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 광세일소_한추영 - 162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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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화 대리전(代理戰) (5)
“이런 젠장 할. 다 된 밥에 재를 빠뜨린 격이군. 마 장로,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몰아칩시다. 귀면쌍살이 기하진만 붙잡아 놓는다면 한번 해볼 만한 싸움이잖아요.”
“흐흐흐, 그럴까?”
여인의 말에 남궁세가 고수들 중에서 누군가가 능글맞게 웃으며 튀어나왔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군요. 귀면쌍살에 이어 백련신교의 나찰녀와 탈명검 마립까지 식객으로 들이다니 남궁세가 정말 대단하군요.”
임예린이 비웃자 남궁진환의 안색이 싹 변했다. 천하 무림 앞에 남궁세가가 무림 공적인 귀면쌍살, 마교와 손을 잡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뭣들 하느냐? 어서 공격해!”
나찰녀의 앙칼진 목소리에 남궁세가의 무사들 속에 위장해서 숨어 있던 백련신교의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팽가장 무사들에게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남궁세가의 오대장로들도 눈알이 시뻘겋게 충혈이 되어 소리를 질렀다.
“맹주님의 명이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이 사실이 강호로 새어 나간다면 남궁세가는 고개를 들고 다니기 어려울 터였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무조건 모두 베어야 했다.
달려오는 남궁세가의 군사들을 72 나한들이 막아섰다. 그러자 운학 도장의 지휘를 받는 자운검수들이 다시 72 나한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양측의 군사들이 뒤섞여 싸우면서 혼전이 일어났다. 악에 받쳐 있던 팽가장의 팔대 장로가 남궁세가의 오대장로를 향해 덤벼들었다. 마립은 요혜신니와, 나찰녀는 운진자와 현암자를 동시에 상대했다.
허각 도장은 사제인 운학 도장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문파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싶었으나 부상에서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힘이 부쳤다. 게다가 사제의 목숨까지 뺏을 생각은 없는지라 간사한 운학 도장에게 속아 몇 번이나 위기를 넘겼다. 그 모습을 본 공각대사가 참다못해 말했다.
“허 도장, 대사(大事)를 행함에 있어 사사로운 감정이 들어가면 안 되니 여기는 나에게 맡기시오.”
허각 도장이 별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섰다. 기하진은 아까부터 귀면쌍살을 상대로 막상막하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양측이 모두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누가 더 우세할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서북방에서 함성이 들리더니 또 다른 군대가 팽가장 안으로 쳐들어오기 시작했다. 허각 도장이 놀라서 보니 군사를 이끄는 사람은 다름 아닌 마교의 장로 백골마군과 명왕대주 사마곤이었다.
“으하하하, 허각, 아직 살아있었느냐? 목숨이 참 끈질기구나.”
백골마군의 백골검이 공간을 격하며 허각 도장을 공격해왔다. 허각 도장은 정신없이 피했으나 기력이 약한 상태에서 조금 전 운학 도장과 정신없이 싸운 터라 몸이 생각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스걱.
허각 도장의 옷소매가 백골검에 베여 나풀거리는가 싶더니 그 사이로 핏물이 배어 나왔다. 다행히 뼈와 근육은 다치지 않았으나 살갗을 상당 부분 베였다.
“허 장로님을 보호하라.”
자운검수 중 누군가 소리쳤다. 그러자 10여 명의 자운검수가 달려와 허각 도장을 보호하며 무당파의 절세진법, 현무칠성진(玄武七星陣)을 펼쳤다. 일곱 명의 자운검수가 밤하늘 스물여덟 개의 별자리 중 북방 일곱 개의 별자리인 두(斗), 우(牛), 여(女), 허(虛), 위(危), 실(室), 벽(壁)의 자리를 점하고 빙글빙글 돌며 검기를 뿜어냈다. 아울러 나머지 세 명은 허각 도장 옆에서 세 방위를 점해 엄밀히 수비했다.
백골마군이 코웃음을 치며 벼락같이 백골검을 찔러 넣었다. 백골마군이 보기에는 무당의 자운검수라고 해도 어른 앞의 어린애나 마찬가지였다. 자운검수들의 무공은 자신에게 훨씬 미치지 못하건만 진법이 발동하자 뜻밖에도 쉽사리 승부를 볼 수가 없었다.
‘무당파가 구대 문파의 태산북두가 된 것이 그냥이 아니로군.’
