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세일소-53화 (53/201)

#   53 - 광세일소_한추영 - 1292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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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2화. 곤륜검객 초의공 (1)

“사형, 조심해요!”

곤륜파 제자들은 대사형이 위기에 처하자 두 사람이 동시에 수평으로 몸을 날리며 귀면쌍살의 양 옆구리를 찔러 들어갔다.

그러나 그다음 순간, 두 사람은 모두 각각 가슴과 등에 일장을 맞고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아무도 귀면쌍살이 언제, 어떻게 손을 썼는지 알지 못했다. 장에 맞은 부위가 시뻘겋게 부풀어 오르고 내상을 입은 듯 입가에서는 시큼털털한 피 맛이 났다.

“사제! 사매!”

소일기는 추성학과 심미방이 동시에 나가떨어지자 고개를 돌리며 두 사람을 다급하게 불렀지만 정작 달려가서 두 사람의 상처를 살펴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소일기는 자꾸만 떨리는 손에 억지로 힘을 주며 귀면쌍살을 바라보았다. 눈앞의 귀면탈이 자신을 바라보며 싱긋 웃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저승사자의 표정이 저럴까? 아니면 지옥에서 올라온 야차의 인상이 저럴까? 소일기는 귀면쌍살을 바라보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지만 한번 떨리기 시작한 손은 진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귀면쌍살이 느긋하게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말했다.

“곤륜파 제자가 이 정도밖에 안 되다니. 운진자 늙은이가 보면 땅을 치며 통탄하겠군.”

운진자는 곤륜파의 현 장문인이었다. 소일기는 자신이 무능하여 장문인에게까지 누를 끼치자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게다가 사제와 사매가 크게 다쳤다. 어떻게 해서든지 두 사람은 구해야 했다.

소일기는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내뱉었다. 나는 곤륜파의 대제자다.... 구차하게 살기를 바라지 말고 사문을 위해 당당히 목숨을 바치자. 그렇게 생각하니 돌연 가슴 한구석에서 뜨거운 기운이 치솟으며 용기가 났다.

“귀면쌍살, 용서치 않겠다.”

소일기가 발로 땅바닥을 박차더니 신룡처럼 몸을 날리며 귀면쌍살을 곧장 찔러 들어갔다. 바로 태허도룡검 일초였다. 귀면쌍살은 소일기가 이를 악물고 덤벼들자 의외라는 듯 나지막한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래도 구대문파의 제자라는 거냐? 썩어도 준치이긴 하구나.”

귀면쌍살은 허리를 살짝 구부려 소일기의 공격을 피한 뒤에 번개같이 좌장을 뻗어냈다. 그동안 앞길이 창창한 구대문파 후기지수 십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절명장(絶命掌), 바로 철산장법이었다.

‘소일기가 저 장을 받으면 절대 살아날 수가 없다.’

기하진은 두 번 생각해보지도 않고 즉시 쌍장을 펴서 강맹한 손바람을 일으키며 귀면쌍살의 배후를 공격해 들어갔다. 바로 무림맹주 남궁진악의 또 다른 절기, 파옥장(破玉掌)이었다. 웅혼한 중양신공이 바탕이 된 파옥장은 말 그대로 옥을 쪼갤 듯이 귀면쌍살의 등줄기를 후비며 파고들었다.

귀면쌍살은 소일기의 목숨을 거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돌연 자신의 등으로 날카로운 기세가 다가오자 대경실색했다. 장풍을 내쏜 사람은 다름 아닌 기하진. 절대 그냥 무시해도 좋은 공격이 아니었다. 귀면쌍살은 소일기를 공격하던 장을 거두는 즉시 몸을 돌려 기하진의 쌍장을 받아냈다.

펑! 귀면쌍살의 몸이 크게 흔들리고, 기하진은 다섯 발자국이나 뒤로 물러섰다.

귀면쌍살은 기하진을 향해 냉랭하게 내뱉었다.

“기 단주의 무공이 제법이기는 하나 아직은 내게 부족할 텐데 굳이 목숨을 걸겠는가?”

