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 광세일소_한추영 - 1608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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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화. 분열 (7)
석추명은 사마곤과 싸우면서 진즉부터 백골마군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대의 기인이라는 자가 다른 사람과 싸우는 틈을 타서 비겁하게 등 뒤에서 몰래 공격해왔다.
석추명은 백골검이 등 뒤로 다가오자 몸을 기이하게 사선으로 꺾어 백골검을 피하면서 그 반동으로 즉각 비천검을 뻗어냈다. 백골마군이 원래 쓰던 백골검은 화산에서 석추명의 검기를 견디지 못해 부러지고 새로 만든 검은 급히 만드느라 이전 검만큼 신묘한 작용이 없었다.
동굴 속이 연기로 가득 찼는지 백골마군의 등 뒤로 보이는 동굴 입구에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나오고 있었다. 더 지체했다가는 동굴 안에 있는 수백 명이 모두 질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석추명은 백골마군을 공격하는 동시에 어검술을 구사하여 허공에 매달려 있던 나머지 적병의 밧줄을 모조리 끊어 버렸다. 사마곤의 수하 열너댓 명이 비명을 내지르며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빗물과 함께 떨어져 내렸다.
어차피 사마곤이 부상을 당한 이상 자신이 백골마군을 붙들어 둘 수만 있다면 동굴 안에 있는 교도들이 밖으로 피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석추명이 몸을 급회전하며 빠른 속도로 백골마군을 몰아붙이는 동시에 동굴 안에 있는 교도들에게 소리쳤다.
“백골마군은 제가 붙잡고 있을 테니 이제 동굴 밖으로 나오셔도 됩니다.”
잠시 후, 혹시 있을지도 모를 적의 공격에 대비해서 흑련교도들 중 무공이 뛰어난 자들이 먼저 밖으로 나왔다. 교도들은 동굴 안에서 불길과 연기와 싸우느라 상당히 지쳐 있었지만, 밖으로 나와 맑은 공기를 마시자 다들 기운을 차렸다.
곧 흑련교도들과 절벽 윗길에 포진한 백련신교의 군사들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한두 명이 겨우 지날 만한 좁은 길에서 싸움이 벌어지자 실제로 접전을 벌이는 사람의 수는 몇 명 되지 않아 싸움이 다소 갑갑하게 진행되었다.
백련신교의 정예병들이 높은 위치를 선점하여 공격에 유리했으나 동굴 속에서 흑련교도들이 끊임없이 계속 나오자 숫자에서 밀려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석추명은 혹시 백골마군이 교도들을 공격할까 봐 물샐 틈 없는 공격을 퍼부었다. 화산에서 심검(心劍)을 익힌 후로 검을 휘두르는데 막힘이 없고, 한 생각을 일으키면 이미 검이 도달해 있으니 누구와 싸워도 두렵지 않았으나 백골마군은 역시 전대의 기인이었다.
검의 빠르기로는 석추명에게 당할 수 없으나 자신이 지닌 장점인 웅후한 공력을 바탕으로 방어에만 치중하자 석추명으로서도 단번에 승부를 낼 수가 없었다.
동굴 입구에서 매캐한 냄새와 함께 검은 연기가 꾸역꾸역 계속 흘러나오고 연기와 불길을 피해 동굴 밖으로 나온 사람들의 수가 어느덧 백여 명에 달했다.
그때 공중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석추명과 팽팽하게 접전을 벌이던 백골마군이 돌연 몸을 빼 허공으로 날아올라 절벽 위로 사라졌다.
석추명이 수상한 생각에 고개를 들고 백골마군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공중에서 다시 수십 명의 백련신교 정예병들이 몸에 밧줄을 묶은 채 수백 개의 강철표창과 비도를 뿌리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일순간 허공을 까맣게 뒤덮은 강철표창과 비도가 떨어지는 빗방울보다 많아 보였다.
