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 - 광세일소_한추영 - 1585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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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지혜 대결 (1)
임예린, 석추명, 기하진은 무림맹 총단이 있는 항주로 가는 동안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맹주가 제시한 날짜까지 당도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기도 했지만 서로 마음이 불편한 탓이었다.
석추명은 남이와 한 약속을 지키려고 몇 번이나 기하진에게 말을 걸려고 했으나 그때마다 기하진의 싸늘한 표정에 좀처럼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지금은 중요한 임무가 있으니 남녀지사는 잠시 뒤로 미루어 두자고 마음먹었다.
하남성 소실산에서 쉬지 않고 달린 덕분에 세 사람은 늦지 않게 무림맹 총단에 도착했다. 총단 정문 앞은 검은 무복을 입은 남천단원들이 삼엄한 표정으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삼경을 알리는 종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기하진이 무림맹 정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려고 하자 정문을 지키는 경계병 두 명이 칼을 들어 올리며 기하진을 막았다. 그 사이 남천단원들이 대폭 물갈이가 된 듯 기하진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사마경을 만나러 왔으니 길을 열어라.”
기하진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오히려 경계병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기하진에게 검을 겨누었다. 자신의 신분은 밝히지 않고 다짜고짜 총군사의 이름을 부르며 만나겠다고 하니 군사들이 수상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총군사님의 존함을 함부로 입에 담다니 발칙하구나. 여기가 어딘지 아느냐?”
그중에 한 명이 소리쳤다. 그러자 기하진이 싸늘하게 웃었다.
“여기가 어딘지 너무나도 잘 알지. 온갖 더러운 놈들이 다 모여있는 곳이니까. 길을 열라고 했다!”
기하진이 손을 한번 떨치자 기하진을 둘러싸고 있던 병사 서너 명이 순식간에 나가떨어졌다.
“저놈을 막아라!”
그중에 선임인 듯한 자가 소리치자 십여 명의 군사들이 기하진을 에워쌌다.
지금까지 맹주와 사마경에게 속은 것만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데 석추명과 임예린의 관계 때문에 더욱 기분이 나빴던 기하진은 번개같이 몸을 솟구치며 손바닥으로 군사들의 뺨을 한 차례씩 때렸다.
‘찰싹’ 하고 뺨 맞는 소리가 끊이지 않더니 군사들이 다시 뒤로 튕겨 나가며 나뒹굴었다.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석추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저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무림맹에서 받은 상처가 크니 거칠게 나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그냥 내버려 두죠.”
임예린이 기하진을 바라보며 석추명에게 말했다.
경계병을 모두 물리친 기하진이 무림맹 정문을 부서뜨릴 듯 두 손으로 미는데 문이 안에서 저절로 열리며 누군가 나타났다.
“그놈의 성질머리는 여전하군.”
문 안에서 나타난 사람은 뜻밖에도 천옥랑이었다. 부맹주 천계심이 죽은 이후 처음 보는 천옥랑의 모습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얼굴은 수척했고 눈은 퀭한 채 이상하게 번뜩였으며 전체적으로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를 풍겼다.
“총군사께서 기다리신 지 오래되었다. 따라와.”
천옥랑은 임예린과 석추명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기하진에게 제 할 말만 내뱉더니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천 공자....”
임예린이 천옥랑을 알아보고 불렀지만 천옥랑은 못 들은 척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림맹 안은 쥐죽은 듯이 고요하여 네 사람의 발걸음 소리만 사각사각 들렸다.
걸어가면서 익숙한 맹의 풍경이 기하진의 눈에 들어왔다. 모습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으나 어딘지 모르게 굉장히 낯설고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무림맹에 대한 자신의 느낌이 바뀌었기 때문일까?
비록 보이지는 않았으나 주요 지점마다 군사들이 은밀히 잠복해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드디어 천림원 후원에 있는 팔각정에 도착했다.
“총군사님, 기하진과 그 일행을 데려왔습니다.”
팔각정 위에는 사마경이 좌우에 음양사자와 왕취선을 대동하고 앉아 있었다.
“수고했다. 위로 모시거라.”
사마경의 말이 떨어지자 기하진이 제일 먼저 앞장서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갔다. 그 뒤를 따라 석추명과 임예린이 올라갔다.
