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세일소-181화 (181/201)

#   181 - 광세일소_한추영 - 1675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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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화 천검총 (1)

송 방주가 돌연 주단에 묶인 두 팔을 잡아당기며 힘을 주자 주단 네 개가 동시에 쭉 하고 중간에서 찢어져 버렸다. 그리고 네 미녀는 자신들이 잡아당기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송 방주는 그제야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소저들께서 그렇게 못마땅하시다면 이 늙은이가 자리를 옮기겠소이다.”

송 방주가 껄껄 웃었다. 그때 대문이 열리며 안에서 비취색 옷을 입은 여인 한 명이 나왔다.

“장주님께서 저희의 무례를 꾸짖으시며 방주님 일행도 안으로 모시라 하셨습니다.”

“진즉에 이렇게 나올 것이지.”

그 말에 전원기와 개방 제자들이 여봐란듯이 홍삼 미녀들을 쳐다보았다. 홍삼 미녀 중 맏이가 그 모습을 보며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말릴 때 그냥 가셨으면 좋았을 것을....”

그 말을 들은 비취 옷 여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홍삼 미녀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홍삼 미녀가 얼른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비치 옷 여인에게 하는 말인지 송 방주와 개방 제자들에게 하는 말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송 방주는 홍삼 미녀가 중얼거리는 말에 숨은 뜻이 있을 것으로 짐작했다.

송 방주와 개방 제자 4명이 비취색 옷 여인의 안내를 따라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수백 명이 운집할 수 있는 넓은 마당이 나오고 그 뒤에 돌로 지은 커다란 전각이 한 채 서 있었다. 장원의 규모는 밖에서 보던 것보다 안에서 보니 더욱 으리으리했다.

그 전각 앞에 기하진과 석추명, 일봉이 서서 한가운데 달린 현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현판에는 ‘천검총(千劍塚)’이라는 글자가 용사비등(龍蛇飛騰)한 필체로 쓰여 있었다.

“장원의 이름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더니 원래 검총이었군. 검의 무덤이라....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드는군.”

송 방주가 어느새 다가와 말하자 석추명이 옆을 돌아보았다.

“방주님도 저와 같은 생각이시군요.”

전각의 문을 여니 으리으리한 내부가 드러났다. 두꺼운 화강암을 깎아 만든 내부는 뜻밖에 텅 비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사면의 벽에는 모두 휘장이 처져있었다.

벽면에서 유일하게 휘장이 없는 부분은 밖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문이 있었다. 그 문 위에는 ‘불귀문(不歸門)’이라는 현판과 함께 ‘들어갈 수는 있으나 나올 수는 없으니 목숨이 아깝다면 이 문을 열지 말라’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이 장원 주인이 어떤 자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광오(狂傲)하기 짝이 없군요. 들어갈 수는 있으나 나올 수는 없다니, 여기가 저승 입구라도 된단 말입니까?”

가뜩이나 대문을 들어올 때부터 푸대접을 받았던 전원기가 불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이 미처 말릴 새도 없이 굳게 닫힌 불귀문을 대뜸 활짝 열었다.

“흠. 기이하구나. 전각 안에 석굴이라니.”

송 방주는 전원기의 경거망동한 행동을 책망하려다 불귀문 너머로 뜻밖에 석굴이 나타나자 긴장한 기색으로 말했다.

석굴은 높이가 30여 척, 길이는 50여 장에 이르며, 석굴 끝에는 석문이 있었다.

특이하게도 석굴 바닥에는 일곱 빛깔의 커다란 판석이 석문 앞까지 깔려있고, 판석이 깔린 길 양옆으로는 관성제군, 구천현녀, 이랑진군 등 도가의 여러 신위를 조각한 거대한 석상이 좌우 한 쌍씩 일렬로 쭉 늘어서 있었다. 석상의 표정이 벽면에 놓인 등불에 비쳐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저기를 보십시오.”

일봉이 갑자기 손가락으로 석굴의 천장을 가리켰다.

“이럴 수가!”

천장을 본 사람들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석굴의 천장에는 수십, 수백 자루의 검이 칼끝을 아래로 한 채 빽빽이 꽂혀 시퍼런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만약 석굴 안을 걸어가는 중에 검이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꼬챙이에 꿴 고기 신세가 될 것 같았다.

