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 광세일소_한추영 - 1453841
#
제80화. 귀면쌍살의 정체 (2)
“귀면쌍살이 사라진 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 찾을 수 있겠습니까?”
석추명의 물음에 초의공이 대답했다.
“내가 오랫동안 그놈을 뒤쫓다 보니 그놈의 습성을 하나 알게 되었다. 그놈의 공력이 대단한 듯하지만 공력을 쓰고 나면 반드시 꼬박 하루 동안 어두운 곳에 숨어서 응어리진 공력을 풀어주는 약을 마시며 연공을 해야 하지.”
그 말에 석추명이 놀라서 물었다.
“그건 어째서 그렇습니까?”
“단기간에 무리해서 공력을 높이다 보면 발생하면 부작용이네. 내가 보기에 귀면쌍살은 가장 중요한 소주천 단계를 건너뛴 것이 분명해. 공력이란 것은 절대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가듯 밑바탕이 튼튼해야 하지. 그런데 그놈은 제 주제를 모르고 소주천을 건너뛰고 무리하게 공력을 높였으니 그런 부작용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지.”
초의공의 말에 석추명은 어리둥절했다.
“소추천을 거치지 않고 공력을 쌓을 수도 있습니까?”
“심법이 뛰어나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자, 얼른 가세나. 그놈이 항주에서부터 여기까지 줄곧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 지금쯤 공력이 고갈되어 어딘가에 틀어박혀서 쉬고 있을 걸세.”
그 말에 석추명은 속이 뜨끔했다. 자신도 항주에서부터 귀면쌍살을 쫓아왔는데 여기까지 올 때까지 초의공이 뒤따라 온다는 사실을 어떻게 몰랐을까? 강호에 기인이사가 셀 수 없이 많다고 하더니 딱 이럴 때를 두고 한 말 같았다.
석추명은 새삼 초의공이 존경스러워 다시 한번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석추명과 초의공은 귀면쌍살의 행적을 밤새 뒤쫓았다. 어두운 밤 산길에서 귀면쌍살의 흔적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으나 초의공과 석추명은 사소한 흔적 하나 허투루 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날이 밝아왔다.
한참 숲길을 가다 보니 길옆으로 화전민들이 사는 곳인지 십여 채의 집이 나왔다. 집이라고 해봐야 나무와 흙으로 얼기설기 엮은 오두막이었다.
동이 튼 지 얼마 되지 않아 푸르스름한 어둠이 아직 마을에 남아있었다. 아직 잠자리에 있어야 할 이른 새벽이건만 사람들이 어떤 집 앞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인 집에서는 부모라도 죽은 양 서럽게 우는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초의공과 석추명은 가서 무슨 일이지 알아보기로 했다.
“정말 귀신이라니까. 내가 봤대도!”
“아 이 사람아, 우리 마을은 신령님께서 보호해주시는데 그게 무슨 말인가?”
“아마도 올해 정월에 신령님께 드린 제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게야. 그러니까 우리 마을에 이런 일이 나타난 게야. 아 글쎄, 머리를 산발한 귀신이 숲에서 날아오더니 저 애 누이를 휙 낚아채 갔다니까!”
“에고, 마을에 이런 흉사가 생겼으니 이를 어쩐다? 관아에서는 우리 같은 화전민들은 신경도 쓰지 않을 텐데.”
오십은 되어 보이는 초로의 중늙은이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혀를 찼다. 아마도 촌장쯤 되는 듯했다.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이야기를 듣던 초의공과 석추명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면쌍살이 분명했다. 그런데 석추명은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귀면쌍살이 어린 여자아이를 뭐하러 잡아갔을까? 설마하니 몸종으로 부려먹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실례합니다만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마을촌장은 난데없이 뒤에서 사람 소리가 나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말을 건 사람들이 등 뒤에 검을 찬 외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촌장은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댁들은 뉘시오?”
