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세일소-47화 (47/201)

#   47 - 광세일소_한추영 - 1277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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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6화. 표행(鏢行) (4)

“흥, 이따위 장난감으로 날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귀면쌍살이 강맹한 손바람을 일으켜 뇌화벽력탄을 뒤덮었다. 그러자 사나운 회오리바람이 뇌화벽력탄을 휘감아 공중으로 치솟더니 열 길 높이에서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벽력탄이 터지면서 불길과 함께 시커먼 연기가 공중에서 흩날리고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와 동시에 귀면쌍살을 사이에 두고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검광이 번쩍인다 싶더니 검 네 자루가 질풍같이 찔러 들어왔다.

귀면쌍살을 공격한 사람은 네 사람 모두 푸른 도포를 입었는데 두 사람은 머리가 희끗한 회백색이고 두 사람은 완전한 은발이라 신비로운 느낌마저 자아냈다.

“청성사로(靑城四老)!”

그들의 모습을 본 당두걸의 눈이 앞으로 왕방울만큼 커졌다.

기하진도 청성사로가 누군지 들은 적이 있었다. 당금 청성파 장문인인 무욕자의 사제들이며, 청성파의 장로들로 검술이 신의 경지에 달했다고 평가되는 고수들이었다. 이 네 사람은 일월성신(日月星辰)에서 별호를 따서 일검자, 월검자, 성검자, 신검자라고 불렸다.

청성사로가 나타났다는 사실은 청성파도 이번 일에 깊이 개입되었다는 뜻이었다. 기하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난다 했더니 그 냄새가 점점 더 짙어지지 않는가! 부맹주의 사문이 청성파인 것은 알았지만 청성사로까지 나서서 지키고자 한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저 옥함에 무엇이 들었기에 강호에서 명성을 떨치는 청성파의 검객들이 한꺼번에 나타난단 말인가?

청성사로의 검을 한 차례 막아낸 귀면쌍살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흥, 청성사로께서 여기까지는 웬일이시오?”

“우리를 아는 걸 보니 오늘 여기서 살아나갈 수 없는 것도 알겠구나.”

귀면쌍살은 청성사로의 첫째 일검자의 말에 고개를 젖히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에 대로한 청성사로 중 막내 신검자가 호통을 쳤다.

“무엇이 그렇게 우습단 말이냐?”

그 말에 귀면쌍살이 웃음을 그치며 신검자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청성파의 늙다리 검객 네 분께서 나를 막아낼 수 있겠소이까?”

귀면쌍살의 말에 성격이 급한 신검자가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놈이 터진 입이라고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는구나, 이놈! 우리가 누군지 알고도 그따위 망발인 게냐? 그동안 네놈이 벌인 모든 악행의 책임을 오늘 묻겠다!”

“우하하하.”

귀면쌍살이 갑자기 광소를 터뜨리더니 웃음을 뚝 그치고 신검자를 노려보았다.

“내 이래서 정파 위선자들을 좋아하지 않지. 차라리 마교가 나아.”

“뭣이라?”

귀면쌍살이 뒷짐을 지고 청성사로를 한 명씩 바라보았다.

“흥! 악행의 책임을 묻겠다? 그것이 아니라 이 옥함이 탐이 나는 것이겠지. 어떻소? 내 말이 맞지 않소?”

귀면쌍살의 말이 틀리지는 않은 듯 청성사로가 잠시 움찔했다. 그러다가 둘째 월검자가 천천히 한 걸음 내디디면서 말했다.

“그 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옥함도 얻고 네놈까지 처리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니겠느냐?”

월검자는 그러더니 다른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으니 바로 손을 씁시다.”

월검자의 말과 함께 청성사로 네 사람이 동시에 검을 찔러 들어왔다. 네 사람이 마치 한 사람인 양 검을 찌르는 속도와 방향에 전혀 오차가 없었다.

귀면쌍살은 네 방위로 찔러 들어오는 검을 한 번에 막을 수 없어서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검 네 자루의 끝이 파르르 떨리며 곧장 귀면쌍살을 따라 위로 솟구쳤다. 검이 얼마나 빠른지 네 자루의 검이 서로 구분도 되지 않았다. 공중으로 솟구치는 귀면쌍살을 따라가는 네 자루의 검이 은빛 유성 꼬리처럼 보였다.

하늘 높이 치솟은 귀면쌍살이 허공에 뜬 상태에서 스르르 수평으로 이동했다. 도저히 믿기 힘든 신기한 광경이었다. 그 바람에 청성사로의 검이 다시 허공을 찔렀다.

“대단한 등평도수(登萍渡水)로군.”

청성사로 중 둘째 월검자가 비웃듯 말했다.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치는 걸 보니 우리와 맞설 자신이 없나 보군.”

이번에는 셋째 성검자가 말했다. 그러자 첫째 일검자가 사제들을 일깨웠다.

“저놈이 철산장을 펼치지 못하게 해라! 철산장을 쓸 수 없다면 저놈은 아무것도 아니야.”

