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 광세일소_한추영 - 1209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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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화. 음양사자(陰陽使者) (2)
음양사자의 백음귀조(白陰鬼爪)가 천옥랑의 목 뒤에 꽂히려는 순간, 기하진은 품에 안고 있던 천옥랑을 공중으로 번쩍 던져 올랐다. 그 간발의 차이로 음양사자의 오른손 손가락은 허공을 찍고 말았다.
하지만 그다음이 더욱 문제였다. 이제 천옥랑이 떨어지기만 하면 음양사자의 손은 천옥랑의 심장을 찍으려고 달려들 게 분명했다. 기하진은 천옥랑을 던져올리자마자 음양사자의 오른손 손목을 향해 즉시 두 발을 번갈아 차며 연환퇴(連環腿)를 전개했다.
암암리에 발끝에 공력을 모으고 있었기 때문에 연환퇴 공격에 적중되기만 하면 손목이 그대로 부러져 나갈 정도로 위력적인 발차기였다.
“가소롭구나. 지금 네 녀석이 한가하게 그놈 목숨이나 돌볼 때가 아닐 텐데?”
음양사자는 기하진을 비웃더니 손을 한 차례 변화시키며 번수(翻手)로 뒤집어 그대로 기하진의 발목을 붙잡았다. 손이 움직이는 속도가 갈수록 기이할 정도로 빨라져서 기하진은 뻗은 발을 붙잡히고 말았다.
음양사자는 기하진의 발목을 붙잡더니 그대로 오른쪽으로 던져버렸다. 기하진의 몸이 속절없이 날아가다 벽에 부딪치고는 아래로 떨어졌다.
기하진은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팠지만 지금 아프다고 쓰러져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음양사자가 한 손을 뻗어 아래로 떨어지는 천옥랑의 가슴을 찔러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기하진을 던지고 천옥랑의 가슴을 찌르는 동작이 한 동작으로 이어진 것처럼 조금의 틈도 없었다. 이대로 음양사자의 손끝이 그대로 천옥랑의 가슴을 뚫고 심장을 뜯어낼 것만 같았다.
“안돼!”
기하진은 다급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품속에 있는 책을 꺼내 음양사자를 향해 힘껏 집어 던졌다. 집어던지는 순간까지도 그 책이 무결의 복수를 위한 비급이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쐐액. 소리를 내며 책이 음양사자의 안면을 향해 날아갔다.
모든 무림인이 꿈꾸는 절세 무공을 기록한 비급, 혼세마검보였다. 음양사자가 천옥랑을 공격하는 손을 거두지 않으면 기하진이 던진 서책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게 될 터였다.
비록 자신의 공력으로 음양사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얼굴 피부를 찢고 코뼈를 내려 앉힐 수는 있었다. 여인이라면 나이를 떠나 누구나 외모를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긴다. 기하진은 그토록 급박한 와중에서도 그 점을 노렸다.
과연 음양사자는 자신의 얼굴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오는 서책에 흠칫 놀라 즉시 천옥랑을 공격하던 손을 거두어 서책을 붙잡았다.
그 틈을 타서 기하진은 물찬 제비같이 몸을 날려 천옥랑을 구해냈다.
“흥! 훔쳐가려던 책을 일부러 갖다 바치다니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겠군. 낄낄낄.”
음양사자가 한참 웃더니 돌연 기하진과 천옥랑에게 고개를 돌렸다.
“네 녀석의 그 알량한 솜씨에 맞춰 주는 것도 이제 끝이다. 각오해라.”
음양사자가 두 팔을 번쩍 쳐들어 올리자 홍수에 둑이 터진 양 엄청난 무형의 기운이 몰려왔다. 그 기운이 가슴을 압박하여 기하진은 숨도 제대로 쉴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급하게 공력을 끌어올려 저항해 보았으나 별소용 없었다.
음양사자는 자신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고수였다. 귀면쌍살에 이어 두 번째 좌절을 맛보게 된 기하진은 무림신동이라는 자신의 별호가 얼마나 별 볼 일 없는지 새삼 깨달았다. 문득 이대로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대로 끝나고 마는 것인가!’