“천 개의 검이 묻힌 무덤이라 하더니 과연 범상치 않군요..”

석추명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라버니, 오라버니세요?”

“예린이다!”

석추명이 석굴 안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분명히 임예린의 목소리였다.

“예린아!”

석추명이 동굴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화련산에서 임예린을 잃어버린 지 벌써 20여 일째. 혹시라도 임예린이 잘못되었을까 노심초사하던 석추명은 너무 반가운 나머지 무턱대고 동굴 안쪽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때 기하진이 소리쳤다.

“위험해요!”

석추명이 판석 위에 발을 올리자마자 천장에 꽂혀 있던 검 수십 자루가 석추명을 향해 시위 떠난 화살처럼 쏟아져 내렸다. 용수철 장치라도 되어 있었는지 칼날이 떨어지는 기세가 엄청났다.

석추명은 판석을 밟자마자 발밑의 느낌이 이상하여 즉시 몸을 뒤로 뺐다. 생각이 일어나는 동시에 몸이 움직이는 심검(心劍)의 경지라 피할 수 있었던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제아무리 뛰어난 고수라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맹렬한 속도로 쏟아지는 칼끝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석추명 역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생각했던 대로 기관장치가 되어 있군요.”

기하진이 천장에 박힌 칼날과 바닥의 판석을 바라보았다.

“저 색깔의 배열이 의미가 있을 듯한데 그걸 알지 못하는 이상, 섣불리 판석을 밟지는 못하겠구려.”

송 방주가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판석을 바라보았다.

“오라버니, 괜찮으신가요?”

그때 석굴 안쪽에서 임예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검이 쏟아지는 소리를 들었는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괜찮다. 너는 괜찮으냐?”

석추명이 소리쳤다.

“괜찮아요, 오라버니. 이곳은 천문선생이 마련한 기관 진식이 설치되어 있으니 함부로 움직이시면 안 돼요.”

임예린의 목소리는 들리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자 석추명은 마음이 답답했다. 그런데 임예린의 말이 끝나자마자 귀에 익은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흐흐, 이곳이 천문선생이 마련해 둔 곳이기는 하지만 우리 총군사가 다시 몇 가지 변화를 주어 마무리를 했으니 천문선생이 살아 돌아와도 풀기 어려울 게야. 목소리를 들었으니 임예린이 여기 있는 것은 알았을 테고. 용기가 있으면 이 안쪽까지 와서 임예린을 구해 가게나. 으하하하.”

남궁진악의 웃음소리가 석굴 안을 진동했다.

“남궁진악 저놈을!”

석추명이 석굴 안쪽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기관장치가 된 것이 분명한 석굴 안을 아무런 대책 없이 움직일 수는 없었다. 기하진, 석추명, 일봉, 송 방주 등은 무공으로 싸우는 것은 자신 있었지만 이와 같은 기관장치에는 아무런 지식이 없었다.

네 사람은 즉석에서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내었지만 뾰족한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판석을 밟아야 검진이 발동되는 것이라면 판석을 밟지 않고 지나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개방 제자 중 한 명이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이 제자도 전원기와 마찬가지로 허리춤의 매듭이 여섯 개였다.

“오, 유문위, 자네가 좋은 생각이 있느냐? 그렇다면 어서 말해보아라.”

송 방주의 말에 유문위라고 불린 제자가 대답했다.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경공을 발휘하여 판석을 밟지 않고 지나가면 되지요.”

그 말에 일봉이 의아한 표정으로 유문위를 바라보았다. 일봉은 구강현에서 전원기와 유문위의 경공을 본 적이 있어서 그의 경공 실력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석굴 끝까지는 족히 50장은 되어 보이는데 사람이 새도 아니고 그 거리를 땅에 발 한번 딛지 않고 어찌 간단 말인가?

경공이 제아무리 극치에 이르더라도 서너 장에 한 번씩은 땅을 디뎌야 추진력을 얻는데 그렇게만 보더라도 적어도 열 번 이상은 판석을 밟아야 했다. 그것도 경공이 최고의 경지에 오른 석추명이나 기하진 정도나 가능하지 일봉 자신만 하더라도 그 정도까지 할 자신은 없었다.

그런데 개방의 육결 제자가 땅을 밟지 않고 간다고 하니 의아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눈빛을 보자 유문위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제가 보여 드리겠습니다.”