“내 장법이 무서운 것을 알기는 아는구나.”

일검자의 말에 귀면쌍살이 고개를 돌려 비웃더니 돌연 몸을 허공으로 수 장이나 솟구쳤다. 절정의 어기충소(御氣衝霄) 신법이었다.

귀면쌍살을 뒤쫓던 청성사로 네 사람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공중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귀면쌍살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공중에 뜬 상태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좌장과 우장을 번갈아 내질렀다.

펑, 펑, 펑, 펑. 귀면쌍살의 장이 움직일 때마다 고막을 찢는 굉음이 울려 퍼지며 압축된 공기가 한 번에 터지듯 엄청난 압력이 청성사로에게 몰려들었다.

바로 철산장(鐵山掌)이었다. 청성사로는 가슴을 짓누르는 거대한 힘에 허겁지겁 쌍장을 들어 올려 막았지만, 공력이 가장 약한 신검자는 귀면쌍살의 장풍을 미처 막아내지 못하고 다섯 걸음이나 뒤로 밀려났다.

“윽!”

신검자의 몸이 쓰러질 듯 휘청거리더니 검으로 땅을 짚어 겨우 버티고 섰다. 이미 안색은 기혈이 막혀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넷째야!”

첫째 일검자는 막내 사제가 부상을 입자 놀라서 얼른 신검자에게 달려갔다.

그와 동시에 둘째 월검자와 셋째 성검자는 땅바닥을 박차고 허공으로 튀어 오르며 다시 귀면쌍살을 노리고 검을 찔러 넣었다. 두 사람의 검날이 물고기 몸통처럼 유선을 그리며 서로 교차하더니 아래에서 위로 귀면쌍살의 몸통을 찔러 들어갔다.

그러나 귀면쌍살은 놀랍게도 그 수를 이미 예견한 듯 검이 자신을 찔러 들어오기 무섭게 검면을 향해 다시 장을 내뻗었다. 허공에 뜬 상태에서 다시 절정의 등평도수(登萍渡水)를 구사해 몸을 수평으로 이동하면서 장을 내지른 것이다.

엄청난 반탄강기가 검면을 때리면서 검이 부러질 듯 둥글게 휘었다.

“윽!”

월검자와 성검자는 이대로 계속 공격했다가는 내상을 입을 것만 같아서 급히 손에서 검을 놓았다. 그러자 검은 퉁, 소리를 내며 마치 시위 떠난 활처럼 땅바닥에 날아가 거세게 내리꽂혔다. 검을 튕긴 힘이 어찌나 센지 검 손잡이 바로 밑까지 박혀 들어갔다.

월검자와 성검자는 귀면쌍살의 엄청난 공력에 아연실색하여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대체 이 괴물 같은 공력은 어떻게 된 것이란 말인가?

수십 년 동안 내공을 연마한 자신들 네 사람을 상대하면서도 공력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다니 실제로 손을 섞기 전에는 절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기하진은 귀면쌍살과 청성사로의 싸움을 지켜보며 더욱 의문이 생겼다. 급히 공력을 운용하여 뒤집힌 기혈을 가라앉힌 기하진의 눈에 일봉의 모습이 들어왔다.

기하진은 일봉에게 다가가 팔을 붙잡았다.

“도대체 이게 모두 어찌 된 영문이오? 천린상단과 부맹주가 무슨 관계이오? 저 옥함은 무엇이기에 당두걸, 귀면쌍살과 청성사로까지 나선 것이오?”

기하진의 물음에 일봉은 싸늘한 웃음만 지었다.

“천하의 용봉단 단주께서 그걸 모르시다니 믿을 수가 없군요.”

기하진이 일봉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저 안에 무엇이 있냐고 물었소!”

일봉이 가소롭다는 듯 기하진을 쳐다보았다.

“궁금하면 직접 확인해 보시오.”

일봉이 기하진의 팔을 거칠게 뿌리쳤다. 그러자 기하진이 재차 일봉의 팔을 잡으며 이번에는 공력을 운용했다. 일봉은 자신보다 공력이 월등히 높은 기하진의 팔을 다시 뿌리치지 못하고 아랫입술을 깨물며 기하진을 노려보았다.

“천린상단이 감히 맹주님을 배신하고 부맹주에게 줄을 대는 것이오? 저 재물들이 다 무엇이오? 설마 부맹주님이 차기 맹주가 되리라고 생각하고 잘 보일 생각에 거금을 상납하는 것 아니오?”

일봉은 의구심으로 가득한 기하진의 눈을 비웃으며 쳐다보았다.

“상납? 흥! 부맹주가 협박을 하는데 천린상단이 무슨 힘이 있어서 거절한단 말이오?”

일봉의 말에 기하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맹주가 야심이 있고 사람됨이 오만하기는 했으나 정파 무림맹의 부맹주라는 신분으로서 그런 짓을 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럴 리가 없소. 어찌 부맹주님이 협박을 했단 말이오?”

