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세일소-194화 (194/201)

#   194 - 광세일소_한추영 - 171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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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화 결전 (6)

“이, 이건...!”

남궁진악이 주위를 둘러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허공으로 치솟는 수십, 수백 개의 검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평소보다 두 배 정도 커진 듯했다.

여기에 검이 이렇게 많았던가.

하기야 이곳의 이름은 천검총. 천 개의 검이 묻힌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었다. 천검총에 묻힌 천 개의 검을 이용하려고 생각했던 사람은 애초에 남궁진악 자신이었다. 이 검진을 이용하여 자신에게 맞서는 석추명과 기하진을 천검총에 묻으려고 했었다. 이름 그대로 두 사람의 무덤이 되도록....

그러니 준비도 자신이 했다는 석추명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 어찌 천 개의 검을 조종한단 말인가. 어검술은 고도의 정신 능력과 막대한 공력이 필요한 무공. 공력이 높다고 누구나 펼칠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검 한 자루를 움직이기조차 쉽지 않기에 강호에서 어검술을 구사하는 고수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게다가 어검술을 쓸 줄 안다 하여 반드시 싸움에서 이긴다는 보장도 없었다. 정신 능력으로 검을 허공에 띄우는 것은 신기한 능력이나 그것은 검이 지니는 위력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오히려 어검술로 허공에 띄운 검은 사람이 직접 잡아서 휘두르지 않기에 위력이 약했다. 검에 직접 공력을 불어넣을 수 없기에 검기발출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석추명은 달랐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석추명이 펼치는 어검술은 마치 직접 검을 잡고 휘두르는 것 같았다. 검기발출도 자유자재였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사실은 남들은 한 자루 검도 부리기 어려운데 석추명은 열 자루, 스무 자루, 마음대로 부리는 것이었다. 그 말은 곧 정신을 열 자락, 스무 자락으로 분산한다는 말과 같았다.

사람의 정신력이란 무한한 법이니 백번 양보하여 정신을 수십 자락으로 분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일천 개의 검에 정신을 분산한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불가능한 일이 지금 남궁진악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이, 이런 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이냐?”

남궁진악의 목소리가 떨려서 나왔다. 직접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석추명이 두 손을 한데 모으자 하늘을 뒤덮을 듯이 떠오른 검들이 허공에서 커다란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세 개의 원이 포함된 거대한 동심원 형태였다. 수백 개의 검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원들이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더욱 놀랍게도 세 개의 검환(劍環)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돌고 있었다.

석추명의 손끝에 공력이 집중될수록 검의 회전속도가 빨라졌다.

“아까 보여드린 비뢰환은 맛보기였소. 이게 진짜배기지.”

석추명이 공력을 모은 오른손을 머리 위로 높이 쳐들었다.

“자, 그럼 이것도 한번 막아보시오.”

“비뢰환. 천검비산(千劍飛散).”

석추명의 손끝이 남궁진악을 가리키며 떨어져 내리자 허공에 뜬 거대한 세 개의 동심원에서 검이 빗발치듯 남궁진악에게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콰르릉.

남궁진악의 검이 불을 뿜으며 허공에서 떨어지는 검을 쳐내기 시작했다.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 손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남궁진악의 호흡이 가빠지더니 곧 머리에서 찜통처럼 허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챙. 챙. 챙. 챙.

속사포 같이 떨어지는 검을 연신 쳐내었으나 애당초 한 자루의 검으로 천 개의 검에 맞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빨리 검을 휘두른다 해도 한 자루의 검으로 막아낼 수 있는 검의 개수에는 한계가 있었다.

남궁진악의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 흐르기 시작했다. 온몸에 진기가 발동해서인지 도포 자락도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검이 유성우(流星雨)처럼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공증인 10명과 운진자, 청풍도장 등은 눈앞에서 펼쳐진 신비롭고도 장대한 광경에 숨도 쉴 수 없었다.

개방의 송 방주도 마찬가지였다. 석추명이 오방단(五方團)을 조직할 때 개방은 단독으로 주작단으로 편성되었다. 그리고 지난밤, 석추명이 자신을 따로 불러 별도의 임무를 줄 때만 하더라도 이 젊은 신임 련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석추명이 송 방주에게 내린 명은 천검총에 은밀히 가서 폐허 속에 파묻힌 검을 모조리 꺼내 놓으라는 것이었다.

