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세일소-40화 (40/201)

#   40 - 광세일소_한추영 - 1263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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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9화. 불청객 (2)

일봉의 검이 갑자기 느려지면서 검세가 육중해지기 시작했다. 검세가 돌변하면서 엄청난 위력이 검에서 폭사되었다. 방갓 사내는 더 이상 경시하지 못하고 급히 검을 들어 일봉의 검을 막았다.

땅! 호천대주의 대도조차 한순간에 부러졌건만 어찌 된 일인지 일봉의 검은 멀쩡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한 손으로만 검을 휘두르던 방갓 사내가 검을 두 손으로 움켜잡는 것이 아닌가!

일봉이 펼친 검법은 호천대가 쓰는 강남도법이 아니었다. 바로 얼마 전 요혜신니에게 전수받은 아미복마검이었다.

방갓 사내도 복마검을 아는지 방갓 틈 사이로 일봉을 쳐다보며 물었다.

“네놈이 어떻게 이 검법을 알지? 아미파와는 무슨 관계냐?”

“그건 염라대왕에게 물어보거라!”

일봉의 검이 공중에서 다시 휘리릭 부채모양으로 펼쳐지더니 그대로 방갓 사내의 면전을 쓸어갔다. 방갓 사내는 급히 몸을 틀어 일봉의 공격을 피하고는 검을 곧추세워 일봉의 검을 내리쳤다.

챙. 역시 방갓 사내는 대단한 고수였다. 검이 부딪치자 일봉은 대번에 온몸이 부르르 떨리고 숨이 답답해졌다. 만약 강남도법을 썼다면 자신도 순식간에 풍 대주의 뒤를 따라갔으리라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복마검을 연이어 펼치면 좋으련만 요혜신니에게 전수받은 복마검 초식은 이것 한 수뿐이었다.

방갓 사내도 이 점을 눈치챘는지 어느새 다시 여유를 되찾았다. 일봉은 사내와 다시 숨 가쁘게 몇 초의 공방을 주고 받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일봉의 검은 어느새 날아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방갓 사내가 검끝으로 일봉의 목을 겨누었다.

“어디서 주워 배운 한 수가 제법 쓸 만했다. 하지만 역시 애들 장난이지.”

일봉은 복마검을 자신이 완전히 구사할 수만 있다면 한번 해볼 만한 싸움이었는데 너무 아쉽고 분했다.

“그럼 너도 이만 대주를 따라가거라.”

방갓 사내가 일봉을 목을 내려치려 하자 임풍이 손을 들며 소리쳤다.

“잠깐! 원하는 것을 들어드리리다. 도대체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방갓 사내가 검을 거두고 임풍을 보며 낄낄 웃었다.

“이 집에 지금 은자 백만 냥 상당의 귀한 보물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걸 내놓으면 내 얌전히 물러나 주지.”

방갓 사내의 말에 임풍 뿐만 아니라 방 안에 있던 임예린도 깜짝 놀랐다. 아니 이 사내가 누군데 그 사실을 안단 말인가? 부맹주와의 거래는 극비사항이며 특히 금액의 크기는 임풍과 임예린, 그리고 천계심과 원무개 외에는 죽은 풍천숙만 알뿐,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사내가 그 사실을 알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 새어 나간 걸까?

임풍은 사내의 요구에 다리에 힘이 빠져 털썩 주저앉았다. 애써 준비한 보물을 강탈당한다면 천린상단과 임가장은 그날로 끝장날 게 뻔했다.

임풍이 주저하자 방갓 사내는 검을 다시 쳐들었다.

“오호라. 내놓지 못하시겠다? 몇 명이 죽어 나가야 정신을 차릴지 자못 궁금해지는군. 그럼 어디 이놈부터 한번 해볼까?”

방갓 사내의 검이 일봉의 목을 다시 겨누었다.

“안돼!”

