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세일소-82화 (82/201)

#   82 - 광세일소_한추영 - 145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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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귀면쌍살의 정체 (3)

“여보, 달아나. 어서 달아나라고!”

귀면쌍살이 여인에게 소리를 질렀다. 여인의 오른손에 들려 있던 호수구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석추명의 검에 어깨가 관통하자 힘이 빠져 무기를 들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석추명은 여세를 몰아 더욱 사납게 여인을 공격해 들어갔다. 귀면탈 여인은 왼손에 든 호수구로 힘겹게 막아냈으나 오른손을 쓰지 못하자 일방적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여인이 갑자기 호수구를 사납게 후려쳐 석추명을 떨어뜨린 다음, 곧장 등을 돌리고 마당으로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등을 돌린다는 것은 곧 상대에게 등을 내어주는 것과 다름없었다.

“어디로 도망가시려고. 하던 것은 마주 끝내고 가셔야지!”

석추명의 검이 번쩍하며 귀면탈 여인의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여인의 등이 대번에 갈라지며 핏물이 튀었다.

“아악!”

귀면탈 여인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터져 나왔다.

“여보!”

여인이 다시 귀면쌍살을 불렀다. 그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석추명의 검이 느슨해지자 여인은 급히 귀면쌍살에게 달려갔다. 초의공조차 어쩔 수 없이 검을 멈추고 여인에게 길을 터주고 말았다.

“여보, 괜찮아? 여보!”

귀면쌍살이 귀면탈 여인을 끌어안으며 다급하게 물었다. 귀면탈 여인의 상처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게다가 피를 많이 흘린 탓인지 목소리가 점점 약해졌다.

“여...보, 더 늦기... 전에 어서 내 피를 마셔요. 피가 식으면 소용이 없잖아요. 당신은 공력만 되찾으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야! 안돼! 죽지 마. 죽지 말라고!”

귀면쌍살이 여인을 안고 부르짖었다. 귀면탈 밑으로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 내렸다.

“여보, 이게... 최선이예요. 제발 제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세요.”

귀면탈 여인이 갑자기 옷을 벗어젖히며 한쪽 어깨를 드러냈다. 그리고는 물기 머금은 검은 머리를 한쪽으로 늘어뜨리자 투명하리만큼 하얀 목이 드러났다. 얼마나 하얀지 목 안의 푸른 핏줄이 그대로 보일 지경이었다.

여인의 행동에 당황한 초의공과 석추명이 황급히 돌아서며 시선을 피했다.

“여보, 어서요...”

귀면탈 여인이 귀면쌍살의 눈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귀면탈 뒤에 숨은 귀면쌍살의 눈이 잠시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는 이내 여인의 목을 사납게 물어뜯었다. 두 눈으로는 석추명을 노려보며 마치 흡혈귀처럼 아내의 피를 꿀꺽꿀꺽 삼켰다.

귀면탈 여인은 고통스러운지 약하게 신음소리를 내뱉다가 그 소리가 점점 잦아들더니 결국 목을 떨구고 말았다. 귀면탈의 입 부분에 새빨간 피가 묻어 그렇지 않아도 공포스러운 귀면탈이 더욱 괴기스럽게 보였다.

초의공과 석추명은 귀면쌍살이 아내의 목을 물어뜯자 아연실색하여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장면에 두 사람 모두 잠시 넋이 나간 듯했다.

귀면쌍살이 아내의 목에서 입을 떼자 아내의 시신이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석추명과 초의공을 노려보던 귀면쌍살이 돌연 땅바닥을 박차면서 위로 몸을 솟구치더니 두 사람을 향해 좌장과 우장을 번갈아 뻗었다. 그와 동시에 거센 바람이 일었다.

펑! 펑! 펑! 펑!

귀면쌍살의 무지막지한 장력이 몰려오자 두 사람은 감히 이를 받아낼 엄두를 내지 못하고 다급하게 뒤로 물러서며 피할 뿐이었다. 귀면쌍살의 장력을 맞은 절간 마당에 커다란 구덩이가 패며 흙먼지가 뿌옇게 비산했다.

“이놈들, 이 빚은 절대 잊지 않으마. 네놈들이 어디로 숨든지 간에 반드시 찾아내어 네놈들의 심장을 가르고 간을 씹어 삼켜주마. 그날을 기다려라.”

귀면쌍살이 순식간에 용약사의 담장을 넘어가더니 숲 안쪽으로 사라졌다.

“당장 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석추명의 말에 초의공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소용없는 짓이다.”