이름 자체가 천검총이니만큼 돌무더기 속에 파묻힌 검이 끝도 없이 나왔다. 제자들을 시켜 검을 꺼내면서도 아닌 밤중에 홍두깨격으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다.

“이름 그대로 비천검(飛天劍)이로구나. 석 련주는 진정한 비천신검이야.”

검우(劍雨)가 쏟아지는 광경을 보며 송 방주가 중얼거렸다.

천 개의 검을 날려 보낸 석추명의 무공도 기이했지만, 그 검을 모조리 막아내고 있는 남궁진악도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수백 개의 검과 부딪히던 남궁진악의 검에서 푸른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남궁진악의 검도 중원에서 찾아보기 힘든 보검이었건만 연이은 충격을 검날이 견디지 못한 것이다.

챙, 소리가 나더니 기어이 남궁진악의 검이 두 동강 나 버렸다. 그와 동시에 천검비산의 마지막 검 수십 개가 후두둑 떨어졌다. 그러자 남궁진악은 절묘한 보법을 펼쳐 검의 빗줄기 사이를 빠져나갔다. 몇 개는 손가락으로 튕겨내기도 했다.

“헉, 헉, 헉”

땀을 비 오듯 흘리는 남궁진악이 마지막 비검을 피한 다음, 탈진하기 일보 직전이 되어 숨을 헐떡이는데 문득 목에서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또 한 자루의 검이 검날을 곧추세우고 목에 바싹 붙어 있었다.

남궁진악이 고개를 돌려 검을 쥔 손을 바라보았다. 검의 이름은 비천검. 검의 주인은 석추명이었다.

“져, 졌다.”

그 말과 동시에 남궁진악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기력이 완전히 고갈되어 서 있을 힘도 없었던 것이다. 언제 왔는지 임예린과 기하진, 일봉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남궁진악이 입으로 패배를 시인하자 정도련 인사들은 우레와 같은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무림의 절대악, 남궁진악이 드디어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동안 남궁진악이 자행한 무수한 악행은 일일이 나열할 수조차 없었다. 깨진 문파가 몇 개고, 죽어 나간 사람이 몇 명이든가? 게다가 남궁진악은 귀면쌍살을 시켜 각 문파의 미래를 이어갈 뛰어난 후기지수들만 골라서 죽이는 짓을 저지르며 무림의 발전을 역행시켰다.

“당장 그놈의 목을 베야 하오.”

청풍도장이 남궁진악을 손가락질하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 자리에 있는 정도련 인사들은 모두 같은 심정이었다.

남궁진악이 패배를 시인하자 공증인 10명의 수장인 공각대사가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큰 소리로 선포했다.

“남궁진악, 패.”

하지만 석추명은 검을 거두지 않았다.

“패배를 시인했으니 약조를 지키시오.”

“좋다.”

남궁진악이 꿇어앉은 채 품속을 더듬더니 검은색 액체가 든 약병을 하나 꺼냈다.

“해약이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목숨만은 살려주겠다고 약조해라.”

남궁진악이 끝까지 살아남으려고 치졸한 수를 썼다. 주위에서는 당장 그놈의 목을 베야 한다는 성토가 끊이지 않았다.

석추명이 잠시 말없이 남궁진악을 바라보았다. 수치를 모르는 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림 맹주 자리까지 올라갔던 자가 이처럼 수치스럽게 목숨을 구걸하고 싶은 걸까.

하지만 석추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어차피 패한 자는 무공을 잃고 강호를 떠나기로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으니 굳이 당신의 목숨을 뺏지는 않겠소.”

석추명은 젊으나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정도련주의 신분으로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약조했으니 분명히 약조를 지킬 터였다.

남궁진악은 그 대답을 듣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는지 약병을 석추명에게 건네주었다. 작은 약병 하나 들어 올릴 힘도 남지 않았는지 남궁진악이 계속 부들부들 손을 떨었다.

석추명은 약병을 열고 냄새를 맡았다. 진한 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냥 마시면 되는 것이오?”

석추명의 물음에 남궁진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진아, 해약이다. 이 약을 마시도록 해라.”

석추명이 해약을 건네려는 찰나, 임예린이 갑자기 날카롭게 소리쳤다.

“잠깐만! 그것은 해약이 아닙니다.”

그 말에 석추명은 흠칫 놀라 약병을 건네려던 손길을 멈추었다.

“맹주가 또 속이고 있어요.”

