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세일소-113화 (113/201)

#   113 - 광세일소_한추영 - 154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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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화산검전(華山劍戰) (17)

“장문인!”

담치가 장문인 거양자를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거양자는 다쳤는지 한쪽 발을 절뚝거리면서 혼자서 대여섯 명의 적과 상대하고 있었다. 거양자의 뒤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화산파 제자 10여 명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거양자는 그 제자들을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놈들, 썩 물러나지 못할까.”

거양자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신공을 발휘하여 다섯 명의 적을 베었으나 등 뒤에서 찔러 들어오는 마지막 한 명의 검은 그만 허용하고 말았다.

검은 장포의 사내가 그 모습을 보며 백골마군에게 말했다.

“이것으로 드디어 화산파도 끝이로군요.”

“그런 것 같소이다.”

“축하드립니다. 귀교에서 화산파를 멸문시켰으니 이제 귀교의 명성이 천하를 뒤덮겠군요. 다음은 어디입니까? 소림이나 무당 어떠하십니까? 으하하하.”

검은 장포 사내의 말에 백골마군이 냉소를 지으며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흥! 손 안 대고 코를 풀려 하다니 당신의 상관이야말로 정말 대단한 분이시오.”

“손을 안 대고 코를 풀다니요,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이번 화산파를 공격한 병력의 3할이 저희 병력입니다. 게다가 벽력탄은 저희가 제공해 드린 것이 아니오이까?

검은 장포 사내의 말은 얼핏 들으면 예를 차리는 것 같으나 말 속에 비수를 숨기고 있었다. 사내의 말이 불쾌했던지 백골마군이 다시 ‘흥’하고 콧방귀를 꼈다.

그때였다.

“으악!”

거양자의 등을 찔러 들어가던 신교의 무사가 돌연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소리에 검은 장포 사내와 백골마군이 동시에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으응?”

백골마군의 눈썹이 갑자기 꿈틀거렸다. 거양자의 등을 찌르던 무사가 검에 가슴이 관통되어 즉사한 것이다. 그 무사의 뒤에 삼십 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열 명의 화산파 제자가 늠름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저놈들은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을꼬?”

화산십수를 처음 본 백골마군의 눈이 샐쭉해졌다.

“당장 저놈들을 쳐라.”

백골마군의 명령에 신교의 무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었지만 놀랍게도 모두 삼 초(招)를 넘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오호, 화산파에 아직 저런 고수들이 숨어있었단 말인가?”

검은 장포 사내가 뒷짐을 진 채 감탄하며 말했다. 순식간에 신교의 무사 20여 명이 목숨을 잃고 고혼(孤魂)이 되어 땅바닥에 쓰러졌다.

“저런 식으로 가다가는 우리 측 병력에 큰 타격이 있을 듯하외다.”

검은 장포 사내가 말했다.

화산십수의 무위를 잠시 지켜보던 백골마군은 주위에 있던 수하들에게 말했다.

“벽력탄을 가지고 오너라.”

“잠깐만.”

검은 장포 사내가 갑자기 백골마군의 말을 끊었다.

“무림인이 화약에만 의지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요. 가뜩이나 몸도 근질근질한데 내기 한번 하시겠소이까? 백골마군과 저, 두 사람이 각기 저놈들 다섯 명을 맡아 상대해서 누가 먼저 모두 죽여 없애는지 말이오. 크하하하.”

검은 장포 사내의 말에 백골마군이 눈을 가늘게 뜨고 화산십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열 명의 무공이 모두 뛰어나기는 했으나 분명히 그 중에도 우열이 있었다.

“저들의 무공이 모두 다른데 다섯 명을 어떻게 나눈단 말이오?”

백골마군의 말에 검은 장포 사내가 ‘클클클’하고 기괴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게 바로 운 아니겠소이까? 제가 재수가 좋아서 저놈들 중에서 무공이 약한 놈 다섯이 걸려서 제가 이기면 그것도 이기는 것이지요. 크하하하.”

사내는 무엇이 재미있는지 연신 웃음을 웃었다.

그러는 사이 다시 신교의 무사 십여 명이 목숨을 잃거나 팔다리가 잘려 땅바닥에 뒹굴었다. 화산십수에게 목숨을 잃은 신교의 무사들 몸에서 흘러나온 선혈이 땅을 적시고 여기저기서 처참한 비명이 들려왔지만, 백골마군과 검은 장포 사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이럴 때 나찰녀께서 심판을 봐주셔야 하는데 어디를 갔는지 아까부터 보이지 않더군요.”

검은 장포 사내가 백골마군을 힐끗 보며 말했다.

“한번 해보시겠소이까?”

