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 - 광세일소_한추영 - 1705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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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화 결전 (2)
육지우의 철피리 소리가 고조되자 허각도장은 가슴이 벌렁거리며 진기를 모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이럴 정도면 4개 문파의 다른 제자들은 어떨지 보지 않아도 뻔했다.
피리 소리에 대항하려면 즉각 정좌하고 앉아 내력을 모아 대항해야 하는데 싸우는 와중에 어떻게 그런단 말인가. 억지로 참아내려고 하자 금방 얼굴이 시뻘게지며 숨이 가빠왔다.
음공이 무서운 이유는 몇십 명, 몇백 명이든 상관없이 소리를 듣는 사람은 모두 한 번에 공격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현무단 소속의 제자들 가운데 코나 귀에서 피를 흘리는 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으윽”
제자들이 양손으로 귀를 막으며 비틀거렸다. 음공의 무서움을 실제로 겪자 매곡자와 료료자, 청학자는 만사 제쳐 두고 육지우부터 처치하려고 하였으나 그때마다 번번이 백골마군과 나머지 막북칠괴의 손에 가로막혔다.
“큰일 났습니다. 저 피리 소리를 어쩌지 못한다면 일각도 지나지 않아 단원의 절반 이상이 쓰러질 것 같습니다.”
열화가 연신 검을 휘둘러 적을 막아내며 소리쳤다. 하지만 허각도장이라고 딱히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속으로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때 현무단원 가운데 누군가 소리쳤다.
“련주님이 오셨다.”
허각도장이 그 말을 쫓아 고개를 돌리는 순간, 석추명의 비천검이 질풍같이 육지우를 향해 날아갔다.
섬전(閃電)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속도였다. 눈앞에 번개가 번쩍인다 싶더니 검 끝이 어느새 육지우의 목젖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검이 날아오는 속도가 너무 빨라 몸을 피할 겨를이 없었다. 육지우가 다급한 나머지 소의 등에 납작 엎드렸다. 그러자 검이 그의 등을 아슬아슬 스칠 듯이 지나갔다.
육지우는 식은땀을 닦으며 ‘후’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지나간 줄 알았던 검이 공중에서 저절로 한 바퀴 빙그르르 회전하더니 다시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검 끝이 겨냥하는 지점이 어찌나 정확한지 사람이 직접 검을 잡고 휘두르는 것만 같았다.
이번에도 피하기가 어렵자 육지우는 다급한 김에 타고 있던 소의 옆구리를 양발로 걷어찼다. 그러자 검은 소가 고통스러운 듯 울부짖더니 앞 다리를 번쩍 치켜들며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육지우의 몸이 스르르 미끄러지더니 어느새 한발로 소의 머리를 밟고 일어서는 것이 아닌가. 검은 소의 가죽이 유난히 두꺼우니 그걸로 비천검을 받아내게 할 참인 듯했다. 달리는 소의 둥글게 휜 두 뿔 사이에 발을 딛고 선 육지우의 경공은 석추명조차 깜짝 놀랄 정도였다.
샤사삭.
석추명이 비천검을 바라보며 손끝을 비스듬히 세우자 소의 등에 꽂힐 듯이 날아들던 검이 즉시 소의 등줄기를 타고 올라가며 소머리를 밟고 선 육지우를 공격했다.
육지우는 비천검이 끈질기게 따라붙자 놀라우면서도 분노가 치밀었다.
“웬 놈이 이렇게 방해한단 말이냐.”
육지우의 입에서 호통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달리는 소머리 위에 똑바로 서 있던 육지우의 몸이 뒤쪽으로 비스듬히 누웠다. 여전히 한쪽 발은 소머리를 밟은 채였다.
흥분하여 이리저리 날뛰는 소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소머리 위에 서서 비스듬히 몸까지 누이다니 육지우의 장기는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른 경공이 분명했다.