그 말에 기하진이 양손에 다시 공력을 모으며 말했다.

“부족해도 걸 때는 걸어야 하는 법이오. 귀면쌍살, 오늘 내 손아귀를 벗어날 생각은 하지 마라.”

기하진의 손 주위로 다시 시퍼런 한기가 맺히며 기하진의 손이 투명한 유리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파옥장을 시전하려는 것이다.

“가소롭기 짝이 없군. 내 그래도 기 단주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했건만 굴러들어온 복을 스스로 차버리다니. 이제 나도 더는 봐주지 않겠다.”

귀면쌍살의 장이 시커멓게 물드는가 싶더니 강맹한 장력이 기하진의 상반신을 때리며 공격해 들어왔다. 해일 같은 거대한 기운이 사납게 몰아쳐 오는데 상하, 좌우 어디로도 달아날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피할 수 없다면 무조건 받아내야 하는 것이다.

휘몰아쳐 오는 장풍을 바라보자 머릿속에 뜨끈한 피가 한데 모이는 기분이 들었다. 기하진은 철산장을 받아내려고 다시 한번 파옥장을 전개했다.

아뿔싸!

장이 서로 부딪히는 순간, 기하진은 파옥장으로는 도저히 귀면쌍살의 철산장을 버텨낼 수 없음을 깨달았다. 산을 부수고 둑을 무너뜨리듯 범람하는 철산장의 기세에 자신의 손목은 금방이라도 꺾여버릴 것만 같았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났다.

‘장세를 소진시켜야 해.’

기하진은 정신을 고도로 집중하여 자신의 손에 귀면쌍살의 손바닥이 부딪히는 순간, 절정의 경공을 구사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 방법만이 귀면쌍살이 내지른 장법의 기세를 소멸할 수 있었다.

크게 원을 그리며 뒤로 물러서는 기하진은 마치 등 뒤에 눈이라도 달린 듯, 뒤로 물러서면서도 조금도 속도를 늦추거나 다리가 엉키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일기와 곤륜파 제자들은 기하진의 놀라운 경공에 입을 벌리고 다물지 못했다. 곤륜파의 절정 경공신법인 운룡대팔식과 견주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놀라운 경공신법이었다.

순식간에 2층 누각을 대여섯 바퀴나 돈 기하진은 귀면쌍살의 장법이 마침내 다 소멸하자 곧장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꺼내 들었다.

“장법은 이미 겨루었으니 이번에는 검으로 공격하겠소.”

기하진이 말과 함께 일검을 내찔렀다.

휘리릭, 검이 곧장 귀면쌍살의 안면을 찔러 들어갔으나 보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은 검은 보이지 않고 새하얀 검광만 번쩍, 하고 눈앞에 보일 뿐이었다.

바로 맹주 남궁진악의 개세절학인 창궁무애검법이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웅혼한 검기가 거침없이 빗살처럼 촤르르르 퍼져나갔다.

“창궁무애검이라.... 흥, 네놈은 정말 운 하나는 끝내주게 좋은 놈이로구나.”

귀면탈 뒤에서 쇠를 긁는 듯 듣기 거북한 목소리가 울렸다. 기하진이 무림 3대 신공 중 최고 무공이라는 중양신공에 이어, 무림맹주의 진산절기인 창궁무애검과 파옥장까지 시전하자 하는 소리였다. 어쩐지 귀면쌍살의 목소리에 시샘과 질투가 잔뜩 서려 있었다.

귀면쌍살이 휘두른 검이 기하진의 검날에 부딪치면서 웅, 하고 울리며 낮게 깔리는 종소리를 냈다. 귀면쌍살의 무공 중에는 철산장이 제일 무섭기는 하지만 압도적인 공력을 바탕으로 뻗어내는 검술도 가히 신의 경지라고 할 만했다.

기하진의 검이 검광을 뿌리면서 십여 군데를 차례로 찔러 들어갔다. 공격의 전환이 얼마나 빠른지 몸놀림이 그야말로 전광석화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귀면쌍살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일일이 검을 들어 기하진의 공격을 해소했다.

