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 광세일소_한추영 - 1213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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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화. 주화입마
천림원 2층의 개인 수련실.
사위가 고요한 적막한 밤, 기하진이 두 눈을 반개한 채 결가부좌를 틀고 어둠 속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 일기충천 용사만배(一氣衝天 用使萬倍)
천마검보에 적힌 검결이 뇌리에 떠오르자 백회를 통해 한 줄기 미세한 기운이 흘러들어오더니 순식간에 사지로 퍼져나가며 찌릿찌릿한 전율을 일으켰다.
두 눈이 저절로 떠지더니 손발이 정신의 통제를 벗어난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세한 기운은 어느새 손끝에서 광야에 부는 거친 광풍이 되어 휘몰아쳐 나왔다.
정신없이 검을 놀리던 기하진이 돌연 검을 멈추고 우뚝 섰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또르르 굴러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기하진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어렸다.
어느새 천마검의 제3단계까지 도달했다. 1, 2단계는 쉽게 통과했지만 3단계는 꼬박 7일이 걸렸다.
사문이 없어 그동안 상승무공을 전수받을 기회가 없었던 기하진은 이제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천마검은 총 8단계까지 있었다. 백 년 전 홍진노괴도 7단계에 올랐을 뿐, 8단계까지 오른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3단계에 오른 기하진에게 8단계는 결코 넘볼 수 없는 경지가 아니었다.
반드시 최고의 경지에 올라 세상을 놀라게 하리라. 그리고 무결과 부모님의 원수를 꼭 갚으리라. 기하진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근래에 무림맹 남천단이 귀면쌍살을 추격해서 거의 다 잡았다가 놓쳤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귀면쌍살은 마치 잡힐 것처럼 하더니 마지막에 자신을 둘러싼 남천단원들을 희롱하며 유유히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자존심이 구겨진 남천단주 원무개의 이를 갈며 분개했다는 소리도 들려왔다.
귀면쌍살 절대 살려두지 않으리라!
허공을 노려보는 기하진의 눈앞에 귀면탈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천마검을 제5단계까지만 연마하면 귀면쌍살과 맞수를 이룰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두 단계만 더 올라가면 된다.
기하진은 그 자리에 앉아 제4단계를 수련하려는데 문득 머릿속에 홍진노괴의 경고가 떠올랐다.
- 수련하는 자의 내력이 화후(火候)를 다스릴 만큼 충분하지 못하면 화기가 심맥으로 파고들어 온몸이 불에 타는 듯이 뜨거워지며 주화입마에 이르게 된다. 만약 열기가 골수에 이르게 되면 대라신선이 오더라도 살릴 수 없다.
문득 자신의 내력이 4단계를 버틸 수 있을지 슬그머니 걱정되었다. 기하진은 잡념을 떨쳐 버리려고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지금까지 잘 진행되었다. 4단계도 아무 일 없이 진행될 거야. 왜냐하면 내게는 중양신공으로 얻은 내공이 있으니까.’
기하진이 정좌하여 4단계 수련으로 넘어가려고 할 때 멀리서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하루를 꼬박 새워버린 것이다. 기하진은 별수 없이 4단계 수련은 밤에 다시 하기로 했다.
기하진이 수련실을 나서는데 멀리서 천림비고의 정리를 담당하는 양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기하진은 천림비고에 잠입한 이후로 천림비고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기하진은 음양사자와 싸우는 바람에 엉망이 된 천림비고를 양 노인이 혼자서 다 정리했다는 말을 들었다. 사흘 밤낮으로 그걸 치운 뒤에 앓아누웠다는 소문까지 들었던 터라 기하진은 양 노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양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기하진이 인사를 하며 아는 체를 했다. 양 노인은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진이구나. 수련하느라 또 밤을 새웠나 보구나?”
양 노인은 하루종일 천림비고에 있었기 때문에 천림원 원생들의 이름과 얼굴을 훤히 다 알고 있었다.
“예.”
기하진이 겸연쩍게 웃었다. 그러면서 기하진은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듣자 하니 맹 내에서 유일하게 음양사자와 만나 얘기하는 사람이 양 노인이라는데 혹시 음양사자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궁금했던 것이다. 그러나 기하진 자신이 먼저 그 얘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천림비고에 잠입한 사람이 자신임을 실토하는 셈이 되니까.
