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세일소-135화 (135/201)

#   135 - 광세일소_한추영 - 1593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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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화. 분열 (1)

석추명과 기하진, 임예린은 무림맹을 벗어나 사소혜가 정한 임시거처인 항주 밖의 한 허름한 객잔으로 갔다. 사소혜는 객잔을 통째로 빌려 객잔에 다른 사람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누님, 오셨습니까?”

사소혜가 석추명 등을 데리고 객잔으로 들어서자 금린이 안에서 달려 나왔다.

“그래, 별일 없었어?”

“별일은 없었습니다. 제가 저만 믿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누님.”

금린이 활짝 웃으며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탁탁 쳤다. 그러더니 석추명을 발견하고 금린이 얼른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았다.

“대사형, 오셨습니까? 고생하셨습니다.”

금린의 말에 석추명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언제부터 금린의 대사형이 되었단 말인가?

“금 공자,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한데...?”

“하하, 대사형, 왜 이러십니까? 막내아우에게 금 공자라니요. 그냥 편하게 린이라고 부르십시오.”

석추명이 현재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금린을 멀뚱멀뚱 쳐다보자 그제야 금린이 얘기해주었다.

“실은 열화 사형께서 화산신검을 뵈면 꼭 대사형으로 부르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무림맹의 일을 마무리 짓는 대로 반드시 화산으로 모셔와야 한다고 저에게 신신당부하셨답니다.”

금린의 말에 석추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석추명 자신도 독고양 태상장로가 우화등선하고 화산파 장문인과 화산십수가 거의 괴멸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화산파를 재건해야 할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석추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된 것이로군. 그래, 앞으로는 내 자네를 아우로 부르지.”

석추명의 말에 금린이 기뻐하며 석추명의 팔을 잡아 안채로 끌었다.

“소혜 누님이 누구를 잡아 왔는지 한번 보세요.”

석추명이 금린의 팔에 이끌려 안채로 들어가면서 보니 임예린은 이미 누구인지 아는 듯 빙긋 미소만 짓고 있었다.

“내 안 마신다고 하지 않았소? 당신들이 주는 것은 물 한 모금도 안 마시겠다고 말이오.”

방 안에서 그릇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고집도 어지간하군.”

뒤이어 요혜신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부님, 석 소협과 기 소협, 임 소저가 돌아왔습니다.”

남이가 아뢰자 방문이 열렸다.

“오, 다들 잘 오셨는가? 고생이 많았네. 임 대방께서도 고생하셨네.”

요혜신니는 임풍 내외와 석추명 일행의 노고를 위로했다.

석추명은 요혜신니와 인사를 주고받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눈초리로 방 한가운데 앉아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앞에는 놀랍게도 사마경이 의자에 발이 묶인 채 앉아 있었던 것이다.

“사마경,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석추명이 말을 끝내지 못했다. 기하진도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는 듯이 임예린을 바라보았다.

사마경은 임예린을 바라보더니 분노가 치미는 듯 수염을 부르르 떨었다.

원래 사마경은 임예린이 두고 간 청자 술잔에 술을 부어 마시고 환상에 빠지자 진법이 잘못된 줄 알고 진의 발동을 멈추었지만 자신의 환상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심해지기만 했다. 그러다가 임예린의 지시로 뒤따라온 사소혜와 운진자 등에게 결국 잡히고 말았던 것이다.

임예린이 다시 술잔에 술을 담아 사마경에게 내밀었다.

“무림맹 총군사라는 분이 이렇게 담이 작아서야 되겠습니까? 정 그러시다면 제가 마실 수밖에요.”

임예린이 무림맹에서 자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 하자 사마경이 임예린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임예린은 사마경에게 주려 했던 술잔을 가져가 자신이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총군사를 이렇게 모신 것은 총군사님을 구하기 위해서랍니다.”

“흥! 그게 무슨 헛소리냐?”