소일기는 그 광경에 넋이 나가 검을 들고 한쪽에 멍청히 서 있을 뿐이었다.

“소 소협, 뭘 하시오? 협공합시다. 어서 공격하시오!”

전력을 다해 귀면쌍살과 맞서던 기하진은 소일기의 모습에 답답한 나머지 소리를 질렀다. 기하진 혼자서는 절대 귀면쌍살을 상대할 수 없었다.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는데 정작 도움을 줄 수 있는 소일기가 넋이 나가 있자 마음이 급해진 것이다.

그제야 소일기도 정신을 차리고 다시 태허도룡검을 운용해서 귀면쌍살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무위가 너무 차이가 나고, 이미 소일기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가득해서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싸움은 자연히 다시 귀면쌍살과 기하진 간의 결투로 국한되었다.

기하진은 지금 사력을 다해 맞서고 있으므로 앞으로 일이 각쯤은 더 버틸 수 있겠지만 그 이후로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만 같았다.

‘젠장, 그렇다면...!’

기하진은 그동안 드러내지 않았던 천마신검을 써보기로 했다. 천마신검은 내력이 부족하여 아직 4단계에서 전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검법의 위력만큼은 창궁무애검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기하진이 천마신검을 시전하기 위해 공력을 모으니, 곧바로 머리에서 찜통처럼 증기가 모락모락 치솟기 시작했다. 천마신검은 전신을 태울 만큼 뜨거운 열양화기(熱陽火氣)를 바탕으로 하는데 체내의 수기로 이를 중화해야 했다. 기하진이 지난번에 주화입마에 빠진 것도 바로 이 열양화기를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관건은 이 화기를 과연 다스릴 수 있느냐에 달려있었다.

기하진의 검법이 변하더니 돌연 검에서 뜨거운 열기가 폭사되자 귀면쌍살은 그 열기에 놀라 다급히 서너 보 뒤로 물러섰다.

“이, 이것은 천마신검(天磨神劍)이 아니냐!”

“백여 년 전에 실전된 무공을 알아보다니, 과연 식견 하나만큼은 놀랍기 짝이 없구나. !”

무림 3대 신공 중의 하나라는 천마신검은 오십 년 전 무림맹주가 혼세마검으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이 검법이 다시 강호에 나타난 이상, 천마신검으로 부르는 것이 더 타당했다.

“네놈 공력으로는 아직 이 검법을 익힐 수 없을 텐데, 어찌...?”

귀면쌍살의 말에 기하진은 부쩍 의구심이 들었다. 백여 년 전에 실전된 무공을 단박에 알아보는 것도 수상했지만, 자신이 천마신검을 수련하다가 주화입마에 들어 수련을 중단한 것은 무림맹 내에서도 극소수만 아는 비밀이었다. 그런데 귀면쌍살은 마치 그 사실을 아는 것처럼 말하지 않는가? 어떻게 된 것일까?

기하진이 천마신검을 펼치자 귀면쌍살도 이를 경시하지 못하고 신중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기하진의 검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뜨거운 열풍이 불어닥쳐 누각의 바닥이며 기둥을 새카맣게 태웠다.

“천마검이 무림일절이라고 하더니 과연 신묘하구나. 내 철산장과 비교할 만하구나.”

귀면쌍살은 기하진의 천마신검이 자못 놀라운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기하진과 귀면쌍살은 다시 수십 초식을 싸웠다. 기하진은 점점 내력이 이어지지 않고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천마신검은 내력 소모가 엄청난 검법이었다.

기하진은 절세 내공심법인 중양신공을 얻기는 했지만 소주천 행로만 알뿐, 진정한 상승 내공심법인 대주천 행로는 아직 얻지 못해서 공력의 질적 변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천마신검을 운용하다 보니 중양신공 소주천으로 얻은 내력마저도 마침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기하진의 초조한 마음을 눈치챈 듯 귀면쌍살이 입가에 조롱기 가득한 미소를 띠었다.

“그러게 아까 내 제안을 무시하지 말았어야지. 안 그런가, 기 단주? 크하하하하.”

