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 광세일소_한추영 - 1288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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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1화. 몰려오는 먹구름 (5)
“산당루(山塘樓)... 여긴가?”
이름처럼 수로 옆에 자리 잡은 한 고색창연한 주루를 올려다보던 기하진이 성큼성큼 주루 안으로 올라갔다.
기하진은 맹주의 명을 받고 마교의 수라검 뢰정을 추격하다가 소주(蘇州)까지 오게 되었다.
마침 이슬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어서 물의 도시 소주의 정취가 한껏 느껴지는 날이었다. 주루 바로 아래를 지나가는 수로에서 물안개가 올라와 더욱 운치를 더해 주었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은 술 한 잔 생각이 절로 간절해지는 법이다. 기하진은 점소이에게 고량주 한 병과 동파육 한 접시를 시키고 구석진 창가에 앉았다.
용봉단 전체를 동원하여 뢰정을 추격하던 기하진은 산동지역에서 뢰정의 흔적을 발견하고 용봉단을 두 패로 나누어 은밀히 뒤를 쫓았다. 한 무리는 자신과 같이 움직이고 다른 한 무리는 조장격인 남이가 이끌고 뢰정을 추격했다.
그러다 얼마 전 남이에게서 뢰정의 위치를 파악했으며 소주의 산당루에서 만나자는 기별이 왔다.
몇 날 며칠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추격을 벌이던 기하진은 모처럼 망중한(忙中閑)을 느꼈다. 이렇게 혼자서 앉아서 자작하는 것도 나름 꽤 괜찮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때 계단 쪽에서 소리가 나더니 무림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올라왔다.
“사형, 사숙께서 금방 오시겠죠? 사부님께서 절대 사숙님과 떨어지지 말라고 했는데 사숙께서는 어디를 그렇게 몰래 가셨대요?”
여인이 무리 중 첫째에게 물었다. 질문을 받은 청년은 덩치가 건장하고 각 잡힌 얼굴에 두 눈썹이 짙었다.
“사매는 겁이 너무 많아서 탈이야. 대 곤륜파 제자가 그렇게 겁이 많아서 쓰나? 귀면쌍살이 뭐가 무섭다고 그래? 다른 문파 제자들이 그놈에게 당한 것은 그만큼 실력이 부족해서지. 그러나 생각해봐. 뇌전벽력검(雷電霹靂劍)과 태허도룡검(太虛屠龍劍)을 6단계까지 연공한 우리가 귀면쌍살에게 설마 지겠어?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무려 세 명인데? 안 그래, 사제?”
첫째의 자신만만한 말투에 사제라고 불린 청년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사형. 사매는 실전경험이 별로 없어서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모르나 봐요. 사실 사매 정도의 무공이면 강호 후기지수들 중에서는 적수를 찾기가 어려운데 말입니다.”
“그러게나 말이야. 자, 자신감을 좀 가지라고!”
첫째가 사매의 어깨를 톡톡 치며 자리에 앉았다.
“그럼 배나 좀 채워볼까? 점소이?”
기하진은 곤륜파 제자라는 세 사람의 얼굴을 힐끗 보며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듯한 걸 보니 이자들이야말로 애송이가 분명하다. 곤륜파의 누구기에 이렇게 자신감이 대단한 걸까?
이자들의 말대로 곤륜파 양대 무공인 뇌전벽력검과 태허도룡검을 6단계까지 연마했다면 상당한 실력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제 입으로 자랑스럽게 떠벌이는 것을 보면 십중팔구 아직 6단계까지 오르지 않았을 것만 같았다. 설마 이자들을 노리고 진짜 귀면쌍살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겠지?
무림맹은 최근 귀면쌍살이 구대문파의 후기지수들만 노리고 살인 행각을 벌이자 후기지수들은 각 문파의 장로급 이상의 고수가 동행하지 않을 시에는 움직임을 자제하라는 전통문을 구대문파에게 발송했다.
그러나 사실 피 끓는 젊은이들에게 죽을지도 모르니 문파의 대문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말은 차라리 숨을 쉬지 말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패기 넘치는 후기지수들은 겁도 없이 차라리 귀면쌍살과 한번 붙어보겠다고 큰소리를 탕탕 쳐댔다.
지금 누각에 있는 곤륜파 제자들도 그런 무리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되자 기하진은 굳이 통성명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사실 강호에는 나이를 떠나 자신의 무공실력 하나만 믿고 철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제 강호 경험을 제법 한 기하진은 그게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생각인지 잘 알았다.
