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 광세일소_한추영 - 124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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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화. 무고한 피를 손에 묻히고 (2)
장일웅은 아내와 아들만큼은 살리려고 적이 쳐들어오자 급히 피신시켰지만 이제 두 사람 모두 되돌아오자 놀라서 목소리가 떨렸다.
“다, 당신,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어찌하여...?”
아내 한 씨는 장일웅의 품에 머리를 묻고 오열했다. 그 바람에 장일웅의 어린 아들도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다.
한 씨는 어린 아들을 안고 도망가려고 했으나 이미 들이닥친 수라대원들의 추격을 받자 밖으로 도망갈 수가 없었다. 한 씨 부인을 보호하던 무사들도 모두 목숨을 거두고, 한 씨는 수라대를 피해 숨어 있다가 결국 죽더라도 남편 곁에서 죽고자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때 수라대원 한 명이 한 씨를 뒤쫓아 왔다.
“여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집안을 수색하거라.”
석추명의 말에 한 씨를 뒤쫓아 오던 대원은 고개를 숙이고 ‘존명!’하고 외치더니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장일웅은 아내와 아들을 보자 돌연 마음이 약해져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장일웅은 아내와 아들을 안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석추명을 바라보며 애원했다.
“대주, 내 아내와 아들만은 살려주시오. 제발 부탁이오. 이 두 사람만 살려주면 내 즉시 깨끗이 자결하여 대주의 은혜에 보답하겠소. 대주, 제발 인정을 베풀어 주시오!”
어느덧 장일웅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장일웅은 무림의 당당한 협사로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적에게 살려달라는 애원은 절대 하지 않을 사람이었으나 아직 세 살도 되지 않은 어린 아들이 죽는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아들과 아내를 안고 흐느끼는 장일웅을 보며 석추명은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졌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죽음이고, 무엇을 위한 살인이란 말인가? 백성을 구제하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운 신교가 어째서 무고한 자들의 피를 요구한단 말인가?
석추명이 잠시 생각에 잠겨있을 때, 부대주 맹환이 나타났다.
“대주, 잔당들을 모조리 처리했소이다. 이제 저들만이 남았습니다.”
“알겠다. 나는 저들에게 지금 뢰 장로의 행방을 캐묻는 중이다. 부 대주는 수하들을 데리고 살아있는 자가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아라.”
맹환은 미심쩍은 눈길로 장일웅 가족과 석추명을 쳐다보았으나 석추명이 단호한 눈빛을 보내자 내키지 않는 듯 고개를 숙이고는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몇 걸음 가지 않아 다시 고개를 돌려 잠시 장일웅을 살펴보더니 곧장 다른 전각으로 사라졌다.
석추명은 장일웅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걱정 마십시오. 부인과 아들은 내가 꼭 살려주겠습니다.”
“고맙소. 대주.”
석추명의 말에 장일웅은 안심한 듯 석추명을 올려보았다.
장일웅은 잠시 눈을 돌려 아내와 아들을 바라보고는 손을 뻗어 아내의 두 손을 꽉 쥐었다. 아내를 바라보는 장일웅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내 한 씨의 눈에서도 눈물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장일웅이 아내의 손을 놓더니 검을 쳐들고는 자신의 가슴을 향해 힘차게 찔렀다.
윽!
장일웅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장일웅은 죽는 순간 아내를 쳐다보며 잠시 몸을 떨더니 그만 숨을 거두었다.
그 모습에 장일웅의 아내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혹시 소리가 샐까 봐 손으로 입을 꾹꾹 누르며 울었다. 그러나 장일웅의 어린 자식은 눈앞에서 아버지가 죽자 놀라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빠! 아빠!”
그 소리에 맹환이 멀리서 휙 뒤돌아보았다. 맹환의 눈에 장일웅이 서서히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곧 그 모습은 석추명의 뒷모습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다. 원래 맹환은 자신이 장일웅을 붙잡아 공을 세우고 싶었지만, 입맛만 다시며 살아있는 잔당을 찾아 사라졌다.
석추명은 재빨리 주위를 둘러본 다음 주위에 아무도 없자 급히 장일웅의 아내와 아들을 수레에 태우고 그 위에 거적을 덮었다. 그리고는 다시 그 위에 시신 몇 구를 올렸다.