‘건방진 놈. 노부는 네놈이 태어나기 전부터 강호에 명성을 떨친 몸이거늘, 네놈이 감히 노부와 맞먹으려 하는 것이냐?’

백골마군은 검은 장포 사내를 한번 노려보더니 백골검을 꺼내서 훌쩍 뛰어 앞으로 나섰다.

“노부가 상대할 테니 너희들은 썩 물러서라.”

그 말에 화산십수를 상대하던 신교의 무사들이 우르르 뒤로 물러섰다.

백골마군의 뒤를 따라 검은 장포 사내가 하늘을 나는 독수리같이 훌쩍 뛰어 앞으로 나왔다.

“크하하하, 좋지요. 오늘 백골검 신기를 어디 한번 구경해봅시다.”

백골마군이 백골검을 춤추듯 휘두르며 말했다.

“나는 요놈들 다섯으로 하겠소이다.”

백골검이 사람 뼈에서나 나온다는 시퍼런 인광(燐光)을 뿌리며 반원을 그리더니 자신의 앞에 서 있던 이목남과 담치, 기광, 무염, 현봉에게 검을 휘둘렀다.

이목남은 적의 풍채와 기세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막상 백골마군이 검을 휘두르자 너무 놀라 심장이 벌떡거렸다. 흡착석에 달라붙는 쇠붙이처럼 자신의 검이 백골마군의 검에 속절없이 딸려 가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허연 백골검에서 귀곡성 같은 괴이한 소리가 터져 나와서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자신이 한번 검을 떨쳤을 뿐인데 화산십수 가운데 다섯 명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백골마군이 껄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화산십수의 뒤에서 부상으로 간신히 버티고 서 있던 장문인 거양자가 백골마군의 정체를 눈치채고 놀라 소리쳤다.

“조심들 해라. 저자는 전대의 마교 장로 백골마군이다!”

거양자의 말에 백골마군이 입가에 냉소를 띠며 거양자를 바라보았다.

“노부의 이름을 아직 기억하는 자가 있다니 참으로 기특하구나.”

백골마군이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검을 횡으로 휘몰아쳤다.

그 모습에 거양자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검진을 펼쳐라. 매화검진!”

거양자의 말에 화산오수(華山五秀)는 백골마군을 가운데 두고 빙글빙글 돌며 매화검진을 펼쳤다. 매화검진은 다섯 개의 매화 꽃잎을 형상화한 검진으로 다섯 명으로 펼치는 진법이었다.

검진이 발동하자 기세가 대번에 바뀌었다. 다섯 명은 지난 100일간 검동에서 독고양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알게 모르게 무공 수준이 놀랍게 진보했다. 이들이 일사불란하게 검진을 펼치자 천하의 백골마군이라도 단번에 이들을 제압하기는 쉽지 않았다.

다섯 개의 검이 퇴로를 차단하며 백골마검의 상중하를 동시에 공격해왔다.

그 모습에 백골마군이 크게 호승심이 일었다.

“네놈들이 내가 누군지 알고서도 감히 겁도 없이 내게 검을 겨눈단 말이냐.”

백골마군이 회오리바람처럼 몸을 날렵하게 움직이더니 ‘땅!’ 하는 소리와 함께 백골검 위에 얹힌 다섯 자루의 장검을 한꺼번에 공중으로 떨쳐냈다.

그러자 이목남과 담치 등은 팔이 시큰하게 저려와서 황급히 서너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정말 놀라운 공력이로군.”

자신들 다섯 명의 공격을 한꺼번에 막아내는 백골마군의 신기에 가까운 능력에 이목남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하하, 백골마군께서 너무 뜸을 들이시는 것 같소이다. 그렇다면 이 아우가 염치불구하고 먼저 실례하겠소이다.”

검은 장포 사내가 껄껄 웃더니 서문효, 팽신, 선우호 등 나머지 다섯 명을 향해 바람개비처럼 휘몰아쳐 갔다.

장포 사내의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자 서문효가 즉시 소리쳤다.

“빨리 검진을 형성해라. 매화검진 발동!”

“그렇게는 안 되지.”

서문효 등 다섯 명이 검진을 발동하려 하자 검은 장포 사내가 손바닥을 바람같이 가볍게 뒤집으며 번개같이 쌍장을 뻗어냈다.

펑!

별안간 압축된 공기가 터지는 듯한 굉음이 들리더니 다섯째 마군(馬君)의 몸이 속절없이 뒤로 10여 척이나 날아갔다.

검은 장포 사내는 그 짧은 순간에 다섯 명 중 누구의 무공이 가장 취약한지 순식간에 파악하여 검진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장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정말 대단한 기지요, 눈썰미였다.

