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 광세일소_한추영 - 1267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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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1화. 사소혜
태형 일백 대를 맞은 석추명은 살이 터지고 피부가 찢어져 만신창이가 된 채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신교에서는 태형을 행하기 전에 죄인이 내공을 사용해서 몸을 보호할 수 없도록 특수조제된 약을 먹였다. 결국 석추명은 일백 대의 매질을 고스란히 맨몸으로 받아낸 셈이었다.
정신을 잃은 석추명은 혼자서 수라각에 감금되었지만 교주의 명령이 두려워 누구도 감히 석추명을 치료해 줄 생각을 못했다.
“그래, 석 대주의 상태는 어떠하더냐?”
황연화는 석추명의 상태가 염려되어 사소혜를 보내어 몰래 보고 오게 했다. 사소혜는 황연화에게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아유 말도 마세요. 그 멀쩡하던 사람이 완전히 피떡이 되어 수라각 땅바닥에 널브러졌는데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더라고요. 뼈는 상하지 않았나 모르겠네. 뼈까지 상했다면 어쩌면 불구가 될 수도 있어요. 그 허우대 멀쩡하고 잘생긴 사람이 불구라니, 아휴 끔찍해라.”
사소혜가 경망스럽게 말하자 황연화가 얼굴에 노여움을 띠었다.
“어디서 그따위 망발을 내뱉는 게냐?”
그러자 사소혜가 민망한지 혀를 입 밖으로 날름 내밀었다. 황연화는 사소혜의 말을 듣고 나자 안절부절못하며 한동안 방안을 서성이더니 겉옷을 챙겨 입었다.
“도저히 안 되겠구나. 내가 직접 가봐야겠다.”
황연화의 말에 사소혜가 깜짝 놀라 두 팔을 벌리고 황연화를 막아섰다.
“불모님, 절대 안 됩니다. 절대!”
“물러서거라!”
사소혜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강하게 흔들었다.
“지난번에도 교주님 앞에서 석 대주를 두둔하시는 바람에 신교 내에서 불모님에 대해 수군대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제 또 교주님의 명을 어기고 석 대주를 보러 간다면 아무리 불모님이라고 해도 교주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으실 거예요. 제발 고정하세요.”
그러나 황연화는 사소혜를 밀치며 방 밖으로 나섰다.
“석 대주는 내 사형을 구하려다가 그렇게 된 것이야. 그걸 내가 어찌 보고만 있겠느냐? 다른 사람들이야 교주님의 눈치를 보느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교주님이 설마 나까지 벌하시겠느냐?”
“아휴, 불모님 황소고집을 누가 말려요.”
사소혜가 조그맣게 볼멘소리를 하며 황연화의 뒤를 재빨리 따라나섰다.
수라각은 수라대원 서너 명이 엄중하게 경계를 서고 있었다. 황연화가 온 걸 알면 또 난리가 한바탕 날 것만 같았다.
‘어쩔 수 없지. 내가 좀 도와드릴 수밖에.’
사소혜가 앞으로 나서 살살 웃으며 수라대원들에게 친근한 척 말을 걸었다.
“수고들 많으시군요.”
“당신 여기는 무슨 일....”
사소혜가 웃으며 수라대원들을 향해 손가락을 튕기자 미미한 향내가 나는 듯하더니 수라대원들이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졌다.
“잠시만 푹 자고 있어라. 내 몽혼약은 그렇게 몸에 해롭지는 않으니 걱정 말고. 호호호.”
사소혜의 몽혼약에 경계를 서던 수라대원들이 쓰러지자 황연화와 사소혜는 즉시 수라각 안으로 들어섰다.
차가운 마룻바닥에 호된 매질로 인사불성이 된 석추명이 내팽개쳐진 상태로 누워 있었다. 황연화는 그 모습에 놀라 얼른 달려가 석추명의 손을 잡았다. 혈색이 없는 손은 차갑기만 했다.
“어찌 된 것이냐? 살아있기는 한 게냐?”
황연화의 말에 사소혜가 얼른 엎드려 석추명의 가슴에 귀를 대어보고 맥을 짚었다. 그리고는 석추명의 몸 구석구석을 거리낌 없이 만지며 몸 상태를 파악했다.
