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세일소-25화 (25/201)

#   25 - 광세일소_한추영 - 1224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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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화. 배사지례(拜師之禮)

동남동녀들이 천옥랑과 원성한을 끌고 사라지자 기하진과 남이는 전각을 몰래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천림원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 모두 그날 밤에 본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돌아오는 길 내내 말이 없었다.

그다음 날, 천옥랑과 원성한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공수업에 들어왔지만 놀랍게도 그 전날 음양사자를 만난 일은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다만 양 노인이 다가오면 뭔가 기분 나쁜 듯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긁적이더니 슬그머니 피했다.

기하진은 천림원 안에서 양 노인과 마주치자 잔뜩 긴장했지만, 태연한 척 평소와 마찬가지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양 할아버지.”

“오냐. 하진이로구나.”

양 노인의 눈빛이 번뜩이며 자신을 스쳐 지나갔다. 기하진은 속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스쳐 지나가는 양 노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며칠이 지난 뒤, 기하진은 다시 맹주전을 찾아갔다. 무림맹의 고위급이라도 맹주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지만 총군사 사마경이 특별히 자리를 마련해 준 덕분에 맹주를 만날 수 있었다.

맹주전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인자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표정을 한 남궁진악이 앉아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진이로구나. 그래, 내게 무슨 볼일이 있다고?”

기하진은 맹주를 보자 즉시 바닥에 무릎을 꿇어 큰절을 올렸다.

“지난번에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맹주님의 깊은 은혜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또랑또랑한 기하진의 말에 남궁진악이 껄껄거리며 소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다. 맹의 사람들을 위험에서 보호하는 것도 맹주의 책임 중 하나이니라. 너무 그럴 필요 없다.”

자애로운 맹주의 말에 기하진은 감격해서 맹주를 바라보았다. 저렇게 자상하고 인자한 분을 스승으로 모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듣자 하니 근래에 네 무공이 전혀 진도가 없다면서? 자, 내게 무슨 무공을 수련하는 중이었는지 말해주겠느냐?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도와주마.”

남궁진악의 인자한 눈빛에 기하진은 자신의 아버지를 다시 보는 것만 같아 두 눈이 촉촉해졌다. 그동안 이토록 자신에게 관심 가져주고 따뜻하게 대해주던 사람이 있었던가? 갑자기 울컥한 기분이 들면서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맹주님.”

이 분이, 정도 무림의 하늘이라는 맹주님이 어쩌면 자신의 스승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잔뜩 들떴다.

기하진이 주섬주섬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에 어떻게 중양일지를 보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에서 앞부분 몇 장을 찢었는지, 그리고 무림맹에 들어온 뒤에 어떻게 수련했는지 숨김없이 모두 이야기했다.

자신이 중양신공을 수련했다는 이야기를 타인에게 하는 것은 맹주가 처음이었다. 음양사자나 사마경이 눈치채기는 했지만 기하진이 자신의 입으로 직접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맹주 앞에서는 왠지 한 점 숨김도 없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해도 모두 들어주고 이해해줄 것만 같았다.

중양신공에 이어 부득이 천림비고에 잠입하여 음양사자와 겨루고 혼세마검보를 얻은 사실도 이실직고했다. 사실 지금 무공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은 혼세마검, 즉 천마검이었기 때문에 이 사실을 감출 수는 없었다.

“맹주님, 소인이 맹랑하게도 중양일지를 훼손하고 또 감히 천림비고에 잠입하여 맹주님의 허락도 없이 금기의 무공인 혼세마검을 익혔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기하진이 다시 남궁진악에게 엎드려 고개를 숙였다. 원래 몰래 천림비고에 잠입하여 비급을 훔치는 것은 사지를 절단할 만큼의 중죄였다. 기하진이 자신의 잘못을 고하자 남궁진악은 잠시 말이 없었다.

“얘야, 과연 큰 잘못을 저지르기는 했구나. 본인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져야 한다. 그것이 무인의 자세요, 협의를 지향하는 우리들의 본분이다. 만약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벌을 받지 않는다면 세상에 도리가 어떻게 서겠느냐?”

맹주의 말에 기하진은 너무나 송구스러워 다시 머리를 숙였다.

“어린 마음에 앞뒤 생각해보지도 못하고 맹의 법도를 어기고 말았습니다. 맹주님께서 어떤 벌을 주신다고 해도 달게 받겠습니다.”

기하진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맹주의 목소리가 갑자기 낮아지면서 엄숙해졌다.