천옥랑을 구하려고 달려들지만 않았어도 어쩌면 도망칠 기회가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기하진은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아무리 얄미워도 천옥랑은 자신이 베야 하는 적이 아니라 동료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 자리에서 죽게 된다면 무결의 복수를 할 수 없는 점이 너무도 분했다.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왔던 무결의 모습이 생각나자 기하진은 이를 악 깨물었다.
‘건곤일척(乾坤一擲). 모든 것을 다 걸고 막아볼 수밖에.’
기하진은 천옥랑을 안지 않은 한 손에 혼신의 공력을 모아 앞으로 뻗어냈다.
슈수숙!
분명히 온몸의 공력을 짜내어 펼쳤건만, 기하진이 펼친 장풍은 거대한 해일처럼 덮쳐오는 음양사자의 기운에 파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젠 정말 끝이었다.
아! 입가에서 절로 탄식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때 누군가가 기하진의 몸을 뒤로 홱 잡아챘다. 음양사자의 공력에 기하진이 내상을 입기 직전이라 그야말로 절묘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기하진이 방금 전에 서 있던 곳에 음양사자의 응축된 기가 터지며 그 자리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기하진을 구해준 사람은 즉시 등 뒤에서 도(刀) 한 자루를 꺼내더니 음양사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도신(刀身)이 넓은 것을 보니 불문의 승려들이 사용하는 계도와 비슷했다. 복면을 했으나 어딘지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계도가 무겁고 위력적인 공격을 펼쳐냈다. 웅혼하면서도 정심한 기운, 바로 소림의 위타복마도법(韋陀伏魔刀法)이었다.
“저것은...!”
어쩐지 뒷모습이 낯익더라니!
자신을 구해준 사람은 바로 지학이었다.
백무결이 죽은 이후 어두운 방에서 자신을 감금하며 괴로워하던 지학이 기하진을 구하기 위해 넉 달 만에 드디어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가진 음양사자와 대담하게 맞서고 있었다.
기하진은 죽었다라고 생각하던 순간 갑자기 지학이 나타나자 가슴속에 알 수 없는 뭉클한 감정이 들었다. 생사고락을 같이한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돌연 힘이 솟구쳤다.
“왔냐?”
기하진의 물음에 지학이 계도를 휘두르며 대답했다.
“응. 하나 남은 친구마저 잃을 수는 없지.”
지학의 목소리에서 쓸쓸함이 묻어났다.
음양사자는 난데없이 또 다른 복면인이 나타나자 살짝 놀란 듯했으나 오히려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심해!”
음양사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기하진이 소리쳤다.
음양사자가 몸을 기이하게 꺾으며 지학의 공격을 피하더니 돌연 팔을 두 자 정도 뻗어 지학의 계도를 튕겨냈다. 지학은 손바닥에 강한 진동을 느끼며 그만 도를 놓치고 말았다.
“앗!”
뜻밖의 공격에 놀란 기하진이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어서 빨리 피해야 해!”
지학이 계도를 다급하게 휘두르며 기하진에게 소리쳤다.
“친구, 다 쉬었으면 이리 와서 손이나 좀 보태지? 들고 있는 놈일랑은 내팽개치고.”
마치 익살스러운 지학의 평소 모습이 살아나는 듯해서 기하진은 반가웠다.
“그러지 뭐.”
그 순간, 음양사자의 귀조수가 지학의 정면을 할퀴려 들었다.
“위험해!”
기하진이 검을 빼 들고 음양사자를 공격해 들어갔다. 그 바람에 음양사자는 어쩔 수 없이 지학을 공격하던 손을 돌려 기하진의 공격을 막아야 했다. 위기를 한시름 넘기자 기하진이 소리쳤다.
“천지인 합격으로 나가자!”
천지인 합격이란 원래 기하진, 지학, 백무결 세 사람이 함께 무공을 수련하다가 강적을 만나면 사용하자며 고안한 합격(合擊) 초식이었다. 당시는 장난삼아 생각해본 것이지만 기하진은 지금이야말로 그 초식을 사용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기하진의 말에 지학이 흔쾌히 동의했다. 두 사람은 음양사자를 가운데 두고 각자 자신의 최대절기를 발휘해 음양사자를 공격해 들어갔다. 지학의 금강도(金剛刀)와 기하진의 장풍이 한꺼번에 음양사자를 휘몰아쳤다.
