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 광세일소_한추영 - 1259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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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7화. 수모
“두 사람이 아는 사이 더냐?”
임예린이 기하진을 아는 척하자 임풍이 물었다.
“예. 아버님을 만나기 전에 저를 돌봐 주었던 오라버니입니다. 어린 제가 신세를 많이 졌었죠.”
임예린의 말에 기하진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어린 예린을 혼자 내버려 두고 온 이후로 기하진은 늘 마음 한구석이 저릿하게 아팠다. 죄책감과 그리움은 시시때때로 밀물처럼 몰려와 자신을 괴롭혔다. 어린 예린이를 어두운 동굴 속에 두고 혼자 도망쳐 오는 꿈을 꾸다가 깨어나서 가슴을 부여잡고 식은땀을 흘린 적도 많았다.
그때마다 기하진은 두 주먹을 꽉 쥐고 이를 악다물었다. 자신은 무공을 배워 부모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 그러니 그 당시 임예린을 떠나야 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다시 그 상황이 된다 하더라도 자신은 똑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다. 아니, 내려야만 한다.
그렇게 자신을 어르고 설득하며 지내왔다. 그러나 문득문득 쓸쓸하고, 미안하고, 보고 싶고, 울적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자신의 눈앞에 어엿이 성장한 임예린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며.
임예린의 눈자위가 일순간 붉어지는 듯했으나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다. 임예린은 생각보다 차분했다.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구나.”
기하진은 그저 이 한 마디 외에 다른 말은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행’이라는 말에 자신의 본심이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자각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자신을 옥죄던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늘 나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놈이로구나.
안색이 굳은 기하진과는 달리 천옥랑은 만면에 활짝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니! 기하진과 무엇을 같이 해본 이후 처음으로 잘했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용봉단의 부단주, 천옥랑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천옥랑은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이면서도 임예린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임예린 주위로 환하게 빛이 나는 듯했다.
지나치게 깍듯한 천옥랑의 태도에 임예린이 어색한 듯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천옥랑은 그것마저도 임예린이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것으로 생각하고는 황홀경에 빠졌다. 멍하니 임예린의 얼굴을 바라보던 천옥랑은 임풍을 만나러 온 이유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지난번 맹주전이 습격을 받았을 때, 기하진은 목숨을 걸고 맹주를 지킨 공을 인정받아 즉시 용봉단의 단주로 임명되었다. 그것은 또한 기하진이 맹주의 제자였기에 가능한 파격적인 인사였다.
그리고 부맹주를 의식한 맹주는 쟁쟁한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후기지수들을 제치고 뜻밖에도 천옥랑을 부단주로 임명했다.
기하진에게 지고는 못 사는 천옥랑도 이번 인사는 맹주가 직접 단행한 것이라 불만을 토로할 수 없었다. 그나마 부단주 자리가 어딘가? 비록 기하진 밑이라 배알은 좀 꼴리지만.
부맹주 천계심은 천옥랑에게 참고 때를 기다리라고 얘기했다. 때가 되면 용봉단주로 올려줄 테니....
신임 용봉단주로 임명받은 기하진과 천옥랑에게 맹주가 아닌 부맹주 천계심이 첫 번째 임무를 내렸다. 천린상단의 대방인 임풍에게 직접 자신이 쓴 서한을 전해주고 답을 받아오라는 것이었다.
“그래, 기 단주와 천 부단주께서는 무슨 일로 본가까지 오셨소?”
임풍의 물음에 기하진이 요혜신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외부인이 있는 곳에서 드릴 말씀은 아닌 듯합니다.”
의례적인 인사치레로 왔다고 생각했던 임풍은 기하진의 말에 당황했다. 일어나겠다는 요혜신니를 붙잡은 것은 자기인데 이제 기하진이 요혜신니를 콕 찍어 외부인이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요혜신니는 자신을 외부인 취급하는 맹랑한 기하진의 말에 노기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그 말이 틀린 데는 없는지라 화를 낼 수도 없었다.