제일 끝에 올라가던 임예린이 고개를 돌려 천옥랑을 바라보다가 두 사람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천옥랑이 얼른 고개를 돌리며 임예린의 눈을 외면했다. 임예린이 조그맣게 ‘휴!’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임예린이 다시 고개를 돌리자 천옥랑은 계단을 오르는 임예린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는 듯 천옥랑의 눈빛이 잠시 일렁거렸다.
세 사람이 모두 팔각정으로 올라가자 천옥랑은 사마경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물러났다.
“허허허, 세분 모두 먼 길 오시느라고 고생하셨소이다. 여독도 풀 겸 술을 준비했으니 한잔들 쭈욱 들이키시오.”
사마경이 유유자적하며 기하진과 석추명, 임예린에게 술을 따라주며 권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사마경이 오랜 벗이라도 만난 줄 알았을 것이다.
기하진은 사마경의 가식적인 모습에 새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늙은 여우 같으니라고. 오냐, 마시라고 하면 내가 못 마실 줄 알았느냐?
기하진이 술잔을 덥석 붙잡자 석추명이 만류했다.
“조심해. 독이 들었을지도 몰라.”
그러자 사마경이 재밌다는 듯이 껄껄껄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이거 원, 절세고수라는 작자들이 이렇게 담이 작아서야. 정 그렇게 불안하다면 이 늙은이가 마시는 수밖에.”
사마경이 세 사람을 비웃더니 기하진의 앞에 놓인 술잔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사마경이 술을 마시기도 전에 기하진이 사마경의 손에서 술잔을 뺏더니 그대로 쭉 들이켰다.
“언제 안 마시겠다고 했소?”
빈 술잔을 탁자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기하진이 사마경을 노려보았다.
이 여우 같은 늙은이는 그동안 자신을 돕는 척하면서 사실은 철저하게 이용했다. 둥그런 수정 안경을 쓰고 고고한 선비인 척하지만 사실 그 음흉함은 맹주 못지않다. 자신에게 맹주의 영패를 주고 부맹주를 잡게 한 다음, 부맹주를 죽이고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것도 모두 사마경의 머리에서 나온 계책일 것이다.
사마경에게 금방이라도 덤벼들듯 기하진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그 모습에 사마경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좋아! 기 단주의 눈빛은 아직 살아있구먼. 좋은 눈빛이야. 그 눈빛 때문에 내가 사실 자네를 골랐었지.”
“나를 골라주었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오?”
기하진이 사마경을 여전히 쏘아보며 말했다. 사마경의 양옆에 음양사자와 왕취선이 없었다면 지금 즉시라도 일장에 사마경을 때려죽일 것만 같은 기세였다.
“자네, 나한테 맺힌 게 많구먼. 내가 밉기도 하겠지만 사실 나 때문에 기 단주도 많은 이득을 보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나. 천애 고아였던 자네가 무림맹에 들어와서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귀한 자제들만 가는 처림원에서 수학했네. 어디 그뿐인가? 천하 3대 신공 중의 하나인 천마검법을 익히고, 또 맹주님의 제자가 되어 맹주님의 독문절기도 익히지 않았는가? 자네가 맹주님의 제자가 아니었다면 변변한 세력 하나 없는 자네가 어찌 단주 자리를 꿰어찰 수 있었겠는가?”
“흥! 꼭두각시 노릇을 시키려고 그랬던 것이겠지.”
사마경의 말에 기하진이 콧방귀를 뀌었다.
“하하하, 내 부인하지 않겠네. 자네가 너무 빨리 진실을 알아버렸다는 것이 아쉬워. 그렇지만 않다면 좀 더 활용가치가 있었는데 말이야. 오랫동안 공을 들인 것치고는 별로 써먹지 못한 셈이니 오히려 우리가 손해라고 할 수 있지.”
자신을 물건처럼 얘기하는 사마경의 말에 기하진은 점점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자 임예린이 기하진의 팔을 붙잡았다.
“격장지계(激將之計)에 넘어가서는 안 돼요.”
임예린의 말에 사마경이 다시 껄껄껄 웃었다.
“과연 정도련 군사다운 말씀이시로군. 임 소저가 지난번에 말 한마디로 우리 교맹 연합군의 발길을 돌리게 한 것은 정말 놀라웠소. 내 진즉에 임 소저가 뛰어남을 알아봐야 했는데 말이야.”
