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 광세일소_한추영 - 1307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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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6화. 재회 2 (1)
어두운 밤, 맹주전 밖으로 흘러나오는 불빛이 너무 미미했다. 밝은 것을 싫어하는 맹주는 어두운 밤에도 따로 등불을 켜지 않고 종종 탁자 위에 청자서등(靑瓷書燈) 하나만 켜 두곤 했다.
등잔 불빛이 탁자에 앉은 세 사람의 뒤로 기다란 그림자를 만들었다. 세 사람은 맹주 남궁진악과 총군사 사마경, 그리고 부맹주 천계심이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막 보고를 끝낸 기하진이 두 손을 맞잡은 채 공손하게 서 있었다.
맹주가 고개를 들어 부맹주를 바라보았다.
“부맹주께서는 이번 일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부맹주가 ‘흠’하고 길게 소리를 내며 눈살을 찌푸렸다.
부맹주가 미처 답을 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사마경이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맹주님. 초의공이 한 짓은 이적행위입니다. 게다가 용봉단주를 비롯한 단원들에게 검을 들이대다니요, 반드시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사마경이 강경한 어조로 나오자 기하진은 속이 뜨끔했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기하진은 무림맹 수뇌부가 곤륜파를 봐서라도 이번 초의공 일을 크게 문제 삼지 않기를 바랐다. 잠깐 본 것이기는 하나 대협이 사라지는 당금 무림에서 초의공은 대협의 풍모를 갖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무공 실력도 고강했지만 귀면쌍살이라는 적 앞에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생면부지인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걷는 길은 다르더라도 친우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친우의 편에 서던 모습은 기하진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비록 이번에는 부득이 자신과 검을 맞대기는 했지만, 기하진은 초의공에게 진심으로 존경과 흠모의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사람이 좋다고 해서 그 사람의 과오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초의공이 한 행위는 명백한 이적행위, 따라서 무림맹 차원에서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사항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초의공을 징계하자는 얘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초의공이 마교의 장로와 친우라는 사실도 놀라운데 마교의 장로를 돕느라 오히려 우리 편에게 검을 겨누다니요. 마교와 결탁하지 않고야 어찌 그런 짓을 벌이겠습니까? 지금 당장 초의공 그 작자를 무림 공적으로 선포하고 추포해야 한다고 봅니다.”
부맹주도 사마경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항상 서로 반대만 하던 두 사람의 의견이 기하진이 알기로는 처음으로 합치했다.
사실 부맹주도 속으로 꿍꿍이가 있었다. 곤륜파는 아미파와 함께 소림과 무당 다음가는 명문거파(名門巨派)였다. 즉, 청성파가 구대 문파의 수장으로 떠오르려면 소림과 무당에 앞서 반드시 곤륜과 아미를 먼저 제쳐야 했다.
곤륜파는 문파의 본거지가 서역 곤륜산으로 이곳 무림맹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어 맹의 영향이 별로 미치지 않았다. 늘 곤륜파를 제압할 방도를 찾던 부맹주 천계심에게 이번 초의공 사건은 아주 좋은 기회였다. 게다가 초의공은 곤륜파의 간판 인물이 아닌가! 초의공만 쳐낼 수 있다면 곤륜파도 별 볼 일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섰다.
그러자 천계심은 흡족한 마음이 들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맹주 남궁진악은 천계심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를 보더니 천계심 모르게 사마경과 의미심장한 눈짓을 교환했다.
“총군사와 부맹주 두 사람의 의견이 모처럼 일치하는 것 같소.”
“부맹주의 말씀처럼 당장 초의공을 잡아들여 마교와의 관계를 문책하고, 곤륜파에도 무림맹 차원의 징계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평상시 온건한 편인 사마경의 발언이 점점 거세졌다. 사마경의 말에 맹주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한쪽 곁에서 지켜보던 기하진은 세 사람의 이야기에 부질없이 오른손 주먹만 쥐락펴락했다. 생명의 은인인 초의공에 대한 징계가 점점 기정사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 생각에도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닌 듯하외다. 부맹주의 말대로 당장 초의공을 잡아들여 문초하고, 곤륜파 운진자 장문인에게는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물어 당분간 구대문파 수장회의의 참가자격과 발언권을 박탈하도록 합시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예 곤륜파에게 십 년 동안 봉문(封門)을 명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부맹주의 말에 기하진은 깜짝 놀라 부맹주를 쳐다보았다. 봉문이라니, 문파의 문을 닫아걸라는 소리인가? 구대 문파 중에서도 중진 문파에 속하는 곤륜파에게 봉문이라니 그게 가당키나 할까? 무엇보다도 곤륜파에서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 초의공이 비록 잘못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어찌 문파의 문을 강제로 닫게 할 정도란 말인가?
부맹주의 복잡한 정치적인 속셈을 알 길이 없는 기하진은 맹주와 총군사가 당연히 이에 반대하리라고 생각했다. 부맹주야 원래 탐욕스런 사람이지만 맹주와 총군사만큼은 이해심이 깊고 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졌기에 이번 일도 충분히 정상을 참작하리라고 믿었다.