기하진은 세 사람에게는 무관심한 척 자신의 술잔을 비웠다. 제 자랑질을 하느라 한참 떠들던 곤륜파 제자들도 혼자 앉은 기하진을 힐끗 쳐다보았다. 검을 차고 있는 기하진의 모습이 그들의 눈길을 끌었으리라.
잠시 후 누각에는 다른 손님들이 몇 명 더 올라왔고, 곤륜파 제자들과 기하진도 더 이상 서로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창밖의 이슬비가 조금 굵어진 듯했다.
‘남이가 생각보다 늦는군.’
남이는 용봉단에서 자신의 지휘를 받는 일개 단원이었다. 물론 남이의 무공실력으로 봤을 때 평범한 단원으로 두기에는 너무 아까웠지만 그렇다고 자리를 남발할 수도 없었다.
기하진은 문득 이전에 요혜신니가 남이를 잘 봐달라고 부탁하던 일이 떠올랐다. 그냥 ‘예 알겠습니다’라고 하면 될 것을, 그때는 괜히 요혜신니에게 억하심정이 생겨서 말이 곱게 나오지 않았었다.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생각이 들면 기하진은 괜히 남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일부러 더 신경을 쓰곤 했다.
그때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는 기척을 느꼈다. 분명히 누군가 올라오고 있는데 유령이라도 되는 듯 계단을 밟는 발걸음 소리는 전혀 나지 않았다. 무공이 범상치 않다는 뜻이었다. 기하진은 자신도 모르게 검 자루를 움켜쥐고 계단 쪽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커다란 방갓을 쓴 제법 키가 큰 사람이 성큼성큼 걸어서 올라오더니 곤륜파 제자가 앉은 탁자의 맞은편에 탁, 소리를 내며 앉았다.
그 사람을 보는 순간, 기하진은 온몸의 떨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귀면쌍살?’
귀면쌍살이 분명했다. 이미 몇 차례 귀면쌍살을 만나본 기하진은 기세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귀면쌍살은 기하진을 등지고 있어서 기하진의 얼굴은 보지 못한 듯했다.
“점소이, 여기 고량주 한 병 하고 삶은 쇠고기와 돼지고기 각 한 접시씩 가지고 오너라.”
귀면쌍살이 방갓을 벗지도 않고 점소이에게 주문을 했다. 점소이는 두 손을 비비며 귀면쌍살 옆으로 다가와서 굽신거렸다.
“손님, 마침 저희 가게에 쇠고기가 딱 떨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자 귀면쌍살이 탁자를 쾅 내리치며 소리를 쳤다.
“주루에 쇠고기가 없는 게 말이 되느냐? 쇠고기가 없으면 소를 잡아서라도 가지고 와.”
귀면쌍살이 강짜를 부렸다. 아마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는 수작인 듯했다.
그러나 정작 점소이만 애꿎게 되었다.
“손님, 지금 어떻게 소를 잡습니까요? 그러지 마시고 닭고기로 드시면 안 되겠습니까?”
점소이가 억지 미소를 띠며 이렇게 얘기하자 귀면쌍살은 돌연 한 손을 내밀어 점소이의 멱살을 잡더니 번쩍 공중으로 쳐들었다. 멱살이 잡힌 점소이는 숨이 막혀 발을 버둥거렸다.
“쇠고기가 없다고? 건너편 저 탁자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게 쇠고기가 아니고 무엇이냐? 그런데 내게는 없다고 감히 거짓말을 하는 것이냐?”
“아이고, 손님. 저분들이 주문하신 게 마지막이었습니다요.”
점소이는 목이 막히는지 꽥꽥거렸다. 그러자 귀면쌍살이 점소이를 그대로 곤륜파 제자들이 앉은 탁자로 던지며 말했다.
“그럼 가서 그 접시는 내게 양보하라고 전해라.”
곤륜파 제자 중 첫째는 귀면쌍살이 가뜩이나 점소이를 희롱하자 화가 나던 참에 자신들에게까지 시비를 걸자 분을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그때 귀면쌍살이 던진 점소이가 자신들의 탁자 위로 날아오자 첫째가 손을 내밀어 점소이를 잡았지만 날아오는 기세가 워낙 거세어서 점소이는 그만 탁자에 부딪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탁자 위의 술과 음식이 모두 바닥으로 쏟아져 엉망이 되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자리를 피했다.