석추명은 남궁진악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재빨리 남궁진악의 목에 다시 검을 갖다 댔다. 하지만 의아했다. 설마하니 남궁진악이 제 목숨이 달린 마당에 거짓을 말했을까 싶었다.

“그 약은 가짜입니다.”

“가짜라니?”

“아마 독약일 겁니다. 그런지 아닌지는 당장 그 약을 맹주에게 먹여보면 알겠지요.”

임예린은 남궁진악의 얼굴을 주시하며 말했다.

남궁진악이 순순히 패배를 시인하자 임예린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석추명이 보인 신기(神奇)는 강호사에 두고두고 전설로 회자될 만했다. 약병을 꺼내며 자신의 목숨을 살려줄 것을 조건으로 내걸 때만 하더라도 참으로 ‘남궁진악답다’는 생각에 속으로 코웃음을 쳤었다.

하지만 약병을 건네는 순간, 남궁진악의 두 눈에 잠시 교활한 빛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러자 임예린은 문득 남궁진악이 이대로 순순히 끝낼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궁진악의 원래 목적은 석추명을 제거하는 것이었지만 이미 패배한 마당에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차선책으로 기하진을 죽이려고 들지 않을까? 기하진이 죽으면 기하진을 자신보다 아끼는 석추명은 괴로움에 몸부림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단칼에 죽이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방법이다.

그렇다면 조금 전 자신의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구차하게 말한 것도 석추명의 경계를 늦추려는 거짓말이었나?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남궁진악은 신계자(神計子)라고 불리는 사마경보다 훨씬 계략에 능한 사람이었다.

“맹주에게 그 약을 먹여보면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실 겁니다.”

임예린이 다시 반복하자 석추명은 한 손으로 남궁진악의 턱을 붙잡고 약병에 있던 검은 액체를 그의 입속으로 모조리 쏟아부었다.

“헉!”

남궁진악의 두 눈빛이 순식간에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는 목 옆에 칼날이 들어와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급히 품속을 뒤지더니 노란 액체가 담긴 병을 꺼냈다. 아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빠른 속도였다. 그리고는 그 약을 마시려는 찰나.

“저 약을 뺏어요.”

임예린의 말과 동시에 석추명이 오른손을 휙 뻗어 약병을 낚아챘다.

“그 약이 해약일 겁니다.”

남궁진악이 갑자기 눈알을 허옇게 까뒤집더니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온몸에 붉은 점이 순식간에 퍼져나가더니 남궁진악은 괴로운 듯 제 손으로 제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과연 임예린의 말대로였다.

“나를 죽여라. 어서!”

목소리조차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남궁진악이 손톱으로 제 몸을 긁었다. 얼마나 세게 긁는지 금세 살갗이 찢어지고 피가 철철 났으나 뼛속까지 가려운 양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나를 죽여줘. 제발!”

남궁진악이 돌무더기에 자신의 머리를 쿵쿵 찧으며 소리쳤다. 곧 이마가 깨지며 선혈이 흘러나왔으나 머리를 찧는 속도는 더 빨라지기만 했다.

괴로워하는 남궁진악의 모습에 사람들은 모두 모골이 송연했다. 어떤 독약이기에 천하의 남궁진악이 순식간에 이 꼴이 된단 말인가?

하지만 남궁진악을 바라보는 석추명의 두 눈은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 저 독약을 기하진이 마셨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머릿속이 하얘지며 도저히 남궁진악을 용서할 수 없었다.

서걱.

석추명의 검이 남궁진악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남궁진악의 머리가 그대로 땅바닥으로 굴렀다. 여전히 두 눈은 고통으로 부릅뜬 상태였다.

“네 죽음은 네가 자초한 것이니 나를 원망하지 마라. 네 악행에 대한 대가는 네 형제들이 지게 될 것이다.”

서릿발 같은 석추명의 말이 떨어지자 그 말을 듣기라도 한 듯이 남궁진악의 두 눈꺼풀이 잠시 파르르 떨렸다.

“후”

누군가 한숨을 내쉬었다. 극도로 긴장해 있다가 상황이 끝나자 이제야 내뱉는 숨이었다.

석추명은 맹주에게서 탈취한 약병을 의학지식이 풍부한 현암자에게 건넸다.

“사소혜와 함께 이 약이 독약이 아닌지 확인해 주십시오.”

현암자가 약병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모든 것이 끝이 났구려. 승리를 축하드리오, 련주.”

