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 광세일소_한추영 - 1434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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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사천대전(四川大戰) (1)
“이 늙은이의 눈이 아직 그렇게 나쁘지 않아 다행히 사람을 가려볼 줄 안다오. 정도(正道)를 가지 않는 사람은 볼 필요도 없지.”
요혜신니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아연실색했다. 무림맹의 실세라는 천하의 부맹주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강호에 몇 명이나 있을까?
그러자 부맹주의 입에서도 빈정대는 말이 튀어나왔다.
“아미파가 왜 소림사를 앞서지 못하는지 늘 궁금하더니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알겠습니다. 그렇듯 마음이 분별심으로 가득 차 있으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귀에 제대로 들어오겠습니까? 그러니 늘 소림사의 뒷자리에 있을 수밖에요.”
“뭣이라?”
요혜신니가 눈에 쌍심지를 켜며 선장을 내리쳤다. 가뜩이나 지기 싫어하고 자존심 강한 요혜신니의 속을 제대로 긁는 언사였다. 부맹주는 노려보는 요혜신니의 눈길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빤히 마주 보았다.
요혜신니와 부맹주 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변하자 무욕자가 중간에서 난처하여 일부러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무림 고수라는 분들이 영 애들 같으십니다. 오랜만에 보면서 왜들 이러십니까?”
청성파 장문인 무욕자가 중재하려 했지만 요혜신니는 손을 들고 무욕자의 말을 막았다.
“아니오! 부맹주의 말씀은 반드시 따지고 넘어가야겠소. 부맹주의 말씀은 이 늙은이 한 사람이 아니라 아미파 전체를 모욕한 언사요. 아니 그렇소, 부맹주?”
요혜신니의 눈에서 불꽃이 번쩍였다. 부맹주가 다시 한번 요혜신니의 속을 긁는 소리를 했다가는 당장이라도 손을 쓸 것 같은 기세였다.
그 모습에 사마경이 앞으로 나서며 목소리를 돋우었다.
“적을 앞에다 두고 우리끼리 싸워서야 되겠습니까? 자중지란만 초래할 뿐입니다. 사태께서는 노여움을 거두시지요. 부맹주님께서 애초에 좋은 뜻으로 하신 말씀을 그렇게 고깝게 들으셔야 되겠습니까?”
사마경이 나름대로 중재한다고 말한 것이 오히려 부맹주의 편을 드는 꼴이라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고 말았다.
“총군사의 말은 그러니까 이 늙은이가 자중지란을 초래했다는 것이요?”
요혜신니의 눈길이 사마경으로 향하자 사마경은 당황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
“흥! 더 이상 말할 것 없소. 강호인은 은원을 말로 풀지 않는 법. 당장 손을 씁시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요혜신니의 선장이 세찬 바람을 일으키며 부맹주의 면전을 휩쓸어갔다. 죽니 사니 할 원수는 아니라서 치명적인 급소는 피했으나 선장에 얻어맞았다가는 창피도 그런 창피가 없을 성싶었다.
요혜신니가 비록 여류제일 고수라고 하나 부맹주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부맹주는 요혜신니의 선장이 휘몰아쳐 오자 콧방귀를 뀌며 한 손은 뒷짐을 진 채 한 손으로만 신니의 선장을 붙잡았다. 이참에 콧대 높은 요혜신니의 기를 납작하게 꺾으려는 심산이 분명했다.
달리던 말이 갑자기 멈추어 서듯이 세찬 기세가 돌연 가로막히자 선장 끝부분에 달린 강철환들이 딸랑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강철로 된 육환장은 원래 무게가 무거워 소림사 승려들 중에서도 신력에 자신 있는 사람들이 아니면 잘 쓰지 않는데 요혜신니는 자그마한 체구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아나는지 그 무거운 강철 육환장을 휘두르면서도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부맹주가 자신의 실력을 뽐내고 싶어서 한 손으로 막기는 했으나 사실 속으로는 후회막급이었다. 육환장을 통해 전해지는 내력을 막아내려고 전신의 공력을 한쪽 팔에 모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다른 쪽 팔도 같이 쓰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낭패한 부맹주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자, 요혜신니는 코웃음을 쳤다. 이미 부맹주가 마음속으로 갈등하고 있음을 훤히 내다봤던 것이다. 아마 잠시 후면 별수 없이 두 손을 다 쓰게 되리라.