“생각해 보세요. 총군사께서 자신만만하게 만들었던 역천마라진이 파훼되었습니다. 총군사께서 자신의 손으로 직접 진을 깨뜨리시긴 했지만 말이에요. 어쨌든 일이 실패로 돌아갔으니 맹주가 가만히 있을까요? 제가 알기로 맹주는 그 누구보다 자비심이 없는 사람인데 총군사님이라고 용서해 줄까요?”

임예린의 말에 사마경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맹주는 남궁세가가 맹주직을 세습하도록 하려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 일을 왜 총군사께서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지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맹주가 야욕을 달성하면 자신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아는 총군사를 과연 그냥 내버려 둘까요? 총군사님과 같이 학식이 풍부하신 분이 어째서 역사의 교훈을 잊으시나요?”

임예린의 말에 사마경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임예린의 말이 구구절절 맞았다. 역사를 보면 권력자들이 권력을 쟁취하고 나서 가장 먼저 했던 일들이 자신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필했던 공신들을 처단하는 일이었다. 이 고사성어가 나오게 된 배경인 춘추시대까지 갈 필요도 없이 가장 최근에 명나라를 개국한 주원장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공신을 처단했는가?

사마경의 마음이 흔들리자 임예린은 아예 쐐기를 박았다.

“그러지 마시고 총군사께서 저희 정도련과 함께 일하시는 것이 어떻겠어요? 정도련에서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총군사님의 두뇌와 재주라면 저희 정도련에서 큰 역할을 하실 것입니다.”

아까부터 계속 사마경을 쏘아보던 기하진이 임예린의 말에 소리 높여 반대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동안 철저하게 맹주의 주구로 지내던 자를 어떻게 믿고 덥석 그런 제안을 하는 거야? 사마경 저 늙은이가 정도련에 가입한다면 내가 정도련을 그만두겠어.”

기하진이 분기를 이기지 못하고 문을 쾅 닫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진아.”

석추명이 기하진을 불렀으나 기하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사마경은 이 모든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더니 한숨을 내뱉고는 작정한 듯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임 소저의 말이 맞소. 맹주는 그 누구도 믿지 않소. 자신의 가족도 믿지 않는 사람이지.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임 소저에게 모두 밝히리라. 맹주는 지금쯤 아마 아미파를 치러 가고 있을 것이오.”

사마경의 말에 요혜신니가 놀라서 되물었다.

“총군사, 그게 무슨 말이오?”

사마경이 담담한 표정으로 요혜신니를 바라보았다.

“맹주는 아미파가 정도련의 구심점 역할을 한 것에 분노를 느끼고 있소이다. 일찍이 아미파를 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지요. 정도련의 수뇌부가 항주 무림맹 총단에 와 있을 때 아미파를 철저하게 짓밟아 다른 문파에 본보기로 삼을 작정입니다.”

“뭣이라고?”

사마경의 말에 충격을 받은 요혜신니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자 임예린이 사마경의 말을 차마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미파는 멀리 사천지역에 떨어져 있어 지리적으로 일을 도모하기가 어려운데 맹주가 어떻게 아미파를 친다는 것이죠? 귀면쌍살과 음양사자 등 맹주가 아끼는 고수도 없이?”

임예린의 말에 사마경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실소를 터뜨렸다.

“설마 우리 무림맹에 고수가 그 두 사람밖에 없겠소? 영특하신 임 소저께서 맹주가 신교와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잊으셨소이까? 게다가 맹주의 가문인 남궁세가에도 많은 고수가 있소. 맹주가 아미파를 치기로 작정하면 아미파는 결코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오. 화산파를 보면 알지 않소?”

사마경의 말에 요혜신니가 안색이 창백해져서 털썩 주저앉았다. 옆에 있던 남이가 요혜신니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맹주를 도와주는 대가로 남무궁이 받는 것은 무엇인가요?”

임예린이 물음에 사마경의 눈이 반짝하고 빛이 났다.

“신교의 교주가 무슨 차시환혼대법인가 하는 것을 시험하고 있다고 합디다.”

