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세일소-79화 (79/201)

#   79 - 광세일소_한추영 - 1447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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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사천대전(四川大戰) (7)

구곡절심장은 한번 장을 격출하면 상대방의 몸에 도달한 장력이 사라지기도 전에 연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등 총 9번의 장력이 이르는 것으로 9번을 다 받고 나면 심장이 터져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무공이었다. 상대방은 첫 번째 장력을 받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여 적을 얕보지만, 바로 그 틈을 타서 9번의 성난 파도 같은 힘줄기가 쉬지 않고 들이닥치기 때문에 첫 번째 장력을 받을 때부터 제대로 꿰뚫어 보고 대비하지 않는다면 절대 막아낼 수 없었다.

구곡절심장은 시전하기도 어렵지만 결과가 워낙 잔혹하여 마립도 웬만해서는 이 장법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기하진이 분수도 모르고 끼어들자 단번에 심장을 터뜨려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요 애송이 놈아, 이번에야말로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똑똑히 알려주마.”

마립이 쌍장을 앞으로 뻗쳐 밀어내자 거대한 힘줄기가 기하진을 덮쳐왔다. 기하진은 지난번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신중하게 마립의 쌍장을 받아냈다. 그런데 뜻밖에도 마립의 장력이 생각보다 그렇게 세지 않았다. 마립 정도의 고수라면 절대 이 정도 가지고 큰소리치지는 않을 것이다.

기하진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이 첫 번째 장력이 사라지기도 전에 두 번째 장력이 다시 넘실거리며 기하진을 덮쳐왔다. 두 개의 장력이 합쳐지자 위력이 순식간에 증폭했다. 고수라면 당연히 힘줄기를 분산해서 내쏠 수 있기에 장력을 두 개로 나누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 번째 장력이 기하진의 몸에 이르기도 전에 다시 세 번째 장력이 덮쳐오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기하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구곡절심장이로구나.

구곡절심장은 말 그대로 9번의 장력이 휘몰아쳐 온다. 9번의 장력이 모두 합쳐지기 전에 끝장을 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공력이 제아무리 높다 해도 절대 막아낼 수 없다. 9명의 마립이 때리는 장력을 그 누가 막아낼 수 있단 말인가.

기하진은 마립과 장을 맞댄 채 대주천으로 완성한 중양신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순식간에 기하진의 손바닥이 붉게 물들더니 강맹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양손의 장심을 통해 발출되었다.

펑! 바로 맹주 남궁진악의 독문무공인 천룡파천장(千龍破天掌)이었다. 그러나 기하진의 손바닥에서 펼쳐진 장법은 4단계를 겨우 넘겼던 이전의 장법이 아니라 완숙의 경지인 8단계에 이른 장법이었다. 대주천을 운행하여 공력이 비약적으로 높아지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천룡파천장이 이미 맹주의 단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마립이 다섯 번째 장력을 격출하는 순간, 상대방의 장력이 해일처럼 밀려들자 마립은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힘줄기를 나누었다가는 절대 여기서 살아나갈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마립은 별수 없이 양 손바닥에 온몸의 힘을 집중했다.

‘펑!’하고 쌍장이 서로 맞부딪치는 소리가 나더니 뒤미처 ‘우두둑, 우두둑’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립의 양쪽 팔꿈치 관절이 기하진의 장력을 버티지 못하고 탈골되고 만 것이다. 탈골과 동시에 팔꿈치 뼈가 허옇게 밖으로 드러났다.

“으악!”

마립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겁에 질린 눈초리로 기하진을 바라보았다.

“네놈이 어떻게 이런 공력을...!”

기하진은 차가운 눈초리로 마립을 노려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마립은 두려움에 휩싸여 기하진이 다가올수록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수백, 수천 명이 싸우는 싸움터지만 마립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기하진의 발걸음 소리만 들려왔다.

심장을 관통당했던 왕기가 돌연 옆에서 ‘쿵!’ 소리를 내며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왕기를 곁눈질로 쳐다보던 마립의 눈 아래 근육이 파르르 쉴 새 없이 떨렸다.

“이제야 부모님과 지학의 원수를 갚게 되었구나. 마음 같아서는 네놈의 살점을 한 점 한 점 뜯어내어 씹어 먹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는 것이 안타깝구나.”

기하진은 마립을 노려보며 오른손을 번쩍 쳐들었다. 마립의 정수리를 내리쳐 즉사시킬 생각이었다.

기하진의 오른손이 마립의 머리 위로 떨어지려는 찰나, 돌연 산을 무너뜨릴 듯이 강맹한 장풍이 기하진의 가슴을 때렸다. 기하진은 다급히 우장을 머리 위에서 그대로 틀어서 자신을 향해 쏘아오는 장력을 막아냈다.

