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 광세일소_한추영 - 1181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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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화. 무림신동 (2)
그러나 포 부단주의 물음이 끝나기도 무섭게 기왓장 아래에서 반으로 깨진 넓적한 조약돌이 나왔다. 그것을 본 포 부단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이냐?”
포 부단주는 황급히 기하진의 기와장을 손으로 흩뜨렸다. 그랬더니 납작한 조약돌 십여 개가 기왓장 사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 이런!”
단상에서 이를 지켜보던 부맹주 천계심과 총군사 사마경도 기하진의 기왓장에 누군가 장난질을 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호, 이것 참 놀랍군요. 기왓장 서른세 개에 손바닥만 한 조약돌 열 개를 한꺼번에 깨뜨리다니! 권학당이 아니라 지무각의 아이들도 할 수 없는 대단한 실력입니다.”
사마경이 수정 안경을 들어 올려 깨진 기왓장과 조약돌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왓장 사이에 조약돌을 넣어둔 것은 부정행위가 분명했다.
세 명이 격파시범을 벌이는 데 한 사람의 기와에 문제가 있다면 범인은 나머지 두 명 중에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사마경은 정작 누가 기하진의 기왓장에 장난질을 쳤는지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천계심이 한심하다는 듯 천옥랑을 쳐다보았다.
아들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라고 했더니 이런 무리수를 둔 것 같았다. 일을 저질렀으면 들키지나 말든가.
천옥랑은 아버지의 질책하는 듯한 눈빛을 받자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 어깨를 슬쩍 움츠리며 눈길을 돌렸다.
“포 부단주는 이번 격파시합에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누군지 철저하게 조사하시오. 이번 격파시범의 최종 우승자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기하진이오.”
관중을 의식한 부맹주의 말이 떨어지자 기하진의 승리를 알리는 포 부단주의 목소리가 대회장에 울려 퍼졌다.
“기하진 승!”
와! 관중석에서 함성이 일어났다.
이제 열세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기왓장과 조약돌을 한 번에 깨는 놀라운 신력을 선보였으니 사람들이 놀라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관중들은 우레와 같은 성원을 기하진에게 보냈다. 기하진을 떨어뜨리려는 천옥랑의 방해 작전 때문에 오히려 기하진의 이름 석 자가 무림맹 내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곧이어 두 번째 시합이 벌어졌다. 두 번째 시합은 오 척 높이의 공중에 사십 척이 넘는 기다란 대나무를 옆으로 놓고 그 대나무를 건너는 것으로 일종의 경공시합이었다.
대나무 자체가 워낙 매끈해서 그 위에서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은데 높아질수록 심리적 부담감도 커지기 때문에 두 번째 시합을 통과하는 아이들의 수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들은 두 팔을 벌리고 양손에 각기 커다란 물통 하나씩을 들고 대나무를 건너야 했다. 대나무에서 떨어지거나 물통의 물이 다 쏟아지면 탈락이었다.
아이들은 아차 하는 사이에 대나무에서 미끄러져 아래로 떨어졌고 중간까지 잘 건너던 아이들도 물이 출렁거리는 바람에 대나무가 흔들리거나 움직이면 곧장 균형을 잃고 떨어져 내렸다. 대나무 다리를 건너더라도 양손에 든 물통의 물이 다 쏟아지는 바람에 떨어지는 아이들도 많았다.
오 척 높이에서는 잘 건너던 아이들도 팔 척, 십 척으로 높이가 올라가자 대부분 탈락하고 역시 이번에도 기하진과 천옥진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게 되었다.
이번 시합은 처음부터 천옥랑의 독무대였다. 어릴 때부터 착실하게 경공수업을 받아온 천옥랑은 멋들어진 신법으로 공중제비를 넘으며 십 척 높이의 대나무 위로 가뿐히 올라갔다. 그리고는 마치 평지를 걷듯 양팔에 든 물통에서 한 방울의 물도 흘리지 않으며 유유히 대나무 다리를 건너 사람들의 탄성을 한 몸에 받았다.
반면 기하진은 아직 제대로 된 경공을 배운 적이 없어서 그저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건널 뿐이었다.
최종승자를 가리기 위해 대나무의 높이가 다시 두 척 더 올라갔다. 십이 척 높이의 대나무를 걷는 셈이니 아래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대나무 위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천옥랑이 먼저 부운약표(浮雲躍飄)라는 청성파의 경공절기를 화려하게 선보이며 올라가더니 곧장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전혀 흔들리지 않는 잘 균형 잡힌 걸음이었다.
사람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환호성을 내질렀다.
