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세일소-155화 (155/201)

#   155 - 광세일소_한추영 - 1634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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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화 일봉 (6)

“두 분은 잠깐만 손을 멈추십시오.”

검이 날아오고 얼마 안 있어 석추명이 비조(飛鳥)처럼 공중을 날아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음양사자는 자신을 지금껏 기다리게 한 장본인이 자신에게 검을 휘두르자 분기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네놈이 감히 누구에게 검을 드는 것이냐? 교주의 목이라도 베겠다는 것이냐?”

“교주님, 잠시만 고정하십시오. 지금 쌍방 간에 오해가 있습니다.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석추명은 음양사자가 불시에 일봉을 공격할까 걱정되어 일봉의 앞을 막아섰다.

“듣기 싫다. 썩 물러서지 못할까!”

음양사자가 서릿발 같은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화가 난 것은 일봉도 마찬가지였다. 석추명이 음양사자를 ‘교주’라고 부르는 것을 보니 두 사람이 확실히 한통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가증스럽군. 석 소협, 비키시오. 내가 죽으면 죽었지 당신 도움 따위는 받지 않겠소.”

일봉이 석추명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형님마저 왜 이러십니까? 잠깐만 고정하시라니까요.”

석추명이 간곡히 소리쳤으나 일봉은 오히려 석추명을 밀치더니 다시 음양사자를 향해 득달같이 보문검을 찔러 넣었다.

“형님, 후회할 짓은 마십시오.”

석추명이 놀라서 비천검을 뻗어 일봉의 검을 막았다. 그러자 일봉은 치미는 화를 억제하지 못하고 석추명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 질렀다.

“오냐,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그래, 음양사자를 도와 나를 치려는 것이냐? 좋다. 이 일봉, 무공이라 해봐야 보잘것없다만 너희 두 놈 다 상대해 주마. 다만 지난 10여 년 동안 네놈이 이런 사람인 줄도 모르고 일편단심으로 기다리신 아가씨만 불쌍하구나.”

일봉의 검이 허공에서 치지직, 검기를 뿌리더니 이번에는 석추명을 겨냥하고 찔러 들어갔다.

“그게 아닙니다. 형님. 제발 진정 좀 하십시오.”

석추명이 황급히 몸을 돌려 일봉의 검을 피하며 소리쳤다.

음양사자는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들으며 어떤 상황인지 대충 이해되었다. 다만 아미파는 남자 제자를 받아들이지 않거늘 저놈이 어떻게 요혜신니의 제자가 될 수 있었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그거야 내가 상관할 바 아니지.’

하지만 감히 겁도 자신에게 검을 들이댔으니 그 대가는 혹독하게 치르게 해 줄 셈이었다.

음양사자가 다시 일봉에게 귀조수를 뻗었다. 기이하게도 팔이 늘었다 줄었다 하며 일봉의 가슴과 등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 바람에 일봉은 등과 가슴에 손톱자국이 나면서 옷이 찢어지고 벌겋게 핏물이 올라왔다.

“내가 요혜 그 늙은이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설령 직접 죽였다 한들 그게 무슨 대수겠느냐? 흑련교주는 무생노모(無生老母)의 현신(現身)이거늘 내가 그깟 비구니 하나 죽은 것에 눈이라도 깜짝할 것 같은가?”

“뭐라고?”

음양사자의 말에 일봉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듣자 하니 음양사자는 스승을 한 번 죽인 것만으로도 모자라 돌아가신 분을 욕되게 하고 있지 않은가!

“석추명, 비켜라! 오늘 저 마녀의 심장에 검을 꽂지 않으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일봉이 흥분한 나머지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콰과과쾅.

일봉의 심리상태를 보여주듯 보문검에서 검기가 사방으로 작열했다.

“크하하하. 저놈이 아주 제대로 실성을 했구먼. 검기 좀 뿌린다고 사자님께 대들다니 말이야.”

귀면쌍살이 옆에서 재밌다는 듯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그나저나 사자의 오른팔인 석추명이 어째 좀 이상하외다? 저 실성한 놈을 도와 사자를 공격하지 않나, 쯧쯧. 이런 걸 두고 배은망덕하다고 하는 게 아니겠소? 아니면 역심이라도 품은 건가?”