유문위는 방주와 정도련주, 화산신검과 차기 아미파 장문인 등 무림계의 쟁쟁한 인사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자신이 해결했다고 생각하여 살짝 들떠 있었다.

평소 유문위의 성격을 잘 아는 송 방주는 내심 찜찜했으나 달리 방도가 없어서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다.

“조심하거라.”

“걱정하지 마십시오, 방주님.”

송 방주의 염려에 유문위가 시원스럽게 대답하더니 곧 몸을 날려 판석 옆에 쭉 늘어선 석상 중 첫 번째, 관성제군 석상을 비스듬한 자세로 밟았다. 이것은 벽호공(壁虎功)과 비슷한 방식으로 경공을 발휘하여 벽을 밟고 가는 방법이었다.

벽호공 자체가 상당한 경공 실력을 요하는 무공이었지만 그렇다고 절정의 상승 경공은 아니었다. 송 방주와 사람들이 아래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문위는 경공을 과시하며 곧장 두 번째 석상인 이랑진군 쪽으로 몸을 옮겼다.

하지만 유문위는 이랑진군 석상을 밟기도 전에 참혹한 비명을 내질렀다.

“악!”

그다음 순간, 유문위의 몸이 수십 조각으로 분리된 고깃덩이가 되어 판석 위로 떨어졌다.

“유문위!”

송 방주가 놀라서 유문위를 향해 번쩍 손을 뻗었다. 유문위의 붉은 피가 묻자 허공에 촘촘히 쳐진 거미줄같이 투명하고 가는 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잠사!”

석추명과 일봉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은잠사는 가늘고 투명하여 육안으로 찾기 어렵지만, 또한 위력이 고강하여 웬만한 것은 무엇이든 잘라버리는 강력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유문위가 경공을 펼치며 은잠사에 세차게 부딪히자 전신이 순식간에 수십 조각으로 절단된 것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육이 된 유문위의 몸뚱어리가 판석 위로 떨어지자 다시 천장에서 수십 자루의 검이 세찬 기세로 판석 위로 쏟아져 내렸다.

송 방주를 비롯하여 개방 제자들은 방금 벌어진 참상에 넋이 나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때 다시 간악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흐흐흐. 이런, 이런. 이제야 천검진의 위력을 알았나 보군. 하지만 불귀문으로 들어간 이상, 나가는 길은 없어. 무조건 진법을 통과해야 해. 기하진, 석추명, 내게 맞설 때는 언제든지 죽을 각오를 했겠지? 송 방주와 개방 형제들은 들어오지 말라는 곳을 굳이 들어왔으니, 저 두 사람 저승 갈 때 길동무나 좀 해주시오. 으하하하.”

남궁진악의 웃음소리가 동굴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아 참, 내 한 가지 잊을 뻔했구먼. 여기까지 오는 데 딱 반 시진 주겠네. 모두가 절세고수인데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 이상의 시간은 자네들을 무시하는 처사일 테지. 반 시진이 지나면 자네들 머리 위에서 검우(劍雨)가 내릴 것이야. 그건 여기 임 소저가 있는 곳도 마찬가지고. 어떤가? 멋지지 않은가? 으하하하.”

반 시진. 무슨 수로 반 시진 안에 이 기관장치를 풀 것인가? 표현은 하지 않아도 모두 속이 바싹 타들어 갔다.

석추명이 유문위의 피가 묻은 은잠사를 한참 동안 노려보더니 두 팔에 공력을 모아 어검술을 펼쳤다.

챙, 소리와 함께 비천검이 검갑에서 뽑히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일단 은잠사부터 처치해주지.”

석추명이 공력을 모아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러자 비천검이 톱니바퀴처럼 맹렬한 기세로 회전하며 은잠사에 부딪혀갔다.

지지직. 지지직.

비천검이 은잠사에 부딪히자 불꽃놀이를 보듯 시퍼런 불꽃이 작렬했다. 하지만 천하의 보검인 비천검으로도 은잠사를 자를 수는 없었다.

석추명이 놀라서 눈을 부릅뜨는데 남궁진악의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크크크, 나 같으면 그렇게 함부로 은잠사를 자르려고 시도하지 않겠네. 은잠사가 만약 하나라도 끊어진다면 자네들 머리 위에 검들이 일제히 쏟아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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