동굴 밖으로 나온 교도들 상당수는 동굴 안에서 유독한 연기를 들이마셨기 때문에 아직 움직임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표창과 비도를 본 석추명의 안색이 대번에 변했다.
“위험합니다. 모두 피하세요.”
석추명이 비천검에 온몸의 공력을 집중하여 검기의 그물인 기망을 일으킨 다음, 검을 공중에 던지며 어검술을 펼쳤다.
촤르르르.
검에서 시퍼런 검기가 세 자나 뻗어 나오면서 비천검이 허공에서 팽이처럼 급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탕탕탕탕.
검기와 검의 길이를 합해 허공에 반원 여섯 자 정도 되는 둥근 원판이 생기면서 원판에 부딪히는 강철표창과 비도를 모조리 튕겨냈다.
평소보다 훨씬 규모가 더 큰 기망(氣網)을 형성하고 그것을 어검술로 조종하려면 엄청난 공력이 필요했다. 젖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어검술을 펼치는 석추명의 몸이 과도한 부하를 이기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렸다. 팔뚝과 목에 생긴 굵은 핏줄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고, 얼굴이 시뻘게지더니 혈관이 터졌는지 코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석추명의 노력에 불구하고 워낙에 강철표창과 비도가 많아 쏟아져서 다시 수십 명의 교도가 목숨을 잃었다.
준비한 것이 다 떨어졌는지 마침내 표창과 비도 세례가 멈추었다. 극도의 인내력을 발휘하여 버티던 석추명은 적의 공격이 멈추자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마지막 한 방울의 공력까지 모조리 쥐어짰기에 남은 힘이 하나도 없었다.
쓰러지는 석추명을 누군가가 붙잡았다. 허공에서 회전하던 비천검도 주인의 의식이 미치지 않자 힘을 잃고 추락했지만 다행히 누군가가 손을 뻗어 검을 회수했다.
흑련교도들은 석추명이 제 몸도 돌보지 않고 자신들을 구하자 감동한 나머지 모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그때 다시 어디선가 백골마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으하하하, 꼴 좋구나. 어쭙잖은 짓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이제 알겠느냐? 오늘 네놈이 죽는 이유는 네놈의 그 약해빠진 마음 때문이니라. 으하하하.”
백골마군이 백골검을 펼쳐 들고 붕새처럼 절벽 위에서 훨훨 날아 내려왔다.
“도솔천사를 보호하라. 도솔천사를 보호하라!”
누군가의 외침에 석추명의 주위에 서 있던 교도들이 몸을 던져 석추명을 막아섰다.
“비켜라.”
백골검이 번쩍 빛을 내뿜자 석추명을 가로막은 교도 두 명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안돼!”
석추명은 자신 때문에 사람들이 목숨을 잃자 눈을 부릅뜨며 소리 질렀다. 안타까움에 바둥거리며 일어나려고 했으나 온몸에 진기가 한 줌도 남지 않아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도 없었다.
두 명의 교도가 쓰러지자 이번에는 네 명의 교도가 석추명 앞으로 몸을 던져 막았다.
“귀찮은 놈들. 모두 한꺼번에 없애주마.”
백골마군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더니 백골검을 높이 쳐들었다.
그때 동굴 안에서 ‘펑!’ 소리와 함께 무지막지한 기운이 후끈한 열기와 함께 백골마군을 덮쳐왔다.
즉시 피하지 않았다가는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이 날 수 있을 정도로 맹렬한 장풍이었다.
백골마군이 얼른 공중제비를 서너 번 돌며 피하자 동굴 안에서 온몸에 그을음과 화상 자국이 가득한 음양사자가 나타났다.
“백골마군, 네놈이 감히 내 뒤통수를 치다니.”
음양사자는 평소의 위엄있는 모습과는 달리, 동굴 안에서의 급박했던 상황을 보여주는 듯 군데군데 불에 타고 시커먼 그을음이 묻은 옷을 입고 머리는 산발한 채였다. 하지만 여전히 노란 묘안을 번쩍이며 백골마군을 노려보았다.