사마경의 말에 임예린이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과찬의 말씀이세요. 어디 신계자(神計子)라는 별호가 붙은 총군사님만 하겠습니까? 귀신같은 책략가라는 별호답게 귀면쌍살을 키워서 뛰어난 후기지수들의 싹을 자르는 한편, 백련신교와 연맹을 맺어 구대 문파의 뒤통수를 치셨지요. 정도 무림의 총본산이 무림맹이 그러하리라고 과연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정말 귀신도 울고 갈 방법이었어요. 호호호.”
임예린의 말에 사마경이 수정안경을 콧잔등으로 내려 임예린을 쳐다보았다. 무언가를 유심히 볼 때 나오는 사마경의 버릇이었다.
“허허허, 임 소저는 지금 용담호혈 속에 들어와 있는데도 그런 소리가 나오시는가? 과연 여장부요, 천하제일 상단의 후계자가 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군. 어떤가? 차라리 이번 기회에 내 밑으로 와서 일하지 않겠나? 임 소저 정도의 인재라면 맹주님도 두 손 들고 환영하실 것이네. 그러면 차기 무림맹의 총군사 자리는 따놓은 셈이지. 자네 정도의 인재가 급하게 날조된 정도련에서 썩기에는 아깝지 않겠나?”
사마경이 은근한 말로 임예린을 떠보았다. 그러자 임예린이 소리 높여 웃었다.
“총군사께서는 책임지지 못할 말씀을 하시는 경향이 있군요. 수족같이 부리던 부맹주와 기 단주를 무 자르듯 단칼에 싹둑 잘라낸 맹주님을 어찌 믿으라는 말씀입니까? 그러시는 총군사께서는 정작 맹주님을 믿으시나요?”
“기 단주야 처음부터 우리가 필요할 때 쓰다가 버릴 말(馬)로 키웠던 것이고, 부맹주는 감히 제가 맹주가 되겠다고 맹주님께 반기를 들었으니 처단하는 것이 사필귀정(事必歸正)이 아니겠나?”
사마경의 눈이 수정 안경 너머에서 간사하게 반짝거렸다.
기하진을 애초부터 쓰다가 버릴 말로 키웠다는 사마경의 말에 기하진보다 석추명이 더욱 분노해서 손바닥으로 석탁(石卓)을 쾅 내리쳤다.
“쓰다가 버릴 말이라니, 그것이 사람의 입에서 나올 소리요?”
석추명이 화를 내자 사마경이 고개를 젖히고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석 대주는 아닌 것 같은가? 신교의 교주 남무궁이 자네는 다르게 생각했을 것 같은가? 정말 순진하구먼. 정말 순진해. 하하하.”
사마경의 말에 분노한 석추명이 그대로 석탁을 들어 올리며 사마경 쪽으로 밀었다. 백 근도 더 나갈듯한 무거운 석탁이 순식간에 공중으로 한 척 정도 떠올랐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음양사자가 한 손을 탁자 위에 내려놓자 탁자는 그대로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쾅!’하고 굉음을 냈다.
음양사자와 석추명의 눈빛이 잠시 허공에서 얽히며 불꽃을 튀겼다.
“석 대주도 기 단주 못지않게 한 성미 하시는군. 하하하. 좋소이다. 사내라면 응당 그런 면도 있어야지. 하지만 정작 기 단주는 가만히 있는데 석 대주가 이렇게 분노하는 것이 재밌군. 두 사람이 친형제라도 되시는가?”
사마경의 말에 석추명이 다시 쏘아붙이려고 했으나 임예린이 한 발 더 빨랐다.
“인사치레는 이 정도로 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시지요. 진법을 어디다 펼치셨습니까? 아마 거기에 제 부모님이 계시겠지요.”
임예린의 말에 사마경은 속이 뜨끔했다. 임예린은 무림 인사도 아니면서 내가 진법을 펼쳐 놓았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후후후, 임 소저께서 과연 보통내기가 아니시군. 내가 진법을 펼쳐 놓은 줄 한 번에 알아차리다니 말이야. 물론 그래야 또 재미가 있겠지. 올 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진법은 내 일생일대의 역작이네. 임 소저가 이 진법을 파훼한다면 내 임 소저를 스승으로 모시지.”
사마경이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호호호, 심부름 하나 시킬 수 없는 총군사님을 제자로 두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군요. 제가 진법을 깨뜨린다면 제 부모님과 저희가 무사히 나갈 수 있도록 보장이나 해주시죠.”
“좋아. 그렇게 하겠네. 과연 임 소저께서 어떤 고명한 방법으로 내가 펼쳐 놓은 역천마라진(逆天魔羅陣)을 파훼할지 자못 궁금하군.”