“내 허락 없이 천림내고에 잠입하여 비급을 훔치는 행위는 사형에 해당할 만큼의 중죄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무리 어려서 몰랐다고는 하나 중양일지를 훼손하고 몰래 빼돌린 것도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죄다. 너는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느냐?”

맹주의 입에서 죽음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기하진은 엎드린 채 주먹을 꼭 쥐었다.

죽을 수도 있다. 불현듯 기하진의 머릿속에 석추명과 임예린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죽기 전에 꼭 한 번만이라도 더 보고 싶은 얼굴들이었다. 그리고 칼에 맞아 돌아가신 부모님의 모습과 죽은 무결의 얼굴도 떠올랐다. 복수를 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기하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느새 마음이 담담해졌다.

“죽으라고 명하시면 기꺼이 죽겠습니다.”

기하진의 말에 남궁진악은 잠시 물끄러미 기하진을 바라보았다. 감정의 동요를 느낀 듯 떨리던 기하진의 눈빛이 어느새 가라앉아 다시 맑아져 있었다. 감정조절이 극히 뛰어난 아이가 분명했다.

남궁진악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을 뻗어 기하진을 일으켜 세웠다.

“내가 설마 내 제자를 죽이겠느냐? 앞으로 네 목숨은 무림맹과 정도 무림의 안녕에 바치거라.”

남궁진악이 기하진을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인다는 뜻이었다.

기하진은 예상치 못한 맹주의 말에 가슴이 뭉클하여 넋을 놓고 맹주를 바라보았다.

마음이 뜨거워졌다.

“감사합니다, 맹주님. 앞으로 제 목숨은 맹주님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창칼이나 물불도 두려워하지 않고 맹주님께서 뛰어들라 하시면 뛰어들겠습니다.”

기하진은 벅차오르는 감동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남궁진악은 그런 기하진을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토록 나를 위하겠다니 고맙구나. 나를 위하는 것이 곧 무림을 위하는 것이다. 그 마음 잊지 않도록 하여라.”

그 말에 기하진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네 무공을 살펴봐야겠으니 여기 좌정하거라.”

기하진이 결가부좌를 틀고 앉자 남궁진악이 두 손을 기하진의 등에 뻗어 내력을 집어넣었다. 기하진의 몸 안에서는 중양신공으로 쌓인 내기가 용솟음치고 있었다. 이 정도의 내기라면 행로만 알면 금방이라도 대주천이 시작될 수 있을 정도였다. 남궁진악은 기하진의 내공수위에 속으로 적잖게 놀랐다.

“이 정도의 내공이면 창궁무애검법을 능히 다룰 수 있겠구나. 내일부터 당장 수련을 시작하도록 하자. 그리고 찢어간 중양일지는 본래 맹의 물건이니 즉시 가져오도록 하여라.”

“예, 맹주님.”

“또 한 가지, 네가 내 제자가 되면 마땅히 수행해야 할 임무가 있다.”

“무엇이든지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기하진이 공손히 포권을 취했다.

“첫 번째 임무는 마교에 빼앗긴 중양일지를 되찾는 것이다. 조만간 마교에 침투하여 빼앗긴 중양일지 하반부를 온전한 형태로 내게 가져와야 한다. 알겠느냐?”

맹주가 주는 첫 임무가 절대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예상했지만, 중양일지 하반부를 되찾아 오라고 할 줄은 몰랐던 기하진은 잠시 당황했다.

“왜 대답이 없느냐? 알아듣겠느냐?”

인자하던 남궁진악의 표정이 변하며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명 받잡겠습니다. 맹주님.”

기하진이 얼른 대답을 했다.

“그럼 이제 배사지례(拜師之禮)를 올려야겠지. 우리 사문의 조사와 선조들께 고하는 정식 배사지례는 추후에 다시 하기로 하고 지금 내게 삼배를 올리거라.”

기하진은 즉시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남궁진악에게 세 번 절을 올림으로써 무림맹주 남궁진악의 두 번째 제자가 되었다.

기하진이 맹주의 기명제자가 되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맹 내에 퍼져나갔다.

맹주 남궁진악은 유일한 제자였던 석문이 사라진 이후 크게 낙심하여 두 번 다시 제자를 들이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맹주의 독문 무공이 이대로 강호에서 사라질까 우려했지만, 맹주의 제자를 뽑는 것은 결코 만만한 과정이 아니었다.

뛰어난 자질과 훌륭한 인품을 갖추고 있어야 하지만 또한 패도적인 맹주의 무공을 수련해나갈 수 있는 방대한 내공도 갖춘 자라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기존 사문의 무공이 맹주의 무공과 배치되어서도 안 되었다.