방안에서 지켜보던 임예린이 소리를 지르더니 방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예린의 목소리에 일봉의 시선이 예린 쪽으로 향했다. 일봉의 눈가에 새하얗게 질린 예린의 모습이 들어왔다. 예린은 사색이 되어 파르르 떨고 있었다.

“이게 누구야? 이 집의 금지옥엽이시구먼. 이 녀석보다야 임 대방의 마음을 돌리는데 더욱 확실하겠군. 이놈 다음은 저 소저로 하지. 꽃 같은 미모가 아깝긴 하지만 말이야. 하하하.”

방갓 사내가 껄껄껄 웃었다. 눈앞에 있는 호천대 수십 명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웃음이었다. 그러나 무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놀라운 무공에 모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 갑자기 쐐액, 소리를 내며 청동 술잔 하나가 날아와 방갓 사내의 검에 부딪쳤다. 방갓 사내는 검을 들고 있다가 술잔이 날아오자 즉시 검을 휘둘렀다.

술잔은 두 조각이 났지만 술잔에 담겼던 술은 그대로 방갓 사내에게 쏟아졌다. 술잔에 무슨 짓을 했는지 신기한 노릇이었다. 졸지에 술을 뒤집어쓴 방갓 사내는 깜짝 놀랐다. 쏟아진 술의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술에도 은근한 힘줄기가 실려있어 술에 맞은 부위가 따끔거렸다. 절대 평범한 호천대가 펼칠 수 있는 수준의 무공이 아니었다.

“누구냐?”

방갓 사내가 검을 고쳐잡으며 주위를 경계했다. 돌연 세찬 바람소리와 함께 회오리바람이 자신을 향해 돌진해왔다. 방갓 사내는 황급히 몸을 피했지만 회오리바람 속에서 돌연 번쩍, 하고 시퍼런 검광이 튀어나오더니 방갓이 두 조각이 나서 땅에 떨어졌다. 방갓 속에서 드러난 얼굴은 뜻밖에도 귀면탈을 쓰고 있었다.

“역시 귀면쌍살이었군.”

어느새 마당 한가운데는 중년 문사 한 사람이 우뚝 서 있었다. 눈빛이 영준해 보였으나 얼굴 아랫부분을 하얀 두건으로 감싸 누구인지 알아볼 수는 없었다.

“네놈이 요즘 악명을 떨치는 귀면쌍살이라는 놈이로구나.”

귀면쌍살은 눈앞에 있는 중년 문사의 무공이 절대 자기 아래가 아님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강호에 이토록 무공이 높은 중년 문사가 누가 있는지 생각해 보았으나 얼른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만 골라서 죽이는 짓만도 천인공노할 일인데 이제는 대낮에 버젓이 들어와 사람을 죽이고 돈을 강탈해 가는군.”

중년 문사가 검을 들고 한 발 앞으로 나서자 귀면쌍살은 긴장한 몸짓으로 뒤로 한발 물러섰다.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다니 수상하기 그지없구나. 누군지 썩 정체를 밝혀라!”

귀면쌍살이 중년 문사에게 소리쳤다.

“네놈이 내게 할 소리는 아닌 듯한데?”

중년 문사가 귀면쌍살을 쳐다보며 비웃었다. 그 말과 동시에 중년 문사는 땅바닥을 발로 박차며 귀면쌍살을 향해 몸을 날렸다. 중년문사의 움직임은 마치 깃털이 날리는 듯했다. 사람의 몸이 어찌 저리도 가벼울 수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년 문사의 검끝이 파르르 떨리며 귀면쌍살의 가슴을 노렸다.