“으하하하, 누더기를 걸친 꼴이 볼 만하구나, 백음수(白陰手) 모용회(慕容會).”
백골마군이 음양사자의 본명을 부르며 비웃었다.
“옛날에는 자네를 형제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뭐라고 불러야 하나? 누이라고 불러야 하나? 크하하하.”
백골마군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네놈 따위가 감히 나를 경멸하다니. 나는 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부모 형제도, 사랑하는 처자도, 오랜 벗과 부하들도 모두 바쳤다. 본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남무궁을 찢어 죽일 수만 있다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데 성별 따위야 말해서 뭣하랴. 교를 위해 무엇 하나 희생한 것 없는 네놈이 나의 충심을 어찌 알겠느냐?”
음양사자의 목소리가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주변에서 음양사자의 이야기를 듣던 흑련교도들의 분위기가 숙연해지더니 돌연 모두 무릎을 꿇고 울먹이는 소리로 음양사자를 불렀다.
“교주님!”
석추명조차도 음양사자의 말에 깊이 감동했다. 음양사자는 조금 전까지도 동굴 속에서 화마와 싸우며 교도를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제일 나중에서야 나왔다. 교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남자. 심지어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남성(男性)까지 버리면서 교의 부흥을 다짐한 사람. 백련신교의 교주 남무궁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석추명은 음양사자의 선악을 떠나서 그 굳은 결심과 의지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은 발끝도 미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내저었다.
백골마군은 음양사자를 조롱하려다가 오히려 음양사자를 띄워준 꼴이 되어 분위기가 숙연해지자 할 말을 찾지 못해 다시 콧방귀를 뀌었다.
“흥! 잘난 척은 염라대왕 앞에서나 하거라. 당장 너부터 끝장을 내어주마.”
백골마군이 백골진기를 일으키자 백골검에서 도깨비불 같은 푸른 인광이 거대한 반달 모양으로 일어나며 음양사자를 집어삼킬 듯이 다가왔다.
음양사자는 동굴 안에서 화마와 싸우면서 온몸에 화상을 입은 데다 유독한 연기를 들이마시지 않으려고 오랫동안 숨을 참는 폐식(閉息)을 한 터라 몸에 무리가 와서 진기가 원활히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음양사자는 조금도 내색을 하지 않으며 자신의 장기인 구유백귀장(九幽百鬼掌)을 허공에 펼쳐냈다.
꺄아악.
백골검에서 울려 퍼지는 백골성(白骨聲)에 맞서 지옥의 백귀들이 땅 위로 뛰쳐나온 듯한 귀곡성(鬼哭聲)이 귀를 때렸다.
백골마군은 음양사자가 저토록 기진맥진한 상황에서도 이와 같은 무공을 펼쳐 보이자 속으로 뜨끔했다. 하지만 손속을 한번 교환하자 음양사자의 공력이 이전보다 상당히 약해졌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챘다.
음양사자의 공력이 평상시라면 자신의 무공으로 음양사자를 없애기 어려우나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한번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게다가 오른쪽 팔꿈치가 잘리는 수모를 자신에게 안겨준 석추명마저 지금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백골마군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신교의 강적 두 명을 자신의 손으로 처치하게 될 줄이야. 두 사람을 처치하면 교주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는 것은 물론, 교 내에서 교주 다음가는 지위를 확고히 다질 수 있으리라는 계산까지 섰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이 아니라면 또 언제 이 두 연놈을 없앨 기회가 찾아오겠는가? 백골마군은 무림에서도 대선배 격인 만큼, 후배들이 자신을 앞지르는 것을 참지 못했다. 연배로만 따진다면 음양사자조차도 백골마군에게는 후배뻘이었다.
음양사자를 반드시 처치하겠다는 결심이 서자 백골마군의 온몸에서 송곳 같은 살기가 폭사하기 시작했다.