‘펑!’하고 장이 격돌하는 소리와 함께 기하진의 몸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뿐만 아니라 강맹한 장력 속에 한 가닥 음유한 기운이 있어 차가운 한기가 기하진의 손바닥을 뚫고 들어왔다. 기하진은 순간적으로 오싹 몸서리를 쳤다. 즉시 공력을 모아 저항하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고강한 공력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설마하니 귀면쌍살인가?

기하진은 공력을 끌어올려 손바닥으로 들어온 한기에 저항하며 자신을 공격한 사람이 누군지 바라보았다. 기하진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중간 정도의 키에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이 마립을 구해서 달아나는 모습이 보였다. 복면인의 무공이 얼마나 높은지 툭, 툭, 두어 번 발을 찍기가 무섭게 두 사람의 모습은 새까만 점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마립을 죽여 부모와 지학의 복수를 하려고 했던 기하진은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두 눈 멀뚱히 뜨고 마립을 놓치고 말았다.

“이노오옴!”

기하진은 사라지는 복면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울분을 터뜨렸다. 그 소리가 공명하며 긴 여운을 남겼다.

****

수백 구의 제자들이 싸늘한 시신이 되어 누워 있었다. 전쟁이 늘 그렇겠지만, 살아있을 때는 그토록 위무가 당당한 제자들이었건만 죽고 나자 이렇게 거적때기 하나에 아무렇게나 둘둘 말려 있었다.

무욕자는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무심한 별빛이 무욕자의 마음도 모르고 환히 빛나고 있었다. 무욕자는 하늘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자신의 앞에 있는 제자들의 시신으로 눈길을 옮겼다. 더 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스승께서 내게 도호를 지어주실 때 욕심 없이 살라고 무욕(無慾)이라 하셨건만, 내가 욕심이 너무 많았구나. 너무 많았어....”

무욕자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어디론가 향했다.

잠시 후, 부맹주 천계심의 별채에 무욕자가 나타났다.

“사형, 안에 계십니까?”

“들어오시게.”

무욕자가 별채 안의 방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천계심이 혼자 뒷짐을 지고 창밖으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형....”

천계심을 부르는 무욕자의 목소리에 다시 물기가 묻어났다.

“사제, 오늘 청성이 흘린 피가 많았음을 내 잘 알고 있네.”

천계심이 창문을 닫으며 무욕자에게 몸을 돌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전쟁 중에 죽는 일은 병가지상사인 것을. 이게 다 맹주 그 늙은이 때문이야. 그 늙은이가 우리 계획을 눈치채고 귀면쌍살을 핑계로 어디론가 숨은 것이 틀림없어. 교활한 늙은이 같으니.”

천계심은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무욕자는 잠시 천계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새삼 사형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 스승에게 무공을 배울 때부터 자신보다 무엇이든 뛰어났던 사형이었다. 무공뿐만 아니라 매사에 대담하고도 치밀하여 자신은 사형에게 비교가 안 된다고 여겼다.

그런데 뜻밖에도 스승은 임종시에 사형이 아니라 자신을 청성파의 38대 장문인으로 지목했다. 그 충격으로 천계심은 더 넓은 세상을 찾아 무림맹으로 눈길을 돌렸다. 한때는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각축장인 무림맹에서 승승장구하는 사형이 자랑스럽기도 했었다. 한때는 말이다....

“사형, 400명이 훨씬 넘는 청성의 제자들이 오늘 하루 만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무욕자가 물기어린 목소리로 천계심에게 상기시켰다.

“글쎄, 내 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반드시 맹주를 붙잡아 그 핏값을 치르게 해야지.”

분노로 부르르 떠는 천계심의 눈빛에는 그 어디에도 죽어간 제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회한이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자신의 사형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맹주가 돌아오면 마교에서 다시 한번 대규모로 기습해올 것이다. 그때는 반드시 실수 없이 맹주의 숨통을 끊어놓는다 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천계심의 말에 이번에는 무욕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또다시 마교와 손을 잡자는 것인가? 그들의 배신으로 청성의 제자들이 모두 다 죽어 나간 마당에?

“그것은 안 될 말입니다.”

무욕자의 입에서 강경한 말이 튀어나왔다. 사형 천계심을 바라보는 무욕자의 눈이 형형한 빛을 냈다.

“안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청성의 제자들이 흘린 피를 헛되게 할 셈인가?”

천계심이 무욕자를 꾸짖었다. 하지만 무욕자는 완강했다.