“허허허. 알겠소이다. 이 늙은이가 눈치도 없이 자리보전을 너무 오래 했구려. 외부인은 이만 물러가겠소.”
마음이 상한 요혜신니가 일어나자 임풍은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요혜신니는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다. 게다가 18년 만에 찾아온 발걸음이었다. 당연히 처음 보는 무림맹의 젊은 단주와는 중요성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요혜신니가 가는 것을 두고 봐야 하는 것이 너무도 가시방석이었다.
“빈니가 불시에 임 대방을 찾아온 것이니 너무 괘념치 마시오. 그럼 다음에 또 만납시다.”
요혜신니가 옷자락을 떨치고 일어나자 기하진이 따라 일어나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살펴가십시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요혜신니는 밖으로 나가려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기하진을 바라보았다.
“용봉단주 아래에 내 제자가 있다고 들었소. 아직 부족한 것이 많은 아이니 각별히 잘 부탁하오.”
요혜신니의 제자라면 남이를 말하는 것이었다. 기하진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부탁은 들어드리기 어려울 듯합니다. 저는 모든 대원을 똑같이 대우하고자 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특별한 대우를 해 줄 생각은 없습니다.”
그 말에 요혜신니가 두 눈을 부릅떴다.
“무어라?”
자신의 부탁을 일언지하에 자르다니 맹랑하기 그지없는 태도였다. 천하의 아미파 장문인 앞에서도 꼬박꼬박 할 말을 다하는 기하진을 보니 요혜신니는 노기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그렇다고 일부러 차별할 생각도 없습니다. 저는 그저 원칙과 소신에 따라 행동하고자 합니다.”
그 말에 요혜신니는 코웃음을 치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과연 그 맹주에 그 제자답구나. 무림맹 인사들은 어찌 하나같이 원칙 타령인지. 그 원칙의 기준이 무엇인지 심히 궁금하구나. 허허허.”
요혜신니가 휘적휘적 걸어나가자 임풍이 급히 따라 나갔다.
요혜신니를 배웅하고 돌아온 임풍은 못마땅한 눈길로 기하진을 바라보았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러시오?”
이번에는 기하진의 눈빛이 임예린을 향했다. 임예린은 기하진의 뜻을 알아채고는 조용히 물러났다. 이윽고 방 안에는 임풍과 기하진, 천옥랑 등 세 사람만 남았다.
“이제 얘기해 보시오. 무슨 일인지.”
임풍의 말에 기하진이 방문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안됩니다. 방문 뒤에 숨어 있는 사람들도 물러나라고 하십시오.”
방문 뒤에는 임풍의 호위를 위해 호천대원 서너 명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임풍은 기척도 없이 숨어 있는 자신의 호위무사들까지 기하진이 콕 찍어내자 속으로 깜짝 놀랐다. 무림신동이라는 별명이 있었다고 하더니 정말 대단한 실력이 아닐 수 없었다.
이윽고 호위무사들마저 모두 물리자 기하진이 품 안에서 부맹주가 보내는 서한을 꺼내어 올렸다.
“부맹주님께서 보내는 서한입니다. 보시고 그에 대한 답을 꼭 받아오라 이르셨습니다.”
임풍은 재빨리 서한을 훑어내렸다. 서한에는 별다른 내용 없이 모월 모일 모시에 어디서 만났으면 좋겠다는 간략한 내용만 있었다.
아니, 고작 약속하나 잡자고 지금까지 그 수선을 떨었단 말인가?
임풍은 화가 나서 기하진에게 캐물었다.
“고작 약속이 아닙니다. 부맹주님께서는 임 장주님을 은밀히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부득이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 이 서한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기하진의 말에 임풍은 나직한 소리를 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부맹주가 무슨 일로 자신을 보자고 할까? 그것도 은밀히.... 임풍의 경험으로 볼 때 사람들이 자신을 은밀히 찾을 때는 단 한 가지 경우뿐이었다. 바로 돈이 필요할 때였다.