“이게 무슨 짓이오?”
첫째가 귀면쌍살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하하하. 곤륜파는 원래 벽곡과 채식만 하는 도인들인데 육식을 해서야 되겠소? 내 그대들을 돕기 위해 호의로 그런 것인데 어찌 그렇게 화를 내시오?”
그 말을 듣자 곤륜파 제자들은 더욱 기세가 살아 소리쳤다.
“우리가 대곤륜파 제자인 줄 알고서도 감히 우리를 희롱하다니 도저히 묵과할 수 없구나! 네놈은 누구냐? 방갓을 쓰고 다니는 걸 보니 네놈도 귀면쌍살 흉내나 내는 놈이냐?”
한쪽 구석에서 사태를 관망하던 기하진은 자신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갔다. 곤륜파 제자 세 명의 목숨이 위태로웠다. 비록 맹주가 귀면쌍살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했지만, 자신의 눈앞에 귀면쌍살이 나타난 이상 관여 안 하기는 어려웠다.
그때 계단에서 또 누군가 올라왔다. 기하진이 바라보니 이번에 올라온 사람은 다름 아닌 남이였다.
남이는 2층 누각에서 벌어진 소동에 놀란 듯했으나 재빨리 기하진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귓속말로 속삭였다.
- 뢰정을 찾았어요. 여기서 삼십 리 정도 떨어진 곳이에요. 누군가와 만나기로 한 것 같아요. 우리 단원들이 모습을 감추고 감시하고 있지만 빨리 가지 않으면 놓칠 수도 있어요.
무림맹의 첩보망에 의하면 뢰정이 중양일지의 하반부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즉시 가서 뢰정을 잡지 않으면 중양일지를 되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맹주의 명을 또 한 번 어기는 것이 된다.
기하진은 자신이 맹주의 제자가 된 이후로 아직 이렇다 할 공적을 세우지 못한 터라 이번만큼은 꼭 공을 세우고 싶었다.
그때 챙, 하고 검이 검집을 빠져나가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곤륜파 제자들이 참지 못하고 검을 빼 든 것이다.
“흥, 네놈 성격이 급한 걸 보니 곤륜파 대제자 소일기라는 놈이 분명하겠고, 뒤에 있는 놈들은 누구냐?”
소일기는 방갓을 쓴 사내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적지 않게 놀랐다. 그러자 사제가 나서며 소리쳤다.
“나는 대곤륜파 장문인의 사제이신 운양진인의 수제자 추성학이고, 이쪽은 내 사매 심미방이다. 이제 네놈의 정체를 밝혀라!”
그러자 방갓 사내가 껄껄껄 웃었다.
“네놈들 입으로 다 얘기해놓고 뭘 또 물어보는 게냐?”
그 소리에 추성학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정말 귀면쌍살?”
“하하하. 내 위명이 그토록 높은지는 내 미처 몰랐구나. 그새 나를 사칭하는 놈들이 많아진 모양이지? 크하하하하.”
귀면쌍살이 방갓을 벗자 과연 그 안에서 귀면탈이 모습을 드러냈다.
“뇌전벽력검(雷電霹靂劍)과 태허도룡검(太虛屠龍劍)을 6단계까지 연공한 실력이 어떤지 한 번 볼까?”
그 말에 곤륜파 여제자 심미방이 깜짝 놀라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 그걸... 어떻게...?”
기하진도 의아했다. 귀면쌍살이 나타나기도 전에 곤륜파 제자들이 한 말을 귀면쌍살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러나 다시 곰곰 생각해보니 귀면쌍살은 원래부터 곤륜파 제자들을 노리고 계속 뒤쫓아온 것이 분명했다. 곤륜파 제자들이 주루에 올라가는 것을 확인한 뒤 잠시 주변 상황을 살피다가 모습을 드러냈으리라.
기하진은 그렇다면 자신을 못 봤을 리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끝까지 자신을 모르는 척하는 것은 자기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일종의 신호리라.
“오냐, 곤륜파의 검법이 어떤지 보여주마.”
소일기는 검을 뽑아 들고 귀면쌍살을 찔러 들어갔다. 추성학과 심미방도 양옆에서 나란히 서서 검을 들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2층 누각에서 식사를 하던 사람들은 난데없이 칼싸움이 벌어지자 놀라서 허둥지둥 내려가고 점소이도 사색이 되어 계단을 구르듯 내려갔다.