귀면쌍살이 중년 문사의 검을 막자 중년 문사는 몸을 틀지도 않고 연이어 제2, 제3검을 지르며 순식간에 십여 초를 공격해 들어갔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솜씨였다. 신속하고도 과감한 공격과 절묘한 동작은 도저히 사람의 솜씨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에 맞서는 귀면쌍살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쾌검을 어떻게 알아보고 막아내는지 검은 보이지도 않은데 검 부딪치는 소리만 요란하게 울렸다. 일봉을 비롯해서 호천대원들은 전에 본 적 없는 심오한 검의 경지에 적이 눈앞에 있는 것도 잊고 넋이 나가 두 사람의 검무를 지켜보았다. 중년 문사와 귀면쌍살의 무공은 완전히 다른 세상의 무공이었다.

중년 문사의 쾌검 공격을 계속 피하던 귀면쌍살이 돌연 좌장을 번쩍 들어 장풍을 내질렀다. 그것을 본 중년 문사도 질 수 없다는 듯이 우장을 들어 이에 맞섰다.

펑! 압축된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중년 문사는 뒤로 세 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귀면쌍살은 불과 두 걸음 물러섰을 뿐이었다. 이 한 수의 교환으로 두 사람의 내공 고하가 자연히 드러났다.

그러나 뢰정은 의혹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귀면쌍살을 쳐다보았다.

“네놈이 어찌...?”

뢰정은 장을 부딪치는 순간, 상대방의 기운에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중양신공의 기운이 분명했다. 이 자가 누군데 중양신공을 안단 말인가?

귀면쌍살도 그것을 느낀 듯 귀면탈 뒤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더니 별안간 호통을 쳤다.

“이제 보니 네놈은 마교가 분명하렷다!”

귀면쌍살이 다시 쌍장을 춤추듯 휘둘렀다. 쌍장이 닿는 곳에서 우르릉 쾅. 소리가 나더니 땅이 패고 돌가루가 튀었다. 그 모습에 뢰정은 속으로 흠칫했다.

‘이 자의 무공이 절대 내 아래가 아니다. 당장 지지는 않겠지만 시간을 끌수록 내가 불리하겠구나!’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의 장단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중년 문사는 귀신같은 빠르기의 쾌검을 바탕으로 하되 검 하나를 가지고 곤, 봉, 도, 채찍, 극(戟) 등 다채로운 무기술을 연출해냈다. 십팔반 무기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깊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였다. 중년 문사의 무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의 현란한 검술에 눈앞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반면, 귀면쌍살은 위력적인 중검을 구사하여 중년 문사의 쾌검 공격을 막아내다가 돌연 웅혼한 장력을 바탕으로 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 장력의 기세가 어찌나 드센지 실수로라도 한번 맞았다가는 중상을 면치 못할 듯했다.

만약 귀면쌍살이 중년 문사의 쾌검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거나, 중년 문사가 귀면쌍살의 장풍을 허용한다면 그때가 바로 승부가 나는 지점이 될 것만 같았다.

뢰정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자신이 도망치려 마음을 먹는다면 귀면쌍살의 무공이 제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결코 자신을 따라잡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임가장 수백 명의 목숨은 그날로 끝이다. 그러나 싸움이 길어질수록 자신이 발각될 위험이 커졌다.

고수들 간의 싸움에는 강력한 기의 파장이 발생한다. 신교의 사람들이 자신을 찾느라고 쫙 깔려있을 터인데 만약 임가장 주위에 신교 부대주급의 고수만 있어도 금방 눈치를 챌 것이다.

뢰정의 초조한 마음을 눈치챘는지 일봉이 정신을 차리고 싸움에 뛰어들었다.

“미력하지만 제가 돕겠습니다.”

일봉은 귀면쌍살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으나 요혜신니에게 배운 아미복마검 초식 한 가지 외에는 별 쓸모가 없어 뢰정을 돕기보다는 오히려 뢰정의 보호를 받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뢰정의 검세도 오히려 약해지고 말았다.

“좋군. 아주 좋아!”