간발의 차이로 다시 육지우가 피하자 허공으로 솟구친 검이 석추명의 손길을 따라 다시 아래로 쏜살같이 내리꽂혔다.
푹.
비천검이 육중한 소의 머리를 뚫고 목 아래로 검날이 튀어나왔다. 그와 함께 검은 소가 고통으로 크게 울부짖더니 풀썩 쓰러졌다.
육지우는 자신이 애지중지하며 동고동락해온 소가 죽자 분노가 폭발했다.
“이노옴!”
이성을 잃은 육지우가 참지 못하고 있는 힘껏 소리치더니 또다시 날아오는 비천검을 향해 철피리를 휘둘렀다.
서걱. 웬만한 보검으로는 칼집조차 낼 수 없는 육지우의 철피리가 두 동강이 났다.
“이럴 수가!”
육지우의 앞에는 어느새 미관이 수려한 이십 대 중반의 청년이 우뚝 서 있었다. 철피리를 무 자르듯 벤 검은 그 청년의 손에 얌전히 들려 있었다.
“경공이 대단하더군요. 잘 봤소이다. 하지만 그 잘난 재주로 하필이면 악인의 편에 서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소.”
석추명의 검이 다시 번쩍하고 빛을 뿌렸다. 그와 동시에 육지우의 별호가 된 여섯 손가락이 난 오른손이 대번에 팔꿈치에서 베여 땅에 떨어졌다.
“으악”
육지우의 비명에 나머지 막북칠괴가 경악에 찬 눈빛으로 석추명을 바라보았다.
“네놈은 누구냐?”
일괴 독안호가 잔뜩 경계하며 물었다.
“나는 신임 정도련주 석추명이라 하오.”
석추명의 당당한 목소리가 전장에 울렸다.
백호단을 위기로 몰아넣던 음공이 깨지자 전세는 급히 역전되었다. 무림사선(武林四仙)과 허각도장, 열화, 공동파의 장문인 현천자와 사제 현암자 등이 백골마군과 막북육괴를 압박하고 무당파 자운검수와 화산, 청성, 공동파의 제자들이 적의 군사들을 상대로 반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허각도장님, 그럼 나머지는 부탁드리겠습니다.”
석추명이 이번에는 청룡단을 돕기 위해 급히 말머리를 돌리며 소리쳤다.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보시오, 련주.”
어느새 석추명에 대한 신뢰가 쌓인 허각도장이 호탕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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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예상했던 대로 남궁진악은 비무 대회 전날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쳐들어왔다. 백골마군과 나찰녀, 마립 등이 대군을 이끌고 동시에 나타난 것은 맹주의 지시를 받은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는 심증일 뿐, 물증을 잡을 수는 없었다. 무림맹의 인사들로 보이는 자들은 모두 복면을 하고 있어서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웠다.
백골마군, 나찰녀, 마립 등과는 여러 번 싸웠기에 전력을 파악하고 있었으나 문제는 이들이 초빙한 외부고수들이었다. 백골마군은 막북칠괴, 나찰녀는 세외쌍마(世外雙魔), 그리고 마립은 흑귀련(黑鬼聯)의 수장, 귀문선생(鬼門先生)과 함께 나타났던 것이다.
원래 석추명은 오방단 중 특수임무를 맡은 주작단과 중앙에서 기하진, 임예린 등을 지키는 천룡단을 제외하고 나머지 3개 단이 적을 맞이하여 싸우도록 했다. 석추명은 내일 비무 대회를 준비해야 하므로 절대로 직접 싸움에 나서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정도련 수뇌부의 강력한 의견이었다.
하지만 3개 단 모두 중원이 아닌 새외(塞外) 지역의 고수들이 출현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에 석추명은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중에서도 막북칠괴가 인원이 많은 만큼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하여 현무단을 먼저 지원한 것이었다.