“저는 곤륜파의 제자로 초의공이라고 합니다. 방금 말씀하신 간악한 귀신을 뒤쫓아 왔습니다.”
초의공이 점잖은 목소리로 촌장에게 포권을 취하자 촌장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곤륜파의 제자라면 도사님이시오? 잘 되었습니다. 아이고, 잘되었습니다.”
촌장을 비롯해서 마을 사람들이 허리를 굽신거리며 초의공에게 인사를 하더니 새벽에 일어난 일을 상세하게 초의공과 석추명에게 얘기해 주었다.
“그래서 그 귀신이 어디로 갔습니까?”
“백암산(白巖山)과 이어지는 저 길로 사라졌습니다.”
“그 산에 혹시 동굴이나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나 오래된 절 같은 것이 있습니까?”
초의공의 물음에 마을촌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중턱쯤 가다 보면 용약사(龍藥寺)라고 오래된 절이 하나 있지요. 너무 낡고 황폐해서 지금은 아무도 가지 않습니다만.....”
초의공과 석추명은 용약사의 위치를 꼬치꼬치 캐물은 다음, 마을 사람들과 작별을 고하고 즉시 용약사 쪽으로 신법을 전개했다. 두 사람의 경신법에 놀란 마을 사람의 감탄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초의공과 석추명은 어느덧 백암산 중턱에 다다랐다.
“귀면쌍살이 과연 용약사에 있을까요?”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만 마을에서 어린 소녀를 잡아간 것을 보면 잠시 머물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구나. 이런 산속에는 머물 데가 없으니 나라면 오래된 절이나 폐가에 머물 것 같아서 물어본 것이다.”
이야기를 하는 사이 용약사의 모습이 저 멀리서 눈앞에 드러났다. 초의공과 석추명은 즉시 말을 멈추고 발걸음 소리도 죽여가며 신중히 움직였다. 용약사는 생각보다 꽤 큰 절이었는데 방치한 지 수십 년이 넘었는지 대문은 부서져 내려앉았고 절 마당 안쪽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두 사람은 살금살금 절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석추명은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작은 법당으로 이어지는 통로에서 발자국을 발견했다. 먼지가 수북이 쌓인 통로에 찍힌 발자국은 자국이 선연해서 최근에 찍힌 것이 분명했다.
초의공과 석추명은 법당의 문 양쪽에서 서서 서로 신호를 주고받은 뒤 벼락같이 법당문을 발로 차 열었다.
과연 예상했던 대로 법당 안에는 귀면쌍살이 마룻바닥에 앉아서 운기행공을 하고 있다가 깜짝 놀라서 눈을 번쩍 떴다.
“귀면쌍살 네 이놈! 내 칼을 받아라.”
초의공은 법당문을 열리자마자 번개같이 검광을 뿌렸다.
귀면쌍살은 초의공과 석추명이 나타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가 불현듯 초의공의 공격을 받자 대경실색했다.
초의공의 검이 물속에 잠겨있던 용이 승천하듯 빙글빙글 회전하며 귀면쌍살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검이 뿌려대는 흰 광채가 법당 안에 번쩍하는 순간, 귀면쌍살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귀면쌍살이 초의공에 검에 가슴을 찔리고 만 것이다.
검이 날아오는 그 짧은 순간, 귀면쌍살은 황급히 몸을 틀어 심장이 관통되는 것은 겨우 면했으나 오른쪽 가슴은 그만 초의공의 검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말았다. 초의공의 검끝이 귀면쌍살의 등 뒤로 삐져나오면서 귀면쌍살의 가슴이 온통 선혈로 붉게 물들었다.
귀면쌍살은 검에 찔림과 동시에 앉은 자리에서 즉시 몸을 뒤로 스르르 수평 이동했다. 그리고는 울컥 선혈을 한 모금 뿜어냈다. 운기 중에 공격을 당해 기혈이 뒤집힌 것이다.