귀면쌍살이 흐흐흐, 웃음을 터뜨리며 뢰정을 공격하나 싶더니 돌연 손가락을 쫘악 벌리고 일봉의 팔을 잡아챘다. 풍천숙의 뒷덜미를 잡을 때와 비슷한 수법으로 일봉은 순식간에 맥문을 제압당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귀면쌍살이 검끝으로 일봉의 목을 겨누고 말했다.

“이 애송이의 목숨을 살리고 싶거든 당장 검을 버려라.”

귀면쌍살의 말에 뢰정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일봉은 자신이 괜히 끼어들어 오히려 뢰정에게 해를 끼치자 말 못할 자괴감에 풍천숙이 자결했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귀면쌍살을 한참 노려보던 뢰정이 결국 포기한 듯 검을 던져 버리자 귀면쌍살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하하하, 어리석은 놈. 이제 네놈의 두건을 벗어 보아라.”

뢰정은 말없이 얼굴 아랫부분을 감싼 두건을 내렸다. 뢰정의 얼굴을 본 귀면쌍살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네놈은 마교의 사대검왕이라는 수라검이 아니냐?”

귀면쌍살의 눈은 정확했다. 자신을 알아볼 정도라면 귀면쌍살도 강호에서 보낸 세월이 절대 적지 않다는 뜻이었다. 뢰정은 귀면쌍살을 노려보았다.

“그렇다. 네놈 또한 강호에 얼굴이 잘 알려진 놈이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도깨비 탈 뒤에 숨을 리가 없지.”

그 말에 귀면쌍살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하하하. 그럴지도 모르지. 강호에 수라검 뢰정이 검군자(劍君子)라는 말이 있더니 과연 소문대로 인정에 약하구나. 클클클.”

귀면쌍살이 웃음을 멈추더니 갑자기 일봉을 뢰정에게 집어던졌다.

“마교 주제에 어쭙잖은 인정을 베풀면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주마.”

뢰정이 자신에게 날아오는 일봉을 잡으려는 순간, 배 아래쪽으로 귀면쌍살의 검이 번개같이 찔러 들어왔다.

“아!”

뢰정은 일봉을 잡자마자 그대로 몸을 공중으로 솟구쳤지만 귀면쌍살의 예리한 검끝을 피할 수는 없어 보였다.

귀면쌍살은 칼끝이 뢰정의 아랫배에 닿는 걸 느끼며 냉소를 지었다. 그 순간 화살 하나가 핑 소리를 내며 자신의 등을 향해 날아왔다. 화살의 기세가 워낙 드세어 무시했다가는 뢰정의 배를 찌르는 순간 자신은 꼬챙이에 찔린 꼬치구이가 될 것만 같았다.

“웬 놈이냐?”

귀면쌍살이 검을 돌려 화살을 쳐냈다.

“꼼짝하지 마라. 귀면쌍살!”

귀면쌍살이 돌연 수상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보니 임가장 전각과 담벼락 위에 검은 무복을 입은 사람들이 빽빽이 깔려있었다. 그중에 수십 명이 손에 석궁을 들고 자신을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방금 쏜 화살은 제일 앞에 있는 젊은 청년의 솜씨지 싶었다. 자신은 완전히 포위된 상태였다.

청년은 자신을 한껏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분에게서 썩 물러나지 못할까!”

귀면쌍살은 도처에 백여 명도 넘어 보이는 흑의인들이 깔려있자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이들이 도대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단 말이냐. 게다가 그들이 쏟아내는 무형의 기운은 호천대와 비교도 되지 않았다.

“네놈은 또 누구냐?”

귀면쌍살이 얼이 빠진 듯 검을 거두며 물었다.

“나는 신교의 수라대주 석추명이라고 한다.”

귀면쌍살에게 활을 쏜 사람은 다름 아닌 석추명이었다. 석추명은 뢰정을 쫓다가 임가장에서 엄청난 기의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을 느끼고 혹시나 해서 왔다가 뢰정이 궁지에 몰리자 다급한 나머지 부하의 석궁을 받아서 쏜 것이다.