잠시 뒤, 맹환이 수하들을 이끌고 석추명에게 다가왔다.
“대주, 장가방에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처단했습니다. 개나 고양이 새끼 한 마리도 살려두지 않았습니다.”
맹환의 말에 석추명이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소. 임무를 완수했으니 어서 돌아갑시다.”
“존명!”
석추명의 말에 수라대원들은 고개를 숙이며 복귀 준비를 했다. 이번 장가방 소멸 작전에서 수라대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 비록 뢰정 장로를 잡지는 못했으나 뢰정을 잡는 것보다 장가방을 쓸어버리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이번 임무는 성공이었다.
그런데 발길을 돌려 밖으로 나가던 맹환이 갑자기 발길을 멈추고 시신이 쌓여 있는 수레를 쳐다보았다. 그 수레에서 미세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석추명은 맹환이 걸음을 멈추자 마음이 철렁했다. 두 모자가 맹환의 눈에 띈다면 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석추명의 귀에도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미세하게 들렸지만 짐짓 못 들은 척 능청을 떨었다.
“왜 그러시오? 부대주?”
맹환은 석추명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수레로 다가가더니 시신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석추명은 마음이 초조해졌다. 맹환의 눈길이 서서히 제일 아래에 있는 거적을 향하고 있었다. 거적 아래에 장일웅의 부인과 아들이 숨어 있음을 금방 알아차릴 것만 같았다.
‘뭐라도 해야 해!’
석추명은 슬그머니 작은 조약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때 문득 내원 건너편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석추명이 고양이 쪽을 향해 조약돌을 힘껏 던지며 소리쳤다.
“저기 누군가 있다! 누구냐!”
석추명이 조약돌을 던지자, 고양이가 놀라서 잽싸게 수풀 속으로 들어가면서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한편, 시신을 살펴보던 맹환은 내정 건너편 수풀이 살짝 흔들리자 순식간에 공중으로 몸을 뽑아 올리며 경공을 발휘했다. 맹환의 몸이 쏜살같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부대주를 도와라.”
석추명이 명령을 내리자 나머지 수라대원들도 일제히 맹환의 뒤를 따라 경공을 전개했다.
내정에 있던 수라대원들이 모두 사라지자 석추명은 황급히 수레를 뒤집어 한 씨 부인과 아들을 꺼냈다.
“빨리 내정 뒤로 도망치십시오. 서둘러야 합니다. 어서요.”
석추명은 맹환이 금방이라도 돌아올까 봐 온몸의 촉각을 곤두세웠다. 한 씨 부인도 아이를 안고 허겁지겁 피하려고 했으나 무공을 익히지 않은 여인의 발걸음은 너무도 무거웠다.
허겁지겁 도망치던 한 씨 부인이 그만 나뭇가지를 밟았고, 달아나는 적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던 맹환의 귀에 그 미세한 소리가 포착되었다.
“누구냐!”
맹환이 다시 석추명이 있는 곳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한 씨 부인은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리는 손길로 품에 안고 있던 석추명에게 넘겨주었다.
“아이를 부탁드립니다.”
한 씨 부인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잠시 어린 아들을 바라보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곧장 몸을 돌려 석추명과 반대방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더 아이와 멀리 떨어져서 아이를 살리려고 하는 어미의 가련한 마음이 느껴져 석추명은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그렇게 넋 놓고 있을 정신이 없었다. 석추명은 아이를 받자마자 재빨리 아이가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아혈을 짚은 뒤 내원 정자 아래 돌계단 뒤편의 빈 공간에 아이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아이 앞을 자연스럽게 막아섰다.
한편, 맹환은 누군가가 달아나자 곧장 손에 든 비도를 앞으로 맹렬히 떨쳐냈다. 비도는 금방이라도 한 씨 부인의 심장을 관통할 듯 날아왔다.
살려야 해! 석추명의 입술이 바싹 타들어 갔다.
석추명은 비도가 닿기 전에 경공을 발휘하여 활이 활시위를 떠나듯 몸을 앞으로 튕겨냈다. 궁신탄영(弓身彈影)이라는 상승경공이었다.