-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단주?
남이가 기하진에게 은밀하게 물었다. 귀면쌍살이 기하진과 친하던 백무결의 원수라는 사실을 잘 알았지만 지금 즉시 뢰정을 쫓아가지 않으면 놓칠 수도 있었다.
- 너는 용봉단원을 모두 데리고 즉시 돌아가 뢰정을 감시하도록 해.
- 단주님은?
- 난 여기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 그리고 저자는 네가 아미파 제자라는 사실을 알면 절대 그냥 보내려고 하지 않을 거야.
그 말에 남이의 어깨가 움찔했다.
- 빨리 가.
기하진이 남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남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공기의 흐름이 빨라지며 서늘한 기운이 들더니 뭔가가 남이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허공 중에 푸른빛이 얼핏 스치는 것이 암기가 분명했다. 남이가 깜짝 놀라며 손으로 잡으려고 하자 기하진이 남이에게 소리쳤다.
“안돼! 잡지 마!”
기하진이 급히 자신의 탁자에 있던 빈 술대접을 던졌다. 술대접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날아가더니 남이의 목을 향해 날아가던 우모침을 정확하게 막아냈다.
“빨리 가!”
기하진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러자 남이가 경신을 전개해 내려가고, 그 모습을 본 귀면쌍살이 기하진을 쳐다보며 말했다. 보이지는 않았으나 귀면탈 뒤로 웃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기 단주, 여기서 다시 보는군. 방금 내려간 사람은 아미파 제자겠지?”
그 말에 기하진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이자가 남이를 도대체 어떻게 안단 말인가? 설마하니 그 많은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후기지수들을 모조리 파악하고 다닌단 말인가? 그것은 말이 안 되었다. 얼굴을 정밀하게 묘사한 화첩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화첩이 있을 리도 없었다.
“자네가 하는 일에 내 관여하지 않을 테니 내가 하는 일에도 관여하지 않는다면 특별히 자네만큼은 오늘 그냥 보내주지.”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곤륜파 제자 세 명과 무림맹 용봉단주 기하진이 합세해도 자신을 이길 수 없으니 얌전히 찌그러져 있으라는 소리였다. 기하진은 그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냉소를 지으며 코웃음을 쳤다.
곤륜파 대제자 소일기는 귀면쌍살이 자신과 겨루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른 사람과 얘기를 주고받자 자존심이 상해 얼굴이 시뻘게졌다. 싸움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들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곤륜파 대제자가 어디 가서 이런 수모를 겪어봤겠는가?
“네 이놈! 곤륜파를 우습게 여기다니 반드시 후회하게 하여 주마.”
소일기가 분개하며 검을 봉황의 날개처럼 펼쳐 들며 귀면쌍살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귀면쌍살의 양옆에서 추성학과 심미방이 소일기의 출검과 맞추어 검을 질풍처럼 찔렀다.
일전삼뢰(一電三雷). 바로 조금 전까지 소일기가 자랑스럽게 내세우던 뇌전벽력검(雷電霹靂劍)의 일초였다.
그러자 귀면쌍살은 재빨리 몸을 비틀어 검을 피하더니 팔을 크게 휘둘러 세 사람의 검을 동시에 막아냈다. 팔을 대충 휘두르는 것 같았는데도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하진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귀면쌍살의 무공은 정말 명불허전이었다.
“말끝마다 자부심이 넘쳐서 대단한 놈인 줄 알았더니 이거 순 빈 껍데기로군. 곤륜파는 그냥 내버려 둬도 한 이십 년 지나면 저절로 문을 닫겠어. 우하하하.”
그 소리에 소일기는 귀밑까지 시뻘게졌다.
“이놈이 정말!”
소일기가 귀면쌍살의 가슴으로 검을 찔러넣기가 무섭게 귀면쌍살이 소일기를 향해 몸을 훌쩍 날리며 오른손 팔꿈치를 후려치니 소일기는 팔이 저릿하여 그만 검을 놓치고 말았다.
지금까지 자신을 능가하는 고수와 제대로 싸워보지 못한 소일기는 눈앞의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곤륜파 제자들 가운데 제일이라는 자신이 십여 초가 지나가는 데도 제대로 된 공격 한번 해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제야 귀면쌍살을 맞닥뜨린 구대문파 후기지수들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는 강호의 풍문이 실감이 났다. 어느새 소일기의 등에서 축축한 식은땀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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