백골마군은 자운검수를 우습게 여기다가 현무칠성진에 막히자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백골마군은 전대의 기인으로 무당파 장문인이 와도 콧방귀도 안 뀔 고수였다. 현무칠성진을 무당파 장로급 고수 일곱 명이 펼쳤다면 백골마군도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이나 새파랗게 어린 자운검수들이 펼치다 보니 진법이 뛰어나도 금방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조금 손을 섞다 보니 백골마군은 칠성좌를 점한 자운검수들의 무공 수위를 단박에 파악했다. 일곱 명 중에서도 특히 여(女)와 실(室) 자리를 점한 검수들은 진법의 변화를 좇아가기에도 급했다. 허점을 파악한 백골마군이 신묘한 보법으로 두성(斗星) 위치의 검수를 뛰어넘더니 우성(牛星) 자리의 검수에게 백골검을 찔러 넣었다. 그러자 대번에 그 양옆에 있던 검수들이 검을 휘둘러 백골검을 차단하려 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백골마군이 고의로 유도한 수법이었다. 백골마군이 찔러 넣던 검에 갑자기 변화를 일으키자 여성(女星) 위치에 있는 검수가 당황하며 그 속도를 쫓아가지 못해 진법에 잠시 결함이 생겼다. 바로 그 순간, 백골검이 벼락같이 여성좌(女星座)에 있던 검수의 가슴을 꿰뚫었다.
“허억”
“아진(雅眞)아!”
누군가가 쓰러진 검수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한 사람이 쓰러지자 현무칠성진의 위력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 뒤를 이어 또 한 명의 검수가 백골검에 목숨을 잃었다.
뒤에서 이 모습을 본 허각 도장이 자신의 몸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급히 검을 들고 백골마군을 공격해 들어갔다. 허각 도장이 뛰어들자 다시 진법의 위력이 살아나면서 백골마군의 공세는 잠시 주춤했다.
한편 기하진은 귀면쌍살과 싸우면서도 이러한 상황을 모조리 파악하고 있었다. 귀면쌍살은 자신의 얼굴을 본 기하진을 절대로 살려둘 수 없다는 듯 사력을 다해 달려들었다.
‘젠장! 추명 형님은 어디를 가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기하진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상황이 급하다 보니 한 사람의 고수라도 아쉬운 판이었다. 특히 석추명과 같은 절세고수가 있다면 금방 전세를 역전할 수도 있기에 오늘따라 석추명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방 측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지금 상황에서 적의 진영에 고수가 더 늘어난다면 이쪽이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싸움은 점점 더 치열해졌다. 얼핏 눈을 돌려 보니 허 도장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듯했다. 허 도장을 돕던 자운검수 열 명 중 벌써 네 명이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친 상황이었다.
팽가장의 상황도 심각했다. 명왕대주(冥王隊主) 사마곤이 이름 그대로 저승에서 올라온 야차처럼 팽가장의 군사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최근에 무공이 급진전한 일봉과 남이가 사마곤을 막아섰으나 두 사람의 무공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서 이미 죽을 위기를 여러 차례 넘겼다.
그때 문득 허공에서 동남동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생노모의 현신이신 흑련교주께서 왕림하셨으니, 세인(世人)들은 모두 영접하라.”
치열한 싸움터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니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모두 이상한 생각에 고개를 들고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허공에서 붉은 그림자가 번뜩하더니 팽가장 마당 한복판에 음양사자가 백발을 휘날리며 나타났다.
그 모습에 기하진은 가슴이 철렁했다. 음양사자는 백골마군보다 고수. 오늘 이 자리는 아무래도 길보다 흉이 많을 성싶었다.
“음양사자를 막아야 합니다!”
기하진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 순간 음양사자의 모습이 ‘퍽!’ 소리와 함께 사라지더니 순식간에 백골마군의 등 뒤에 나타났다.
“간악한 놈.”
음양사자가 갈고리 손을 쭉 뻗으며 백골마군의 목 뒤 사혈을 찍어갔다. 백골마군은 허각 도장과 자운검수를 상대하고 있다가 갑자기 목 뒤에서 지독한 한기가 느껴지자 깜짝 놀라 급히 땅바닥을 굴렀다.
지금까지 싸우면서도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았던 백골마군의 새하얀 장삼이 순식간에 흙먼지로 더럽혀졌다. 하지만 백골마군은 옷이 더럽혀진 것보다 자신의 눈앞에 음양사자가 서 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란 듯했다.
음양사자가 노란 묘안을 번뜩이나 싶더니 다시 귀연신공을 펼쳐 백골마군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으악!”
백골마군의 입에서 돌연 처참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백골마군의 복부가 피범벅이었다. 어느새 음양사자가 다시 나타나 백골마군의 복부를 꿰뚫은 것이다. 피투성이인 음양사자의 손톱 끝에 백골마군의 것으로 보이는 살점들이 붙어 덜렁거렸다.