마군은 상처가 제법 깊은 듯 땅바닥에 떨어지더니 일어서지 못했다.

“마 사제!”

서문효가 걱정이 되어 마군을 돌아보았다.

그 모습에 검은 장포 사내가 다시 ‘클클클’하고 쉰 듯한 목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목 안 깊숙한 곳에서 울려 나오는 웃음소리는 손톱으로 철판을 긁는 소리처럼 듣기 거북하기 짝이 없었다.

“자신들의 숫자를 믿고 떼로 덤비는 것 말고는 화산파 놈들이 잘하는 게 있나? 자, 이제 어디 그 잘난 매화검진을 한번 펼쳐 보시지.”

검은 장포 사내의 도발에 팽신이 안면을 씰룩거리더니 노성을 내질렀다.

“이놈! 네놈은 누구냐?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걸 보니 숨길 게 많은 놈이로구나.”

팽신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중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러자 서문효가 놀라서 소리쳤다.

“팽 사제, 기다려! 적의 간교한 술책에 넘어갈 셈이냐.”

서문효는 상대방이 자신들을 부추겨서 검진을 발동하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이라는 사실을 눈치챘으나 단순 과격한 팽신은 이것저것 따지는 성격이 아니었다.

팽신의 검이 번쩍이며 장포 사내를 두 동강 내려는 듯 허공을 갈랐다.

하지만 검은 장포 사내는 몸을 돌리지도 않고 번개같이 뒷걸음질 쳐서 공격을 피하더니 팽신을 향해 다시 쌍장을 뻗어냈다. 순식간에 산이라도 무너뜨릴 기세의 장력이 해일처럼 팽신을 덮쳐왔다.

힘이라면 팽신도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팽신이 검을 던지고는 우렁찬 기합을 넣으며 쌍장을 내밀었다. 이얍!

우두둑.

“으악!”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성인 남성의 허벅지보다 두꺼운 팽신의 팔뚝이 장포 사내의 장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부러지고 만 것이다. 허연 뼈가 살을 뚫고 튀어나와 달빛에 번쩍였다.

“팽 사제!”

그 모습에 서문효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외가기공을 극치로 연마한 팽신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세상에 이렇게 무서운 장법이 있단 말인가?

팽신이 다친 호랑이처럼 신음을 내지르며 몸부림쳤으나 지금은 팽신을 돌볼 때가 아니었다.

적이 움직이는 모습을 본 서문효가 쥐어짜듯 소리쳤다.

“삼원검진(三元劍陣) 발동!”

삼원이란 하늘과 땅, 물을 의미하는 것으로 도가검진의 가장 기본적인 검진이었다. 언뜻 세간의 삼재진(三才陣)과 비슷한 것 같지만 화산파의 독문검법으로 펼치는 삼원검진은 삼재진 따위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창. 창. 창.

경쾌한 소리와 함께 검 세 자루가 삼각형을 이루며 검은 장포 사내를 압박해왔다. 검진이 한번 발동하자 검은 장포 사내도 더 이상 경거망동하지 못하고 신중하게 방어해야 했다.

이번에는 백골마군이 그 모습을 보고 껄껄 웃었다.

“노부를 따라오려면 좀 더 속도를 내셔야겠소이다.”

백골검이 하늘로 치솟는가 싶더니 돌연 자신이 상대하는 다섯 명 중 무공이 가장 취약한 현봉에게 달려들었다.

현봉이 당황하여 황급히 뒤로 물러서자 현봉의 좌우에 서 있던 담치와 무염이 빛살 같은 속도로 검을 뻗어내며 현봉의 앞을 막아섰지만, 백골검은 어느새 두 사람의 검을 가볍게 넘기고는 집요하게 현봉을 따라붙었다.

쏴악.

예리한 검이 살을 훑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현봉의 가슴팍이 열 십(十)자 형태로 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더니 피가 분수처럼 공중으로 솟구쳤다.

“현봉 사제!”

이목남과 담치가 참혹한 광경에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화산십수가 일제히 현봉을 돌아보았다.

“으하하하”

백골마군이 백골검을 들고 한 손은 뒷짐을 진 채 웃음을 터뜨렸다. 현봉의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분수처럼 솟구친 현봉의 피를 뒤집어썼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백골마군의 옷과 검에는 핏자국 하나 없이 없었다.

백골마군은 여전히 탈속한 신선과도 같은 고매한 풍채였다. 그 누구도 그가 방금 현봉을 죽인 원흉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새하얀 눈썹 뒤에 숨은 독사같이 표독스러운 눈빛은 화산십수의 마음속에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그 표정을 음미하기라도 하듯이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는 밤하늘에 다시 한번 백골마군의 광소(狂笑)가 울려 퍼졌다.

“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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