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세일소-121화 (121/201)

#   121 - 광세일소_한추영 - 1558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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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화 태동(胎動) (3)

임예린은 조정에서 사용을 엄격히 금하는 벽력탄이 사사로이 유출되는 정황이 있으니 화약을 밀반출시킨 자를 발본색원하고 벽력탄을 포함한 화약 일체가 민간에 유출되지 않도록 황상께 직접 고해달라는 서한을 아버지 임풍에게 보냈다.

그리고 요혜신니는 각 문파에 맹주와 귀면쌍살 간의 관계를 밝히고 맹주에 대항하기 위해 정도련을 창설한다는 취지를 알리고 정도련 합류를 촉구하는 서찰을 자신의 명의로 돌렸다.

아울러 아미파의 대사저인 계법사태, 남이 등 고수 12명을 선발하여 임예린, 일봉과 함께 즉시 무당산으로 출발했다. 이 모든 일은 임예린이 미리 준비하고 안배해 둔 관계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요혜신니 일행이 아미산을 떠난 지 불과 7일 만에 곤륜파에서 정도련에 참여하겠으며, 곤륜파 장문인의 사제 운양자(雲陽子)가 곤륜칠검을 이끌고 요혜신니와 합류하기 위해 출발했다는 내용의 전서구를 보내왔다.

곤륜파는 무림맹이 초의공을 무림 공적으로 지명하고 자신들에게는 봉문을 명하자 이에 강하게 반발했었다. 하지만 무림맹의 세력이 워낙 강하여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지 못하다가 이제 요혜신니가 맹주에 대항한다고 하자 득달같이 참여 의사를 밝혀온 것이다.

곤륜파가 참여한다는 소식에 요혜신니 일행은 사기가 크게 진작되었다. 요혜신니조차 껄껄 웃으며 반길 정도였다.

“선재로다, 선재야. 운양자께서 직접 곤륜칠검을 이끌고 이리로 오는 중이라니 정말 든든하기 그지없구나.”

한 사람의 고수라도 더 필요한 이때 구대문파 가운데서도 중진인 곤륜파의 참여는 확실히 큰 힘이 되었다.

요혜신니 일행은 밤낮 부지런히 달려온 덕분에 어느덧 호북성과 섬서성의 접경지역인 진평현(鎭坪縣)에 도달했다. 여기서 무당산까지는 불과 하루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요혜신니와 남이, 임예린이 앞으로의 일정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계법사태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사부님, 큰일 났습니다.”

스승 앞에서는 매사에 결코 서두는 법이 없었던 계법사태가 이렇듯 급하게 달려오자 요혜신니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큰일이라니?”

임예린과 남이도 말을 멈추고 계법사태를 쳐다보았다.

“무당파가 벌써 마교의 공격에 당했다고 합니다.”

“뭣이라고.”

계법사태의 말에 요혜신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지금 막 무당산에서 전령이 다녀갔습니다. 마교의 장로 탈명검 마립과 명왕대주 사마곤이 수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와서 무당파를 쳤다고 합니다.”

요혜신니는 그 말을 듣자 불호를 외며 탄식을 터뜨렸다.

“그래, 희생자는 얼마나 된다더냐?”

“특이한 점은 이번에 마교는 벽력탄을 아예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희생자가 화산파 만큼 큰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계법사태의 말에 이번에는 임예린이 물었다.

“아직 보유한 벽력탄이 꽤 있을 텐데 왜 쓰지 않았다는 거죠?”

“전령의 말로는 마교의 벽력탄이 사용하기 직전 물에 젖어 불을 붙일 수가 없는 듯했다고 합니다.”

그 말에 요혜신니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중얼거렸다.

“그 참 기이한 일이로구나. 벽력탄이 물에 젖었다니.”

“아무래도 적들 속에 우리 아군이 숨어있나 봅니다.”

임예린이 신중한 표정으로 의견을 냈다.

“좀 더 상세히 말해 보아라. 무당파는 그래서 지금 어떤 상황이냐?”

“전령의 말에 따르면, 무당파의 ‘각(覺)’ 자 항렬 도장 가운데 허각 도장과 황각 도장이 중상을 입고 의식불명이며, 제자 수십 명이 크게 다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각 장문인께서 적과 일대일로 겨루시다가 그만, 운명하셨다고 합니다.”

무당파 장문인이 죽었다는 말에 요혜신니를 비롯하여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

“현각 장문인이 일대일 비무 중에 죽다니, 마교 고수 가운데 그토록 강한 자가 있단 말이더냐?”

“뜻밖에도 현각 장문인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은 나이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이라고 합니다.”

그 말에 임예린이 다시 물었다.

“여인이라면 혹시 최근 마교에서 영입했다는 복건성의 악녀, 나찰녀가 아닐까요?”