“닥쳐라.”

음양사자가 몸을 공중으로 띄우며 구유백귀장(九幽百鬼掌)과 귀조수를 연달아 펼쳤다.

꺄아악.

귀곡성과 함께 음기 충만한 장력이 일봉의 가슴을 때림과 동시에 귀조수로 일봉의 심장을 노렸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선배님, 안됩니다!”

석추명이 황급히 비천검을 뻗어 일봉의 가슴을 보호하며 소리쳤다.

“서로 오해가 있습니다. 제발 두 사람 모두 잠시 손을 멈추세요.”

그러나 눈이 뒤집힌 일봉의 귀에 석추명의 간절한 호소가 들어올 리 없었다. 음양사자와 석추명이 서로 짜고 자신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증스러움과 함께 역겨움이 치밀어 올랐다.

“누구를 속이려고!”

일봉이 검을 번쩍 쳐들며 석추명의 어깨를 겨냥했다. 보문검이 ‘우우웅’ 하고 피에 굶주린 검 울음을 토해냈다.

갑자기 인두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 석추명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음양사자에게서 일봉을 보호하는 것에만 모든 신경을 쏟고 있던 석추명은 뒤에서 베어오는 일봉의 검에 그대로 당하고 말았다.

“으윽!”

석추명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러자 귀면쌍살이 야비한 미소를 띠며 소리쳤다.

“네놈이 감히 흑련신교의 부교주님을 공격하다니. 혼쭐을 내어주마.”

귀면쌍살이 ‘흑련신교의 부교주’를 강조하며 일봉에게 벼락같이 장을 때렸다.

“누가 끼어들라고 했느냐, 석문!”

음양사자의 입에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노란색 묘안이 희번덕거리며 귀면쌍살을 노려보았다.

“마음에 안 드시오, 사자? 그렇다면 차라리 사자의 속을 썩이는 석추명을 없애 드리지.”

일봉을 향해 휘몰아치던 귀면쌍살의 장이 돌연 공중에서 급선회하더니 그대로 석추명을 덮쳐갔다. 산도 무너뜨릴 가공할 위력의 철산장이 석추명 등 뒤의 영태혈을 정통으로 때렸다.

퍽!

일봉에게 어깨를 베여 혼란스럽던 석추명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귀면쌍살의 장력을 고스란히 맞고 말았다.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할 여유도 없었다.

석추명이 쿨럭거리더니 목을 젖히고 허공에 선혈을 뿜어냈다. 몸속에 있는 피를 남김없이 토해내기라도 할 듯 선혈이 계속 쏟아졌다.

“네 이놈!”

음양사자가 귀면쌍살을 노려보며 장력을 휘둘렀다.

꺄아악. 귀곡성과 함께 음유지력이 성벽처럼 일어서며 귀면쌍살을 덮쳐갔다.

하지만 귀면쌍살은 음양사자가 자신을 공격해올 줄 알았다는 듯이 이미 저만치 몸을 내빼고 있었다.

“그것도 싫소이까, 사자? 거 참 까다로우시구려.”

귀면쌍살이 비아냥거리며 몸을 훌쩍 날려 다시 여래전 지붕 위로 올라갔다.

“요혜신니의 머리뼈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을 만한 무공이 사자의 귀조공 말고 또 있겠소? 그러니 흉수는 사자일 수밖에. 으하하하.”

귀면쌍살의 모습이 어느새 수십 장 밖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모습이 사라진 뒤에도 웃음소리만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문득 모골이 송연했다. 스승님의 두개골에 구멍이 뚫린 사실을 귀면쌍살이 어떻게 알고 있을까? 설마 귀면쌍살이 스승님의 죽음과 관계있는 것은 아닐까?

그 순간 얼음물을 끼얹은 듯 오싹한 한기가 등줄기를 훑으며 지나갔다. 자신의 눈앞에 피투성이가 된 채 정신을 잃은 석추명의 모습이 보였다. 일봉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석 소협! 석 소협!”

일봉이 다급하게 석추명을 안아 일으켰지만 석추명은 의식이 없었다. 일봉은 떨리는 손길로 석추명의 맥을 짚었다. 맥박이 거의 느낄 수 없을 만큼 미약하게 뛰고 있었다. 실낱같은 호흡조차 끊어질 듯 불규칙적이었다.