초의공은 귀면탈 여인에게 다가가 손목의 맥을 짚고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무공이 무엇이라고 이런 부질 없는 짓을 하는 것인가...”

초의공이 여인의 귀면탈을 벗기자 갸름한 여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여인의 얼굴은 핏기가 없어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귀면탈을 벗은 여인은 평범한 여느 여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초의공과 석추명은 비록 적이기는 했지만 귀면탈 여인이 보여준 놀라운 결단력에 경의를 표하며 여인의 시신을 수습하여 묻어주었다.

****

순식간에 사흘이 지나고 초의공과 석추명은 뢰정을 만나기로 한 누각으로 갔다. 누각에는 뢰정이 이미 도착하여 홀로 앉아 술 한잔을 곁들이고 있었다.

“스승님!”

석추명은 뢰정의 모습을 보자 한달음에 달려갔다. 오랜 도피생활 때문인지 고고한 학과 같던 뢰정의 모습은 많이 초췌해 보였다. 뢰정도 오랜만에 제자를 보자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네가 여기 어쩐 일이냐?”

석추명은 뢰정에게 귀면쌍살을 쫓아 항주에서 성도까지 오게 된 일, 맹주와 귀면쌍살의 관계, 귀면쌍살을 거의 잡을 뻔하다가 놓친 일 등을 자세히 얘기했다.

“맹주에게 그런 비밀이 있었을 줄이야. 정말 놀랍기 그지없는 일로구나.”

“그렇습니다. 맹주가 왜 귀면쌍살을 시켜 명문정파의 후기지수들을 제거하려 했을까요?”

석추명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자 뢰정이 껄껄껄 웃었다.

“그거야 뻔한 것 아니겠느냐?”

“뻔하다니요?”

석추명이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뢰정을 바라보았다. 초의공도 뢰정에게 귀를 기울였다.

“남궁세가가 맹주직을 세습하겠다는 속셈이겠지.”

“예엣? 맹주직을 세습하다니요?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석추명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림 맹주는 사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가문들의 수장들 가운데 추천을 통해 이루어졌다. 물론 맹주로 추천을 받기 위해서는 무공과 인품, 능력이 출중해야 하고 동시에 막대한 세력이 있어야 했다. 4가지 중에 하나라도 부족한 사람은 극심한 반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모두의 인정을 받아야 했다. 그러니 맹주직 세습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생각해보아라. 귀면쌍살이 그동안 왜 그렇게 기를 쓰고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후기지수들만 노렸겠느냐? 싹수가 보인다 싶으면 미리 잘라낸 것이지. 그래야 누구도 남궁세가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지 못할 테니 말이야.”

“생각해보니 귀면쌍살이 공격했던 후기지수들은 모두 각 문파와 가문에서 주목받던 인재들이었습니다. 무공이나 인품 등이 좀 부족하다 싶은 후기지수들은 살려두었고요. 스승님의 말씀을 들으니 이제야 맹주의 의도를 알겠군요.”

뢰정이 초의공과 석추명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하지만 맹주 남궁진악이 그렇게 무서운 사람인지는 예전에 미처 몰랐었네. 그렇게 철저하게 자신을 속이다니 말이야. 모든 사람이 무림맹의 실권은 부맹주 천계심이 잡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천계심마저도 맹주의 손바닥에서 놀아난 것인지도 모르지.”

석추명은 자신의 잔을 비우며 다시 뢰정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귀면쌍살은 과연 누구일까요?”

“모르긴 몰라도 맹주와 아주 가까운 사람이겠지.”

뢰정이 이번에는 초의공을 바라보며 물었다.

“의공, 자네는 그동안 귀면쌍살을 쫓아다니면서 여러 번 겨루기도 했는데 그가 누군지 알겠는가?”

뢰정의 말에 초의공이 잔을 비우며 말했다.

“나도 그가 누군지 모르겠네. 다만 그자의 무공이 사마외도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알고 있네. 귀면쌍살은 철산장이 유명하지만, 그자의 검법도 장법 못지않게 매섭다네. 내가 귀면쌍살과 처음 겨루었을 때 그자의 검법이 맹주의 무공인 창궁무애검과 상당히 비슷해서 의문을 품었었지.”

뢰정이 초의공의 말을 받았다.

“나도 기억나네. 그때가 바로 소주(蘇州)의 산당루에서 우리가 처음 귀면쌍살과 맞붙었을 때가 아닌가?”