“네놈이 지금까지 한 짓이 모두 맹주 남궁진악이 시킨 것이렷다?”
귀면쌍살을 추궁하는 초의공의 목소리가 준엄하기 이를 데 없었다. 허를 찔린 귀면쌍살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네놈이... 네놈이 그것을 어떻게...!”
귀면쌍살의 말에 초의공은 냉소를 지었다.
“결국 네 입으로 시인한 셈이로군. 오냐, 오늘 네놈 목숨부터 거두고 가증스러운 맹주의 가면도 차근차근 벗겨주마.”
초의공이 다시 검을 들어 올려 귀면쌍살을 찌르려는 순간, 대문 쪽에서 쇠를 긁는 듯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보, 안돼!”
그 소리에 초의공과 석추명은 동시에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문 앞에는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어린 소녀를 붙잡고 서 있었는데 놀랍게도 역시 얼굴에 귀면탈을 쓰고 있었다. 여인은 갓 목욕이라도 했는지 머리카락이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귀면쌍살에게 조력자가 있을 줄 몰랐던 초의공과 석추명은 깜짝 놀랐다. 초의공이 멈칫하는 순간, 귀면쌍살은 이미 천장을 뚫고 위로 솟구쳐 달아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귀면탈을 쓴 여인이 여자아이의 손을 내팽개치더니 손을 앞으로 쭉 뻗어내면서 방 바깥쪽에 서 있던 석추명을 공격해왔다.
“사매, 이자들을 죽여 입을 막아야 해. 이자들이 우리의 비밀을 알고 있어!”
귀면쌍살이 자신의 아내에게 소리쳤다. 귀면쌍살은 이미 지붕에서 마당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흥! 네놈이 그 꼴로 내 검을 피할 성싶으냐? 어림없다, 이놈! 네놈에게 받아내야 할 목숨 빚이 있거늘.”
초의공이 귀면쌍살을 쫓아 역시 지붕에서 마당으로 내려서며 검을 휘둘렀다. 검광을 번쩍이며 초의공의 검날이 자신의 목을 훑어오자 귀면쌍살은 다급히 몸을 수평으로 눕혔다. 원래 공력은 귀면쌍살이 더 높았으나 귀면쌍살은 지금 중상을 입은 데다 초의공이 검술이 신묘하기 이를 데 없어 귀면쌍살은 그만 또다시 초의공의 검날에 어깨를 베고 말았다.
“윽!”
귀면쌍살의 입에서 다시 비명이 새어 나왔다. 귀면탈을 쓴 여인이 귀면쌍살에게 소리쳤다.
“당신 내상을 입었군요! 어서 빨리 저 애의 피를 마셔요. 더 늦기 전에!”
초의공과 석추명의 눈빛이 동시에 여인이 데리고 온 어린 여자아이에게 꽂혔다. 화전민 마을에서 납치되었다던 그 아이가 분명했다.
“이런 천인공노할 놈들!”
초의공은 터져 나오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검을 차르르 돌리니 공작이 꼬리를 펴는 듯 검날이 흰 광채를 뿌리며 부채꼴을 이루었다. 귀면쌍살도 이미 한 번 견식한 적이 있는 중천자미유성검(中天紫微流星劍)이었다. 수십, 수백 개의 검광이 빽빽하게 에워싸는 바람에 귀면쌍살은 손을 뻗어 여자아이를 잡을 수가 없었다.
“얘야, 어서 도망가렴!”
석추명은 귀면탈 여인을 정신없이 공격하며 마당 한가운데 서서 두려움에 울고 있는 소녀에게 소리쳤다. 그 소리를 듣자 소녀는 눈물을 닦아내며 재빨리 대문 밖으로 달아났다.