“차시환혼대법?”

임예린의 표정이 굳었다. 차시환혼(借屍還魂)은 죽은 사람의 몸을 빌려 혼을 부른다는 뜻으로 말하자면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었다.

“강시라도 만드나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다니....”

“하하하, 나도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임 소저와 똑같은 생각을 했다오. 하지만 남무궁은 뜻밖에도 진지했소. 그가 요구한 것은 단 한 가지, 무공이 높은 고수들의 시신을 자신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소.”

사마경의 말에 임예린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살아있는 수하들을 빌려주는 대신 죽은 시신을 달라니 이 무슨 해괴한 말이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나도 교주가 그런 대법을 수련 중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석추명이 예전에 불모 황연화가 해준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적어도 지금 사마경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 듯했다.

“강시를 만드는 것이 그렇게 쉽겠소? 내 수십 년 동안 살아오면서 강시를 직접 봤다는 사람은 한 번도 보지도 못했거니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소. 강시라는 것이 전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지 어찌 현실 세계에 있을 수 있겠소? 오죽하면 의심 많고 매사에 꼼꼼한 맹주조차 그 얘기에 실소를 금치 못했을까. 하하하.”

사마경이 잠시 웃음을 멈추지 못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어쨌든 우리로서는 손해 볼 장사가 아니니 손을 잡을 수밖에.”

그날 밤, 마음이 다급해진 요혜신니는 계법사태와 일봉, 남이와 아미파 여제자 몇 명을 데리고 즉시 길을 떠날 준비를 했다.

“임 소저, 사문의 일로 내 마음이 다급해서 안 되겠구려. 여기 일은 당분간 임 소저께서 맡아주시구려.”

“알겠습니다. 여기 일은 걱정하지 마세요. 기 소협과 석 소협도 함께 데리고 가시지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만 준다면 정말 고맙겠소.”

요혜신니가 기하진과 석추명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저희도 장문 사태와 함께 가겠습니다. 맹주가 아미파를 친다는데 우리 곤륜파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요.”

운진자가 곤륜칠검과 함께 자신들도 가겠다는 뜻을 비추었다.

“하지만 모두 다 가면 여기는 괜찮겠소? 맹주가 또 임 소저를 노리면 어쩌려고?”

요혜신니의 말에 임예린이 말했다.

“맹주가 지금 저에게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청풍도장과 현암도장께서 계시니 걱정 안 하셔도 될 듯합니다.”

신니는 자신의 사문이 공격당한다고 하자 걱정이 되어 더 이상 사양치 않고 그날 밤 석추명, 기하진 등 고수들을 데리고 그대로 길을 떠났다.

*****

귀면쌍살은 요즘 음양사자에 대한 불만이 계속 쌓여갔다. 맹주 휘하의 고수들 중 자신을 능가하는 자가 그동안 없었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음양사자 때문에 자신의 서열이 뒤로 밀려났다. 맹주가 자신보다 음양사자를 더 중시하자 반발심이 들었는데 가까이에서 지켜보니 음양사자의 무공은 강호에서 적수가 없다고 자처하는 자신보다도 훨씬 강했다. 그러다 보니 음양사자 앞에서는 부득이 자신의 성질을 죽여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 무림맹 음양각에서 석추명을 죽일 절호의 기회를 음양사자가 방해하자 음양사자에 대한 귀면쌍살의 불만은 폭발할 지경이었다.

‘흥, 혼자서 큰소리 뻥뻥 치더니 결국 모두 고스란히 살려서 보내주었겠다? 게다가 사마경마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맹주님이 돌아오시면 얼마나 불호령을 내리실지. 좋아, 이럴 때 내가 확실히 공을 세워야겠어. 음양사자가 놓친 임풍 부부를 내가 다시 잡아 와야겠어.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야. 그리고 기회를 봐서 임예린까지 잡는다면 맹주님의 평가도 달라지겠지.’

귀면쌍살이 무림맹 밖으로 잽싸게 신법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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