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 광세일소_한추영 - 1499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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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화산검전(華山劍戰) (1)
“남녀 한 쌍은 아니지만 수상한 자 둘은 봤소!”
청년들 가운데 가장 어려 보이는 청년이 나찰녀의 신공을 목격하고는 벌벌 떨며 쥐어짜듯 내뱉었다. 다른 사람이 맹주의 무능함을 성토할 때 조용히 듣기만 하던 청년이었다.
“막내야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게야! 화산파는 무력에 굴복하지 않는다. 잊었느냐?”
제일 큰 형뻘인 청년이 굵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소리쳤다.
“조용히 해라!”
나찰녀가 어떻게 몸을 움직였는지 어느새 눈썹 굵은 청년의 뺨을 한 대 올려쳤다. 짝, 하는 거친 마찰음과 함께 청년의 머리가 옆으로 꺾이며 얼굴에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런 다음 나찰녀는 어린 청년 옆으로 다가갔다.
“수상한 자라니 뭐가 수상하단 말이냐?”
어린 청년은 강호 경험이 없어서 나찰녀의 놀라운 신법에 목석이 된 듯 얼어붙었다.
“괴, 괴질을 앓고 있는 환자 두 사람이었소. 커다란 방갓을 쓰고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에 얼굴은 보지 못했소.”
그 말에 뭔가 이상함을 느낀 나찰녀가 다시 캐물었다.
“그자들이 어디 있단 말이냐?”
어린 청년이 아까 석추명과 사소혜가 앉아있던 탁자를 가리켰다.
“아, 아까까지만 해도 저, 저기 앉아있었소.”
안에서 그 얘기를 듣던 사소혜는 분통을 터뜨렸다.
- 저 빌어먹을 놈의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리고 싶어요.
소리는 내지 못하고 방문 뒤에 숨어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사소혜가 입술만 움직이며 말했다.
나찰녀가 자신들의 정체를 파악했으니 아마 금방 들이닥칠 것이다. 방안은 삼면이 벽이라 어디로 빠져나갈 방법도 없다. 자신들도 자신들이었지만 저 다섯 청년의 목숨도 위험했다. 나찰녀의 성격으로 볼 때 원하던 얘기를 들었더니 저들을 살려둘 이유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찰녀의 간드러진 웃음소리와 함께 어린 청년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호호호, 얘기를 잘 해주었으니 고통 없이 얼른 끝내주마.”
살인을 즐기는 나찰녀가 팔을 뻗어 어린 청년의 목을 대번에 손아귀에 틀어쥐고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어린 청년은 숨이 막혀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채 두 손으로 나찰녀의 손아귀를 떼어내려고 발버둥을 쳤다.
“막내를 내려놓아라. 이 마녀야!”
그 모습에 눈썹 굵은 청년이 부러진 검을 휘두르며 나찰녀에게 덤벼들었지만, 나찰녀가 아무렇게나 다른 쪽 손을 내뻗자 청년의 몸이 갑자기 공중으로 붕 뜨더니 온몸이 으스러질 듯이 벽면에 처박히고 말았다.
“화결(和結)!”
다른 두 청년이 벽에 처박힌 청년의 이름을 다급히 불렀다.
나찰녀와 함께 온 백련신교의 수하는 화산 바로 아래서 화산파 제자들의 목숨을 취하는 것이 걱정되어 나찰녀에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장로님, 지금 즉시 석 대주를 쫓지 않으면 석대주가 달아날 시간을 벌게 될 것입니다.”
그 말에 나찰녀가 코웃음을 치며 응답했다.
“흥. 그놈은 아직 이 객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설령 달아난다 하더라도 그놈이 어떻게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간단 말이냐?”
나찰녀의 매서운 눈빛에 수하는 기가 죽어 감히 대꾸하지 못하고 그대로 머리를 숙였다.
“흑련아(黑鍊牙), 너는 지금 즉시 이 객잔에 있는 모든 사람을 말살한다. 한 놈도 도망가지 못하도록. 그러면 그 연놈들도 죽겠지. 호호호”
“존명!”
상황이 위급했다. 저들이 자기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다 뺏으려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석추명 자신은 화산파의 선배 고인을 만나야 하는데 화산파의 제자들이 신교의 손에 죽게 되면 자신을 만나 주겠는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석추명은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문짝을 발로 차 넘어뜨리고 그대로 숭양일기검 일기승천(一氣昇天) 초식을 시전해서 나찰녀의 등 뒤를 공격해 들어갔다.