구파일방의 난다긴다하는 후기지수들이 하나같이 맹주의 제자가 되고 싶었지만 이런 까다로운 제약조건들 때문에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맹주가 두 번째 제자를 맞아들이자 온 무림이 발칵 뒤집힌 것이다.

천옥랑은 기하진이 맹주의 제자가 되었다는 말에 질투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도대체 그놈이 자신보다 어떤 점이 잘나서 그런 행운을 거머쥐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천옥랑은 분통을 터뜨리며 아버지 천계심을 만나러 갔다.

“아버지, 저도 맹주님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천계심은 자신을 찾아와서 다짜고짜 맹주의 제자가 되겠다고 생떼를 쓰는 아들을 난감한 듯 바라보았다.

천계심은 맹주가 기하진을 제자로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맹주의 의도를 알 수 없어 눈살을 찌푸렸다. 기하진 그 아이가 대체 어떤 효용 가치가 있어서 맹주가 그토록 집착하는 걸까?

천옥랑이 천림내고에서 혼세마검보를 탈취하지 못했으니 맹주의 의도대로 기하진이 그 기보를 가져갔음이 분명했다. 지난번에 그 아이가 주화입마에 빠진 것도 무리하게 혼세마검의 공력을 운용하다가 생긴 일이리라 짐작되었다.

그리고는 보란 듯이 맹주 자신이 직접 그 아이를 치료해 주었다. 그리고 이제 그 아이를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인다?

마치 잘 짜인 각본대로 일이 진행되는 듯 뭔가 석연찮은 느낌이 들었다. 수하의 보고에 의하면 기하진 그 아이는 내공이 좀 대단할 뿐, 사문이나 가문은 보잘것없지 않던가? 게다가 그 아이의 일가족은 마교에게 몰살당했다.

맹주 그 늙은이가 아무런 세력이 없는 자를 제자로 받아들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그 아이의 어떤 점이 맹주의 구미에 맞아 떨어진 걸까?

천계심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맹주의 의도를 간파할 수 없었다.

천계심은 맹주의 무공을 대단치 않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맹주의 무공 자체에는 아무런 욕심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맹주의 제자’라는 직위만큼은 달랐다.

맹주의 제자가 되면 바로 그 순간부터 좋든 싫든 전 무림의 관심을 받게 된다. 맹주의 제자는 구파일방의 수뇌부가 참여하는 무림맹의 구파오세가 수장회의에 참석하여 발언할 수 있고, 맹의 주요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수련이 끝나 강호에 출사하게 되면 즉시 최소한 부단주급 이상의 직책을 바로 받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 무림에서 계속 공을 세워 승승장구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따라서 맹주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맹주의 무공을 배운다는 것보다 오히려 맹주의 제자가 됨으로써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더욱 큰 것이다.

천계심은 자신의 아들을 맹주의 제자로 만들어 그런 관심과 지위를 누리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혹 누가 알겠는가? 맹주의 가문인 남궁세가의 무공도 무림 일절이니만큼 그 무공을 접수하여 청성파 무공에 접목한다면 앞으로 사문의 무공이 더욱 발전할지.

“아버지! 저도 맹주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고요!”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천계심은 천옥랑의 떼쓰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네 녀석이 남궁진악의 제자가 되고 싶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맹주의 제자가 되고 싶다면야 방법이 있지.”

방법이 있다는 말에 천옥랑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게 무엇입니까, 아버지?”

천계심은 아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맹주가 되는 것이다. 내가 맹주가 되면 너는 당연히 존귀한 맹주의 아들이자 제자가 되지 않겠느냐? 우하하하.”

천계심은 한참을 웃다가 다시 차가운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이 아비가 맹주가 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지난번처럼 실수하지 말고.”

****

기하진이 맹주의 제자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 백련신교에서 무림맹의 양양(襄陽) 지부를 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양양은 백련신교의 총단이 있는 섬서성에 인접한 지역이라 늘 두 세력 간에 크고 작은 다툼이 발생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백련신교의 2개 대대가 양양지부를 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첩보를 마교에 심어둔 세작들이 가지고 온 것이다.

