한 지점에서 멈추며, 슬며시 품속에 숨기고 있는 얇고 가느다란 표도를 쥐었다.

“저기다!”

곡언무는 외침과 동시에 표도를 날렸다.

곡언무가 자랑하는 암기술 중 하나인 연월표(燕月鏢)였다.

고속의 회전을 머금은 곡언무의 표도는 앞을 가로막고 있는 나무들을 모조리 부숴버리며 목표지점을 향해 나아갔다.

주변의 살수들은 당황한 와중에도 곡언무의 행동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이는 저들이 경험이 많은 살수들이라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살수들은 즉시 냉정을 되찾으며 곡언무의 비수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쾅!

연월표는 앞을 가로막는 바위를 부숴버리면서 움직임이 멈췄다.

곡언무의 연월표를 사이에 두고, 진무량과 유서하가 모습을 드러냈다.

곡언무는 또다시 귀에 거슬리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냈다.

“그냥 지나쳤다면 살 수 있었을 것을……. 괜한 의협심 때문에 오늘 여기가 너희들이 죽을 곳이 되겠구나!”

넓은 죽립을 쓴 사내. 진무량이 유서하를 향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핫! 의협심이라니.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진무량의 행동에, 곡언무와 혈월회 살수들은 의아함을 느꼈다.

위치를 들킨 데다가 포위까지 당한 상대의 반응치고는 너무나 태연해보였기 때문이다.

“설마!”

곡언무의 시선이 재빨리 남궁헌을 향했다.

허나 이미 남궁헌의 신형은 사라진 상태였다.

그제야 곡언무는 진무량과 유서하 말고도 또 한 명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 순간, 유서하와 따로 움직였던 견무겸이 정신을 잃은 남궁헌을 둘러메고 유서하의 곁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견무겸이 말했다.

“무사히 구해냈습니다. 남궁헌 소협이 확실합니다.”

유서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서하는 기척을 최대한 감추고 멀리서 상황을 살피다가, 정체불명의 무리들이 한 사내를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유서하는 포위당해 위기에 빠진 사내가 바로 남궁헌이라는 것을 알고 크게 놀랐다.

비천검문과 남궁세가는 예전부터 친분이 있어 왕래가 잦았기 때문에, 멀리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남궁헌의 신변을 정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

남궁헌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한 유서하는 먼저 음공을 펼쳐서 살수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렇게 만들어낸 찰나의 틈을 이용해 견무겸을 은밀히 반대쪽으로 움직이게 해서 남궁헌을 무사히 구해낸 것이다.

허연 분을 칠한 곡언무의 얼굴이 추하게 일그러졌다.

“이 연놈들이!”

곡언무는 자신이 유서하의 손바닥 안에서 완전히 놀아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곡언무가 격분하자 수십 명의 혈월회 살수들의 기세 또한 맹렬히 사나워졌다.

허나 위협적인 혈월회 살수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진무량은 시종일관 여유로웠다.

그가 가벼운 농담을 건네듯이 유서하를 향해 말했다.

“애초에 처음 기습으로 한 번에 다 죽였어야지. 괜히 일이 귀찮게 됐잖아.”

“남궁헌 소협의 신변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었어요. 그리고 저들에게도 도망칠 기회 정도는 줘야죠.”

진무량은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을 굉장히 귀찮게 처리하는군.”

유서하의 대답은 단호했다.

“정당한 뜻을 이루기 위해 겨루고, 최소한의 살생을 추구하며, 그럼에도 덤벼드는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힘을 키우는 거예요.”

진무량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정말 전형적으로 역겨운 정파인 생각이군.”

자신을 완전히 무시한 채 대화를 나누는 진무량과 유서하의 모습에 곡언무는 더욱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언제까지 주둥이를 놀릴 셈이냐!”

곡언무가 거칠게 외치며, 양손을 좌우로 펼쳤다.