그제야 머릿속에서 번쩍하고 섬광이 스치며 자신이 놓치고 있던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음양사자가 흉수일 리 없다고 강변하던 석추명과 임예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귀면쌍살이 사라진 뒤 음양사자는 더 이상 일봉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의식을 잃은 석추명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석추명의 상태를 가늠해 보는 것 같았다.

“정, 정말 당신이 요혜신니를 해친 것이 아닙니까?”

일봉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음양사자가 고개를 돌려 일봉을 힐끗 바라보았다.

“나 음양사자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이 아니니라. 네놈이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건 내가 아니라면 아닌 게야.”

음양사자가 오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눈에서는 차가운 빛이 번쩍거렸다.

문득 음양사자의 말이 거짓일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하에 적수가 없는 고수가 무엇이 두려워 거짓말을 하겠는가? 게다가 음양사자는 자부심이 높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고수였다.

하지만 그렇다면 자신이 한 짓은 어떻게 된단 말인가. 일봉은 덜컥 두려운 마음에 확인하듯 재차 되물었다.

“하, 하지만 스승님의 두개골에는 지공(指功)으로 뚫은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누가 그런 지공을 쓸 수 있단 말입니까?”

“흥! 손가락으로 머리에 구멍을 뚫는 것쯤이야 충분한 공력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조금 전에 사라진 석문이나 저기 쓰러져 있는 기하진 저놈도 가능한 일이야.”

음양사자의 말에 일봉은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석 소협과의 대련으로 익힌 검법으로 석 소협의 몸에 상처를 입히다니.

그 순간 핏물보다 진한 괴로움이 몰려왔다. 일봉이 덜덜 떨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은 은혜를 원수로 갚은 셈이었다.

조금만 더 냉정하게 생각했었더라면. 조금만 더 차분하게 석 소협의 말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일봉은 차마 석추명을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핏기가 없어 허옇다 못해 시퍼레진 얼굴을 쳐다볼 자신이 없었다.

“뭘 꾸물거리는 게냐. 당장 데려가 치료하지 않고.”

음양사자의 호통 소리에 일봉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영태혈을 정통으로 맞았으니 속히 손을 쓰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것이야.”

음양사자가 무심한 눈빛으로 석추명을 바라보더니 귀면쌍살이 사라진 방향으로 신형을 뽑아 올렸다.

휘리릭. 음양사자의 붉은 옷자락이 홍매화처럼 밤하늘에 나부꼈다.

“오늘 일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주마.”

음양사자가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귀면쌍살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만 남기고 여래전 지붕 위로 사라졌다.

머릿속이 새하얗던 일봉의 귓가에 그제야 사람들이 내뱉는 신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기하진, 현암자, 청풍 도장, 운진자, 곤륜칠검 등 누구 하나 몸이 성한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위독한 사람은 단연코 석추명이었다.

일봉은 어떻게 부상자들을 데리고 대불각사를 빠져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대불각사 밖에서 연락을 기다리던 계법사태와 남이가 부상자들을 마차에 싣고 있었다.

음양사자와 직접 맞부닥쳤던 운진자와 곤륜칠검의 상처는 그다지 심하지는 않았다. 그에 반해 귀면쌍살의 장력에 맞은 기하진, 현암자, 청풍도장은 모두 내상을 입었다.

기하진은 내상이 상당히 위중한 편이었으나 하룻밤 운기조식을 하고 핏덩이 몇 개를 뱉어내고 나자 씻은 듯이 회복했다. 그런 다음 기하진은 자신의 공력을 불어넣어 현암자와 청풍도장을 치료해 주었다. 두 사람의 상태는 빠르게 호전되었다. 그러나 석추명은 전혀 차도가 없었다.

“일봉 소협께 부상자 운송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곤륜파 선배님들과 함께 이 길로 귀면쌍살을 쫓아갈 생각입니다. 그동안 번번이 놓치기만 했으나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잡아서 두 번 다시 이런 장난질을 치지 못하도록 응징하겠습니다.”

기하진의 목소리에는 일봉이 차마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이 배어 있었다.

“알겠습니다. 기 소협.”