기하진의 이런 궁금증을 아는지 양 노인은 기하진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때 얼핏 눈빛이 번뜩인 것도 같았다.
“무리하지 말아라. 과유불급이야. 급하게 먹는 밥이 체한다고 아무리 좋은 무공도 차근차근해야 하는 법이야.”
뭔가 묘한 여운을 남기는 말이었다. 평소에 워낙 말이 없고 무뚝뚝한 노인이었기 때문에 기하진에게 이런 얘기를 한 것 자체가 정말 뜻밖이었다. 양 노인은 그 말을 하고는 다시 휘적휘적 걸어갔다.
기하진은 이 노인장이 이런 면도 있었나 싶어서 양 노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리해서 수련하지 말라는 뜻이겠거니 하고 생각하면서도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근래에 기하진은 꼭 필요한 무공수업 외에는 일절 사람들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지학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몇 달 만에 다시 나왔는데 무공 수업시간 이후에는 기하진의 모습을 볼 수 없어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그날도 공식적인 일과가 끝나기 무섭게 기하진이 사라지자 지학은 기하진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하여 몰래 뒤따라가 보기로 했다. 근래 들어 기하진의 무공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것 같았는데 그 이유가 사실 궁금하기도 했었다.
기하진은 지학이 뒤따라오는 것도 모른 체 자신만의 연공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밤새도록 나오지 않았다. 지학은 맥이 빠져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편, 수련실에 들어가 있던 기하진은 그날따라 마음가짐이 다른 날과 달랐다. 오늘은 천마검 수련이 제 4단계에 들어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기하진은 천마검의 구결을 암송하고 법도에 따라 기운을 돌리기 시작했다. 제 4단계의 핵심은 백회를 통해 내려오는 자연지기와 단전을 통해 끌어올린 음양지기가 중단전에서 만나 용호상합(龍虎相合)을 이루는 것이었다. 즉, 화기(火氣)와 수기(水氣)가 서로 만나게 하는 것이었다.
두 기운이 상통하면 중단전에서 엄청난 폭발력이 발생한다. 다만 그때 백회를 통해 내려오는 열기를 상쇄할 만큼 충분한 수기를 뽑아 올릴 내력이 단전에 있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심맥에 화기가 침투하여 주화입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두 눈을 감은 기하진의 백회를 통해 용암처럼 뜨거운 불기운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기하진은 차분하게 단전에서 수기를 뽑아 올려 대응했으나 불기운이 점점 거세지면서 단전에서 뽑아 올린 물기운은 중단전 가까이도 가 보지도 못하고 점점 기화해 버렸다.
타는 듯한 뜨거움에 기하진의 안면이 씰룩거렸다. 땀이 비 오듯 흐르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돼. 여기서 조금만 더!’
기하진은 온 힘을 다해서 단전의 물기운을 끌어올리려 했으나 이미 모든 내력은 고갈된 상태였다.
물기운으로 다스려지지 않은 열기가 폭증하기 시작했다. 중단전에서 용광로처럼 끓어오른 열기가 불화살을 쏜 것처럼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순식간에 온몸이 시뻘게지면서 온몸에서 흘러내리던 땀방울마저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기하진의 몸속에서 폭주를 일으킨 화기가 뚫고 나갈 곳을 찾지 못해 소용돌이치자 기하진은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장풍을 일으켰다.
펑! 소리와 함께 수련실 문이 박살이 났다. 그와 함께 뜨거운 열 바람이 문밖으로 확 쏠려 나갔다.
그때 기하진이 아직도 수련 중인지 어슬렁거리며 보러 왔다가 결국 포기하고 돌아서던 지학의 귓가에 그 폭발음이 들렸다.
뭔가가 발생했다!
지학은 폭발음이 난 곳을 향해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놀랍게도 기하진이 수련하던 연공실의 문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한밤중에 폭발음이 나자 놀라서 뛰쳐나온 사람들 몇 명이 기하진의 연공실 주위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지학은 급히 사람들을 제치고 연공실로 들어가 보니 기하진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게 보였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설마 주화입마...?”
지학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소리쳤다.
“맞아. 더 늦기 전에 빨리 손을 써야 해!”