검이 공기를 꿰뚫고 쏴아아, 소리를 내며 화살처럼 나찰녀의 등을 찔러 들어갔다. 나찰녀는 돌연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자신의 등 뒤로 강맹한 검기(劍氣)가 솟구쳐 올라 화산파 어린 제자의 목을 움켜쥔 손을 놓고 즉시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촤르르르. 검기가 나찰녀의 등 뒤를 아슬아슬 스치고 지나가더니 그대로 탁자며 의자를 두부 자르듯 대번에 두 동강을 냈다.
사소혜는 그렇지 않아도 손발이 갑갑했는데 석추명이 다짜고짜 나찰녀를 공격해 들어가자 자신도 질세라 금사신편을 꺼내어 휘둘렀다. 황금색 가죽 채찍이 공중에서 부드럽게 휘어지는가 싶더니 쫙, 소리를 내고는 그대로 아가리를 벌린 독사처럼 나찰녀의 수하를 공격해 들어갔다.
나찰녀는 적의 공세가 강해 몸을 공중으로 띄워 피하면서 자신의 병기인 금빛 유성추 한 쌍을 재빨리 꺼내 들었다.
“쥐새끼 같은 놈, 역시 여기 숨어 있었구나. 호호호.”
석추명과 사소혜는 기왕 나찰녀에게 들키자 그렇지 않아도 갑갑했던 방갓과 얼굴 붕대를 벗어 던졌다. 화산파 제자들은 석추명과 사소혜가 자신들과 비슷한 또래임을 알고 깜짝 놀란 눈치였다.
“이 마녀의 무공이 높아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없소. 어서 도망치시오!”
석추명이 화산파 제자들에게 소리 질렀지만 화산파 제자들은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우리도 돕겠소이다. 화산파 제자들은 제 목숨만 구하겠다고 달아나지는 않소.”
눈썹 굵은 청년이 호기롭게 소리쳤지만 화산파 제자들은 모두 무공도 얕은 데다 무기까지 부러져서 도움이 되기는커녕 성가실 뿐이었다.
“빨리 꺼지라는 말 안 들려? 이 애송이들아!”
사소혜가 화산파 제자들을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화산파 제자들은 채찍이 갑자기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자 깜짝 놀라 우왕좌왕하면서도 끝끝내 도망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석추명은 저들이 비록 무공은 얕아도 의리는 깊다고 생각했다.
“제가 얼른 가서 사숙님들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막내라고 불린 어린 제자가 눈치를 보다가 재빨리 객잔의 창문으로 몸을 날리며 말했다. 그 모습에 나찰녀가 기다란 나무의자를 발로 탁 차서 공중으로 띄워 올리더니 발로 차서 그 청년에게 날렸다.
“네 녀석이 감히 여길 살아서 나갈 성싶으냐?”
기다란 나무의자가 세찬 파공음을 일으키며 어린 화산파 제자의 등 한가운데를 겨냥해서 날아갔다. 의자를 날려 보낸 힘이 워낙 세서 어린 청년은 피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는 안 되지!”
석추명이 검기를 뿌리며 나찰녀를 공격하는 동시에 뒷발질로 역시 기다란 의자 하나를 툭 차서 올린 다음, 몸을 빙그르르 돌리며 발로 차 내자 의자는 나찰녀가 쏘아 보낸 의자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화산파 어린 제자는 나찰녀가 쏘아 보낸 의자가 자신의 머리에 부딪힌다고 생각하자 그만 두 눈을 질끈 감고 쭈그리고 앉아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빠악! 의자가 서로 공중에서 부딪히며 부러진 나무 조각이 사방에 흩어졌다. 어린 제자는 그 소리에 눈을 떠서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다시 벌떡 일어나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네놈이 기어이 매를 버는구나.”
화산파 제자 한 명이 달아나자 나찰녀는 분기를 이기지 못하고 더욱 공력을 높여 석추명을 압박해오기 시작했다. 나찰녀가 뿜어내는 살기가 어찌나 강한지 그 기운에 멀쩡한 술병과 사기그릇들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져 나갔다. 석추명은 온몸을 압박해오는 기운에 저항하며 스승 뢰정이 전수한 검법을 펼치고 있었지만 싸우면 싸울수록 행동반경이 좁아지고 숨이 가빠왔다.
석추명은 스승 뢰정과 초의공과 함께 지내는 동안 검리(劍理)에 대해 많이 깨우쳐서 무공이 상당히 진보했지만 나찰녀에 비하면 아직 공력이 많이 부족했다. 이제 수십 초식만 더 지나면 자신은 별수 없이 나찰녀의 손에 죽을 것만 같았다.