“알겠소. 약속날짜에 맞추어 갈 테니 그렇게 부맹주께 말씀드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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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조용한 곤명호(昆明湖)의 물살을 가르며 배 한 척이 호수 중앙에 있는 남호도(南湖島)에 도착했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임풍. 임풍은 풍천숙과 함께 무림맹 부맹주 천계심을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천계심이 호수 중앙에 있는 섬에서 만나자고 했을 때 임풍은 천계심이 얼마나 용의주도한 자인지 알아차렸다. 누군가가 엿들을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는 동시에, 또한 자신을 효과적으로 압박하려는 방법이었다. 만약 호수 근처에 병력을 대기시켜 놓더라도 이들이 자신을 구하러 올 때쯤 자신은 이미 부맹주의 수중에 떨어졌을 것이다.
임풍은 쓴웃음을 지었다. 무림맹을 움직이는 실세가 부맹주라고 하더니, 과연 용의주도하고 대담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감히 자신에게 이렇게 오라 마라 하다니...!
남호도에 있는 정자에는 불이 밝혀져 있었고 부맹주 천계심은 이미 당도해 있었다. 그 옆에는 체격이 크고 우락부락해 보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무림맹의 세 개 단 중 실전부대인 남천단의 단주, 원무개라는 소개를 받았다.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셨소.”
천계심이 인사치레를 했다. 임풍도 몇 마디 인사치레했다. 그러자 원무개가 용건을 꺼냈다.
“이렇게 어려운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임 대방에게 부탁이 있어서입니다.”
임풍이 원무개를 바라보았다. 어서 말을 하라는 눈빛이었다.
원무개는 흠흠, 하고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말을 꺼냈다.
“천린상단과 무림맹은 이와 입술의 관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이지요. 임 대방께서는 어떻게 여기십니까?”
“그야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희 상단이 매년 거액을 꼬박꼬박 상납하는 것 아니겠소이까? 보호비 명목으로 말이요. 허허허.”
임풍은 상대방이 돈 얘기를 꺼낼 줄 알고 자신이 매년 거액을 상납한다는 사실을 미리 상기시켰다. 그러한 임풍의 의도가 눈에 보인다는 듯 천계심이 입꼬리를 올리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맞는 말씀이오. 정확히 매년 은자 이십만 냥을 우리 무림맹에서 받고 있소이다. 그건 맹 차원에서 고맙게 잘 쓰고 있소만 오늘 이렇게 보자고 한 것은 내가 따로 자금이 좀 필요해서요.”
천계심이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내자 임풍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거두절미하고 얘기를 꺼낼 줄은 몰랐다.
“임 대방도 알겠지만 맹주는 요즘 맹의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소. 내 생각에는 조만간 맹주가 바뀔 듯하오이다.”
천계심의 말에 임풍은 속으로 적이 놀랐다. 이 자가 설마 모반이라도 일으킬 생각인가? 하지만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맹주가 바뀌다니요?”
“요즘 강호의 정세가 그렇다는 얘기요. 그리고 이런 말을 내 입으로 하기는 좀 뭣 하지만 후임 맹주 일 순위는 다름 아닌 나, 천계심이오. 그러니 임 대방께서 나를 물심양면으로 좀 밀어주면 앞으로도 천린상단과 우리 무림맹이 더 잘 지낼 수 있지 않겠소이까? 그리고 여차하면 내 사문인 청성파에서도 도움을 드릴 수 있을 테고 말이오.”
임풍은 천계심의 얼굴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천계심은 술잔을 들며 여유만만한 표정이었다. 임풍도 나름 무림맹에 대한 정보를 듣고 있었기에 천계심의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님을 잘 알았다.
“얼마를 원하십니까?”
임풍이 묻자 천계심은 말없이 빙그레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원무개가 말을 거들었다.