사소혜는 독으로 유명한 오독신교(五毒神敎)의 소교주 출신이었다. 교의 규모가 작아서 백련신교에 흡수되기는 했지만 독술만큼은 사천당가에서도 무시 못 할 정도였다. 사소혜는 독을 다루는 만큼 의술에 대해서도 제법 조예가 깊었다.
게다가 성격이 화끈하고 남의 이목 따위는 신경을 쓰지 않아 사소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석추명의 옷을 벗기고 여기저기를 만지며 상태를 파악했다. 그 바람에 오히려 황연화가 민망하여 눈을 돌려야 했다.
“아휴, 도대체 사람을 어떻게 이 지경으로 팰 수가 있는 거죠? 그 튼실하던 허벅지 뒤쪽과 엉덩이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예요. 다행히 뼈와 힘줄은 다치지 않았네요. 다만 살이 터져서 뭉개지고 외상이 심해요. 흠, 그래도 생각보다는 괜찮아요. 근육도 파열된 데는 없고. 이거 매질에 웬만큼 내성이 있지 않고는 힘든 일인데. 어릴 때부터 많이 얻어맞았나?”
사소혜는 조잘거리면서 품 안에서 하얀 약 가루를 꺼내어 상처에 뿌리고 몸 여기저기에 침을 놓았다.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던 황연화는 그만하길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마음이 쓰라렸다.
사소혜가 응급조치를 취하고 침상에 석추명을 눕히자 황연화가 멍하니 석추명을 바라보았다.
“내 사형 때문에 결국 이 지경이 된 게야....”
황연화는 교주의 명을 어기고 뢰정을 보내준 석추명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뢰 장로가 불모님의 사형이지만 석 대주의 사부이기도 하잖아요. 자신의 사부를 위해서 제자가 이만한 고초쯤은 감당해야지요.”
한참 재잘거리던 사소혜가 황연화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입을 닫고 치료에만 전념했다. 어느새 황연화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황연화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사소혜는 치료가 끝나자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사소혜가 밖으로 나오는데 문득 수라각 대문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새 누군가 온 게 분명했다.
‘이런 젠장 할!’
사소혜가 신법을 전개해 대문 밖으로 쏜살같이 나가봤지만 쓰러져 잠든 수라대 대원들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헛것을 봤나?”
그 순간 공기가 날카롭게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사소혜의 목을 움켜쥐려는 게 아닌가! 사소혜는 느닷없는 공격에 깜짝 놀라 몸을 황급히 뒤로 눕혀 공격을 피했다. 상대방의 손아귀가 사소혜의 가슴 위를 아슬아슬 스치며 지나갔다.
“웬 놈이냐?”
사소혜가 앙칼지게 소리치더니 허리에 매고 있는 금사신편을 풀어 손에 들었다. 뜻밖에도 자신을 공격한 사람은 수라대 부대주 맹환이었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네가 수라각에서 왜 얼쩡대는 거지?”
그제야 사소혜도 맹환을 알아보고 코웃음을 쳤다.
“난 또 누구라고. 당신이로군.”
사소혜가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뀌자 맹환이 검을 빼 들고 소리쳤다.
“내 수하들을 저 모양으로 만든 것도 혹시 네년의 짓이 아니냐?”
“그렇다면 어쩔 건데?”
사소혜가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나오자 맹환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교, 교주님께서 수라각에는 아무도 얼씬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다. 교주님의 명을 어겼으니 각오는 됐겠지?”
맹환의 말에 사소혜가 생글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근질거리던 참이니 어디 한번 놀아볼까?”
사소혜의 금사신편이 살아있는 듯 출렁이더니 아가리를 든 독사처럼 맹환을 공격해 들어왔다. 맹환은 사소혜의 공격을 가볍게 피한 뒤 사소혜를 비웃었다.
“감히 신교 비무대회 차석인 나와 손을 섞겠다고?”
맹환이 간단하게 자신의 공격을 피하자 화가 난 사소혜가 채찍을 둥글게 말아 허공을 때리면서 촥 소리를 냈다.
