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세일소-143화 (143/201)

#   143 - 광세일소_한추영 - 161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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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화. 분열 (9)

화련산 백련신교 총단의 교주전 지하는 대낮인데도 이상하리만큼 싸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교주전 지하는 원래 군사들을 숨기기 위해 만든 거대한 공간이었다. 백련교는 조정에 항거하여 산발적인 군사활동을 전개해온 터라 불시에 있을 관군의 습격에 대비하여 지하에 거대한 군사시설을 만든 것이다.

최대 1,000명을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도록 지어진 지하 공간은 사실 그 자체로 하나의 성(城)이나 다름없었다. 그중에서도 교주전 바로 아래는 500여 명이 한꺼번에 집결할 수 있는 탁 트인 대청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지하 대청에서 한기와 함께 기분 나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살기는 아니지만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불쾌한 느낌이 공중을 떠돌고 있었다. 이를테면 시신에서 나는 불쾌한 냄새와 서늘한 기운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고 보니 지하 대청에는 10여 개에 달하는 커다란 석관이 좌우로 다섯 개씩 열을 맞춰 놓여 있었다. 그 한가운데 난 길을 남무궁이 흡족한 표정으로 걸었다.

“우사, 이것들을 보려면 얼마나 더 있어야 하는가? 내 몹시도 궁금하구먼. 크하하하.”

남무궁의 웃음소리가 지하 대청에서 울리며 메아리를 만들었다.

우사라고 불린 사람은 키가 크고 다소 마른 체형으로 망자를 저승으로 안내하는 검은색의 옷을 입고 머리에도 검은색의 관을 쓰고 있었다.

“이제 보름달이 다섯 번만 더 뜨면 필요한 음기를 모두 채울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이지(理智)와 감정은 없으나 세상의 그 누구보다 주인의 명에 복종하는 충성스러운 수하들을 거두게 되실 것입니다.”

우사의 말에 남무궁의 흡족한 듯 다시 한번 껄껄껄 웃음을 내뱉었다.

“차시환혼대법(借屍還魂大法)이라. 이놈들이 어떤 몰골로 나타날지 정말 궁금하구먼. 이놈들이 그토록 충성스럽다면 10여 구가 아니라 더 많이 만드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남무궁의 말에 우사 귀령도인(歸靈道人)이 허리를 굽혀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원래 강시라는 것은 천리에 역행하는 존재라 만들기가 무척 까다롭습니다. 강시 하나를 만들려면 보름달에서 명부(冥府)의 음기를 끌어오고, 360여 가지의 극한, 극서, 극독의 지방에서 자라는 진귀한 약재와 영물의 피가 필요하니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그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니 많이 만들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신들로 강시를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지요.”

귀령도인이 점잖은 말로 남무궁에게 강시를 만드는 이치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흠,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겠구먼. 죽은 자의 몸을 다시 일으킨다니 생각만 해도 오싹해지는군, 하하하. 참, 그런데 말이야 듣자 하니 살아있는 사람도 강시로 만들 수 있다던데 그것은 어떤 것인가?”

남무궁의 물음에 귀령도인이 흠칫 몸을 떨었다.

“강시라는 것이 본래 죽은 몸이라 이지와 감정이 없습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강시로 만들면 이지와 감정이 있는 강시가 되지요. 그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을 강시로 만들면 무한한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어서 단기간에 무공을 급격히 높일 수가 있지요.”

“오호, 그런 게 있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죽은 자를 모을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을 강시로 만들면 되지 않겠나?”

남무궁의 말에 귀령도인이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활강시(活僵尸)를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다면 왜 만들지 않겠습니까? 활강시가 되려는 자는 극독이 포함된 560여 가지의 약재를 먹고 온몸을 칼로 도려내고 불에 태우는 듯한 고통을 참아내야 합니다. 십중팔구는 이 단계에서 죽거나 까무러치지요. 그런 다음 다시 시신의 몸에서 나오는 시수(尸水)에 온몸을 담그고 칠 일을 버티며 음기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이라면 물속에 잠겨서도 칠 일을 버티기 어려운데, 하물며 구더기가 꿈틀거리고 썩은 내가 진동하는 시수에 온몸을 담그고 칠 일을 버틸 자가 있겠습니까? 앞선 단계의 고통을 참아낼 만큼 의지가 굳은 자도 이 단계에 이르면 백이면 백, 모두 미쳐서 정신착란을 일으킵니다. 그러니 활강시는 오히려 사강시(死僵尸) 보다 만들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가? 활강시가 그토록 만들기 어렵다니 정말 아쉽군.”

“지난 수백 년 동안 활강시는 딱 한 번 만들어졌다고 합니다만 그것도 사실 문헌에만 기록되어 있을 뿐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활강시는 그냥 잊으시는 게 마음이 편안하실 것입니다.”

