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 - 광세일소_한추영 - 1667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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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생사대전(生死大戰) (7)
“오라버니, 오라버니 들리시나요?”
임예린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 와중에도 ‘우르릉 쾅’하고 무엇인가 무너지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래. 무슨 일이냐?”
석추명이 소리쳤다.
“큰일 났어요. 누가 교주전에 폭약을 설치한 것 같아요. 지금 건물들이 무너지고 있어요.”
“뭣이라고? 설마 남 교주가?”
임예린의 말을 증명이라도 해주듯 석실 천장이 더욱 심하게 흔들리며 돌가루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곧 여기가 다 무너져 내릴 거예요. 폭약을 어디에 얼마만큼 설치했는지 알 수 없어요. 잠시 몸을 피할 곳이 있다면 어디든 들어가서 피하세요.”
우르릉 쾅, 하고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점점 커져서 임예린의 마지막 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았다.
지진이라도 난 듯이 천장이 쭉쭉 갈라지면서 커다란 돌덩이가 우박처럼 떨어져 내렸다. 갑자기 석실이 흔들리며 돌덩이가 떨어지자 강시들의 공격도 주춤했다. 칠선이 떨어져 내리는 돌덩이를 피해 이리저리 몸을 날리며 뭐라고 소리쳤다. 운진자와 곤륜오검은 스승과 사제의 시신을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석추명은 다급한 심정으로 석실을 둘러보았으나 피할 곳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런 사태를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 남무궁은 지하 석실에 강시들이 들어있던 석관 열 개 외에는 아무것도 두지 않았다.
쾅, 소리가 나며 앞문 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돌덩이가 사방으로 튀었다. 곧 우르릉 소리가 천장 전체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천장이 무너져 내린다면 제아무리 무공이 높은들 어떻게 살아나겠는가.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절망적인 심정이 되어 피할 곳을 찾던 석추명의 눈에 다시 석관이 띄었다. 석관은 두꺼운 청석판을 갈아서 만든 것인데 두께가 다섯 치 정도로 아주 견고해 보였다. 게다가 크기도 커서 하나에 두 사람은 충분히 들어갈 공간이 있었다.
갑자기 석추명이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석관을 뒤집어 석관 밑으로 들어가세요.”
석추명의 말에 사람들은 못들을 말을 들은 사람처럼 눈을 치켜뜨고 석추명을 쳐다보았다.
“그냥 돌덩이를 맞느니 석관 밑으로 좀 피하십시오. 두 사람씩은 충분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석추명이 거듭 소리를 질렀다.
“알겠습니다.”
일봉이 가장 먼저 대답하더니 석관을 뒤집었다.
“누구 들어올 사람 안 계십니까? 어서 들어오세요.”
일봉이 석관을 들고 소리쳤다.
“내가 들어가겠네.”
마룡자가 일봉의 석관 안으로 들어가며 껄껄 웃었다.
“강시들의 집을 뺏다니 정말 기발한 발상이야. 껄껄껄.”
일봉과 마룡자가 석관을 뒤집어쓰자마자 그 위로 커다란 돌덩이가 쿵 하고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운진자가 정신이 든 듯 서둘러 석관 하나를 뒤집어 사제들의 시신을 같이 넣더니, 또 하나를 뒤집어 제가 태허자의 시신을 안고 들어갔다.
사람들은 석관이 뜻밖에 상당히 견고하여 위에서 떨어지는 돌덩이에도 끄떡도 없자 너도나도 서둘러 석관을 뒤집어 그 속으로 들어갔다. 석관을 빼앗긴 강시들이 석관을 되찾으려고 다가오다가 천장이 무너지면서 떨어지는 돌무더기에 그대로 깔리는 일이 속출했다. 깔리지 않은 강시들은 아직 밖에 남아 있던 기하진과 석추명이 처리했다.
“하진아, 우리도 들어가자.”
석추명이 석관 하나를 끌고 와서 기하진에게 소리쳤다. 또다시 귀를 뚫을 듯한 굉음이 울렸다.
“나는 죽으면 죽었지, 그 속엔 안 들어갑니다.”
기하진이 고집을 부렸다. 정신없이 떨어지는 돌덩이에 찍혀 기하진의 손과 발은 상처투성이였다. 갑자기 쾅, 하는 폭발음이 지척에서 울리더니 돌덩이가 사방으로 비산하기 시작했다.
그때 기하진의 머리 위로 커다란 돌덩이가 떨어져 내렸다. 기하진은 발을 찧은 데다 여기저기 워낙 돌덩이가 많이 떨어져 내려 딱히 피할 방도도 없었다.
“하진아!”
석추명이 몸을 날려 제 몸으로 기하진의 머리를 보호했다. 커다란 돌덩이가 그대로 석추명의 등 위를 강타했다.
“윽!”
호신강기를 펼쳤음에도 입에서는 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옆에서는 지학의 강시가 석추명을 향해 손을 내뻗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기하진이 석추명을 붙잡고 방금 석추명이 구해놓은 석관 속으로 몸을 날렸다. 두 사람이 들어가서 석관을 뒤집자마자 쾅, 소리와 함께 집채만 한 바윗덩이가 석관을 때렸다.