원래는 백무결의 매화검까지 세 방향에서 공격하는 것이었다. 제아무리 강적이라도 세 방향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몰아치는 공격을 한 번에 다 막아낼 수는 없으리라는 것이 그 기본 발상이었다. 물론 지금은 백무결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 순간, 퍽! 소리와 함께 음양사자의 형체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건 또 무슨 사술이란 말인가! 기하진과 지학은 놀라서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면밀히 살폈다.
별안간 두 사람의 등 뒤쪽에서 굵기도 하고 가늘기도 한 기묘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호호호”
그 소리에 두 사람은 즉시 몸을 돌려 소리가 난 방향으로 다시 검과 도를 찔러넣었다. 지학과 기하진 두 사람은 모두 상승신법을 익히고 있었므로 그 빠르기란 눈으로 따라가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음양사자의 몸이 다시 퍽! 소리를 내며 흩어져 버렸다. 그야말로 귀신놀음 같았다.
“귀연신공(鬼煙神功)이야.”
식견이 넓은 지학이 눈으로 음양사자를 쫓으며 말했다.
“귀연신공?”
기하진이 되묻자 지학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전된 보법이라고 들었는데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그때 두 사람 앞에 음양사자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정도 놀아주었으니 되었겠지.”
음양사자는 뜻 모를 말을 하더니 손을 앞으로 뻗쳐 기하진을 잡으려 들었다. 기하진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려고 했으나 음양사자의 신법이 너무 빨라 피할 수가 없었다. 급한 대로 기하진은 두 손을 뻗어 자신의 목줄기를 공격하는 음양사자의 손을 막았다.
파바바박. 순식간에 두 사람은 서너 초식을 교환했다. 두 사람의 공방이 워낙 신속하게 이루어져서 지학은 눈뜬장님처럼 그저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음양사자와 손을 섞던 중에 음양사자의 손이 목 뒤 대혈을 스치고 지나가자 기하진은 대경실색해서 머리털이 곧추섰다. 그 바람에 음양사자가 자신의 품에 무언가를 찔러넣은 것도 깨닫지 못했다.
음양사자는 지학이 달려들기 전에 다시 휘리릭 십여 척 밖으로 몸을 날려 섰다. 그러더니 기하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하진, 제법이구나.”
놀랍게도 음양사자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음양사자는 애초에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기하진은 그 사실에 눈알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조만간 다시 만날 일이 있을 게다. 그때 보자꾸나.”
음양사자는 그 말을 내뱉고는 순식간에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기하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아 넋을 놓고 서 있었다. 복면을 쓰고 있는데 내가 기하진인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아니, 복면을 쓰지 않았어도 나를 본 적이 없을 텐데 어떻게 아는 걸까?
아래층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나가야 해!”
지학이 소리쳤다. 기하진은 얼른 천옥랑을 붙잡고 사람들이 올라오기 전에 천림비고를 빠져나갔다.
기하진은 허겁지겁 자신의 숙소로 돌아왔다. 순찰조에게 걸리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으나 순찰조들은 천림비고의 소동 때문에 모두 위층으로 올라가 있어 생각보다 쉽게 돌아올 수 있었다.
침상에 털썩 걸터앉자 안도감과 함께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오늘 밤 있었던 일이 꿈속 같기만 했다.
그때 가슴 한쪽에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품속에 손을 넣자 서책이 만져졌다.
‘뭐지?’
꺼내고 보니 그 서책은 뜻밖에도 혼세마검보였다.
‘이 책이 어째서 내 품에...?’
기하진은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마지막에 음양사자와 잠깐 손을 섞을 때 음양사자가 자기 품 안에 무엇인가를 불쑥 집어넣은 것이 그제야 기억났다.
그러나 음양사자가 왜 이 책을 다시 내게 준 것일까? 도대체 음양사자는 누구일까? 어째서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걸까?
기하진은 떨리는 손으로 책장을 넘겼다.
오십 년 전 당시 무림맹주였던 백운신검(白雲神劍)이 직접 붙인 표지를 넘기자 비급의 원래 제목이었던 ‘천마검보(天磨劍譜)’라는 색바랜 네 글자가 낡은 표지에 나타났다.