귀령도인의 말에 남무궁의 입맛을 다시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 그나저나 이거 결과가 궁금해서 정말 참을 수가 없구먼. 하하하.”

남무궁의 말에 우사 귀령도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귀한 것일수록 기다려야 제맛입니다. 오랜 세월을 준비해온 만큼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

“암, 그래야지. 다 된 밥에 재를 빠뜨릴 수는 없지. 우사는 각별히 신중을 기하여 조금도 잘못되지 않도록 하라.”

“명 받들겠습니다, 교주님.”

남무궁이 지상으로 올라오자 교주전에는 좌사 철혈서생(鐵血書生)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알아보라 한 일은 어떻게 되었나?”

남무궁의 말에 좌사 철혈서생이 포권을 취했다.

“교주님의 혜안대로 맹주의 심복 음양사자는 흑련교의 교주 모용회였습니다. 모용회와 그 일당이 은밀히 회합을 벌이는 장소를 발견하고 백골마군과 사마곤이 군사를 이끌고 갔으니 곧 좋은 소식이 올 것 같습니다.”

“흥! 모용회 그놈이 그동안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더니 맹주 남궁진악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었을 줄이야.”

“그런데 그동안 보고에 따르면 음양사자 모용회의 무공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음양사자가 여자라고 합니다. 모용회가 여자가 되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니 그동안 저희가 찾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

좌사 철혈서생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스스로 남성이기를 포기하다니 정말 지독하기 짝이 없는 자입니다.”

그러자 남무궁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 정도 결기가 있어야 내 상대가 되지. 자신의 양물을 자르고 여자가 되었다라.... 모용회가 익힌 것이 신교의 실전된 무공인 음양일기공(陰陽一氣功)이 분명해. 음양일기공을 익히려면 남자는 여자가 되고 여자는 남자가 되어야 하지. 그래야 음양의 기운을 하나로 모을 수가 있으니까.”

남무궁이 무엇인가를 잠시 생각하는 듯 눈초리를 찌푸렸다.

“모용회를 빨리 만나보고 싶군. 음양일기공이 제아무리 절세신공이라 하더라도 차시환혼대법에 비할 수 있나? 크하하하.”

한참 웃던 남무궁의 표정이 갑자기 싸늘해졌다.

“흑련교가 멸망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헛된 꿈을 꾸고 있다니. 흑련교 놈들, 이번에야말로 지상에서 완전히 쓸어내어 주마.”

남무궁이 다시 철혈서생에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하북팽가에는 누가 갔지?”

“나찰녀와 마 장로가 탈명대를 이끌고 은밀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당분간 남궁진악이 원하는 대로 다 맞춰 주도록 해.”

“존명”

그때 교주전으로 수하가 들어와 보고를 올렸다.

“교주님, 지금 밖에 적비랑의 두목이라는 자가 와서 교주님 뵙기를 청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적비랑의 두목?”

남무궁이 의아한 눈길로 철혈서생을 바라보았다.

“적비랑은 천산산맥을 본거지로 활동하던 비적단으로 일전에 천린상단의 사천지부를 칠 때 본교에서 동원한 바 있습니다. 그 두목이라면 온몸이 동근철골((銅筋鐵骨)로 이루어져 있으나 어찌 된 일인지 피부는 물론이고 터럭까지 새하얘서 설랑이라고 불리는 자입니다.”

철혈서생의 설명에 남무궁은 호기심이 생겨 안으로 들이라고 명했다.

잠시 후 과연 좌사 철혈서생의 말대로 보통사람보다 한 배 반은 더 큰 거구의 사내가 들어왔다. 신교의 거구라면 명왕대의 부대주 자겸이 있는데 이 사내는 자겸보다도 훨씬 더 큰 것 같았다.

철랑을 바라보는 남무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했느냐?”

설랑은 남무궁을 한참 바라보더니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설랑, 절세 신공 배우고 싶다. 당신이, 가르쳐 줘.”

설랑의 혀짧은 소리에 철혈서생이 놀라면서 설랑을 꾸짖었다.

“네 이놈. 어느 안전이라고 말을 그따위로 하는 게냐.”

그러자 남무궁이 손을 들어 올리며 철혈서생을 저지했다.

“괜찮다. 보아하니 한족이 아닌 듯한데 한어가 서툴러서 그런 게 아니겠나?”

어쩐 일인지 남무궁이 너그럽게 말하더니 다시 설랑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 절세 신공은 왜 배우려고 하느냐?”

“내 여자. 여자를 되찾고 싶어.”

설랑의 눈빛이 희번덕거렸다.

“여자라....”

남무궁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손으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빙그레 웃었다.