부맹주의 안색이 변하자 뒤에 서 있던 청성사로가 앞으로 나서려고 했지만 무욕자는 얼른 손을 들어 사제들을 제지했다. 요혜신니가 워낙 불같은 성정이라 선장을 먼저 휘두르기는 했지만 결코 천계심을 다치게 할 의도는 아니라는 사실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괜히 여기서 자신들이 나서면 양쪽 문파 간에 의기만 더 상할 뿐이라고 판단했다.
요혜신니가 입가에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선장을 붙잡은 손에 공력을 더욱 높이려 할 때, 적군을 염탐하러 보냈던 전령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총군사님, 큰일 났습니다. 마교 놈들이 야음을 틈타 벌써 기습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 말에 놀란 요혜신니가 즉시 선장을 거두었다. 속으로 이미 비명을 지르고 있던 부맹주에게는 그야말로 요행이 아닐 수 없었다.
“뭣이라, 벌써? 내일 밤이 넘어야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건만. 그래, 어디까지 왔더냐?”
사마경이 전령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부맹주는 요혜신니에게 한마디 따끔하게 내쏘고 싶었지만 긴박한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어 요혜신니를 말없이 노려보기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혜신니는 진즉 부맹주에게는 관심을 끊은 듯, 사마경에게 자신이 먼저 출전하겠노라고 자원했다.
“이 늙은이가 먼저 가겠소. 명만 내려주시오. 어디로 가면 되오? 내 가서 당장 그놈들을 모조리 염라대왕 앞으로 보내어 버리겠소.”
“그래 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사태께서는 제자들을 이끌고 청성파 제자 400명과 함께 지금 당장 동쪽으로 달려가서 광풍대를 막아주십시오. 광풍대는 마교 장로인 광풍검 신갈과 대주 마첨이 나올 겁니다. 적의 인원이 우리의 두 배에 가까우나 두 분의 신위와 아미파, 청성파의 무공이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봅니다. 현장에서의 총지휘는 무욕자 장문인께서 맡아 주시지요.”
“알겠소이다. 즉시 가겠소. 무욕자 선생, 얼른 갑시다.”
사마경이 현장 총지휘를 무욕자에게 맡겼지만 요혜신니는 전혀 괘념치 않았다. 조금 전까지 싸우던 부맹주가 청성파 장문인의 사형이라는 사실도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 버린 듯했다.
그 다음으로 사마경은 천옥랑에게 고개를 돌렸다.
“천 부단주는 지금 즉시 용봉단 300명, 청성파 나머지 제자 100여 명을 이끌고 북쪽에서 진격해오는 마교의 탈명대를 막으라. 적의 인원이 세 배가 넘지만 용봉단은 우리 무림맹의 정예부대. 반드시 목숨을 걸고 적을 막으라. 현장의 총지휘는 천 부단주가 하라.”
“명 받들겠습니다.”
사마경의 지휘에 천옥랑이 허리를 굽히며 명을 받들었다.
“마지막으로 남천단은 부맹주님과 함께 서편으로 진격해오는 참룡대를 막으시오. 지금 즉시 움직이시오. 현장의 총지휘는 부맹주님께서 하시고 원 단주는 그 명을 받으시오.”
“존명.”
남천단주 원무개가 역시 포권을 취하고 명을 받았다. 사마경의 일사불란한 명령에 아미와 청성 연합군, 용봉단, 남천단은 즉시 출격했다. 성도에 있는 천린상단 사천지부에는 상단 소속의 호천대원 600여 명이 단단한 방어진을 치고 있었다.
요혜신니가 아미파 제자 100여 명을 이끌고 나서는데 부맹주가 청성파 무욕자에게 하는 말이 들려왔다.
“장문인, 우리 청성파의 천 년 미래가 이번 전투에 달려있소이다. 청성이 드디어 오랜 굴욕을 벗어나 힘차게 웅비할 기회이니 내가 했던 말을 절대 잊지 마시오.”
“명심하고 있습니다. 사형.”
무욕자와 천계심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그 모습을 본 요혜신니는 청성파가 이번 전투를 기회 삼아 명성을 크게 떨칠 작정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우리 아미파도 청성파에게 쉬이 공을 뺏기지 않겠소이다.”
“하하하,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부맹주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순순히 동의하자 요혜신니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지기 싫어하는 저 중늙은이가 이럴 때도 있구나 싶었다.
“전군, 진격하라!”
사마경의 목소리가 들리고 뒤미처 군사들이 앞으로 진격하는 당당한 보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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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진은 용봉단원들과 함께 천린상단 사천지부의 북쪽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탈명대를 맞으러 나갔다. 늘 단주로 명령을 내리다가 평단원복을 입고 단원들 틈에 끼어 있으려니 이전보다 더욱 긴장되었다.