마침 그 자리에 있던 팽호가 대답하며 기하진을 앉힌 뒤, 등 뒤에 손을 대고 내력을 불어넣으려 했다. 그러나 기하진의 등에 손을 대는 순간, 너무나 뜨거워 깜짝 놀라 손을 떼고 말았다.
“온몸이 완전히 불덩이야. 손을 댈 수조차 없어!”
팽호의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지학은 그 모습에 자신의 공력으로도 어쩔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얼른 가서 공각 대사님을 모셔올게. 그동안 좀 지켜보고 있어.”
지학은 기하진을 팽호에게 맡겨놓고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달렸다. 공각 대사의 숙소는 천림원 밖에 무공강사들의 숙소와 함께 있었다.
“사숙님, 사숙님! 큰일 났어요! 얼른 좀 나와보세요!”
지학은 공각 대사의 숙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동네방네 다 떠나가라는 듯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 소리에 공각 대사뿐만 아니라 허각 도장, 왕취선 등 천림원의 무공강사들이 모두 잠에서 깨었다.
“이놈! 야심한 밤에 이 무슨 소란인 게냐!”
잠자리에 들었던 공각 대사는 잠옷 바람으로 뛰쳐나와 지학을 꾸짖었다.
“하진이가, 하진이가 주화입마에 들었습니다. 저희로서는 감당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늦기 전에 어서 가서 좀 보셔야겠어요.”
지학이 숨을 헐떡이며 설명하자 공각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근래에 주화입마에 들만한 무공을 가르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공각은 지학의 말에 대충 옷을 걸친 다음 서둘러 기하진이 있는 곳으로 갔다. 기하진은 연공실에서 의약방(醫藥房)으로 옮겨져 있었다.
지학이 워낙 난리를 피운 덕택에 공각 대사 말고도 허각 도장과 왕취선 등도 곧 당도했다.
공각 대사는 기하진의 상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기하진은 온몸이 숯덩이처럼 뜨거웠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어찌 이런...!”
공각 대사는 서둘러 기하진의 주요 대혈 몇 군데를 점하고 장심을 기하진의 등 뒤 명문에 갖다 댔다. 치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공각 대사의 손바닥에서 허연 김이 솟아나며 손바닥이 익을 듯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공각 대사는 일각을 채 견디지 못하고 손을 떼고 말았다. 공각 대사의 손은 끓는 물에 담그기라도 한 듯 온통 수포가 잡히고 벌겋게 익어 있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허각 도장이 깜짝 놀랐다.
“이럴 수가! 대체 무슨 내공을 연마했기에 이렇게 화기가 치민단 말인가!”
허각 도장이 공각 대사를 이어 기하진의 몸에 손을 댔지만 역시 일각도 안되어 손을 떼고 말았다. 허각 도장은 벌겋게 익은 손을 다른 손으로 붙들고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어렵다는 뜻이었다.
공각 대사는 지학에게 호통을 치며 물었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당장 말하지 못할까?”
“저, 저도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릅니다. 하진이는 무결이가 죽고 나서 계속 불철주야 연공만 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귀면쌍살에게 복수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귀면쌍살에게 복수라니. 그 무슨 가당치도 않은 소리야? 그걸 알았다면 당장 말렸어야지!”
화가 난 공각 대사가 호통을 치자 지학은 주먹만 꼭 쥐고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러자 지켜보던 왕취선이 나서서 공각 대사를 말렸다.
“이 아이들의 심정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지요. 오죽이나 분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이 아이를 살리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이번에는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왕취선은 기하진의 등에 손을 댔다가 그 뜨거움에 놀라 얼른 손을 뗐다. 천림원의 무공강사라 하더라도 내공수위는 각자 다 달랐기 때문에 공각 대사는 왕취선을 만류했다.
“왕 선생,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그보다 이 아이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소.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무림맹 내에서 이 정도의 화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인 것으로 압니다.”
왕취선의 말에 허각 도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허, 이렇게 못난 모습을 보이게 될 줄이야.”
허각 도장이 참담한 심정이 되어 눈을 지그시 감았다. 허각 도장은 수십 년간 무당파 무공을 수련해왔지만 지금 기하진의 주화입마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자신의 실력에 심한 자괴감이 들었다. 그 점에서는 공각 대사도 마찬가지였다.