“오호라. 사랑하는 여인을 누군가에게 빼앗긴 게로군. 그것도 무공이 아주 고강한 놈에게.”

남무궁의 말에 설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여인이기에 천산에서는 우는 아이도 두려워한다는 너의 마음을 훔쳤을꼬?”

“예쁜 여자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 그 여자, 내 거다.”

설랑의 말에 남무궁이 고개를 젖히고 목젖이 흔들릴 만큼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 그래. 사내란 모름지기 미인에 약한 법이지. 내, 자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 가네. 자네의 마음이 정 그렇다면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지. 내 자네를 칠 일 만에 천하제일의 고수로 만들어 줄 수도 있네.”

설랑을 바라보는 남무궁이 눈빛이 번뜩였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어려워. 정말 어렵지. 자네가 정말 포기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내 도와줄 수도 있네.”

“조건이, 무엇이냐?”

설랑은 자신이 바라는 답을 얻자 갈급한 눈빛을 띠며 물었다. 비록 한어는 어눌했으나 비적단이라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탓에 어떤 것도 대가 없이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크하하하. 말이 통하는 녀석이로군. 조건은 앞으로 네놈이 내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랑이 잠시 남무궁을 바라보았다. 무조건 복종이 무얼 의미하는지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자 남무궁이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 자네가 걱정할 필요는 없네. 어차피 자네는 내 뜻대로 움직이게 될 테니까. 다만 자네는 극한의 고통을 감당해 내기만 하면 되네. 절대 포기하지 않고 말이야. 할 수 있겠나?”

남무궁의 말에 설랑이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숙였다.

“할 수 있다. 부탁, 드린다.”

설랑의 대답에 남무궁이 흡족한 듯 다시 한번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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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혜신니를 만나러 소림사로 가는 임예린은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었다. 무슨 일인지 기하진과 남이가 어젯밤부터 말을 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서로 얼굴을 마주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 간에 분명히 무슨 일이 있는 듯했으나 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활발한 성격의 사소혜가 종종 큰 도움이 되었으나 사소혜도 지금 기하진에게 무척 화가 난 상태였다. 기하진과 사소혜 사이의 갈등은 석추명 때문이었다.

폭우가 내리던 지난밤, 석추명은 말도 없이 사라진 이후 날이 새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자신들이 머무는 객잔의 위치가 무림맹 측에 발각되었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석추명이 걱정된 사소혜는 하루 더 머물며 기다리자고 주장했으나 기하진은 사소혜의 주장을 단박에 거절했다. 하루 더 있다가는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위험해진다. 석추명은 무공이 고강하므로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어딘지 알고 있으므로 아마 그쪽으로 올 것이다. 여기까지는 임예린도 기하진의 생각에 동의했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다음이었다.

- “언제까지 마냥 기다리겠다는 것이오? 석 대주가 마음이 바뀌어 마교로 복귀했을지도 모르지 않소?”

- “그럴 리가 없어요. 신교에서 지금 혈안이 되어 석 대주님을 쫓고 있는데 대주님이 왜 제 발로 거길 걸어 들어가겠어요?”

- “흥! 그거야 원래 출신이 거기니까.”

기하진의 빈정거림에 사소혜는 결국 분노를 터뜨리고 말았다.

- “석 대주께서 그동안 정도련을 위해 얼마나 노고를 아끼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죠? 기 소협은 석 대주님께 친동생 같은 존재라고 들었는데 어째서 형님의 마음을 그토록 모르는 거죠?”

사소혜의 말에 기하진이 다시 차갑게 응수했다.

- “친동생 같은 존재지만 진짜 친동생은 아니니까. 그러니 그 속을 내가 어찌 알겠소?”

기하진이 빈정거린 이유는 사실 남이와 자신을 억지로 맺어주려고 했던 석추명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기하진은 석추명도 임예린에게 마음이 있음을 진즉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남이와 맺어주려는 이유가 자신을 임예린에게서 떼어 놓고 싶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석추명에 대한 말이 곱게 나올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사소혜는 기하진의 말에 화가 나서 즉시 금사신편을 꺼내 들었다. 한바탕 싸움이 일어날 것 같자 임예린이 다급히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간신히 싸움을 무마했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기하진과 사소혜 간에도 찬 바람이 불었다. 강적을 앞에 두고 똘똘 뭉쳐도 부족할 판국에 서로 얼굴조차 보려고 하지 않으니 임예린은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지도 몰랐다. 게다가 임풍 부부는 청풍도인, 현암자와 함께 천린상단 하남지부로 떠난 터라 젊은 사람들만 남은 일행은 자연히 분위기에 편승하여 기하진과 반기하진 파로 자연스레 나뉘었다.

임예린은 그 총명한 머리로도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 사실 자신 때문에 벌어졌음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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