석추명은 여전히 석궁을 귀면쌍살에게 겨누며 차갑게 말했다.

“네놈이 반 치라도 검을 뻗으면 네놈 심장을 꿰뚫어 주마.”

팽팽히 시위가 당겨진 석궁에는 일반 화살이 아니라 커다란 뇌전(雷箭) 세 대가 한꺼번에 놓여 언제든 발사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귀면쌍살은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방금 전 화살의 기세로 보아 심장을 꿰뚫는다는 말이 절대 그냥 위협이 아니었다.

“흥! 마교의 수라대가 이 몸을 잡으려고 직접 출동하다니 이거 영광이구먼.”

귀면쌍살은 수라검 뢰정이 나타난 마당에 신교의 수라대까지 나타나자 자신을 잡으러 온 줄로 오해했다.

“잘 아는구나.”

석추명의 말에 귀면쌍살이 코웃음을 지었다.

“흥! 수라대주라.... 오냐, 네놈이 과연 나를 위협할 만큼의 실력이 되는지 어디 보자.”

귀면쌍살이 돌연 검을 고쳐잡더니 무시무시한 기세로 석추명을 향해 돌진해왔다. 석추명은 겨냥하고 있던 석궁을 쏘았으나 귀면쌍살은 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쇠뇌를 가볍게 쳐내고 그대로 석추명에게 달려들었다.

석추명은 석궁을 던져 버림과 동시에 허리에 매고 있던 장검을 칼집째 허공으로 던져 검을 뽑으며 반격에 나섰다.

챙챙챙챙. 순식간에 십여 초를 교환했다. 검을 교환하면서 귀면쌍살은 또다시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이 녀석은 또 중양신공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게다가 어린놈이 뢰정 못지않은 쾌검이었다. 비록 내력은 자신보다 한참 낮기는 하지만 만약 뢰정과 이 녀석이 함께 자신을 공격해온다면 그 눈부신 쾌검을 당할 수 없을 듯했다. 아쉽지만 지금은 달아날 때였다.

귀면쌍살 자신이 귀면탈을 쓰고 강호를 종횡하면서 처음 느껴본 패배였다.

“흥! 애송아, 아쉽지만 다음번에 보자꾸나. 네놈 사부와 밤낮 떨어져서는 안 될 것이야. 내가 조만간 네놈 목숨을 가지러 다시 올 테니.”

그 말을 하고는 귀면쌍살이 허공으로 신형을 날렸다. 귀면쌍살이 도망가자 그 뒤를 쫓아 수라대가 쏜 수십 발의 화살이 허공을 가득 채웠다.

“흥!”

그러나 귀면쌍살은 콧방귀를 뀌며 뒤로 검을 한번 휘두르니 날아가던 화살이 모두 반토막이 나서 우수수 땅에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귀면쌍살은 어느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스승님, 괜찮으십니까?”

석추명이 뢰정에게 다가왔다. 뢰정은 반갑기도 하고 착잡하기도 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때마침 당도해서 내 목숨을 구했구나.”

“죄송합니다.”

석추명이 돌연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뢰정이 깜짝 놀라 석추명을 일으켜 세웠다.

“추명아, 어찌 이러느냐?”

“스승님, 교주님의 명으로 스승님을 뒤쫓았습니다. 제자 된 자로서 감히 스승님께 칼을 들이대려 했으니 이보다 큰 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로서도 정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석추명의 서늘한 목소리에 뢰정은 마음이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석추명은 뢰정에게 한 번 절을 하고 나서 일어나서 몸을 돌렸다.

“명왕대와 마, 신, 두 장로가 스승님을 추격하고 있으니 지체치 말고 빨리 떠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 말을 남긴 뒤 석추명은 수라대를 이끌고 임가장을 벗어났다.

“흠....”

뢰정은 떠나는 석추명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탄식을 내질렀다.

석추명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는 또 한 명의 사람이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석추명을 지켜보던 임예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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