“자책은 나중에 합시다. 더 늦다가는 이 아이의 목숨이 위험합니다. 내가 가서 맹주님을 모셔오겠소이다. 그때까지 좀 더 수고들 해주십시오.”
말을 마친 공각 대사는 밤하늘로 훌쩍 몸을 날리며 맹주전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맹주 남궁진악이 총군사 사마경, 천림원주 공각 대사와 함께 나타났다. 한밤중에 맹주가 움직이자 무림맹 전체가 잠에서 깨어 술렁대고 있었다.
사마경은 맹주의 어깨너머로 기하진의 상태를 보더니 묘한 미소를 지었다.
맹주 남궁진악은 기하진의 상의를 벗기게 하고 좌장으로는 기하진의 등 한가운데 있는 영태혈을, 우장은 백회혈에 올리더니 공력을 운용했다.
남궁진악 얼굴의 반쪽에 푸른 기운이, 다른 반쪽에 붉은 기운이 어리더니 백회혈로는 푸른 음기가, 영태혈로는 붉은 양기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향 한대가 타들어 갈 시간 동안 남궁진악의 얼굴이 붉은빛에서 푸른빛으로, 다시 푸른빛에서 붉은빛으로 수차례 변했다.
남궁진악의 좌우에는 총군사 사마경을 비롯하여 천림원주 공각대사, 무당파 장로인 허각 도장 등 고수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맹주를 보호하기 위해서 용봉단 부단주 구휘가 용봉단원을 이끌고 도열해 있었다.
이들은 모두 무림맹 내에서도 일당백의 고수들로 하나같이 자신의 무공실력에 대해서 은근히 자부심이 있었다. 그간 맹주 남궁진악은 무공을 잘 드러내지 않아 다들 그 경지를 추측만 할 뿐, 자신과 별반 차이는 없으리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제 실제로 보니 그 엄청난 차이에 모두들 속으로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허각 도장의 얼굴에 깊게 주름이 패였다.
‘맹주가 쓰는 저 무공은 음양일기공(陰陽一氣功)이 분명하구나. 얼굴빛이 여섯 번 변한 걸 보니 최소 제6단계 이상이군. 허각아, 허각아, 스스로 무공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하더니 오늘에서야 네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음을 알겠구나.’
허각 도장이 자신의 무공에 대해 한탄을 할 때, 공각 대사는 맹주의 무공을 보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음양일기공은 음양사자의 독문무공인 줄로만 알았더니, 맹주가 이를 구사할 줄이야! 이상하구나.’
음양일기공은 정파의 무공이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한 무공이었기에 공각 대사는 맹주의 무공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기하진의 주화입마를 가라앉힌 맹주가 공각 대사에게 말했다.
“이제 안정이 되었으니 몸을 보하는 천령단(天靈丹)을 몇 알 먹이도록 하시오.”
천령단을 먹이라는 말에 주위에서 가벼운 소란이 일어났다. 천령단은 상처를 치료하고 내공을 증진시키는 영약으로 조제하기가 극히 까다로워서 맹 내에서도 웬만한 고위급 인사가 아니면 잘 쓰지 않는 약이었다.
공각 대사는 맹주가 목숨을 소중히 여기고 인재를 아끼는 마음으로 영단도 아낌없이 하사하자 조금 전까지 품었던 일말의 의구심을 깨끗이 버렸다.
‘내가 맹주를 잘못 보았구나. 저리도 자애로운 분이시거늘.’
그리고 맹주의 은혜에 거듭 감사를 표했다.
맹주가 친히 공력을 써가며 천림원의 일개 수련생을 구하자 주위에 모여 있던 사람들도 하나같이 맹주의 자비로움에 감탄하며 맹주를 우러러봤다. 이런 사람이 정파 무림의 수장이라는 사실에 사람들은 새삼 안도감을 느꼈다.
그날, 기하진은 그렇게 맹주의 도움으로 주화입마의 위험에서 벗어났다.
그다음 날, 맹주가 친히 공력을 운용하여 기하진을 주화입마에서 구했다는 소식은 이미 맹 전체에 파다하게 퍼져나갔다.
기하진은 그날 밤 소동으로 본의 아니게 무림맹 전체를 깨워버려 무림맹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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