폭발음이 연이어 들리며 돌무더기가 끝도 없이 쏟아졌다. 밖에 있었다면 지금쯤 살아있는 사람은 모두 피떡이 되었을 것이다.
석추명과 기하진은 석관 속에 몸을 나란히 하고 누웠다. 돌덩이가 석관을 때릴 때마다 움찔움찔 놀라기는 했지만 밤새 쉬지도 못하고 싸운 탓에 그렇게 누워 있으니 휴식이 되었다.
“강시가 쉬는 석관에 이렇게 누워 있으니 기분이 정말 묘하구나.”
석추명이 거친 숨을 달래며 말했다. 어릴 때 이후로 이렇게 기하진과 둘이서 나란히 누워본 게 처음인 듯했다.
“남 교주가 왜 애써 만든 강시를 다 없애버리려고 한 것일까요?”
“글쎄, 강시들은 도검불침이니 돌무더기 밑에 깔려도 살아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강시라고 하나 뼈와 살로 이루어진 육신인데 그게 가능할까요?”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구나.”
돌덩이가 석관을 때릴 때마다 석관이 부서지는 게 아닌가 싶어 석추명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예린이가 무사할지 걱정이구나.”
기하진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석추명은 기하진도 임예린을 걱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폭약을 얼마나 설치한 것인지 폭발음이 끝도 없이 들리는가 싶더니 드디어 잠잠해졌다. 밖에서 으르렁거리며 아우성치는 강시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폭발이 끝난 것 같구나. 나가보자.”
석추명이 힘주어 석관을 밀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모양에 기하진도 양손을 대고 힘을 주었다.
두 사람의 절세 고수가 미는 힘에 석관이 조금씩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석관 위에 돌무덤이 얼마나 높게 쌓였는지 단박에 들리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양손을 석관에 대고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밀어 올리자 그제야 우르릉 소리가 나더니 석관이 밀려 나갔다.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 거대한 교주전이 모조리 내려앉아 온통 돌무더기였다. 주위에는 자욱한 먼지만 감돌고 있었다.
“일봉 형님! 매곡 사숙님!”
“운진 도장님! 모두 어디 계십니까?”
두 사람이 소리치자 별안간 저쪽에 있는 돌무더기가 조금 흔들거렸다. 그 밑에 깔린 듯했다. 석추명과 기하진이 황급히 다가가 쌓인 돌을 치웠다. 그러자 석관이 들리며 그 밑에서 일봉과 마룡자가 뛰쳐나왔다.
“아이고,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마룡자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숨을 헉헉댔다.
“괜찮으십니까, 선배님?”
석추명의 물음에 마룡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살다 살다 강시 노릇까지 다 해보는구나. 그나저나 주인 허락도 없이 남의 집에 들어간 셈이니 관 주인들에게 좀 미안하구먼.”
마룡자가 돌에 깔리 강시를 쳐다보며 껄껄 웃었다. 석추명과 기하진, 일봉과 마룡자는 나머지 사람들을 속속 찾아냈다. 석관이 튼튼해서 석관 속에 들어가 있던 사람들은 모두 살았다. 사람이 꼭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 같았다.
“오라버니들!”
임예린이 사소혜와 함께 달려왔다. 석추명과 기하진, 일봉이 임예린과 사소혜와 만나는 동안, 현암자와 청풍 도장이 자신들의 스승인 진뢰자와 수미자 앞에 각각 무릎을 꿇었다.
“사부님!”
20년 만에 그리운 스승을 만나니 현암자와 청풍 도장의 나이도 적은 나이가 아니나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났다.
“허허, 네 녀석도 나이를 먹었구나.”
스승과 늙은 제자들 간에 한바탕 눈물의 상봉을 하고 나자 임예린이 말했다.
“해가 지기 전에 어서 강시들을 처리해야 합니다. 저쪽에 저희가 나무와 기름을 준비해 두었으니 강시 열 구를 모두 통나무 위에 올려 주십시오.”
마침 하늘에는 해가 중천에 올라 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라 햇빛이 사방에 내리쬐었다. 햇빛을 받은 강시들은 원래 그러했던 양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간혹 햇빛이 들지 않는 돌 틈에 있던 강시는 손가락을 움직이거나 고개를 돌리기도 했으나 햇빛이 닿자 푸른 연기를 피워 올리며 금세 고목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석추양과 기하진을 비롯한 사람들이 부지런히 돌을 헤치고 강시를 찾아다가 임예린이 준비해 둔 통나무 위에 쌓았다. 그러고 난 다음 네 사람이 통나무의 네 귀퉁이에서 불을 붙였다.
화르르르.
미리 기름을 먹인 통나무가 순식간에 타올랐다.