비도가 막 한 씨 부인의 등을 꿰뚫으려는 찰나 석추명은 간발의 차이로 한 씨 부인을 붙잡아 번쩍 위로 잡아들고는 앞으로 던졌다. 언뜻 보기에는 석추명이 한 씨 부인을 공격하는 듯했으나 실은 오묘하게 힘을 조절하여 한 씨 부인을 앞으로 슬쩍 밀어낸 것이다.
마치 누군가가 한 씨 부인을 살짝 안아 들어 앞으로 옮기는 것 같았지만, 이는 힘줄기를 쏟아낸 석추명과 당하는 한 씨 부인만 알 뿐이었다. 석추명은 한 씨 부인을 들어 올리는 순간 한 씨 부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 움직이지 말고 죽은 듯 있으십시오.
그러나 정자 아래 계단 뒤에 숨어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장일웅의 어린 아들은 이런 속사정을 전혀 알지 못했다. 어린아이의 눈에는 그저 석추명이 자신의 어머니를 집어던지는 것으로만 비춰졌다. 그리고 땅바닥에 쓰러진 어머니는 죽은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며 어머니에게 달려나가려고 했지만 이미 혈도가 짚여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아이의 눈에 빨갛게 핏발이 서며 눈물만 하염없이 나왔다.
잠시 뒤에 맹환이 도착하자 석추명이 별일 아닌 듯 얘기했다.
“장일웅의 아내가 도망치기에 내가 손을 썼다. 내 일장을 맞았으니 이미 숨이 끊어졌을 것이다. 이만 여기를 벗어나자.”
석추명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맹환의 눈에는 석추명의 동작이 평상시와는 좀 다르다는 것을 간파했다. 맹환은 한 씨 부인을 다시 한번 힐끗 보더니 곧장 의구심이 생겼다. 대주의 일장을 맞았다면 내장이 끊어져 피를 토했을 텐데 얼굴이 너무 멀쩡했던 것이다.
수상하게 여긴 맹환이 손을 번쩍 들더니 땅바닥에 쓰러진 한 씨 부인에게 비도를 날려 보냈다.
“부대주, 무슨 짓이냐!”
석추명은 깜짝 놀라 맹환을 꾸짖었다. 그 순간, 죽은 척하고 있던 한씨 부인이 복부에 비도를 맞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년의 명이 질겨 아직 살아있었습니다. 대주!”
맹환은 석추명이 한씨 부인을 일부러 살려주었음을 한눈에 간파했다. 한 명도 살려두지 말라는 교주의 명을 어겼으니 교주에게 이 일을 보고하면 석추명은 어떻게 될까?
이 상황이 만족스러운 듯 석추명을 바라보는 맹환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석추명은 화가 났지만 맹환의 말에 뭐라고 반박하기가 어려웠다.
한 씨 부인은 상처가 워낙 위중하여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였다. 그 모습에 석추명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장일웅에게 한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 것이다.
한 씨 부인은 복부에 박힌 비도를 움켜쥔 채 애절한 눈빛으로 잠시 석추명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자신의 아들을 부탁한다는 뜻이리라.
석추명은 알겠다는 듯 다른 사람들은 모르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한 씨 부인은 입가에 희미하게 슬픈 미소를 짓더니 곧 그대로 털썩하고 땅바닥에 머리를 떨구었다.
한 씨 부인을 살리려고 했던 석추명은 마음이 아팠다.
아이만이라도 꼭 살려야 한다!
“정말 그랬군. 자, 여기는 철수한다.”
석추명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하게 얘기하자 수라대원들이 대오를 정비하여 철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단 뒤에 숨어서 피눈물을 흘리던 어린 소년은 부모를 죽인 원수를 잊지 않겠다는 듯, 석추명을 한없이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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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방을 몰살하고 돌아온 석추명은 밤이 늦도록 혼자서 술을 마셨다. 이미 시각은 삼경을 넘어 사경에 이르고 있었다. 석추명은 미친 듯이 벌컥벌컥 술을 들이키더니 미친 사람처럼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았다. 손에 묻은 핏자국이 지워지지 않는 것만 같았다.
“아아.”
