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세일소-16화 (16/201)

#   16 - 광세일소_한추영 - 1199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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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화. 귀면쌍살의 출현

서호오패 중 첫째 도지일이 검을 빼 들더니 곧장 백무결의 등을 찔러왔다. 다섯 명 중 첫째라 그런지 과연 공력이 남달랐다.

휙 바람 소리가 나며 정확하게 백무결의 등 한가운데로 검을 밀어 넣었다.

그러나 백무결은 화산파 장문인의 수제자. 도지일에게 등을 보이는가 싶더니 어느 틈엔가 검배(劍背)로 둘째 서이랑의 팔꿈치를 때렸다. 그러자 서이랑의 팔꿈치가 틀어지면서 손에 들려있던 쇠고랑이 그대로 도지일의 면상을 쓸어갔다. 서이랑은 자신이 도지일을 공격하는지도 모르고 팔의 통증을 참지 못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팔이야!”

도지일은 자신의 얼굴을 향해 둘째의 쇠고랑이 날아오자 대경실색하여 검을 휘둘러 쇠고랑을 막았다.

“둘째야, 정신 똑바로 차리지 못할까! 어찌 적이 아닌 내게 쇠고랑을 휘두르는 게야!”

“아이고, 형님. 미안하오. 이놈의 팔이 제멋대로 움직이오!”

둘째 서이랑이 돼지 멱따는 소리를 냈다.

백무결이 첫째와 둘째에 이어 셋째 손삼휘를 공격하는 동안, 기하진은 오패 중 막내 육오춘과 싸우고 있었다.

마사통은 다른 사람들이 싸우느라 정신없는 통에 널브러진 지학을 향해 철추를 던졌다. 일단 한 놈이라도 끝을 내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아까부터 마사통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기하진이 번개같이 몸을 날리며 마사통의 철추를 검으로 쳐냈다. 그러자 지학을 향해 날아가던 철추가 거꾸로 서이랑의 다리에 칭칭 감겨들었다.

오패 중 첫째 도지일은 두 청년의 무공이 예상외로 강하자 이번 싸움에 잘못 끼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겁이나 좀 주고 돈이나 좀 뜯어가려고 했는데 완전 상대를 잘못 만난 것이다. 계속 싸우는 것은 결코 자기 형제들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게다가 바로 옆에는 옥향루 여주인이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이 두 청년에게 패한다면 앞으로 서호 주변에는 얼씬도 못 하게 될 것만 같았다.

도지일은 싸우는 와중에도 나름 머리를 굴리다가 두 청년이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직 약관도 안 되어 보이는 청년들이라는 생각에 겁을 주어 쫓아내기로 했다. 요즘 악명을 떨치고 있는 귀면쌍살의 제자라 사칭하면 좋을 성싶었다.

“이놈들! 우리가 누군지 아느냐? 우리는 귀면쌍살의 제자들이다. 우리 사부님이 아신다면 네놈들은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를 게야. 설마 귀면쌍살이 누군지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도지일이 귀면쌍살의 이름을 들먹이자 과연 기하진과 백무결은 흠칫하며 손을 멈추었다.

그 모습에 도지일은 속으로 옳다구나 싶었다. 이참에 아예 확실하게 귀면쌍살의 제자로 둔갑하여 두 애송이를 겁주기로 했다.

“감히 겁대가리도 없이 귀면쌍살 제자의 코털을 건드리다니! 지금이라도 물러난다면 목숨은 살려주마!”

첫째가 돌연 자기들을 귀면쌍살의 제자라고 소개하자 귀면쌍살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아우들은 의아한 눈초리로 도지일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육오춘은 도지일이 자꾸만 눈짓을 보내자 사형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뭐라고 맞장구를 쳐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눈을 부라리며 크게 소리쳤다.

“그렇다! 우리 서호오패가 귀면쌍살의 제자임은 무림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거늘, 역시 애송이들이라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이놈들아!”

서호오패가 자신들을 귀면쌍살의 제자라고 소개하자 기하진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서렸다. 아까 보았던 금휼의 참혹한 모습이 떠올랐다.