부맹주도 앞서 격파시범에서 추락한 위신이 이번 경공시합에서 회복되어 나름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대나무 다리의 높이가 계속 높아졌지만 의외로 기하진은 비틀거리면서도 떨어지지 않고 계속 시합을 통과했다. 양손에 든 물통의 물도 출렁이기는 했으나 쏟아지지는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경공만큼은 천옥랑이 우수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시합의 관건은 결코 동작의 화려함이 아니었다. 날아가든 비틀거리며 건너든 사십 척 길이의 대나무 다리를 건너기만 하면 되었다. 천옥랑은 이미 한 번 졌기 때문에 이번 시합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했다.
천옥랑은 두 번째 시합을 자신의 승리로 이끌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신발을 남몰래 신고 있었다. 그 신발 밑바닥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박혀 있어 발바닥에 힘을 주면 칼날이 튀어나오게 되어 있었다.
천옥랑은 경공을 전개해 대나무 다리를 빠른 속도로 건너면서 중간중간에 발바닥에 힘을 주어 대나무에 금을 그어놓았다. 이제 그 사실을 모르는 기하진이 대나무 위에 올라서서 건너기 시작하면 대나무는 기하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져 나갈 것이다. 이번 경공시합은 땅에 떨어지면 실격이므로 기하진은 결국 실격패를 당하고 말겠지.
천옥랑이 대나무 다리를 다 건너자 드디어 기하진이 십이 척 높이의 대나무 다리에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나름 간담이 크다고 자부하던 기하진이었지만 십이 척 높이에서 아래를 바라보니 아찔해서 자신도 모르게 발끝에 힘이 들어가면서 몸이 긴장했다. 양팔에 든 물통의 물이 살짝 출렁거렸다.
기하진은 심호흡을 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고는 앞만 바라보며 건너기 시작했다. 사실, 아래에서 쳐다보는 관중들은 멋진 경공으로 손쉽게 다리를 건넌 천옥랑보다 아슬아슬 위태롭게 건너는 기하진을 보는 것이 훨씬 더 손에 땀을 쥐는 재미가 있었다. 관중들은 저마다 자신이 대나무 다리를 건너는 듯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한편, 대나무 다리를 중간쯤 건너던 기하진의 귀에 대나무가 자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조금씩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바람에 긴장한 기하진의 발끝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기하진이 대나무 다리를 중간쯤 건널 때 그만 우지끈 소리와 함께 대나무 다리가 반으로 쪼개지더니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 모양을 아래에서 바라보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단상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구휘도 눈이 휘둥그레졌으나 사마경은 오히려 입가에 은근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마경은 대번에 또 누군가 대나무에 장난질을 쳐놓았음을 알게 되었다. 아까 기왓장 격파 때는 두 사람 중 한 명이었지만 이번 경공 시합에서는 이런 못된 짓을 저지를 사람이 천옥랑밖에 없었다.
일의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기하진이 땅에 떨어져 실격패를 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다들 아쉬워했다. 그중에는 아쉬움에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나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마경은 기하진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간만에 기린회가 재밌어졌군. 어차피 실전에서는 각종 계략이 난무하니 이 정도를 이겨내지 못하고서야 내가 점찍은 인재라고 말할 수 없지. 자,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테냐?’
“타앗!”
맑은 기합 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기하진이 대나무가 떨어짐과 동시에 양팔의 물동이를 그대로 공중으로 던져 올렸다. 물동이 두 개가 탄력을 받아 튀어 오른 사이, 기하진은 급히 공중제비를 돌며 몸을 틀어 떨어지던 대나무 반쪽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그 대나무 반쪽으로 땅을 짚고는 그 반동을 이용해서 쏜살같이 공중으로 몸을 날리더니 대나무 다리의 종착지점을 향해 날아갔다. 물동이 두 개는 물 한 방울 흐르지 않은 채 어느새 수직으로 포개져 기하진의 손 위에 오롯이 올라가 있었다.
기하진은 결국 땅에 떨어지지 않고 대나무 다리를 완주한 셈이었다.
“와!”
절정 고수를 방불케 하는 오묘한 신법에 모두 놀라 탄성과 함성이 터져 나왔다.
“기하진 최고다!”
“멋있다!”
경공시합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기하진의 오묘한 신법에 매료되어 흥분했다.
그러나 우승은 천옥랑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중간에 대나무가 떨어지는 바람에 대나무 다리 위를 걸어서 건너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하진은 실격패를 당하고 만 것이다.
“천옥랑 승!”
시합 총감독인 포 부단주가 큰 소리로 천옥랑의 승리를 알리자 여기저기에서 야유가 튀어 나왔다.