계법사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현각 장문인을 격퇴한 사람은 강호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인으로 머리는 백발이며 붉은 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 여인은 무기도 사용하지 않은 채 오직 자신의 열 손가락으로 펼치는 귀조공(鬼爪功)을 사용해 이겼다고 합니다.”

임예린은 백발에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라고 하자 갑자기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혹시 그 여인의 눈이 고양이 눈, 그러니까 노란색의 묘안(猫眼)이라 하지 않던가요?”

임예린의 말에 이번에는 남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쳤다.

“음양사자! 음양사자로군요.”

“저도 음양사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남 소저도 음양사자를 아시나요?”

임예린이 남이에게 물었다.

“네. 이전에 기 단주와 함께 음양사자의 처소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어요.”

남이는 음양사자의 고양이 눈을 떠올리자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음양사자라니, 강호에 그런 고수가 있단 말이냐?”

요혜신니가 묻자 남이가 대답했다.

“음양사자는 무림맹의 장경각인 천림비고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오직 맹주 한 사람만의 명령을 들으며 무공이 지극히 고강하나 정파 쪽보다는 오히려 사파 쪽 무공에 가깝습니다.”

“무림맹? 그럼 그 음양사자라는 자가 무림맹의 사람이라는 말이냐?”

요혜신니는 임예린의 추측이 맞아 들어가자 놀라면서도 분노가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무림맹주 남궁진악이 정녕 마교와 손을 잡고 구대 문파를 친단 말인가.”

하나씩 밝혀지는 맹주의 추악한 모습에 요혜신니가 치를 떨었다.

그때 임예린이 계법사태에게 다시 물었다.

“이번에 무당파를 공격한 고수들 중에 복면인은 없다고 하던가요?”

“복면인이 있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그러자 임예린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요혜신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장문인,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지금 즉시 소림사로 달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요혜신니가 되묻자 임예린이 초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마교의 고수 가운데 탈명검 마립과 명왕대주 사마곤보다 나찰녀와 백골마군이 더 고수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무당파를 공격할 때 두 사람이 없다는 점이 수상합니다. 게다가 지난번 화산파를 공격했을 때는 복면인이 있었는데 이번에 없었다는 말은 복면인에게 다른 임무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제야 요혜신니도 무슨 말인지 감이 왔다.

“임 소저의 말은 마립과 사마곤, 음양사자가 무당파를 치는 동안 백골마군과 나찰녀, 복면인이 소림사를 칠 것이라는 뜻이오?”

“바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고수로 소림사를 치겠다는 것은 소림사의 저력을 모르는 소리외다.”

요혜신니의 말에 임예린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무당을 치는데 수백 명을 동원했으니 소림을 칠 때는 그보다 훨씬 많은 병력을 동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신승을 상대하려고 맹주와 마교 교주가 함께 나설 가능성도 절대 배제할 수 없습니다.”

임예린의 말에 남이가 당치 않다는 듯 말했다.

“마교 교주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맹주는 얼굴이 온 무림에 알려져 있는데 어찌 함부로 소림사를 치는데 나설 수 있겠어요?”

“그야 간단하지요. 복면을 쓰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계법사태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은 가려도 맹주의 독문 무공인 창궁무애검과 천룡파천장은 가릴 수가 없을 것이오.”

“그 두 가지 무공을 어찌 맹주만 하겠습니까? 맹주의 제자나 남궁세가에서도 할 게 아니겠습니까? 설령 심증이 있다 하더라도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맹주가 자신이 아니라고 잡아떼면 그만 아니겠어요? 그리고 무당파를 공격했던 고수들이 소림사를 치는데 합류한다면 소림사도 버티기 힘들 것입니다.”

임예린의 말에 요혜신니가 나지막한 탄식을 내뱉었다.

“소림을 돕기에는 현재 우리 측 병력이 너무 부족하구려. 곤륜파의 운양자가 빨리 당도하면 좋으련만.”

“저희 측 인원이 적기는 하지만 아직 상대방은 저희의 존재를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이점을 이용해 상대방의 허를 찌른다면 적은 인원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임예린이 오히려 무림의 대선배인 요혜신니를 위로하자 요혜신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내가 쓸데없이 걱정만 늘어놓았구려. 자, 그럼 어서 소림사로 출발합시다.”

그때 아미파 제자 하나가 달려와 장문인께 아뢨다.

“지금 종남파 청풍 도장과 공동파의 현암 도장께서 제자들을 이끌고 소림사로 오고 계시다 합니다.”

뜻밖의 소식에 요혜신니의 안색이 밝아졌다.

“오, 그래? 그것참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구나. 두 분 도장께서 함께 해 주신다면 큰 힘이 될 테지.”

요혜신니 일행은 즉시 소림사로 출발했다.