교주를 제외하고 백련신교 최고수로 여기던 백골마군이 이처럼 대번에 패색을 보이자 나찰녀와 마립은 깜짝 놀랐다.
“마 장로, 백골마군을 부축해요!”
나찰녀가 마립에게 소리 지르며 음양사자에게 철 채찍을 휘둘렀다.
촤악. 검은색의 채찍이 바람을 가르는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음양사자에게 날아갔다. 힘으로는 하북 무림에서 당할 자 없다는 팽연의 손아귀에서 선혈을 흐르게 한 바로 그 채찍이었다.
하지만 음양사자는 아무렇게나 팔을 휘두르더니 채찍 끝을 가볍게 부여잡았다. 나찰녀가 깜짝 놀라 팔에 힘을 주어 채찍을 잡아당겼으나 채찍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흥! 그것도 힘을 준 게냐?”
음양사자가 콧방귀를 뀌며 채찍을 잡아당기자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채찍 가운데가 돌연 끊어져 버렸다.
“과연 무공이 절륜하시군요. 후배가 한 수 잘 배웠습니다.”
나찰녀는 채찍이 끊어지자 채찍을 대번에 던져 버렸다. 그러고는 경공을 발휘하여 총총히 사라져 버렸다.
기하진과 임예린, 요혜신니 등은 음양사자가 자신들이 아니라 백련신교의 고수들을 공격하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소림사에서는 음양사자와 마교의 고수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았던가? 맹주와 마교 교주 간에 모종의 합의가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는데 지금은 또 어찌하여 음양사자가 마교의 고수들을 죽자사자 공격하는 것일까?
음양사자가 백골마군과 나찰녀를 상대하는 사이, 석추명은 명왕대주 사마곤에게 덤벼들었다. 사마곤은 얼마 전 바위산에서 석추명의 손에 패한 적이 있기에 다시 석추명과 싸우는 것은 승산 없는 싸움임을 잘 알고 있었다.
사마곤은 석추명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을 보자마자 상대적으로 무공이 낮은 남이를 집중 공략하여 퇴로를 열었다.
“사마곤. 어디를 달아나려는 게냐!”
경공을 발휘해 허공을 날아오던 석추명이 두 손을 맞잡고 기를 모았다. 그러자 ‘퍽!’ 소리와 함께 석추명의 등에 꽂혀 있던 비천검이 저절로 검집에서 튀어 오르더니 그대로 일직선을 그리며 쏜살같이 사마곤을 향해 날아갔다.
검이 날아오는 기세가 워낙 맹렬하여 사마곤은 피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다급히 손에 쥔 검을 뒤로 휘둘러 막으려는 순간, 비천검의 속도가 기이하게 빨라지더니 사마곤의 오른쪽 어깻죽지를 관통하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헉”
사마곤이 쓰러질 듯 휘청거리더니 오른팔을 덜렁거리며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음양사자와 석추명이 나타나면서 상황이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백련신교의 고수들은 대부분 죽거나 도망쳤고, 귀면쌍살 석문도 언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상황이 바뀌자 팽가장의 사람들이 득달같이 들이닥쳐 남궁세가의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들였다. 그 와중에 남궁세가의 호위단 중 2개 대대의 수장이 목숨을 잃고, 남궁진환의 셋째 아우 남궁진수가 크게 다쳤다. 남궁진수는 그 상태로도 승복할 수 없다는 듯 발악을 했다.
요혜신니, 공각대사, 허각 도장 등 정도련의 수뇌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팽연이 두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 나왔다. 땅바닥에는 남궁진환과 남궁세가의 오대장로 등이 포박을 당한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남궁진환,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더니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있던 자리에 지금은 네가 있구나.”
남궁진환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남궁진환을 노려보는 팽연의 두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평소에 그래도 내 너를 영웅이라 생각했거늘.... 기왕 이렇게 된 것이야 긴말 할 필요가 없겠지. 귀면쌍살 석문과 마교의 고수들과 손을 잡고 정파 무림을 공격한 너의 목을 쳐서, 맹주 남궁진악에게 경고하고 정파 무림의 의기(義氣)를 바로 세우겠다.”
주위에 많은 사람이 있었으나 숙연한 분위기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팽연의 말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그때까지 뒷짐을 진 채 등을 돌리고 있던 음양사자가 돌연 몸을 돌렸다.
“그건 아니 된다. 남궁진환을 비롯하여 남궁가의 사람들을 모두 풀어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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