석추명의 입에서 다시 한숨이 새어 나오더니, 갑자기 큭큭 거리면서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런 석추명을 지켜보던 담예린은 석추명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석추명은 피를 보기에는 마음이 너무 따뜻한 사람이었다. 싸울 때는 그 누구보다도 용감하지만 무고한 자들을 베어야 할 때는 한없이 망설이는 사람이었다.
담예린은 그런 석추명을 끌어안고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엄명이 있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결국 자신은 대주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일개 평대원이 아닌가.
그때 대주가 있는 전각의 대문이 열리더니 황연화와 사소혜가 들어왔다.
“불모님을 뵙습니다.”
담예린이 황급히 일어나서 허리를 굽혔다.
“석 대주는 안에 있느냐?”
“예. 그렇기는 한데....”
황연화의 질문에 담예린이 말끝을 흐렸다. 술에 취해 괴로워하고 있는 석추명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안에 있으면 됐다. 잠시 만나고 갈 테니 그리 알거라.”
황연화가 앞으로 나서자 사소혜가 문을 열었다. 사소혜가 따라 들어가려고 하자 황연화가 문을 닫으며 말했다.
“너도 잠깐 밖에서 기다리거라.”
그 말에 사소혜는 입을 삐죽 내밀고는 곧 ‘네’하고 담예린의 옆에 털썩 앉았다. 담예린은 가슴을 다 드러낸 사소혜의 모습이 마뜩잖아 인상을 굳혔다.
‘야심한 밤에 벌거벗다시피 한 모습으로 젊은 대주의 처소에 들어오다니, 정신이 나갔군.’
사소혜는 담예린의 몸을 한번 훑어보더니 자신감에 찬 미소를 한번 짓고는 여봐란듯이 가슴을 흔들었다. 담예린은 그런 사소혜의 행동이 못마땅하고 불쾌했지만, 그보다 방 안으로 들어간 황연화의 행동이 더욱 신경 쓰였다. 도대체 이 야심한 밤에 교주 부인이 왜 젊은 대주의 방에 혼자 들어간단 말인가!
한편, 술에 거나하게 취해 있던 석추명은 황연화가 들어오자 비틀거리며 일어나 예를 갖추려고 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석 대주.”
황연화의 말에 석추명은 털썩 의자에 주저앉더니 혀 꼬인 소리를 했다.
“불모님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평상시 같으면 절대 입에 담지도 못할 소리였다. 황연화는 그런 석추명을 쳐다보며 은밀하게 물었다.
“장가방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뢰 장로가 있던가요?”
황연화의 물음에 석추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행히 스승님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인데 석 대주는 왜 이렇게 괴로워하는 건가요?”
황연화의 말에 석추명은 탁자에 머리를 박고 있다가 고개를 들고 멍한 눈으로 황연화를 바라보았다.
“제 손에... 무고한, 무고한 사람들의 피가... 묻었습니다.”
말을 하는 석추명의 눈에 물기가 맺혔다. 문득 대웅대협이 아내와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걸하던 모습, 아내 한 씨가 맹환의 비수에 맞아 죽어가던 처연한 눈빛, 그리고 장가방에서 죽어 나간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과 피비린내 나는 모습이 떠올랐다.
“미륵불을 받드는 우리가... 세상을 구하겠다는 우리가... 이래도 되는 겁니까? 불모님, 말씀해주세요. 이래도 정말... 되는 겁니까?”
석추명의 목소리가 떨렸다. 황연화는 힘들어하는 석추명의 모습을 바라보며 마냥 안타까웠다. 황연화도 교주의 잔인한 성정에 좌절하고 실망했었기에 누구보다 석추명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황연화가 석추명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대주마저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어떡합니까? 힘을 내세요. 대주 같은 분이 우리 신교에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황연화는 다른 손으로 석추명의 손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앞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혼자서 속 썩이지 말고 저를 찾아오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돕겠어요.”
황연화는 그 말을 남긴 뒤 석추명의 방을 나섰다.
방문 밖에 있던 담예린은 황연화가 나오자 얼른 일어서서 예를 갖추었다. 방문 틈으로 살펴보니 그토록 힘들어하던 석추명이 조금 진정되어 있었다.
자기는 석추명을 위로해 주고 싶어도 할 수 없었는데, 아니 방에 들어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는데, 황연화는 불모라는 신분으로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담예린은 알 수 없는 불안감과 함께 묘한 질투심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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