사소혜는 나찰녀의 수하 흑련아를 맞이하여 처음에 쾌속한 공격을 퍼부으며 승기를 잡는 듯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힘이 달리는 눈치였다. 화산파 제자들은 그런 사소혜를 돕고 싶었으나 괜히 싸움에 방해만 될 뿐이라 어쩔 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석추명이 조금씩 힘이 빠지기 시작하자 나찰녀가 깔깔깔 하고 간드러진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정말 저승길로 보내주마. 네놈 저승길은 동무가 많아서 심심하지는 않겠구나. 호호호.”
나찰녀가 황금색 유성추를 빙빙 돌리며 공중으로 쏘아 올리자, 나찰녀의 손을 떠난 유성추가 번개에 감전이라도 된 듯 허연 강기(罡氣)를 띄며 석추명을 향해 날아왔다. 그 기세가 워낙 강해서 석추명은 막아낼 자신이 없었지만 억지로 공력을 끌어올려 검을 휘둘러 부딪쳐 갔다.
“숭양일기검 삼도종검세(三到鐘劍勢)!”
석추명이 두 손으로 검을 붙잡고 유성추를 내리치자 검에서 세 개의 둥그런 검기가 발출되더니 커다란 종 모양을 이루며 강기를 띈 유성추에 부딪쳤다.
검과 유성추가 부딪치면서 ‘파지직!’ 하고 시퍼런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그다음 순간, 나찰녀는 사뿐히 몸을 날리더니 화산파 제자들에게로 쏘아져 가는 것이 아닌가. 한 명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고 얘기한 것처럼 정말 화산파 제자들을 모조리 몰살할 생각인 것만 같았다.
“피해!”
석추명은 화산파 제자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검을 회수하여 나찰녀의 뒤를 쫓아갔다.
나찰녀가 갑자기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자 화산파 제자들은 당황하여 반만 남은 검을 앞으로 내밀고 뒷걸음질을 쳤다.
사소혜가 그 모습을 보더니 금사신편을 휘둘러 나무기둥에 박혀있던 화산파 제자들의 부러진 검날을 휘감더니 그대로 나찰녀를 향해 내쏘았다.
휘리릭. 네 개의 부러진 장검 끝부분이 네 자루의 비도(飛刀)처럼 나찰녀의 등 뒤를 노리고 날아갔다. 나찰녀가 화산파 제자들을 그대로 공격하다가는 부러진 장검이 그대로 자신의 등 뒤에 와서 박힐 판이었다.
나찰녀는 어쩔 수 없이 몸을 뒤집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부러진 장검 조각들을 발로 차서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사소혜를 노려보며 콧방귀를 꼈다.
“흥! 감히 겁도 없이 누구를 노리는 것이냐.”
나찰녀가 갑자기 몸을 날리며 손을 쓰자 화산파 제자들이 들고 있던 부러진 장검 반쪽이 마치 시위를 떠난 활처럼 화산파 제자들의 손을 떠나 쏜살같이 사소혜를 향해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앗!”
화산파 제자들은 눈앞에 무엇인가가 번뜩인다는 느낌만 들었을 뿐 실제로 나찰녀가 어떻게 자신들의 검을 빼앗았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다음 순간, ‘파바바박!’ 하고 네 번의 거친 마찰음이 나더니 화산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나찰녀에게 얻어맞고 뒤로 나뒹굴었다.
“호호호호”
그 모습에 나찰녀가 고소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화산파 제자들은 자신들이 이토록 수모를 당하자 얼굴이 시뻘게진 채 죽고만 싶은 심정으로 나찰녀를 노려보았다.
“네가 화산파 제자를 이토록 모욕하고도 무사할 성싶으냐!”
석추명이 검을 휘두르며 나찰녀를 꾸짖었다. 그러자 나찰녀가 가소롭다는 듯이 다시 한번 깔깔깔 웃었다.
“내가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모욕을 주고 싶으면 주는 것이지, 누가 감히 나를 막겠느냐? 네놈이 그 알량한 무공으로 나를 막을 성싶으냐?”
그와 동시에 나찰녀가 다시 한번 강기를 띈 유성추를 던졌다.
쐐액. 유성추가 아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석추명을 향해 날아왔다. 석추명은 이제 몸에 힘이 부쳐 유성추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때 바깥에서 검 다섯 자루가 학익진(鶴翼陣)의 형태로 그야말로 유성(遊星)처럼 나찰녀를 향해 날아왔다. 검에 실린 기운은 하나하나가 모두 강맹하고 정심하여 내공이 상당한 고수들이 쏘아 보낸 것이 분명했다.
“매화검수(梅花劍手) 사숙들이다!”
날아오는 검을 보고 화산파 제자 가운데 누군가 기쁜 듯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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