“맞네. 그런데 이제 생각해보니 그자가 맹주의 수하였으니 당연히 맹주의 검법을 구사했던 게야. 예전에는 누군지 알 것 같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누군지 모르겠네.”

뢰정은 초의공의 말을 가만히 듣더니 석추명에게 다시 물었다.

“추명이 네가 귀면쌍살과 손을 섞었을 때 무슨 느낌이 들었느냐?”

“제자가 임가장에서 귀면쌍살과 처음 맞붙었을 때 기이하게도 그자의 무공이 제 무공과 일맥상통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석추명의 말에 초의공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어떤 무공이 비슷했는가?”

초의공의 물음에 이번에는 다시 뢰정이 답을 했다.

“그렇네. 나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네. 내가 그동안 자네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네. 사실 그것 때문에 오늘 보자고 한 것이지.”

뢰정은 잠시 뜸을 들이자 초의공이 뢰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서 얘기하라는 채근이었다.

“십 년 전에 우리 신교에서 무림맹의 천림비고에 침입하여 비급을 한 권 훔쳤다네. 당시 무림맹 군사들에게 쫓기던 우리 신교의 참룡대주 육굉은 다시 뺏길까 봐 비급을 둘로 나누었지.”

뢰정이 잠시 말을 멈추고 술 한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초의공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비급의 전반부는 내공심법이 적혀있고 후반부는 그 내공심법을 활용한 각종 무공이 적혀있다네. 그 비급의 내용이 워낙 심오하여 당시 육굉에게서 비급을 건네받은 응룡검 황보는 그 비급을 교주에게 넘기지 않고 나에게 주었지. 황보는 교주의 성정이 잔혹하여 교주가 그 비급을 익히면 무림에 걷잡을 수 없는 피바람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던 거야. 당시 나도 그의 생각에 동의하긴 했으나 황보에게 다시 생각해 볼 것을 권했다네. 왜냐하면 교주가 임무 실패의 책임을 물어 중벌을 내릴 것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지.”

초의공은 뢰정의 이야기에 탄성을 터뜨렸다.

“응룡검 황보라는 자가 정말 큰 결단을 내린 것이로군.”

“그렇지. 어떻게 보면 전 무림인사들이 황보에게 감사해야 할 걸세. 그러나 황보는 당시 임무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신교의 지하뇌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네. 그리고 어느덧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

뢰정의 목소리가 처연하게 들렸다.

“하지만 최근에 교주가 그 일에 대해 알게 되었네. 그리고 지금 나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있지.”

뢰정의 말을 묵묵히 듣던 석추명이 돌연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스승님, 이 모든 일이 모두 저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저를 벌해 주십시오.”

그러자 뢰정이 인자한 표정으로 석추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어나거라. 네 잘못이 아니니라. 이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 있는 줄 알았더냐? 무엇이든지 아무리 은밀하게 감춘 것이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나게 마련이다.”

초의공이 탄식을 내뱉었다.

“응룡검 황보야말로 진정한 협지대자(俠之大者)로군.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맹주의 자리에 올라야 하는데 당금 무림 맹주라는 작자는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위선자이니...”

“이 모든 일의 발단이 바로 무공비급 한 권에서 비롯되었다네.”

뢰정이 초의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 비급에 있는 무공 중의 하나가 바로 숭양일기검(崇陽一氣劍)이네.”

“숭양일기검! 그것은 중양진인이 쓰던 무공 아닌가!”

초의공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그렇네. 그 비급이 바로 중양일지라네. 그리고 나는 중양일지의 후반부를 추명이에게 가르쳤지.”

“그렇군. 어쩐지 석 대주의 무공이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더니... 귀면쌍살이 석 대주와 비슷한 무공을 익혔다면 귀면쌍살도 중양신공을 익혔다는 것인가?”

초의공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희대의 살인마가 익힌 무공이 도가 최고의 무공인 중양신공이었다니!

“그런 것 같네.”

오히려 뢰정의 목소리는 담담했네.

“그리고 내가 알기로 당시 무림맹에서 중양일지의 전반부를 회수해간 자가 있었네.”

뢰정의 말에 초의공과 석추명이 놀란 눈빛으로 뢰정을 바라보았다.

“그자는 당시 중양일지를 온전히 회수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직책에서 파면된 이후 강호에서 사라졌다네.”

뢰정의 말에 초의공이 벌떡 일어났다. 꽉 움켜쥔 주먹이 제힘을 이기지 못하고 덜덜 떨렸다. 초의공도 이제 그자가 누군지 떠오른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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