“안됩니다, 사형. 더 이상의 무고한 피는 흘릴 수 없습니다. 애초에 우리가 마교와 손을 잡고 맹주를 노린 것부터가 잘못입니다. 오늘 탈명검 마립이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우리가 자중지란을 일으키는데 그 좋은 기회를 어찌 그냥 넘기겠냐고 하더이다. 우리가 맹주와 대적한다면 저들의 꾀에 넘어가 우리는 전멸할 것입니다. 더 이상은 절대 안 됩니다.”

무욕자를 바라보는 천계심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사제, 이번 싸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잊었는가? 우리 청성이 구대문파의 수장이 될 기회라고. 어찌 갑자기 그렇게 마음이 약해진 게야!”

소리가 새어나갈까 봐 낮추기는 했으나 천계심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질책이 가득했다.

“사형께서 뭐라고 하셔도 소용없습니다. 우리 청성은 내일부로 이번 전투에서 빠지겠습니다.”

“뭐라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소리인 건가? 부맹주의 사문이 전투에서 빠지다니, 내 꼴이 뭐가 된단 말인가!”

천계심이 무욕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손이라도 쓰고 싶은 눈치였다. 무욕자는 그런 천계심의 모습에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사형께서 뭐라고 하셔도 소용없습니다. 청성의 장문인은 사형이 아니라 접니다. 그러니 사형께서도 제 결정에 반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맹주가 돌아오는 대로 이번 싸움의 진상을 밝히겠습니다.”

“사제! 지금 제정신인가? 사제가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우리 청성은 강호에서 사라질 게야. 멸문을 당할 것이라고!”

천계심의 눈에 벌겋게 핏발이 서고 목의 울대가 꿈틀거렸다. 무욕자는 지지 않고 천계심의 분노어린 눈빛을 마주 보며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했다.

“그것이 순리라면 따라야지요. 우리 두 사람의 욕심 때문에 이 사태가 났습니다. 더 이상의 희생은 막아야 합니다. 청성의 이름이 강호에서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무욕자는 그 말을 끝으로 뒤돌아서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천계심은 숨을 죽이고 사제 무욕자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무욕자가 방문에 손을 뻗는 순간, 천계심의 오른손이 공중으로 높이 들리더니 그대로 무욕자의 천령개에 내리꽂혔다.

퍽! 무욕자는 설마 사형이 자신에게 손을 쓰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터라 아무런 방어도 하지 못한 채 천계심의 일격을 그대로 맞고 말았다. 무욕자는 머리가 터져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무욕자의 머리에서 새어 나온 검붉은 핏물이 천계심의 발밑까지 흘러나왔다. 무욕자는 자신의 죽음이 원통한 듯 눈도 감지 못한 상태였다.

천계심은 부릅뜬 무욕자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사제, 자네의 죽음을 억울하게 여기지 말게. 자네의 죽음은 새로운 청성의 미래를 여는 밑거름이 될 게야.”

****

천옥랑은 방금 들은 소리를 믿을 수가 없었다. 다리가 떨려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조금 전의 그 소리는... 그 둔탁한 소리는.... 설마 하니 아버지가....! 천옥랑은 그럴 리가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잘못 들을 리가 없다는 사실도 잘 알았다.

천옥랑이 부친의 처소로 찾아왔을 때 장문 사숙과 부친은 웬일인지 다투고 있었다. 청성 제자들의 죽음을 아쉬워하는 무욕자의 말에서 그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두 사람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자 천옥랑은 불안한 마음에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평상시 사형의 이야기라면 덮어놓고 경청하던 장문 사숙이었다. 이렇게 자기 부친에게 목소리를 높인 적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의 언쟁이 높아지다가 돌연 ‘퍽’하고 무엇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두개골이 강력한 장력에 단번에 부서지는 소리였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주위에 적막할 정도로 침묵이 찾아왔다. 그리고 장문 사숙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만 같은 불길한 느낌에 천옥랑은 황급히 뒷걸음질 치다가 그만 소리를 내고 말았다. 헉!

그와 동시에 부친 천계심의 방문이 부서질 듯 활짝 열리더니 천계심이 전광석화 같이 튀어나와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벌려 천옥랑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 모든 것이 눈 깜짝할 새 일어난 일이었다.

천옥랑은 숨이 막혀 컥컥거렸다. 부친의 모습 뒤로 방바닥을 적신 붉은 선혈이 언뜻 보였다. 그 모습에 천옥랑은 온몸이 감전된 듯 오싹한 전율이 흘렀다.

천계심은 숨이 막혀 안색이 새파래진 천옥랑을 노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방금 본 것은 그 누구에게도 얘기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천옥랑은 겁에 질린 눈빛으로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평상시에도 부친을 두려워하기는 했으나 이때만큼 부친이 낯설고 두렵기는 처음이었다.

천계심이 손아귀의 힘을 풀자 천옥랑은 허겁지겁 부친의 처소에서 달아났다. 부친 천계심이 달아나는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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