백골마군이 음양사자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며 백골검을 사선으로 길게 그었다. 단순하지만 그만큼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크아악.
검에서 백골성이 터져 나오며 시퍼런 반월 모양의 강기(剛氣)가 세 개 연달아 생기더니 수평, 수직, 사선, 세 가지 방향으로 음양사자의 몸을 베어갔다. 천명에게 마(魔)의 임금이라는 뜻의 ‘마군(魔君)’이라는 이름을 가져다준 월광삼도(月光三屠)라는 초식이었다. 강기 중 어느 것 하나라도 맞는다면 음양사자의 몸은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날 수밖에 없었다.
백골마군의 공격을 지켜보던 석추명의 손바닥에서 식은땀이 났다. 진기가 조금이라도 모인다면 즉시 달려나가 음양사자를 돕고 싶었으나 단전은 텅 비어 진기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음양사자는 백골마군의 공격을 귀연신공으로 맞섰다. 첫 번째 강기가 음양사자의 몸에 닿으려는 순간, 음양사자가 갑자기 ‘팍’ 소리를 내며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음양사자가 다시 나타났을 때 과도하게 공력을 운용했기 때문인지 입가에서 한 가닥 붉은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두 번째 강기가 덮치기 전에 음양사자가 다시 한번 귀연신공을 발휘했다. 음양사자는 동굴 속에서 입은 부상으로 내력이 이어지지 않는지 귀연신공을 펼쳤으나 이동 거리가 무척 짧았다.
다시 나타난 음양사자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그 모습에 백골마군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세 번째 강기가 사선으로 자신을 베어올 때쯤 음양사자는 더 이상 귀연신공을 펼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맨손으로 바위도 자르는 검강(劍剛)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그 모습을 초조하게 지켜보며 한 가닥 진기를 모으려고 애쓰던 석추명에게 적군 중 한 명이 쌍장을 날렸다.
퍽!
쌍장은 정통으로 석추명의 등을 때렸지만 석추명은 쓰러지기는커녕 오히려 벌떡 일어섰다. 그 모습에 쌍장을 내쏜 적군은 놀라서 심장이 오그라들 지경이었다.
석추명이 일어서는 동시에 석추명의 손에 있던 비천검이 허공으로 치솟더니 검기를 뿌리며 쏜살같이 날아갔다.
카캉!
백골마군의 검에서 뻗어 나온 마지막 강기가 비천검과 부딪치면서 고막을 찢을 듯한 금속성이 울렸다. 그 순간, 비천검이 푸른 빛을 내뿜더니 검기가 두 자나 허공으로 치솟았다.
석추명은 사실 그 순간도 진기가 모이지 않아 공력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 적군이 자신에게 쌍장을 휘두르자 그 공력을 절묘한 이화접목(移花接木) 수법으로 빌린 것이었다.
무공이 고급 경지에 이르면 적의 힘을 빌려 쓸 수 있다. 이력타력(以力打力), 이화접목(移花接木), 사량발천근(四兩撥千斤) 등이 모두 상대방의 힘을 빌려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무학의 묘리를 설명하는 말이다.
그런데 석추명은 단순히 힘을 빌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힘을 공력으로 전환하여 어검술을 펼친 것이다. 이것은 넉 냥(四兩)의 힘으로 천근(千斤)의 힘을 내는 것보다 훨씬 오묘한 경지였다.
백골마군은 석추명의 비천검이 날아오자 석추명이 공력을 회복했다고 생각한 나머지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석추명이 공력을 회복했다면 자신은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 눈앞에는 음양사자까지 있지 않은가?
백골마군은 그 짧은 순간 머리를 비상하게 굴리더니 신선같이 고아한 풍채와는 달리 발바닥에서 불이 날 만큼 황급히 몸을 내빼고 말았다.
석추명은 음양사자가 위험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며 의식을 잃었다. 빌려 쓴 넉 냥의 힘까지 모조리 소진하자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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