그날 오후, 기하진은 운진자, 곤륜칠검과 함께 귀면쌍살을 잡으러 떠났다. 일봉을 보는 것이 불편하던 계법사태도 기하진과 함께 가겠다고 떠나는 바람에 부상자 세 사람을 돌볼 사람은 일봉과 남이뿐이었다.

다행히 현암자와 청풍 도장은 건강이 많이 좋아져서 부축 없이도 걸을 수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두 사람이 전력을 다해 돌볼 환자는 사실 석추명 한 사람뿐이었다.

****

일봉 일행은 마차를 구해 이동했지만 석추명의 상태가 워낙 위중한 터라 한 번에 많은 거리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일봉과 남이는 앞에 보이는 마을에서 하룻밤 묵기로 하고 마을 안쪽으로 마차를 몰았다.

마을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교통의 요지인 듯 객잔 안은 다양한 사람들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중에는 무인들과 장사치, 그리고 관리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인적이 없는 곳만 골라서 다니다가 모처럼 번화가로 나온 일봉과 남이는 떠들썩한 분위기에 새삼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제야 사람 사는 동네 같구먼.”

청풍 도장이 좀 살 만한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보게, 점소이. 여기도 술 세 동이만 빨리 좀 갖다 주게나.”

객잔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코를 킁킁거리며 술 냄새를 맡던 청풍 도장이 다른 사람들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앉자마자 술을 시켰다.

“어허, 아직 몸도 회복되지 않으신 분이 무슨 술이오. 지금 술을 드셨다가는 회복이 더딜 수도 있소이다.”

현암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청풍 도장을 나무랐다.

“허허허, 내 몸은 내가 잘 아오이다. 이렇게 술이 땅길 때는 한 잔 걸쭉하게 마셔줘야 회복도 빠른 법이지요. 이를테면 나만의 내상 치료법이라고나 할까. 허허허.”

눈치 빠른 점소이 청년이 향기로운 고량주 세 동이를 벌써 내어왔다.

“식사는 뭘로 드릴 갑쇼?”

“허허허, 자네 장사를 좀 할 줄 아는구먼. 일단 안주할 만한 고기부터 좀 내어오게. 안주부터 먹고 식사를 시키도록 하지.”

청풍도장은 신이 나서 안주를 시켰지만 일봉은 얼른 소면 한 그릇도 같이 주문했다. 빨리 먹고 가서 석추명을 돌볼 생각이었다. 그러자 청풍 도장을 뺀 나머지 두 사람도 함께 소면을 주문했다.

허기가 졌던 일봉이 그릇에 코를 박고 면을 흡입하다시피 먹고 있는데 남이가 옆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일봉 사제, 그런데 아까부터 저 두 사람 좀 수상하지 않아요?”

일봉이 의아한 눈길로 고개를 드니 남이가 턱으로 객잔 밖에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거지들을 가리켰다. 등에 타구봉을 지닌 것으로 봐서 개방의 제자들이 분명했다.

“뭐가 이상하다는 것입니까?”

청풍 도장은 술이 얼큰하게 취해서 일봉과 남이는 쳐다보지도 않고 현암자와 난상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저 두 사람, 아까 우리가 마을로 들어설 때부터 우리를 따라왔어요. 저기 앞에 앉은 지가 벌써 이 각(刻)이 지났는데 갈 생각을 안 하잖아요.”

남이의 말에 일봉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거지야 어디를 가도 많이 있던 터라 꼭 자기들을 따라왔다고 단정 짓기는 어려웠다.

“보아하니 개방의 제자들 같은데 굳이 우리를 따라올 이유가 있습니까?”

“그거야 모르죠.”

일봉이 먹던 그릇을 마저 비우고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저는 먼저 가서 석 소협의 상태를 좀 보겠습니다.”

일봉의 말에 남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봉은 방으로 돌아와 물수건으로 석추명의 몸을 닦아주었다. 석추명은 아직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야 약이든, 죽이든 먹일 텐데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누워만 있으니 석추명을 바라보는 일봉은 마음이 납처럼 무겁기만 했다.

문득 자신의 검날에 다친 어깨의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검을 내리치던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망설이는 마음이 있었던지, 다행히 뼈는 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깨의 상처는 제법 깊었다.

“후.”

일봉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바깥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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