십여 명의 혈월회 살수들은 미리 합을 맞춰놓은 회살진(回殺進)을 펼치기 위해 움직였다.

그들은 발밑에 먼지가 일어날 정도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일련의 진형을 만들어갔다.

진무량은 그 광경을 느긋하게 바라보며 유서하를 향해 말했다.

“내가 나서야 하나?”

진무량의 물음에 유서하가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견무겸이 움직였다.

“얌전히 보고나 있거라!”

견무겸이 호기롭게 땅을 박차고 튀어나가면서 진무량을 향해 외쳤다.

그는 검신을 바닥으로 향하도록 검을 쥐고서, 일말의 망설임 없이 살수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혈월회의 살수들은 환영처럼 흩어지며 견무겸과 직접적인 충돌을 피했다.

혈월회 살수들이 펼친 진형은 회살진.

죽이려는 대상을 가운데로 몰아놓고 사방에서 폭풍처럼 공격을 쏟아붓는 진법이었다.

견무겸을 충분히 끌어들였다고 생각한 혈월회의 살수들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쉬익! 쉬익!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견무겸을 포위한 혈월회 살수들의 검이 요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노련하고 날카롭게 견무겸의 급소를 노렸다.

챙! 챙! 챙! 챙!

허나 견무겸은 당황하지 않고 검을 휘둘러 혈월회 살수들의 검을 모조리 쳐냈다.

한 차례 방어를 끝낸 뒤, 수세에 몰린 것처럼 보이던 견무겸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견무겸의 검은 지극히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쾌검.

서걱.

가느다란 은색실과 같은 궤적을 남기며, 견무겸의 검이 혈월회 살수의 몸통을 베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검은 바람을 타듯이 움직이며 점점 더 속도가 빨라졌다.

이내 견무겸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초식을 펼쳤다.

‘기류쾌검(氣流快劍)!’

짧은 순간, 극쾌를 자랑하는 견무겸의 검이 세 명의 혈월회 살수들의 목을 날려버렸다.

혈월회 살수들은 상대가 휘두르는 검의 속도를 눈으로 쫓지 못할 정도였다.

견무겸은 계속해서 바람과 같은 쾌검식으로 주변 살수들을 압도해갔다.

눈앞의 급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전혀 긴장되지 않는 표정으로, 진무량은 팔짱을 끼고서 견무겸의 분전을 느긋하게 관찰했다.

몸의 균형을 적절히 옮기면서 힘을 사용하는 방식부터 시작해서 쾌검의 근원이 되는 손목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진무량이 말했다.

“제법 기본기는 갖춰져 있네. 그래도 감히 나한테 말을 붙일 실력은 아닌데.”

유서하는 음공으로 견무겸을 돕기 위해 금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보고 있지만 말고 좀 도와주는 게 어때요?”

“그때처럼 내공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면 도와주지. 그렇게만 해준다면 눈 깜짝할 새에 여기 있는 모든 놈들을 죽여줄게.”

“제가 실언을 했네요.”

유서하는 손끝에 내공을 집중해서 금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디리링―!

떨려오는 현을 통해서 청아한 음이 퍼져나갔다.

혈월회의 살수들은 간단한 눈짓으로 서로 의사소통을 했다.

일단 금을 연주하는 유서하를 뒤로 미루고 눈앞에 있는 견무겸부터 확실히 숨통을 끊자는 것이었다.

허나 어림도 없는 일.

유서하의 손가락이 금을 이루고 있는 일곱 개의 현 사이를 춤을 추듯 거침없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녀의 손가락이 현을 튕길 때마다 청량하고 맑은 음이 퍼져나갔다.

―귀형음혼류(鬼形陰魂流) 파심곡(破心曲).

정심한 내공을 손끝에 실어 펼치는 금의 연주 소리는 서서히 막대한 힘이 담긴 무형의 음파로 변하기 시작했다.

연주가 이어질수록 무형의 음파에 담긴 힘이 커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사방으로 쏘아져나갔다.