“귀면쌍살의 제자라고? 그렇다면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돌연 기하진이 육오춘의 갈고리를 공격해서 검에 걸리게 하더니 홱 잡아당겼다. 육오춘은 갈고리를 뺏기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했지만, 기하진이 당기는 힘을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기하진 쪽으로 몸이 쏠리고 말았다. 그 순간 기하진의 좌장이 번개같이 육오춘의 복부를 때렸다.

펑, 하고 팽팽한 쇠가죽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육오춘이 주르르 뒤로 밀리면서 입에서 피를 왈칵 쏟아냈다.

육오춘이 순식간에 내상을 입자 나머지 사패는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었다. 약관도 안되어 보이는 청년의 내공이 저토록 심후할 줄이야!

“막내야!”

쇠사슬 추를 들고 있던 넷째 마사통이 급히 달려가 육오춘을 부축했다. 육오춘은 안색이 하얗게 질려 숨을 쉬지 못하고 몸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입가에서는 붉은 피가 꾸역꾸역 흘러나왔다.

“막내야, 정신 차려라. 막내야!”

마사통이 육오춘을 흔들었지만 육오춘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발작적으로 경련만 일으킬 뿐이었다.

그 모습에 셋째 손삼휘가 두 손에 쌍도끼를 잡고 기하진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 갈아먹어도 시원찮을 놈아! 살려두지 않겠다.”

손삼휘의 월부 한 쌍이 기하진의 가슴을 쪼갤 듯 날아왔다. 타고난 덩치가 오패 중에서 가장 큰 손삼휘는 그만큼 남다른 신력을 가지고 있어서 한 자루에 족히 팔구십 근은 나갈 듯한 월부를 장작개비처럼 휘둘렀다. 손삼휘의 월부와 부딪쳤다가는 웬만한 병기는 모두 부러져 나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기하진은 피하지도 않고 검을 무겁게 들어 올리더니 쌍도끼의 공격을 한꺼번에 막아냈다. 바로 얼마 전 허각 도장에게 배운 중검(重劍)의 원리를 사용한 방어법이었다.

기하진이 장검 한 자루로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자 손삼휘는 얼이 빠져다. 이 청년의 공력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심후했던 것이다.

“열 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네 사부를 원망하거라.”

기하진이 맑은 기합과 함께 검에 공력을 주입하니 검에 맞닿았던 쌍도끼가 갑자기 저절로 부르르 떨리더니 공중으로 튕겨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에 넋이 나간 손삼휘가 잠시 월부에 시선을 뺏긴 순간, 기하진의 검이 손삼휘의 심장을 똑바로 찔러 들어갔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였다.

“셋째야, 조심해!”

그 모습을 본 첫째 도지일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손삼휘는 가슴 앞에 날카로운 예기를 느끼고 엉겁결에 두 손으로 기하진의 검을 붙잡고 말았다. 대번에 손바닥의 살이 갈라지며 붉은 피가 주르르 흘러나왔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대경실색하여 손삼휘의 손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갑자기 기하진의 검이 원을 그리며 빙그르르 돌았다.

“아악! 내 손!”

비명과 함께 손삼휘의 손가락 몇 개가 검날에 베어져 피를 뿌리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뜻밖의 잔인한 광경에 이를 지켜보던 기루 여주인이 낯빛이 새하얗게 질린 채 빽빽 소리를 질렀다.

“에구머니! 사람 죽이네! 살인이야. 살인!”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루의 손님들은 혹시라도 불똥이 자기들에게 튈까 봐 얼른 문을 닫았다.

서호오패는 두 명이 벌써 기하진의 손에 중상을 입자 망연자실했다. 기하진이 피가 떨어지는 검을 비켜 들고 성큼 한 걸음 다가오자 도지일은 놀란 나머지 몸을 움찔거렸다.

“귀면쌍살은 어디 있느냐?”

기하진이 도지일을 노려보며 물었다.

“귀, 귀면쌍살이 어,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요.”

겁에 질린 도지일이 절로 말을 높였다.

“네놈들의 사부가 어디 있는지도 몰라?”

기하진이 다시 한 걸음 다가오자 사색이 된 도지일은 뒷걸음질을 치며 손을 모았다.