책장을 넘길수록 놀랍기만 했다. 세상에 이런 무공이 있다니!
천마검(天磨劍)은 중양신공과는 전혀 다른 무공이었다. 사실 기하진은 중양신공의 내공만 익혔기 때문에 두 무공을 제대로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비급에 기록된 것만으로도 천마검이 얼마나 강맹하고 위력적인 검법인지 알 수 있었다.
다만, 천마검을 수련하려는 자는 내공이 반드시 일갑자가 넘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수련 중에 주화입마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백 년 전의 홍진노괴는 분명히 경고하고 있었다.
기하진은 내력에는 자신 있었지만, 자신의 내력이 과연 일갑자에 달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검보를 계속 읽어 내려가는 기하진의 손이 흥분으로 떨렸다.
금기의 무공.
그러나 검보를 보는 순간, 수련을 통해 그 위력을 확인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솟구쳤다. 이 무공이라면 백무결과 부모님의 복수도 멀지 않아 보였다.
그날 밤 기하진은 온몸이 녹아들듯 피곤했지만 밤을 꼬박 새우며 천마검의 수련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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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천림원 무공수업 시간. 지난 밤에 누군가 천림비고를 침입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천림원 전체에 퍼져나갔다. 원생들뿐만 아니라 무공강사들도 그토록 대담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하며 의견이 분분했다.
“지난밤에 천림비고에 침입자가 있었다면서? 천림비고가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대.”
“침입자는 누굴까? 역시 마교겠지?”
“글쎄. 한두 명이 아니라는 말도 있고, 한 명이라는 말도 있고, 뭐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어. 맹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밝히지를 않았으니 말이야.”
“흠. 지난번에 마교에서 잠입했을 때는 중양일지를 잃었는데 이번에는 뭐가 도난당했다던가?”
“맹에서 밝히지를 않으니 알 수가 없어. 누구는 중양일지에 필적하는 혼세마검보일 것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아예 도난당한 비급이 없다고도 하고....”
“그나저나 음양사자가 침입자를 놓친 게 이번이 두 번째네. 저승사자라는 별명은 아무래도 바꿔야겠다.”
“뭐라고?”
“허당사자라고. 크크크”
수련생들은 자신들이 겪어보지 못한 음양사자의 실력을 깎아내리며 저희들끼리 비웃느라고 바빴다.
‘음양사자의 세 초식도 받아내지 못할 녀석이 큰 소리는.’
기하진은 웃고 있는 원생들을 한 번 쳐다보고는 귓가에 들리는 소리를 못 들은 척 걸음을 옮겼다.
그때 기하진의 옆으로 지학이 다가왔다.
지학은 기하진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기하진은 그런 지학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학이 드디어 우울감과 자책감을 이겨낸 것만 같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늦었네?”
기하진의 말에 지학이 대답했다.
“응. 간밤에 뭘 좀 하느라고 잠을 통 못 잤어.”
기하진이 지학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젯밤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해준 지학이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끝없는 자책감을 떨쳐 버리고 일어선 지학이 너무 대견했다.
나도 지학을 위해 앞으로 목숨을 내놓으리라.
“그나저나 고생한 수확이 없어서 어떡하냐?”
기하진이 혼세마검보를 얻은 사실을 모르는 지학이 걱정하며 말했다. 기하진은 지학의 걱정이 진심이란 것을 알았지만, 자신이 혼세마검보를 얻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뭐. 하하... 하하하.”
기하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얘기하지 않은 것은 무공을 독차지하려는 욕심 때문이 아니었다. 귀면쌍살에 대한 복수는 위험한 일이었다. 기하진은 또다시 지학을 잃고 싶지 않았다.
‘지학아, 거짓말해서 미안해. 그런데 복수는 내가 할게. 너마저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어.’
기하진은 초췌해진 지학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때 허각 도장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조용. 조용! 다들 왔느냐? 옥랑이가 안 보이는구나.”
정말 천옥랑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옥랑이가 고뿔이 심하게 걸려서 며칠 못 나온답니다.”
“뭐라고? 무공을 수련하는 녀석이 그깟 고뿔에 걸려 못 온다니. 허, 그것, 참...!”
허각 도장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에헴 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 모습에 기하진과 지학은 서로 쳐다보며 자신들만 아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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