여인은 귀면쌍살에게서 직접 무공을 배운 듯 역시 철산장을 구사했다. 여인의 손에서 장력이 격출 될 때마다 석추명은 감히 맞받아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공력의 수준이 아직 귀면쌍살에게 미치지 못해 석추명은 싸울 만하다고 생각했다.
석추명의 검이 한차례 진동하더니 뢰정이 전수한 수라검법(修羅劍法)을 떨쳐냈다. 수라검은 강맹하면서도 패도적인 검법이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세찬 바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석추명의 검이 횡으로 그으며 공격해오자 여인은 일학충천세로 몸을 허공으로 날리며 석추명의 검을 피했다. 석추명의 검끝이 여인의 발끝을 아슬아슬 스쳐 지나면서 법당을 지탱하는 기둥을 베었다.
서걱. 사과 자르는 소리같이 경쾌한 소리가 나더니 돌연 나무 기둥이 두 동강이 났다. 기둥이 부러지자 천장 한쪽이 우르르 소리를 내며 내려앉으면서 매캐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여자 귀면쌍살의 무공도 정말 대단하군. 탄복했소이다.”
석추명은 그 절박한 순간에도 여유를 잃지 않고 엄지손가락을 쳐들며 상대방의 무공을 칭찬했다. 하지만 석추명의 행동은 귀면탈 여인의 화만 돋울 뿐이었다.
“흥! 애송이 놈아, 손모가지가 떨어지고도 그렇게 웃을 수 있는지 두고 보자.”
여인은 맨손만으로는 상대하기 어렵다고 여겼는지 등 뒤에서 끝이 호랑이 발톱처럼 휘어진 한 쌍의 호수구(虎手鉤)를 꺼내 들었다. 귀면탈 여인은 두 호수구를 서로 맞부딪쳐 챙, 챙, 소리를 내더니 곧바로 석추명을 찍으려 들었다.
석추명은 잽싸게 몸을 위로 솟구쳐 손끝으로 천장을 가볍게 찍더니 그 자세 그대로 뒤로 훌쩍 뛰어내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귀면탈 여인이 두 개의 호수구를 서로 연결하여 마치 유성추(流星錘)처럼 빙빙 돌리는 것이 아닌가!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호수구의 끝부분은 칼끝처럼 뾰족하여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자칫 그 부분에 긁히기라도 하면 대번에 살갗이 갈라지고 내장이 베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석추명은 손바닥에 땀이 살짝 나왔지만 개의치 않고 검에 공력을 주입한 채 회전하는 호수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윽고 석추명의 검이 유성추처럼 돌아가는 호수구를 강하게 쳐냈다.
쨍! 귀를 찢는 날카로운 금속성이 나더니 호수구 한쪽이 그대로 날아가 벽면에 푹 박혀버렸다. 귀면탈 여인이 쫓아가 몇 번이나 잡아 뽑으려고 했지만 선뜻 뽑히지 않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석추명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회오리바람처럼 몸을 솟구치면서 숭양일기검(崇陽一氣劍)을 펼쳐냈다. 검이 저절로 휘며 우웅, 검명을 토해내더니 검이 닿기도 전에 웅혼한 검기가 귀면탈 여인을 찔러 들어왔다. 여인은 그 기세에 놀라 호수구를 포기하고 양손을 교차하며 즉시 장력을 발출했다. 바로 철산장이었다.
하지만 이미 귀면쌍살의 철산장을 본 적이 있는 석추명은 장력이 몸에 닿기 전에 검끝으로 땅을 짚어 몸을 공중으로 튕겨 여인의 장력을 피하고는 그대로 몸을 눕히며 여인의 어깨를 검으로 찔렀다. 바로 숭양일기검 중의 절초인 어천비락(御天飛落)이라는 초식이었다.
“아악!”
여인의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석추명의 검에 여인의 오른쪽 어깨가 관통되고 만 것이다.
“여보!”
초의공과 힘겹게 싸우던 귀면쌍살이 그 모습에 울분을 터뜨리며 소리를 질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