“저, 저희는 사실 귀면쌍살의 제자가 아닙니다. 그분, 아니 그놈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저희가 어떻게 귀면쌍살의 제자이겠습니까요? 그저 귀면쌍살의 이름을 빌려 겁을 좀 주려고 했을 뿐입니다요. 대협들께서 귀면쌍살보다 더 고수인 줄 알았다면 저희가 이런 어리석은 짓을 했겠습니까요? 제발 살려주십시오.”

도지일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 이들은 내버려 두고 빨리 돌아가자. 진짜 귀면쌍살이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

백무결이 정신없이 취한 지학을 둘러업으며 말했다.

그 말에 기하진이 도지일을 노려보며 말했다.

“두 번 다시 귀면쌍살의 제자라고 사칭하지 마라. 그 이름을 한 번만 더 입에 담으면 정말 저승을 맛보게 해주마.”

기하진은 엄포를 놓고 뒤돌아서 백무결을 따라 문을 나섰다. 그러자 겁에 잔뜩 질려 있던 서호오패는 살았다 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어디선가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제자들을 이 꼴로 만들어놓고 그냥 가시겠다?”

난데없는 목소리에 놀라 기하진과 백무결이 고개를 돌렸다. 기루의 맞은편 전각 지붕 위에 언제 나타났는지 사람 하나가 뒷짐을 진 채 몸을 돌리고 서 있었다.

“누구....?”

기하진이 누구냐고 채 묻기도 전에 백무결이 기하진에게 지학을 넘기며 검을 빼 들고 쏜살같이 지붕 위로 올라갔다. 잔뜩 긴장한 백무결의 몸에서 무시무시하도록 팽팽한 기세가 흘러나왔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기에 기하진은 놀라서 백무결을 바라보았다.

“오호라, 화산파의 대제자라 그런지 다른 후기지수들과는 차원이 다르구나. 이토록 훌륭한 재목이 벙어리인 것이 옥에 티로구나.”

괴한이 몸을 돌렸다. 괴한은 얼굴에 귀면탈을 쓰고 있었다. 그 모습에 기하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귀면쌍살!”

“우하하하. 이 몸을 알아봐 주니 고맙군. 그 전에 사문정리부터 좀 해야겠군. 감히 이 사부의 이름에 먹칠을 했으니 말이야.”

지붕 위에 있던 귀면쌍살이 서호오패를 향해 손가락을 떨쳤다. 기하진이 놀라서 검을 들고 몸을 날렸으나 서호오패의 이마에는 이미 쇠털같이 가는 우모침 다섯 개가 꽂혀 있었다. 침이 날아오는 기색도 없었는데 어떻게 손을 쓴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마에 우모침이 박힌 서호오패는 순식간에 침이 박힌 부위가 시커멓게 변하더니 끽소리도 못하고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참으로 허망한 죽음이었다.

- 하진아, 지학을 데리고 빨리 맹으로 돌아가. 어서!

백무결이 기하진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러나 백무결 혼자 두고 갈 수는 없었다.

“무슨 소리야? 혼자 가라니? 그럴 수 없어!”

- 지학이라도 살려야지. 여기 있다가는 우리 셋 다 죽어. 제발 내 말 좀 들어!

기하진은 아직 강호의 무서움을 맛보지 못했던 터라 셋 다 죽는다는 백무결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이대로 발걸음을 돌린다면 백무결은 죽을 것이 뻔했다. 지학을 살리자고 백무결을 사지에 밀어 넣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심을 내린 기하진은 지학의 백회에 강한 내기를 불어넣어 지학을 깨웠다. 그리고는 검을 빼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갔다.

“아무래도 혼자보다 둘이 낫겠지.”

기하진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생전 화를 내지 않던 백무결이 잔뜩 화난 표정으로 기하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기하진은 그 모습을 못 본 척했다.

귀면쌍살은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하나든 둘이든 상관은 없지만 나는 자격이 없는 놈들과는 싸우지 않는다. 네놈은 문파도 없지 않으냐? 밑에 있는 놈을 다르지만.”

귀면쌍살이 기하진에게 말했다. 놀랍게도 백무결과 기하진이 누군지 훤히 파악한 듯한 소리였다.

그 소리에 기하진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문파가 중요하냐? 이 살인마야!”

“당연히 중요하지.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제자가 아닌 놈은 낄 자리가 못되니까 말이야.”