디링―! 디링―! 디리리리링―!

무형의 음파에 적중당한 살수들은 엄청난 충격으로 인해 저 멀리로 튕겨나갔다.

“크아악!”

“우아아악!”

경험이 많은 살수들답게, 튕겨 나갔던 살수들은 재빨리 일어나며 태세를 정비했다.

주르륵.

그들은 곧바로 반격을 가하려 했지만, 입술을 타고 한줄기 선혈이 흘러나오더니 이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털썩 주저앉았다.

“으윽.”

“…….”

진무량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유서하의 음공을 보며 꽤나 감탄하고 있었다.

‘호오, 내상까지?’

무기로 직접 적을 찌르거나 베어서 목숨을 빼앗는 것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검이나 도의 고수들은 숱하게 만나 보았기 때문에 어지간한 무공에는 놀랄 일이 없었다.

허나 음공을 접해볼 기회는 별로 없었다.

게다가 척 보기에도 유서하의 음공 수준은 보통이 아니었다.

음공을 통해서 직접적인 타격을 가할 뿐아니라 내상까지 입히는 수준인 것이다.

유서하는 살수들이 펼치는 진의 흐름을 읽고. 바깥에서 핵심을 이루는 자들을 음파로 공격했다.

그와 동시에 진의 내부에서는 견무겸이 노도와 같은 쾌검을 펼치니, 혈월회의 살수들은 제대로 된 대처를 할 수 없었다.

‘좋지 않네.’

곡언무는 눈알을 굴리며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점점 혈월회 살수들이 수세로 몰리는 상황.

결정적 계기를 통해 이 상황을 역전시켜야 했다.

‘약점은 역시…….’

곡언무는 유서하가 금을 연주하는 데 몰두하느라 자신을 별로 경계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는 슬그머니 허리춤에서 곡도를 뽑아들었다.

‘일검(一劍)으로 저 여인에게 중상을 입히고 인질로 삼는다.’

파바밧!

어둠속에서 곡언무는 완벽한 사각으로 유서하를 향해 날아들었다.

‘양음쾌검(陽陰快儉)!’

순식간에 유서하에게 접근한 곡언무의 곡도가 일직선을 그렸다.

깡!

둔탁한 소리가 울리며, 곡언무의 곡도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멈췄다.

그의 휘어진 곡도를 막고 있는 것은 날이 무디고 녹이 슬어있는 거대한 창이었다.

진무량이 비웃음을 띤 채 말했다.

“살수 나부랭이들이 하는 짓이야 늘 뻔하지.”

진무량과 검을 마주한 지금 상태에서 곡언무가 전력을 다한다면, 내공이 없는 진무량의 창 정도는 충분히 밀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진무량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곡언무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오한이 일기 시작해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 멍해있던 곡언무는 허둥지둥 신형을 뒤로 날렸다.

그 사이 견무겸은 포위하고 있던 혈월회의 살수들을 모두 베어내고 쏜살같이 유서하의 곁으로 향했다.

견무겸이 다급하게 유서하를 향해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유서하가 대답하기 전에 진무량이 끼어들었다.

“고작 이정도 공격도 못 피하면 되겠어?”

유서하가 연주를 멈추며 진무량에게 대답했다.

“굳이 당신이 나서지 않았어도 저자는 제 몸에 손끝 하나 닿을 수 없었을 거예요.”

진무량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유감스러움을 드러냈다.

“뭐 그럼 다행이고. 이런 걸로 위험해지면 내가 신경 쓸 게 많아질 테니까.”

곡언무는 차츰 정신이 돌아왔지만 여전히 몸이 제멋대로 떨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몸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큰 공포로 다가왔다.

쉴 새 없이 흐르는 식은땀으로 인해 차츰 곡언무의 얼굴을 뒤덮고 있던 허연 화장이 지워졌다.

그의 입에서 예의 카랑카랑한 여자 목소리가 아닌, 거칠고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 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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