“봉문이라.... 그것도 괜찮겠군요.”
뜻밖에도 사마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맹주의 말에 또 동의했다. 일이 자꾸만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결국 보다 못한 기하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맹주님, 제가 끼어들 자리는 아니지만, 현장에서 초의공을 직접 봤기에 감히 한 말씀 올리고자 합니다.”
기하진의 말에 맹주는 허락하듯이 눈길을 기하진에게 던졌다.
“초의공이 수라검 뢰정의 탈출을 도운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저희가 초의공의 은혜를 입기도 했습니다. 당시 귀면쌍살이 곤륜 제자를 핍박하자 저와 남이 대원은 참다못해 결국 귀면쌍살과 손을 섞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귀면쌍살의 무공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 저와 남이 대원은 전력을 다했지만 결국 심각한 상처를 입고 말았습니다. 그때 초의공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곤륜 제자 두 명뿐만 아니라 저와 남이 두 사람도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초의공은 단지 기하진과 남이 두 사람을 구한 것이 아니라 무림맹의 용봉단주와 용봉단원을 구한 것이니 무림맹에 공을 세웠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뢰정은 비록 적이기는 했지만, 당시 제가 내상을 입어 꼼짝 못 할 때 초의공을 도와 귀면쌍살의 손에서 저희를 잠시 지켜주기도 했습니다. 초의공이 마교의 인사를 도운 것은 잘못이나 워낙 사귄 지 오랜 벗이라 정리(情理)상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부디 이 점을 참작하시기 바랍니다.”
기하진이 조심스러웠지만 현장의 상황을 자세히 얘기했다. 기하진의 성격상 맞는 것은 맞는 것이요, 아닌 것은 아니었다. 뢰정이 비록 마교 인사이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그가 잘한 것까지 잘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초의공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과오는 분명히 있지만, 또한 공도 있으니 그 둘을 동등하게 놓고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공정함이 있어야 무림맹이 내린 결정을 모든 사람이 신뢰하리라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정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야말로 순진한 발상이었다.
기하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번에 부맹주의 질책이 이어졌다.
“기 단주는 지금 제정신이오? 맹주님 앞에서 지금 마교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을 어찌 입에 담을 수 있단 말이오? 그게 자랑이오?”
부맹주의 신랄한 질책에 기하진은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그, 그게 아니라....”
“시끄럽소! 그리고 애당초 귀면쌍살에게 곤륜파 제자가 살해된 이유가 무엇이오? 바로 초의공이 몰래 마교와 내통하느라 제자들만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 아니오? 일의 발단은 사실 초의공 그 작자이거늘, 어찌 그를 두둔한단 말이오?”
계속되는 부맹주의 말에 기하진은 등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그때까지 별말 없이 듣고만 있던 맹주 남궁진악이 기하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부맹주의 말씀이 옳다. 용봉단주는 지금 즉시 전 무림에 마교와 내통한 죄로 곤륜파 초의공을 추포한다는 공지를 돌리고, 초의공을 잡아라. 그리고 총군사께서는 곤륜파 장문인에게 내 뜻을 전달하고 부맹주의 말씀처럼 십 년간 봉문하라 이르시오. 만약 이를 듣지 않을 시에는 무림맹 차원에서 엄히 처단한다 이르시오.”
“존명!”
기하진과 사마경이 고개를 숙이며 맹주의 명을 받았다.
결국 곤륜파 봉문이라는 결정이 내려지자 기하진은 믿을 수가 없어 넋 잃은 표정으로 잠시 맹주와 총군사 사마경, 부맹주 천계심을 쳐다보았다. 천계심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대놓고 드러냈지만 놀랍게도 맹주와 총군사의 표정마저도 나쁘지 않았다. 그 모습이 낯설어 저 사람들이 자신이 알던 사람들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하진은 문득 초의공이 무림맹으로 체포되어 온다면 그 안위를 보장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맹주전의 문을 조용히 닫고 나가는 기하진의 마음이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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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린은 정신이 들자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여기가 어딘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자신의 기억으로는 천옥랑과 일봉의 비무를 보러 시비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군가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들어 살피려는 순간, 정신을 잃은 듯한데, 깨어나 보니 낯선 곳에 있었다.
‘납치를 당한 것인가?’
그러고 보니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었고 손발은 묶인 채였다. 그 상태로 얼마나 지났는지 손발에 감각이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빛이 전혀 들지 않아 사물을 식별할 수는 없었지만 어디선가 오래된 책 냄새가 났다.
눈이 어둠에 익을 때까지 임예린은 자신이 어째서 납치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누가 나를 납치했을까? 그것도 간도 크게 감히 임가장 안으로 들어와서 나를 납치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때 문득, 하필이면 공교롭게도 천옥랑이 일봉을 데리고 비무를 벌일 때 사단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일봉은 자나 깨나 자기 옆을 떠나지 않는다. 잠시 일이 있어 떠나더라도 결코 오래 있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일봉이 자기 곁에 없거나 떠날 줄 알았던 사람의 짓일 가능성이 컸다.