귀면쌍살이 오른손을 휘두르자 순식간에 강맹한 기류가 기하진의 몸으로 휘몰아쳐 왔다. 놀란 기하진이 공력을 일으켜 저항하려고 했으나 강맹한 기류에 속절없이 뒤로 밀려 지붕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기하진의 몸이 땅바닥에 나뒹굴자 술이 깬 지학이 다급히 기하진의 손을 붙잡았다.

“화산파 놈부터 보낸 뒤 소림사 놈도 손을 봐주마. 어제, 오늘 소림, 무당, 화산을 모조리 손볼 수 있다니 내가 운이 좋구나. 하하하.”

귀면쌍살이 채 검을 뽑기도 전에 백무결이 번개같이 검을 찔러 갔다. 강적을 앞에 두고 선공만이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백무결이 무공수업 시간에 잠깐 선보였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기세를 내뿜었다. 순식간에 밤하늘에 검으로 그린 매화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귀면쌍살은 이리저리 몸을 놀리며 백무결의 검을 피했다. 허공에 서른 송이가 넘는 매화꽃이 피어났다. 매화수들로 이루어진 매화대의 대주가 서른네 송이를 피어 냈으니 백무결의 솜씨는 매화수들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실력이었다.

귀면쌍살도 더는 백무결의 검을 피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드디어 검을 뽑아 들었다.

챙! 소리가 나며 검이 서로 부딪쳤다. 검을 든 백무결의 손이 잠시 흔들리는 모습이 기하진의 눈에 들어왔다.

‘위험하다!’

기하진이 뛰어들려고 하자 백무결이 오지 말라는 뜻으로 기하진을 향해 손바닥을 펴 보였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검을 비스듬히 잡더니 그동안 한 번도 펼치지 않았던 이십사수 매화검법의 숨은 절기, 매화만천(梅花滿天)을 펼쳐냈다. 사방팔방에 매화 꽃잎이 흩날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검끝에서 생겨난 매화 꽃송이가 끝도 없이 이어지며 귀면쌍살을 공격해 들어갔다.

“과연 화산파는 차원이 다르군.”

귀면쌍살이 귀면탈 아래로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더니 갑자기 매화 꽃송이를 뚫고 일검을 내질렀다. 팔이 순식간에 엿가락처럼 늘어났다. 백무결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급히 사문의 상승경공, 암향부표(暗香浮飄)를 펼쳐냈다. 백무결의 몸이 두둥실 떠오르더니 공기 중에 떠도는 향기처럼 부드럽게 뒤로 물러섰다. 간발의 차로 귀면쌍살의 검이 발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거 재밌군. 내 검을 이 정도로 막아낸 사람은 자네가 처음이야. 어젯밤 만났던 무당파 애송이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화산파가 무당파를 앞서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겠군.”

귀면쌍살이 검을 그대로 다시 떨치며 동시에 좌장을 뻗어냈다. 그러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좌장에서 산을 흔들만한 기세가 뻗어나왔다. 점창파 대제자인 복태를 공격했던 그 수법이었다.

장력의 기세가 어찌나 거센지 막기는커녕 스치기만 해도 뼈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좌우로 찔러오는 검을 막던 백무결은 귀면쌍살의 장풍을 피할 수가 없었다. 백무결은 이를 악물고 우장을 뻗었다.

“위험해!”

기하진이 다시 공중으로 도약해 귀면쌍살을 향해 쌍장을 뻗어냈다. 기하진의 손바닥에서 거센 회오리바람이 생성되어 귀면쌍살에게 부딪쳐 갔다. 귀면쌍살은 백무결이 우장을 뻗자 자기 뜻대로 되어 내심 기뻐하다가 기하진의 쌍장이 휘몰아쳐 오자 깜짝 놀랐다. 쌍장의 위력만으로 보건대 절대 후기지수들이 낼 수 있는 공력이 아니었다.

귀면쌍살은 다급하게 백무결에게 뻗은 좌장을 거두어 기하진의 쌍장에 맞섰다.

펑! 귀청을 울리는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하진은 그 충격에 자신도 모르게 뒤로 다섯 발자국이나 물러났다. 귀면쌍살은 한 차례 몸이 흔들렸을 뿐 제자리였다. 공력의 고하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기하진은 그제야 입안이 바싹 말라왔다. 전력을 다해 내지른 자신의 쌍장을 한 손으로 막아낸 것만도 놀라운데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다니!