‘지금 보니 음공이란 것이 상당히 무섭구나. 팔선조차 마땅한 대응책이 없는 듯했어. 그렇다면 귀문선생을 상대하는 백호단보다 세외쌍마를 상대하는 청룡단으로 먼저 가야겠다. 공각대사께서 가시기는 했으나 세외쌍마가 음공의 절정고수들이니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게 분명해.’
공각대사는 원래 일봉과 함께 중앙을 지키게 되어 있었으나 전투가 치열해지자 석추명과 함께 지원을 나섰다. 다행히 일봉이 담당하는 중앙 지역은 아직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청룡단이 싸우고 있는 은린포(銀鱗浦)로 다가가자 멀리서부터 은은하게 비파소리와 칠현금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세외쌍마가 탄주하는 철비파와 미혼금(迷魂琴)의 소리였다. 세외쌍마는 부부로 원래 장백산 인근 요동 지역에서 이름을 날렸다. 특히 두 사람의 음공은 사람의 혼백을 빼간다 하여 남편의 별호는 산백옹(散魄翁), 부인의 별호는 탄혼파파(彈魂婆婆)였다.
육지우의 철피리가 귀를 찢을 듯한 고음을 만들어 공격했다면, 두 사람은 음공의 대가답게 두 악기로 아름다운 음률을 만들어냈다. 워낙에 아름다운 소리라 누구나 한번 들으면 빠져들며, 계속 듣다 보면 결국 온몸이 마비되고 칠공(七孔)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지는 무시무시한 마공(魔功)이었다.
과연 아직 거리가 상당한데도 두 음공이 어우러지자 석추명조차 자꾸만 더 듣고 싶은 생각이 뭉클뭉클 솟아났다. 석추명은 자신도 모르게 그 소리를 더 들을 요량으로 말에서 뛰어내려 경공을 발휘하여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접전지가 가까워질수록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청룡단은 곤륜파 장문인 운양 진인이 이끌었고, 종남파와 점창파의 고수들이 참여했으며, 팔선 가운데 두 문파의 원로인 수미자(須彌子)와 마룡자(摩龍子)가 속해 있는 만큼 고수의 수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현장에 당도해보니 싸움의 양태는 조금 전에 보고 왔던 현무단과는 전혀 달랐다. 흡사 세외쌍마 두 사람이 청룡단 전체를 상대로 싸우는 듯 청룡단원 모두가 바닥에 앉아 세외쌍마의 음공에 저항하고 있었다. 그중에 무공이 고강한 수미자, 마룡자, 운양자 등만이 적의 수괴와 싸우고 있었다.
석추명도 이런 음공은 처음 접하는지라 그만 적의 음률에 마음을 빼앗기고 한 걸음씩 세외쌍마를 향해 다가갔다. 그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음률을 듣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련주!”
누군가 석추명을 알아보고 불렀으나 이미 정신을 빼앗긴 석추명에게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석추명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또 한걸음 내디뎠다. 그 모습을 본 나찰녀가 세외쌍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석추명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듯했다. 그러자 석추명을 바라보는 세외쌍마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미타불!”
돌연 어디선가 우렁찬 불호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단순한 불호가 아니라 마공(魔功)에 대항하는 항마진언(降魔眞言)의 위력이 깃든 사자후(獅子吼)였다.
죽비가 머리를 때리듯 그 순간 미혹이 깨지며 석추명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공각대사가 세외쌍마를 향해 사자후를 터뜨리고 있었다. 이미 내력이 다한 듯 입가에는 가느다란 선혈 자국이 나 있었다.
석추명은 정신이 들자 자신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재빨리 깨달았다. 조금만 늦었어도 위험할 뻔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세외쌍마가 코웃음을 쳤다. 그러더니 철비파와 고금(古琴) 소리가 높아지며 더욱 빨라졌다.
띠링. 딩딩딩.