첩보를 들은 총군사 사마경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뭔가 이상했다. 양양은 구파일방 중 소림, 무당, 아미, 청성 등에서 멀지 않아서 백련신교의 총단이 섬서성에 있다고는 하나 그동안 한 번도 도발한 전례가 없던 지역이었다. 즉 마교와 구파 간에 암묵적으로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었다. 그런데 이제 마교에서 그런 균형을 깨뜨리고 양양을 공격한다니,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마경은 이번 첩보가 마교에서 일부러 흘린 거짓정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부맹주 천계심은 양양은 고수가 별로 없기 때문에 이렇게 망설이다가 일패도지할 수 있으며, 따라서 즉시 남천단과 용봉단을 즉시 파견해서 양양지부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갑론을박을 벌이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남궁진악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아무래도 총군사께서 잘못 짚으신 모양이오. 적들이 이미 움직이고 있다는 동향이 파악되었으니 이번 정보가 거짓일 리는 없다고 판단되오. 부맹주의 의견대로 즉시 남천단과 용봉단을 파견합시다. 그리고 2개 단의 총지휘는 부맹주께서 맡으시구려.”

남궁진악의 말에 천계심은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어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를 지었다.

“맹주님, 그리고 이번 전투에는 우리 측 고수가 더 필요하니 천림원의 뛰어난 생도들을 데리고 갈까 합니다. 그들도 실전을 경험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천계심의 말에 남궁진악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입니다. 부맹주의 뜻대로 하십시다. 생도들 가운데 누구를 데리고 갈지는 천림원 원주인 공각대사와 상의하도록 하시오.”

“맹주님, 그리고 이번 전투는 사전에 은밀히 움직여 적들의 예기를 꺾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은밀한 움직임에는 본 맹의 암영단을 능가할 고수들은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번 전투에 본 맹의 암영단을 데리고 가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암영단은 맹주를 호위하고, 암살을 수행하거나 첩보를 수집하는 등 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해야 하는 은밀한 임무를 담당했다. 전투에서도 적들의 눈에 띄지 않고 몰래 적진에 잠입해야 하는 임무는 암영단을 따를 자가 없었다.

그러나 천계심의 말에 사마경이 즉시 소리높여 반대했다.

“아니 될 말씀이오이다. 부맹주께서는 지금 맹의 총단은 텅텅 비워놓자는 겁니까? 2개 단이 빠지는 마당에 암영단까지 데려가면 맹주님의 호위는 누가 한단 말입니까? 혹시 그 틈을 타고 마교의 무리들이 맹주님께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사마경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목소리를 높이자 천계심이 콧방귀를 뀌었다.

“맹주님의 무공이 천하무적인데 누가 감히 맹주님께 해코지한단 말이오? 그리고 이번 양양대전에서 적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 놓아야 두 번 다시 이런 도발이 없을 게 아니오?”

암영단 파견을 놓고 두 사람이 다시 설전을 벌였다. 맹주전에는 지금 세 사람 이외에도 소림과 무당을 대표하여 공각대사와 허각 도장이 앉아 있었지만 두 사람은 모두 잠자코 듣기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 옆에는 이번에 맹주의 제자로 공식 선포된 기하진도 앉아서 회의내용을 경청하고 있었다.

사마경과 한참 설전을 이어가던 천계심이 문득 기하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소협의 의견은 어떠한가? 맹주님을 감히 공격할 놈들이 있으리라고 보나?”

맹주의 제자가 됨으로써 신분이 달라진 터라 천계심도 기하진에게 예를 갖추었다.

그러나 기하진은 난데없이 자신에게 질문이 날아오자 당황하고 말았다.

“맹주님의 신공이 이미 천하무적이신데 누가 감히 겁도 없이 맹주님을 공격하겠습니까?”

천계심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기하진의 답을 유도해내자 입가에 회심을 미소를 지었다.

“총군사께서 지금 맹주님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은 이해가 되네. 듣자 하니 기소협의 무공이 이미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기소협이 맹주님의 호위에 힘을 보태는 게 어떤가?”

천계심은 교묘한 말재주로 기하진을 압박했다. 제자에게 스승을 보호하라는데 어떤 제자가 못하겠다고 하겠는가?

“그야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제자 된 자로서 당연히 맹주님의 호위에 전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기하진이 대답하자 천계심이 여봐란듯이 사마경을 쳐다보며 말했다.

“맹주님의 직계제자에다가 맹주님의 호위를 위해 용봉단에서 인원을 차출하여 남기겠소. 그리고 용봉단 구휘 부단주를 남겨 그 통솔을 맡긴다면 어떻소? 이 정도면 맹주님의 호위로는 충분하지 않겠소?”

천계심이 강하게 압박하자 사마경은 할 말이 없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남궁진악이 예의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중재에 나섰다.

“허허허. 부맹주의 말씀처럼 본인에 대한 호위는 그리 필요할 것 같지 않소이다. 부맹주의 뜻대로 처리하시오.”

맹주의 명이 떨어지자 천계심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모든 것이 자신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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