동시에 기하진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귀면쌍살의 내공이 자신의 내공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귀면쌍살도 기하진의 내공이 수상하다고 생각했는지 기하진을 쏘아보고 있었다.

“네놈의 사문은 어디냐?”

“내 사문 따위는 관심도 없다면서? 자격도 없는 놈 사문을 왜 물어보는 것이냐?”

기하진이 비웃자 귀면쌍살이 어이가 없다는 듯 껄껄 웃었다.

“내 앞에서 이토록 오만한 모습을 보이는 자는 네가 처음이로구나. 네놈이 나이에 맞지 않게 놀라운 공력을 지니고 있다만 그걸로 내게 맞서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아.”

귀면쌍살이 몸을 빙그르르 돌리더니 기하진을 향해 두 손을 뻗으며 다시 한번 장력을 발출했다. 이번에는 단장이 아니라 쌍장이었다. 호승심이 생긴 기하진도 피하지 않고 온몸의 공력을 끌어올려 귀면쌍살의 장력에 맞섰다.

쾅! 다시 한번 지축을 흔드는 우레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기하진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 소리가 튀어나왔다. 귀면쌍살의 쌍장과 부딪치는 순간, 그만 두 팔의 팔꿈치가 탈골되고 만 것이다.

“으윽!”

- 하진아!

그 모습에 놀란 백무결이 허공에 검광을 뿌려대며 귀면쌍살을 공격해 들어갔다. 동시에 기루의 마당에 있던 지학이 몸을 날려 떨어지는 기하진을 받아냈다.

지독한 고통이 몰려들었다. 강호에 발을 내딛고 처음 겪어보는 실패였다.

- 지학, 하진을 데리고 빨리 달아나라. 어서!

백무결이 검화를 피워 내면서도 지학에게 다급하게 전음을 했다.

“무슨 소리야? 너는 죽겠다는 거냐?”

지학이 백무결의 전음에 소리를 질렀다. 술이 깬 지학은 자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았다. 두 친우에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이제 백무결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이 일의 발단인 자기만 어찌 피할 수 있단 말인가!

- 셋 다 개죽음 할 필요는 없어!

백무결이 다시 전음을 보냈다. 사실, 싸우는 중에 전음을 보내는 것은 위험한 짓이었다. 그만큼 공력을 분산해야 해서 대적을 앞에 두고서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금기사항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백무결의 공력이 약해진 것을 눈치챈 귀면쌍살의 검이 그 틈을 노리고 대번에 백무결의 허벅지를 찔러 들어왔다.

- 헉!

귀면쌍살의 검에 찔린 백무결의 다리가 순간 휘청거렸다.

“무결아!”

밑에서 지학이 양팔이 탈골된 기하진을 부둥켜 잡은 채 백무결을 향해 소리쳤다. 마음은 급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어서 빨리 가서 무결이를 도와줘. 나는 괜찮아.”

기하진이 지학을 떠밀었다.

“그래.”

지학이 걸음을 떼려는 순간, 눈앞이 번쩍이며 가느다란 침 두 개가 자신과 기하진을 향해 날아왔다. 서호오패를 단숨에 절명하게 한 바로 그 우모침이었다.

“헉!”

지학은 위험한 생각에 황급히 몸을 날려 피했지만 거동이 불편한 기하진은 그만 침에 맞고 말았다. 침에 맞은 부위가 대번에 부풀어 오르며 시커멓게 변하기 시작했다.

- 빨리 도망가란 말이야, 이 땡중 놈아!

기하진이 쓰러지는 모습을 본 백무결이 지학에게 전음으로 소리쳤다. 기하진은 워낙 공력이 높아 바로 정신을 잃지는 않았지만 독에 맞서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신음을 내고 있었다. 지학은 어쩔 줄 모르다가 결국 백무결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기하진을 등에 들쳐멘 지학이 지붕 위의 백무결을 힐끗 쳐다보았다. 백무결은 그 순간에도 검을 휘두르며 귀면쌍살을 붙잡아 두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문득 지학의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제발 죽지 마라.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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