“그래 이 자식아! 한번 붙어보자.”
사소혜는 맹환이 자신을 무시하자 분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독문절기인 금사신편 48수를 펼쳐냈다. 그러자 이에 질세라 맹환도 광풍마검을 펼쳤다.
두 사람은 수십 초식(招式)을 싸웠지만 모두 실력이 막상막하로 선뜻 승부를 내기가 어려웠다.
치열하게 싸우다 보니 두 사람이 손뿐만 아니라 몸이 부대낄 때도 많았는데 사소혜가 워낙 몸매를 드러내는 옷을 입어서 몸이 부딪칠 때마다 맹환은 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또 그때마다 사소혜가 자신을 향해 은근슬쩍 묘한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닌가!
맹환은 싸우면서 점점 싸움의 목적을 잊고 사소혜를 붙잡고 침실로 달려가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그런 기분을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사소혜가 더욱 관능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기회가 날 때마다 은근히 몸을 밀착해 왔다. 그러자 맹환은 흥분하여 얼굴이 벌게진 채 거친 숨을 시근벌떡 내뱉었다.
한참을 싸우던 사소혜가 돌연 채찍으로 맹환의 검을 칭칭 감쌌다.
“이런 흉물스런 것은 버리고 우리 좀 더 내밀한 대화를 해보는 게 어때?”
사소혜가 손에 힘을 탁 주자 맹환의 검이 속절없이 풀숲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미 싸울 마음이 사라진 맹환은 사소혜의 채찍이 검을 감았지만 별로 저항하지도 않았다.
사소혜가 맹환을 바라보며 살포시 미소를 띠었다. 평소에도 워낙 색기가 줄줄 흐르는 외모인데 살짝 웃자 맹환은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맹환이 넋이 나가 손을 멈추자 사소혜가 다가와 맹환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맹 부대주, 어때? 우리끼리 시간 좀 가질까?”
이제는 완전히 이성을 상실한 맹환이 사소혜를 덥석 두 팔로 들더니 풀숲 뒤 한적한 곳으로 급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커다란 바위 뒤편에 돌아간 맹환이 허겁지겁 사소혜의 옷을 벗기려고 하자 사소혜가 한 손으로 맹환의 손을 잡았다.
“아이, 그렇게 급해서야 재미없지. 내가 이끄는 대로만 따라와 봐. 이 누님이 극락 구경을 시켜줄 테니.”
그러더니 앵두보다 붉은 사소혜의 입술이 꼬물거리며 맹환의 입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맹환은 갑자기 시간이 정지된 듯, 사소혜의 탐스러운 붉은 입술만 눈에 들어왔다. 맹환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사소혜의 입술이 막 자신의 입술에 포개지려는 순간, 어디선가 알싸하고도 달콤한 향내가 난다 싶더니 맹환은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고개를 떨구고 정신을 잃었다.
사소혜가 입에 독 가루가 든 대롱을 숨기고 있다가 맹환의 코 가까이에서 후, 불어낸 것이다.
맹환이 정신을 잃자 사소혜가 벌떡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맹환을 발로 벌러덩 걷어찼다.
“흥! 넘볼 걸 넘봐야지. 네놈 같은 고자질쟁이가 언감생심 누굴 넘보는 거냐? 석 대주가 저 꼴이 된 게 다 네놈 고자질 때문이라는 걸 내가 뻔히 아는데 감히 어디서 수작이야?”
사소혜는 다시 맹환의 엉덩이를 냅다 걷어찼다.
“오독신교 비전의 사시산(四時散)을 맡았으니 이제 하루 밤낮은 푹 자야 할 거다. 자고 나면 이 누님을 만난 것도 까맣게 잊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거야. 마음 같아서는 사시산이 아니라 한 번에 목숨을 뺏는 절명산을 쓰고 싶다만 그랬다가는 불모님께 혼날 것 같아서 이 정도로 끝내는 걸 다행으로 여겨라. 이 엉큼한 놈아!”
사소혜는 그냥 가려다가 분한 듯 다시 한번 발길질을 했지만 정신을 잃은 맹환은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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