공각대사가 석추명에게 합장하며 말했다.

“이제 강호에도 평화가 찾아오겠군요. 오늘 정말 진심으로 탄복했소이다.”

무당파의 허각 도장이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석추명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이전과는 달리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허각 도장을 뒤이어 개방의 송 방주, 곤륜파의 운양자, 종남파의 청송자와 청풍도장 등, 사람들이 줄줄이 석추명의 승리를 축하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이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저 혼자만의 힘으로 어찌 이러한 대업을 완성할 수 있었겠습니까?”

사람들의 축하에 일일이 포권으로 화답하던 석추명이 주위를 둘러보며 공손히 말했다. 무림의 숙원이었던 맹주 남궁진악을 물리치고도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으니 사람들은 속으로 또 한 번 감동했다. 과연 정도련의 련주로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곧 자리를 이동하여 다시 악양루 앞으로 갔다. 남궁진악의 시신은 개방 제자 몇 사람이 수습했다.

비무장 옆에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던 남궁세가의 오대 장로는 석추명이 살아서 돌아오자 허탈한 듯 아쉬움의 탄식을 내뱉었다. 가주 남궁진환은 목이 잘린 맹주의 시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신에 서린 검은 기운으로 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지 않았어도 이미 눈치챈 듯했다.

“이제 남궁세가의 포로들은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운진자가 석추명에게 물었다. 한결 깍듯해진 목소리에서 석추명을 이제 련의 수장으로 완전히 인정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겼다.

“남궁세가의 가주와 오대 장로는 맹주를 도와 악행에 앞장섰으니 응당 죽음으로 사죄해야 할 것입니다.”

석추명의 말이 떨어지자 오대 장로는 절망했지만, 남궁진환은 오히려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남궁세가의 소가주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운진자가 또 물었다. 그 말에 석추명이 대답하기도 전에 청풍도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남궁세가의 핏줄이니 당연히 목을 쳐야지요. 운진도장께서는 어찌 그렇게 당연한 처사를 묻는단 말입니까?”

석추명은 자신의 말을 자르고 나선 청풍도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주위에서는 청풍도장이 아무리 무림의 선배라고 하나 련주의 말을 자르고 나서자 언짢은 눈빛으로 청풍도장을 쳐다보았다.

“남궁세가 놈들이 저지른 패악을 생각하면 남궁가 식솔들의 목을 모조리 쳐도 분이 풀리지 않는데 소가주를 살려둔다니 말이 되오이까? 안 그렇소이까, 련주?”

여전히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한 청풍도장이 떠벌이며 석추명에게 눈길을 돌렸다.

“남궁척은 살려둡니다.”

석추명이 차분히 말했다. 그러자 청풍도장의 안색이 급변했다. 못들을 말을 들은 사람 같았다.

반면, 남궁진환은 석추명의 말에 눈가가 촉촉이 차올랐다. 말은 하지 않았으나 눈빛으로나마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있었다.

“선대의 잘못을 후대에게 묻는 것은 가혹한 처사입니다. 남궁척이 태어나고 싶어서 남궁가에 태어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울러 남궁가의 재산은 절반만 몰수하여 정도련의 설립과 운영 자금으로 쓰고 나머지 절반은 남궁척에게 돌려줄 생각입니다.”

석추명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든지 청풍도장이 거세게 반발했다.

“남궁척을 살려두었다가 나중에 제 아비와 숙부들의 복수라도 하겠다고 나서면 어쩌려고 그러시는 게요? 게다가 남궁가의 재산 절반을 돌려주다니요. 그동안 남궁가로 인해 각 문파가 받은 피해가 얼마인데 아무런 보상도 없이 남궁가의 재산을 그대로 돌려준다는 게 말이 되오이까? 강력하게 처벌해야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 무림 동도 여러분, 제 말이 틀렸습니까?”

청풍도장이 흥분하여 주위를 둘러보며 열변을 토했다. 상당수 사람이 청풍도장의 말에 동조하는 듯한 표정이었으나 련주 앞이라 감히 말을 하지는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석추명이 그런 청풍도장을 잠시 빤히 바라보았다.

“청풍도장께서는 지금 련주의 명에 거역하시려는 겁니까?”

“뭐요?”

“청풍도장 본인께서 지금 정도련의 수장이 되고 싶으신 게 아닌지 물었습니다. 이 자리를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내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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