귀면쌍살의 검이 파르르 떨리며 기하진을 공격해왔다. 기하진은 귀면쌍살의 검을 가까스로 막아내긴 했지만 연이어 공격할 뒷심이 이어지지 않아 검을 내리고 귀면쌍살을 노려보았다. 여유로운 귀면쌍살과는 달리 기하진의 얼굴은 온통 땀 범벅이었고, 입에서는 거친 숨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귀면쌍살은 그 모습에 다시 광오한 웃음을 터뜨리더니 곤륜파 제자들 쪽으로 성큼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전에 이놈들부터 끝장을 낼 테니 기 단주는 푹 쉬고 있게나.”

귀면쌍살의 말에 소일기가 깜짝 놀라 사매와 사제 앞을 막아섰다.

“우, 우리를 어, 어떻게 하려는 게냐?”

소일기는 겁에 질린 나머지 말을 더듬었다. 대곤륜파의 제자라는 자신만만한 태도는 이제는 찾으려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모습에 귀면쌍살이 가소롭다는 듯 내뱉었다.

“네놈에게는 내 검이 아깝구나.”

귀면쌍살이 소일기에게 손가락을 튕겼다. 돌연 푸른빛이 번쩍 하나 싶더니 쇠털보다 더 작고 가는 침 하나가 쏜살같이 소일기를 향해 날아갔다.

“안돼!”

마침 소일기 뒤에 쓰러져 있던 소일기의 사제, 추성학이 우모침을 발견하고 온몸을 날려 소일기를 감싸 안았다. 우모침은 즉시 추성학의 등에 박혀 들어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침을 맞은 부위가 시커멓게 변하기 시작했다.

“성학아!”

자신 대신 사제가 우모침을 맞자 소일기는 깜짝 놀라 목청을 다해 사제의 이름을 불렀다.

“정신 차려. 성학아! 정신 차려!”

추성학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온몸에 경련이 일었다. 그 모습에 소일기가 다급하게 추성학을 잡고 흔들었다. 귀면쌍살의 우모침에는 극독이 발려 있었다. 추성학은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독침까지 맞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소일기를 한번 쳐다본 뒤 스르르 눈을 감고 말았다.

“사...형...!”

“성학아!”

소일기가 추성학의 이름을 부르다가 귀면쌍살을 노려보았다.

“이 천인공노할 악마야. 내 사제가 무슨 잘못이 있어서 그토록 악독한 수를 쓴단 말이냐!”

소일기가 악을 바락바락 쓰며 귀면쌍살에게 대들자 귀면쌍살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리석은 사형을 둔 잘못이지.”

귀면쌍살이 또다시 손을 번쩍 쳐들었다. 저 손이 떨어지는 순간, 소일기와 소일기의 사매 심미방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기하진은 내력이 이어지지 않아 괴로웠지만 도저히 그냥 묵과할 수는 없었다. 온몸에 남은 잔존지기를 모아 한쪽 팔에 싣고는 벼락 치듯 귀면쌍살을 공격해 들어갔다.

귀면쌍살은 단칼에 소일기와 심미방을 끝내버리려다가 기하진의 공격에 다시 급하게 몸을 피해야 했다.

“아직 네 차례가 아니라는데 왜 이렇게 서두는 게냐? 이런다고 너희 중 한 놈이라도 내 손아귀에서 달아날 성싶으냐?”

귀면쌍살의 이야기에 기하진은 이를 으드득 갈았다. 오만한 말이기는 했지만,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어차피 무림은 약육강식의 세계. 실력이 떨어지는 자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기하진이 혼신의 힘을 다해 귀면쌍살의 우측 측면을 공격해 들어갔다. 설령 이 공격으로 귀면쌍살에게 아무런 타격을 입히지 못하더라도 곤륜파 제자 한 명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그때 돌연 바깥에서 누군가 물찬 제비처럼 2층 누각의 창문을 넘어오더니 기하진의 출검과 맞추어서 귀면쌍살의 좌측 측면을 공격해 들어갔다. 검에 흐르는 웅혼하고도 장대한 기운. 바로 아미복마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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