“그거야 지켜보시면 알 일. 아, 그 전에 총군사를 처음으로 뵙는데 빈손으로 오기가 뭣해서 멀리 고려국에서 나는 귀한 청자 술잔을 가져왔습니다.”
임예린이 들고 온 상자를 열고 황금색 공단 속에 파묻힌 청자 술잔 두 개를 꺼냈다. 푸르스름한 비취색이 감도는 청자 술잔은 표면에 상감기법으로 한쪽에는 탐스러운 포도문양이, 반대쪽에는 학 두 마리가 날개를 펼친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이토록 작은 술잔에 이토록 정교한 문양을 새겨 넣다니 그것만으로도 도자기라고는 ‘도’ 자도 모르는 기하진과 석추명이 보기에도 범상치 않았다.
“고려국의 청자가 유명한 것은 총군사께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이 한 쌍의 청자 술잔은 제 아버님께서 고려국과 무역을 하시다가 개경 상인들에게 우연한 기회에 천금을 주고 구입한 보배로 천하에 단 한 쌍밖에 없는 귀한 물건입니다.”
사마경은 한눈에 임예린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술잔의 형태, 빛깔, 무니 등 모든 것이 지금까지 자신이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물건이었다. 좋은 물건을 보자 평소의 습관대로 사마경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마경이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자 임예린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하지만 이 술잔의 진가는 아름다운 모양이 아닙니다. 이 술잔에 술을 담으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술이 마르지 않으며, 술의 잡기운을 없애 술맛을 더욱 그윽하고 풍부하게 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사마경이 술잔을 들어 요리조리 돌려보며 말했다.
“이 귀한 것을 왜 나에게 주려고 하시오?”
“모든 물건은 제 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술잔의 진가를 모르는 저희 같은 필부보다는 진가를 잘 아시는 총군사께서 맡으시는 것이 술잔에게도 좋겠지요. 술잔에 술을 넣으면 온종일 한 방울도 마르지 않는다고 하니 총군사께서는 한번 시험해 보시지요.”
“그거 좋지, 하하하.”
사마경이 몹시 흡족한 듯 청자 술잔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임예린이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고맙게도 당신의 탐욕스러운 마음이 우리를 도와주는군요.
“선물도 받았으니 내 까놓고 얘기해주지. 저쪽을 보시오. 저기 대나무 숲이 보이시오?”
사마경의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기하진에게도 익숙한 곳이 보였다. 그곳은 음양사자의 처소로 가는 길이었다. 문득 예전에 남이와 함께 음양사자의 처소로 몰래 잠입했던 일이 떠올랐다.
“저 숲을 지나면 이 층으로 된 특이한 전각이 하나 나올 것이오. 바로 그 전각 안에 임 소저의 양부모님을 고이 모셔다 놓았지. 저 숲길을 뚫고 나갈 수만 있다면 임 소저의 양부모님을 뵈올 수 있소이다. 단, 살아서 나가야겠지. 껄껄껄.”
사마경은 자신의 진법은 절대 깨뜨릴 수 없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기하진은 사마경의 얘기를 듣자마자 그 전각이 다름 아닌 음양사자의 처소인 음양각(陰陽閣)임을 눈치챘다. 무림맹 안에서도 음양각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음양각 너머에는 맹주전이 자리하고 있었다.
기하진은 사마경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나무 숲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자 임예린이 사마경을 보며 말했다.
“남아일언은 중천금이니 아까 하신 말씀 잊지 마세요.”
임예린이 그 말을 남기고 곧 기하진의 뒤를 따랐다. 석추명도 임예린과 함께 걸었다.
사마경은 왕취선, 음양사자와 함께 팔각정에 서서 멀어지는 세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며 입가에 간악한 미소를 지었다.
‘역천마라진은 활로가 없다. 그래서 누구든지 진법에 빠지기만 절대 살아나올 수 없지. 후후, 만약 자신의 총명함만 믿고 활로를 찾으려고 한다면 그 길로 영원히 진법 속에서 헤매다가 죽게 되지. 그건 내 스승인 천문선생이 살아 돌아온다 하더라도 절대 불가능해. 파훼법은 오직 하나. 진을 설치한 내가 진 밖에서 직접 진을 파훼해야 하지. 나 외에는 그 누구도 진을 파훼할 수 없어. 엉뚱한 것을 만졌다가는 진이 더욱 폭주할 테니 말이야. 크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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