멀리서 풀잎 스치는 소리와 함께 우르르 내닫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안력을 돋워 쳐다보니 민강(岷江) 건너편에서 무엇인가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적이 분명했다. 적이 강을 건너기 전에 막아야 했다.
“옥랑, 아니 부단주님. 적들이 몰려옵니다. 즉시 강을 건너야 합니다.”
기하진이 단원들 앞이라 천옥랑에게 일부러 존칭을 썼다. 적들이 몰려온다는 소리에 천옥랑은 놀라서 머리를 들고 강 건너편을 살펴보았으나 그쪽은 짙은 어둠에 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강을 건너가자는 소리에 천옥랑은 잠시 망설였다. 그 모습에 기하진이 답답해서 소리쳤다. 한번 썼던 존칭은 어느새 다시 원래대로 과감하게 생략되었다.
“적이 강을 건너게 해서는 안 돼. 싸우더라도 강 저쪽에서 싸워야 해.”
기하진이 얘기했지만 천옥랑은 손끝을 이빨로 뜯으며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우리가 강을 건너는 순간, 적의 공격을 받을 거야. 차라리 적들이 강을 건널 때 우리가 공격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천옥랑이 주저하면서 의견을 내놓았으나 그 방법은 너무 수동적인 방법이었다.
“무슨 소리야? 저들은 그냥 평범한 병사가 아니라고. 병사 한 명 한 명이 일류고수인 마교의 탈명대야. 저들이 강을 건너와 버리면 이 싸움은 끝나는 거라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을 건너기 전에 막아야 해.”
“그렇지만....”
보다 못한 기하진이 벌떡 일어나더니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강은 폭이 넓지는 않았지만 유속이 꽤 빨라 쉽게 건널 수는 없었다.
“나라도 가서 먼저 막고 있을 테니 뒤따라 올 놈들은 뒤따라 와.”
기하진이 강을 건너더니 어둠 저편으로 사라졌다.
“기하진, 돌아와! 지휘관은 나야, 네가 아니라고!”
천옥랑은 화가 났지만 큰 소리를 내지는 못하고 기하진의 등 뒤에 대고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기하진이 강을 건너가자 단원들이 모두 천옥랑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우리는 어떻게 하냐는 눈빛이었다.
“젠장 할! 저 녀석은 아직도 제가 단주라고 착각하고 있어. 이번 전투만 끝나봐라. 이놈을 명령 불복종으로 징계하고 말 테니.”
천옥랑은 혼자서 화를 내며 떠들어댔다. 그리고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단원들은 여전히 천옥랑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별수 없잖아? 즉시 강을 건넌다. 최대한 소리 내지 말고 조용히 건너라!”
천옥랑의 명령이 떨어지자 용봉단원 300여 명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강을 건넜다.
기하진이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데 뒤에서 천옥랑과 남이가 다가왔다. 천옥랑은 다가오자마자 구시렁대기 시작했다.
“기하진, 이번 싸움이 끝나면 너를 군법으로 다스릴 테니 그렇게 알아.”
그 말에 기하진이 씨익 웃었다.
“그러시든지. 하지만 이번 싸움이 끝나면 아마도 내가 다시 단주로 복귀될 듯한데?”
기하진의 말에 천옥랑이 투덜댔다. 바로 그때 기하진의 귀에 미세한 소리가 포착되었다.
기하진이 즉시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조용! 적들이 지금 오십 여장 앞까지 다가온 것 같아.”
공력으로는 용봉단원들 중에서 기하진을 따를 자가 없었다. 일행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
“어떡하지?”
천옥랑이 물었다.
“당장 철궁대를 전면에 배치하여 화살을 쏘자.”
기하진의 제안에 천옥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명을 내렸다.
“철궁대 앞으로!”
백여 명의 대원들이 앞에 포진하더니 등에 메고 온 철궁을 꺼내어 화살을 먹였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이제 적들의 움직임이 천옥랑과 다른 용봉단원들에게도 확연히 보이기 시작했다.
“발사!”
천옥랑의 말이 울리자, 곧 피융, 하는 소리와 함께 수백 대의 화살이 밤하늘을 빽빽하게 채우기 시작했다. 용봉단원들이 쏘는 활은 100장 밖까지도 날아가도록 특수하게 제작된 철궁이었다. 가까이서 쏘면 그 기세가 워낙 세차서 사람이건 갑옷이건, 꿰뚫지 못할 것이 없었다.
과연 화살이 날아가자 저쪽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방패부대 앞으로!”
곧이어 용봉단원들이 쏜 화살들이 금속방패에 맞는 듯 콩 볶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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