“그렇다면 우리가 뭣 하러 이 많은 돈을 갖다 바친단 말이오? 저 옥함에는 이 마차 스무대의 은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훨씬 더 고가의 물건이 담겨있소. 누구에게 바치는 물건이냐고? 당연히 부맹주지. 바치지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했으니까!”

일봉이 기하진의 두 눈을 똑바로 쏘아보며 내뱉었다.

“믿을 수 없소. 감히 무림맹의 부맹주를 모함하다니! 증거를 대시오.”

기하진의 말에 일봉이 코웃음을 쳤다.

“증거? 당신은 부맹주와 말과 예린 아가씨의 말 중 누구의 말을 더 믿소?”

일봉의 말에 기하진은 잠시 머뭇거렸다.

머릿속에 문득 부맹주를 조심하라는 임예린의 말이 떠올랐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 이제 일봉의 말을 듣다 보니 조금씩 감이 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협박이라니. 정파 무림의 부맹주가 그런 얼토당토않은 짓을 할 리가.

기하진이 얼른 답을 못하자 일봉은 가소롭다는 듯 기하진을 쏘아보았다.

“예린 아가씨가 십 년을 믿고 기다린 사람이 이런 사람이라니 정말 실망이군. 예린 아가씨는 말이야, 당신을 늘 그리워했어. 십 년 전에 자신을 버리고 간 당신을 말이지. 그리고 당신만큼은 언제나 자신의 편이 되어주리라고 생각했어.”

일봉은 그 말을 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사람을 잘못 보신 거지. 정말 잘못 보신 거야.”

기하진이 일봉의 팔을 흔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일봉이 참지 않고 공력을 운용해 기하진의 팔을 탁 내쳤다.

“부맹주가 모반을 계획하고 있소. 아시겠소? 저기 저것들이 부맹주가 천린상단을 옥죄어 모반 자금을 강탈하고 있다는 증거요.”

일봉이 마차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 사실을 누군가에 누설하는 즉시, 상단의 모든 사람을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다 죽인다고 했소이다.”

일봉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길로 기하진을 노려보았다. 일봉은 임예린을 그림자같이 수행하다 보니 이런 사실들을 저절로 듣게 된 것이다.

일봉의 말에 기하진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하여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문득 멀리서 청성사로의 포위를 뚫은 귀면쌍살이 옥함을 들고 연기처럼 사라지는 모습이 망연자실한 기하진의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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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석추명은 어두운 산길을 한없이 달리고 있었다. 자신의 앞에 서서 홀로 울고 있는 어린 예린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석추명은 사라지는 예린을 붙잡으려고 손을 내뻗었다. 가지마, 예린아.

“예, 예린아!”

석추명이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석추명의 손에 차갑고 보드라운 작은 손이 잡혔다. 누군가 차가운 물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주고 있었던 듯했다.

석추명은 그제야 자신이 꿈을 꾸었음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뜻밖에도 자신의 옆에는 황연화가 앉아서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부, 불모님.”

석추명이 놀라서 얼른 황연화의 손을 놓았다.

“꿈을 꾸었나 보군요. 누구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던데....”

황연화의 말에 석추명이 말을 더듬거렸다.

“어, 어릴 때 헤어졌던 동생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나저나 정신이 들어서 다행입니다. 석 대주는 지난 나흘을 꼬박 정신을 잃고 있었어요.”

그 말을 듣고 보니 방안에 물수건과 대야, 탕약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자신이 정신을 잃고 있을 때 누군가가 계속 자신의 이마를 서늘하게 닦아주고 약을 떠먹여 준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의식을 잃었을 때 이마에 부드러운 여인의 손길이 닿는다고 생각했었다. 석추명은 그 여인을 예린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불모, 황연화였던 것이다.

“감, 감사합니다. 불모님.”

석추명이 황연화를 바라보며 더듬거리며 말하자 황연화는 다시 얼굴을 붉히며 석추명의 시선을 피했다.

“아닙니다. 석 대주가 이 지경이 된 것이 저와 아주 무관하지는 않지요. 제 사형인 뢰 장로를 감싸다가 그런 거니까요. 그러니 그런 말은 할 필요 없습니다.”

황연화가 몸을 추스르며 일어났다.

“그만 쉬세요. 나중에 또 오겠어요.”

황연화의 부드러운 눈빛이 잠시 석추명의 얼굴에 머물렀다. 선하고 맑고,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이는 눈빛이었다. 자신을 보호하려고 교주와 맞서던 황연화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그 일 때문에 혹시라도 교주님과 사이가 멀어지면 안되는데....

“웃으실 때가 훨씬 아름다우십니다. 불모님.”

황연화를 담담히 바라보던 석추명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황연화도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런가요? 고맙군요.”

석추명의 애틋한 눈길이 잠시 황연화의 두 눈에 담겼다. 황연화는 석추명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천천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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