‘혹시 천 공자와 관계된 것은 아닐까? 천 공자와 관계있다면 이건 필시 부맹주와 관련이 있을 텐데...!’
조금만 더 생각해 보니 지난번 표물 사건으로 부맹주가 분노했으리라는 짐작은 금방 할 수 있었다. 혹시 그래서 일의 실패를 우리 상단에 묻고 아버지를 협박해서 다시 돈을 뜯어내려고 그런 것이 아닐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확신이 들었다. 이번 일은 부맹주가 꾸민 일이 분명하다. 설마 무림맹 부맹주라는 사람이 파렴치하게 사람까지 납치하다니!
임예린은 분한 마음이 들다가 돌연 피식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자기 아버지의 팔을 비틀어 백만 냥도 넘는 거금을 당당하게 요구했던 사람이다. 그 금액을 만들지 못한다면 임가장의 모든 사람을 죽여버리겠다고 대놓고 협박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납치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아닐까? 어쩌면 사람을 죽이는 것도 마다치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자신은 무림맹 부맹주라는 직함 때문에 여태껏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보지 못했다. 그래도 정도 무림의 본산인 무림맹의 부맹주이니 욕심이야 있을지언정 인명을 해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동안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직도 우물 안의 개구리요, 새파란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 생각이 들자 임예린은 쓴웃음을 지었다.
시간이 지나 어둠에 눈이 익기 시작하자 임예린의 눈에 벽에 걸린 검 두 자루가 눈에 들어왔다. 한 자루는 검과 검집이 분리된 채, 한 자루는 검집에 넣은 채 벽에 걸려 있었다.
잘 벼린 검날이 어둠 속에서도 섬뜩한 빛을 뿜어냈다. 그 모습을 보자 임예린은 저도 모르게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들어서면 저 검을 들어 자신을 내려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도망쳐야 해!’
지난 일 년간, 일봉에게 혼나면서 무공을 익혀서인지 손발이 묶여있기는 했지만 한참을 시도하니 움직일 수는 있었다. 임예린은 발목이 묶인 채 종종걸음으로 벽에 걸린 검에 다가가 칼날에 손목을 감은 밧줄을 갖다 대고 문질렀다. 칼날이 워낙 예리해서 몇 번 문지르지 않아 밧줄이 툭 끊어졌다. 다행이었다.
임예린은 얼른 허리를 굽혀 팔에 묶인 밧줄도 풀고 재갈도 벗었다. 얼굴을 검에 가까이 대고 보니 그제야 검집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진 ‘남천(南天)’,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남천이라....’
곰곰이 생각해보던 임예린의 머릿속에 부맹주가 곤명도로 아버지를 불러 협박할 때, 남천단주라는 사람이 부맹주를 수행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제야 모든 사실이 분명해졌다. 자신을 납치한 사람은 무림맹 남천단의 단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잠시 남천단의 소굴에 가둬 둔 것이 분명했다. 주위가 쥐 죽은 듯 조용한 것으로 봐서 아마도 이곳은 무림맹 내에서도 외부 사람은 절대 오지 않는 아주 외진 곳이 틀림없다.
‘절대 당신들 뜻대로 해줄 수는 없지!’
임예린은 오만방자한 부맹주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혹시 경계를 서는 자가 있을지도 모르므로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움직여 문을 열었다. 문밖은 어두운 통로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통로에는 아무도 없었고 쥐죽은 듯 조용했다.
이곳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도망치려면 일단 움직여야 했다. 임예린은 혹시라도 누가 들을까 최대한 발소리를 죽여 조심조심 움직였다. 한참을 걷다 보니 앞에 다시 문이 하나 나왔다.
‘여기가 나가는 문일까?’
임예린은 문밖에 누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했지만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정적을 깼다. 문을 열자 오래된 책 냄새가 물씬 풍겼다.
‘서고인가?’
임예린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서고에는 커다란 서가가 줄지어 있었고, 각종 고서(古書)들이 줄지어 꽂혀 있었다.
임예린이 꽂혀 있는 책의 종류를 살펴보려고 고개를 돌리는데 갑자기 허공에서 허연 손가락 다섯 개가 불쑥 나타나더니 단박에 임예린의 목을 움켜잡는 것이 아닌가!
“헉!”
순식간에 목이 붙잡힌 임예린이 컥컥거리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그 상황에서도 임예린은 자신의 목을 붙잡은 손가락의 느낌이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손가락은 뱀장어처럼 매끈했고 얼음물을 끼얹은 듯 차갑기 그지없었다.
“누구냐?”
남자의 소리도 아니요, 여자의 소리도 아닌 기묘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울려 나왔다. 어둠 속에서 얼핏 고양이 눈 같은 노란 눈동자 두 개가 보였다.
“흥! 무공도 모르는 것이로구나.”
돌연 자신의 몸이 허공에 붕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임예린은 바닥에 부딪혔지만 너무 놀라서 아픈 것도 몰랐다.
바닥에 쓰러지고 나서야 자신을 붙잡았던 사람의 윤곽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풍성한 치마와 넓은 소매,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보이는 하얀 손, 여인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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