“황금 이만 냥과 은자 백만 냥입니다.”
임풍은 원무개가 부른 금액에 흠칫 놀랐다.
이 작자들이 도대체 제정신인가? 그 금액이라면 성(省)을 하나 사고도 남았다.
임풍은 화를 참지 못하고 탁자를 탁, 치며 벌떡 일어섰다.
“그 금액이 뉘 집 애 이름인 줄 아시오?”
“앉으시오. 아직 내 말이 다 끝나지 않았소.”
천계심은 임풍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했다. 임풍은 분노로 몸을 부르르 떨며 천계심을 노려보았다.
“임 대방께서 그렇게 사태판단이 느려서야 되겠소? 옆에 있는 풍 대주의 무공수준이야 내 잘 알고 있소만 그렇다고 우리 무림맹의 고수와 같은 급으로 여기면 곤란하외다.”
천계심이 눈짓을 했다. 풍천숙은 원무개의 기색이 수상쩍어 칼을 뽑으려고 하는 순간, 어느새 원무개의 검이 번쩍하는 빛과 함께 자기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풍천숙의 대도는 칼집에서 아직 반도 뽑히지 않은 상태였다.
풍천숙의 입에서 분노인지 자책인지 모를 신음이 나직이 흘러나왔다.
풍천숙이 원무개를 노려보자 원무개가 뭘 그렇게 놀라냐는 식의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도 백전노장이었지만 남천단주의 무공은 차원이 달랐다.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신속하고 깔끔한 솜씨였다. 과연 무림맹 실전부대의 수장다웠다.
“이제 원 단주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내일 아침 두 번 다시 풍 대주를 볼 수는 없을 것이오.”
천계심이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임풍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천계심은 지금 자신을 앞에 두고 대놓고 협박을 하고 있었다. 돈을 내놓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들보다 더 뛰어난 고수를 초빙해와야 할지, 아니면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할지 아무래도 따져봐야 할 듯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나라도 그런 거액은 당장 마련할 수 없소이다.”
임풍의 말에 천계심은 그제야 빙그레 웃으며 임풍을 바라보았다.
“좋소. 보름 말미를 주리다. 보름 안에 그 금액을 마련하여 은밀히 보내시오. 만약 이 일이 맹주나 총군사의 귀에 들어가면 임가장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날부로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오.”
그 말을 신호로 원무개가 검을 내리는가 싶더니 돌연 다시 휘리릭 휘둘렀다. 순식간에 풍천숙의 목에 가느다란 혈선이 생겼다. 풍천숙은 차가운 감촉이 자신의 목을 스치고 지나가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제대로 된 답을 가져오지 못하면 목에 줄 하나 긋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잘 아실 테고. 그럼 먼저 가리다.”
천계심이 비웃듯 임풍을 쳐다보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임풍은 모멸감을 참지 못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천계심이 호숫가에 매어놓은 배로 가다가 문득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 그 전에 잠깐. 천린상단 호천대의 위명이 하도 커서 대단할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너무 실망이외다. 풍 대주 정도의 실력으로는 우리 원 단주의 수하도 못 될 듯하니 이번 참에 좀 더 젊고 유능한 고수를 채용하는 게 어떻소? 말만 하면 내 얼마든지 추천해 주리다. 하하하.”
천계심은 무엇이 우스운지 고개를 젖히고 광소를 터뜨리더니 원무개와 함께 사라졌다. 임풍은 갑자기 맥이 빠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대방 어른, 제가... 무능하여 너무 송구합니다.”
풍천숙은 할 수만 있다면 바닥을 뚫고 땅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호천대와 천린상단의 명성을 자신이 망친 셈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무림은 약육강식의 세계. 무공수위로 모든 것이 결정되니 억울하다 한들 할 말이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서 있는 풍천숙의 귀에 임풍이 토해내는 한숨 소리가 납덩이마냥 무겁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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