석추명의 머릿속에 간밤의 악몽이 떠올랐다. 스승 뢰정과 초의공이 강시로 되살아나 검을 휘두르던 기억은 스승이 죽을 때만큼이나 참기 힘든 경험이었다. 평생 의로움을 추구하셨던 분들인데 악적 남무궁이 그분들의 시신을 욕보이는 것도 모자라 그분들이 평생 지켜왔던 원칙을 송두리째 욕되게 한 것이다.
석추명은 불길 속에 사라져가는 스승 뢰정과 초의공의 시신을 바라보며 가만히 되뇌었다.
‘스승님, 초의공 선배님, 이번에는 꼭 영면에 드십시오. 그리고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악적 남무궁은 꼭 그 대가를 치르게 해주십시오.’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던 석추명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석추명이 고개를 돌려 보니 기하진도 옆에서 멍하니 넋을 놓고 불길 속에 사라지는 승려 지학을 바라보고 있었다. 석추명이 다가가 기하진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불길은 한참을 타올랐다. 검은 연기를 뭉게뭉게 피워내며 타오르던 불길은 두 시진 동안이나 쉬지 않고 세차게 타들어 갔다.
석추명은 남무궁과 음양사자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지 궁금했으나 알 길이 없었다. 임예린과 함께 온 사람들 중에도 그 두 사람을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기에 저희 말고 다른 사람들이 있는 것만 같아요.”
임예린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할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다른 사람이 있다니, 누가 있단 말이냐?”
“남 교주가 오랜 세월을 걸쳐 힘들게 강시를 만들었는데 교주전을 폭파한다는 것이 좀 이상하지 않아요?”
임예린의 물음에 석추명과 기하진은 서로 힐끗 쳐다보았다. 두 사람이 아까 석관 속에서 나눴던 얘기였다.
“네 말은 교주전을 폭파한 것이 남무궁이 아니라는 소리냐?”
석추명의 물음에 임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석실에 있던 사람들만 죽이려고 했다면 굳이 교주전 전체를 무너뜨릴 필요는 없죠. 시간이 지나면 결국 강시에게 당했을 테니까요.”
“흠.”
임예린의 말은 석추명도 의아하게 여겼던 부분이었다.
“석실 안에 있던 사람들과 강시를 모조리 처치하고 싶은 사람이 교주전을 폭파한 사람일 겁니다.”
임예린이 눈빛을 반짝거렸다. 기하진이 갑자기 눈썹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설마 맹주가?”
기하진의 말에 석추명이 깜짝 놀랐다.
“하지만 맹주는 남 교주와 서로 손을 잡지 않았느냐? 그런데 이제 와서 뒤통수를 친단 말이냐?”
“충분히 가능한 생각이에요. 제 생각에도 교주전을 폭파한 건 맹주의 작품이지 싶어요. 그런데 오라버니들이 이렇게 버젓이 살아날 줄은 꿈도 꾸지 못했겠죠.”
“으음.”
석추명의 입에서 저절로 탄식 소리가 새어 나왔다. 막상막하라고 하더니 백련신교의 교주 남무궁과 무림맹주 남궁진악은 마치 누가 더 악한지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 맹주가 여기에 있을 수도 있다는 소리냐?”
석추명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그 말에 임예린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것은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맹주의 측근은 있지 않을까요?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맹주에게 보고해야만 할 테니까요.”
그때 사소혜가 임예린을 불렀다.
“임 소저, 벽력탄이 잔뜩 있는 방을 발견했어요. 한번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벽력탄을 발견했다는 말에 임예린이 반색했다.
“그래요? 그럼 어서 가봐요.”
임예린과 사소혜는 개성은 아주 달랐으나 같이 지내면서 친자매처럼 친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조심하거라.”
걱정하지 말라는 듯 임예린과 사소혜가 동시에 석추명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석추명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강시의 화장이 제대로 끝났는지 살펴보려고 걸음을 떼었다. 그때 사소혜의 비명이 들려왔다.
“임 소저!”
귀를 찢는 비명에 석추명과 기하진이 동시에 임예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 나타났는지 설랑이 나타나 임예린을 옆구리에 끼고 어디론가 달아나고 있었다.
“저놈이!”
석추명과 기하진이 급히 신형을 뽑아 올렸다. 화장장에 있던 일봉도 사소혜의 비명에 고개를 돌렸다가 설랑을 발견하고 놀라서 부르짖었다.
“아직 해가 지지도 않았는데 저놈이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해는 아직 서산 중턱 한참 위에 걸려 있었다. 일봉이 즉시 석추명과 기하진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설랑을 본 마룡자도 일봉과 함께 몸을 날리며 말했다.
“저놈은 활강시야. 살아있는 사람을 강시로 만들었으니 햇빛에 영향을 안 받을 수밖에.”
활강시라는 말에 일봉은 눈앞이 번쩍하며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말은 저놈이 다른 강시와는 달리 의식이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욕망도 품고 있을 테니 저놈이 임예린을 잡아간 것은 제 의지로 한 짓일 가능성이 컸다.
진즉에 저놈을 처단했어야 했는데!
일봉이 발에 힘을 주며 속도를 더욱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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