*****

화산에서 나찰녀와 백골마군을 놓친 석추명은 신교의 총단인 섬서성 화련산 근처에 숨어 신교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신교에서 대규모 병력이 이동하는 사실을 눈치채고 그 뒤를 몰래 따라갔다. 그런데 뜻밖에 병력이 둘로 나뉘더니 한쪽은 무당산으로, 다른 쪽은 소림사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잠시 고심하던 석추명은 사소혜에게 무당산으로 가는 병력을 따라가게 하고, 자신은 소림사로 가는 병력을 몰래 뒤쫓기로 했다.

“소혜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저들에게 발각되는 순간, 목숨을 보장할 수 없으니 숨어서 저들이 하는 짓을 지켜보기만 하되, 할 수 있거들랑 벽력탄을 사용하지 못하게만 만들어. 그 정도만 하더라도 저들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거야.”

사소혜는 당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염려 마세요, 대주님.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나중에야 알게 되었으나 과연 사소혜는 기지를 발휘하여 적의 벽력탄을 강물에 빠뜨림으로써 무당산에서 벽력탄을 쓰지 못하게 했다.

석추명은 소림사로 이동하는 백골마군과 나찰녀를 따라갔다. 마음 같아서는 단칼에 두 사람의 목을 치고 싶었으나 신교의 병력이 도처에서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었으므로 자칫 잘못하다가는 금방 발각될 것만 같아 신중을 기했다.

신교의 병력이 하남성에 들어서자 두 사람의 복면인이 이끄는 군사들이 다시 합류했다. 양쪽 군사들의 수를 모두 합치면 거의 천여 명에 이를 정도였다.

복면인 두 사람 중 하나는 귀면쌍살이 확실해 보였으나 다른 한 명은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복면인들이 이끄는 병력은 등 뒤에 커다란 상자를 하나씩 매고 있었는데 그 상자를 몹시도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저들이 상자를 취급하는 모양을 보니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만했다.

석추명은 백골마군과 귀면쌍살의 무공이 워낙 뛰어나 자신이 뒤쫓는 사실을 눈치챌까 봐 약 50여 장 떨어진 거리에서 은밀히 뒤쫓았다.

드디어 신교와 무림맹의 연합군이 소실산 경내로 들어섰다. 이제 여기서 소림사까지는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한참을 가자 ‘소림사’라고 쓴 표지석이 나타나고 그 뒤로 사바세계에서 피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의 극락교가 보였다. 극락교를 지나 또 한참 가자 기둥 두 개가 한 줄로 떡 하니 버티고 선 일주문(一株門)이 나타났다.

자신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일주문 뒤로 수십 명에 달하는 소림사 무승들이 계도와 곤봉을 들고 대열을 갖춘 채 삼엄한 표정으로 서 있었고, 그 뒤편으로는 노란색 장삼에 자주색 가사를 걸친 고승 수십 명이 선장을 짚고 늘어서 있었다.

그 모습에 백골마군이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이렇게 황송할 때가 있나. 소림사 고승들이 친히 우리를 맞이하려고 나오다니.”

나찰녀도 그 모습에 콧방귀를 뀌며 거들었다.

“어지간히 똥줄이 타기는 했나 보군요. 나는 대머리 화상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으니 벽력탄으로 휩쓸어 버려요.”

“오호, 화상들도 사내놈들인데 나찰녀께서 사내를 마다하는 때도 있던가?”

백골마군이 나찰녀를 놀렸다. 그러자 나찰녀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모르지요. 또 아난존자처럼 미남 스님이 계시다면 내 마음이 동할지. 호호호호.”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제자들 가운데 외모가 가장 수려한 제자였다.

백골마군과 나찰녀가 눈앞에 있는 소림사 승려들을 대놓고 무시하며 시시덕거리자 무승들은 노기를 참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달려올 듯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쏘아보았다.

하지만 나찰녀는 무승들을 오만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저따위 땡중들 말고 신승이라는 작자의 얼굴을 보고 싶군요.”

나찰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허공에서 근엄하고도 자애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승과 땡중의 구분이 어디 있겠소이까. 이 땡중이 아까부터 이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거늘 시주께서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구려.”

정기가 충만한 목소리가 종소리처럼 은은히 울리자 나찰녀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기를 보시오.”

그때 백골마군이 일주문 앞에 있는 큰 소나무를 가리켰다. 오랜 세월 풍상을 겪은 듯한 거대한 소나무는 좌우 양쪽에 네 개씩 커다란 가지를 수평으로 뻗으며 전체적으로 삿갓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가지 끝마다 새 둥지 같은 자리가 마련되어 있고 그 위에 회색 장삼에 붉은색 가사를 입은 고승들이 합장하며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소나무 정중앙의 제일 높은 곳에는 회색 무명 장삼만 입은 눈썹이 새하얀 고승이 구름 위에 앉은 듯 자리를 잡고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금 들려 온 소리는 그 고승의 입에서 나온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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