사자후를 터뜨리며 세외쌍마의 음공을 홀로 받아내고 있던 공각대사가 갑자기 왈칵 선혈을 내뿜었다. 더 볼 것도 없었다. 석추명은 즉시 공각대사 뒤로 날아가 소림신승이 남긴 무상반야공력(無上般若功力)을 불어넣었다.
불문(佛門)의 사자후는 음공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이나 공력의 소모가 극심했다. 공각대사는 이미 서너 차례 사자후를 터뜨려 청룡단을 위기에서 구했으나 자신의 진기가 바닥을 드러내자 사자후 공력을 더는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석추명이 마성(魔聲)에 제압된 듯한 행동을 하자 마지막 공력을 모조리 쥐어짜 최후의 사자후를 터뜨린 것이었다. 공각대사의 공력이 바닥난 것은 세외쌍마도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
하지만 석추명이 장심(掌心)을 통해 무상반야공력을 불어넣자 들통으로 물을 들이붓듯이 공각대사의 고갈된 진기가 빠르게 차올랐다. 석추명의 공력도 소림 공력이라 두 사람의 기운은 아무런 저항감도 없이 곧장 하나로 합쳤다.
공각대사가 석추명을 곁눈질로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사자후를 터뜨렸다. 이번 사자후는 이전과는 달리 화산이 폭발하고 천지가 진동하는 기세였다. 하늘을 향해 벌린 공각대사의 입에서 마치 거대한 불기둥이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팅. 팅. 팅. 팅.
사자후에 맞서던 세외쌍마의 철비파와 미혼금의 현이 모조리 끊어져 나갔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초유의 사태에 세외쌍마는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하지만 그다음 순간. 석추명의 비천검이 다시 섬광을 작렬하며 두 사람을 향해 날아갔다.
세외쌍마가 위험에 처하자 나찰녀가 채찍을 휘두르며 비천검을 막으러 달려들었다.
“요망한 것. 그렇게는 안 될 것이야.”
가뜩이나 세외쌍마의 음공에 속절없이 밀려 노기가 충천해 있던 마룡자가 회오리바람처럼 몸을 솟구치며 검을 찔러 들어갔다. 그러자 나찰녀는 자신의 안위가 우선이라 어쩔 수 없이 채찍을 돌려 마룡자의 검을 막았다.
스스슥.
비천검이 산백옹의 심장을 꿰뚫고 뒤로 튀어나오더니 다시 탄혼파파를 공격했다. 탄혼파파는 다급한 나머지 현이 끊어진 미혼금을 곧추세워 비천검을 막았다.
퍽.
비천검이 미혼금을 관통한다 싶더니 검이 저절로 움직이며 미혼금을 정확히 4등분 했다. 금을 두 번 다시 쓸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탄혼파파가 네 조각이 난 금을 끌어안고 망연자실하여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당신 부부의 죄는 남편의 목숨으로 대신했으니 이만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시오. 두 번 다시 중원에 발을 들인다면 그때는 고금이 아니라 당신의 몸이 네 조각 날 것이오.”
석추명이 회수한 비천검을 들고 차갑게 경고했다.
“당, 당신이 신임 정도련주라는 화산신검...?”
탄혼파파가 넋 나간 표정으로 석추명을 바라보았다. 석추명은 그 모습에 아무런 대답 없이 등을 돌렸다.
청룡단도 음공이 깨지자 전세는 금방 뒤바뀌었다. 세외쌍마의 음공 때문에 실력 발휘를 못 했던 청룡단원들이 훨훨 날아다녔다. 제대로 싸우지 못했던 한풀이를 하려는 듯 단원들은 인정사정없이 적을 휩쓸었다.
“련주님, 련주님, 큰일 났습니다.”
그때 어둠을 뚫고 아미파 제자 한 명이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석추명도 얼굴을 아는 제자였다.
“무슨 일입니까?”
“중앙 거처에 설랑이 나타났습니다.”
“...!”
그 순간 석추명이 놀라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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