“이번 시합은 공동우승이오.”
“시합을 공명정대하게 진행하시오.”
“대나무 다리를 검사하시오. 중간에 부러진 것이 말이 되지 않소이다!”
경공시합을 지켜보던 사람들 중 일부 눈썰미 좋은 사람들은 대나무가 부러진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격파시합에서도 누군가 기왓장 사이에 몰래 조약돌을 끼워놓지 않았던가.
무릇 무공대결이란 공정해야 하는데 정도 무림의 총본산이라고 하는 무림맹 안에서, 그것도 새파랗게 어린 수련생들 간의 시합에서 공정하지 못한 장난질이 계속되자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야유가 터져 나오자 사마경은 힐끗 천계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시합결과에 대한 최종판단은 부맹주가 하게 되어 있으니 만약 천계심이 이번 시합결과에 이의를 제기한다면 우승자가 바뀔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부맹주 천계심은 사람들의 야유소리를 못 들은 척 입을 꾹 닫고 있었다. 그 모습에 사마경은 속으로 빙그레 웃었다.
‘허허허, 부전자전이라더니 실로 그 아비에 그 아들이로구나. 권력에 눈이 먼 아비와 승부에 눈이 먼 아들이라.... 하하하, 정말 재미있단 말이야. 맹주님이 제대로 보신 거지.’
사마경은 잠시 천계심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다시 시합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합 총감독 포 부단주는 사람들의 이의제기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다음 시합을 강행했다.
이번 대회의 관전 초점은 자연스레 기하진과 천옥랑 간의 대결이 되었다. 그래서 기하진과 천옥랑이 각자 비무를 승리로 이끌며 마침내 최종 결승전에서 맞붙게 되자 사람들은 모두 우레와 같은 환호를 질렀다.
천옥랑을 응원하는 소리도 있었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갑자기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기하진에게 격려의 함성을 쏟아냈다.
한편 천옥랑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번 비무에서 이기고 싶었다.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녀석에게 패했다는 말을 듣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그런데 기하진의 무공이 최근 급속도로 늘더니 결국 유력한 우승 후보 중 한 명이었던 원성한마저 꺾고 최종 결승전에 올라왔다. 상상도 못 했던 일이 일어나 버린 것이다.
천옥랑은 아랫입술을 질겅질겅 씹으며 기하진을 노려보았다. 어떻게 해야 저놈을 꺾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저놈을 사람들 앞에서 발라버릴 수 있을까? 천옥랑은 무공에 자신이 있었지만 뭔가 안전장치를 해두고 싶었다.
잠시 부러진 대나무 다리를 바라보던 천옥랑이 갑자기 눈을 빛냈다.
‘그렇지!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천옥랑이 갑자기 비무장 한복판으로 걸어나가더니 단상 중앙에 앉아 있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부맹주님, 조금 전 있었던 경공 대결의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저도 그렇게 찝찝하게 이겼다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맹주는 갑자기 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하나 싶어서 눈살을 찌푸렸다. 기린회 역사상 이렇게 비무 중에 출전자가 최종 강평자인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경우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경공도 실전에서 사용하기 위한 무공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경공 대결은 무승부로 하고 이번 비무대회의 결과로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겁니다. 단, 경공도 시험할 겸, 비무를 아까의 그 대나무 다리 위에서 하는 겁니다. 그러면 두 가지를 동시에 시험해 볼 수 있는 셈이니 좋지 않겠습니까?”
대범한 척 조금 전 경공 대결은 없던 일로 하자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천옥랑의 제안은 자기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시합이었다.
권학당에서 기초적인 경공을 배우기는 하나 이는 입문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래서 시험도 대나무 다리를 건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천옥랑이 보기에 기하진은 경공이 형편없었다. 비록 뛰어난 균형 감각으로 어떻게든 대나무 다리는 건널 수 있었겠지만, 만약 저 좁은 대나무 위에서 싸움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아마 청성파의 경공 절기를 익힌 자신을 절대 이길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섰다.
천옥랑이 대나무 다리 위에서의 비무를 제안하자 관중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는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대나무 다리 위에서 싸우는 것은 어른 고수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이제 불과 열서너 살에 불과한 소년들이 그 좁고 매끄러운 대나무 다리 위에서 과연 발길질 한 번, 주먹질 한 번이라도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이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천옥랑이 기하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노려보는 기하진의 눈빛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천옥랑이 물었다.
“기하진, 네 생각은 어떠냐? 오 척 대나무 다리 위에서 나와 싸울 자신이 있느냐?”
기하진은 천옥랑이 자신을 도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그럴수록 천옥랑에게 더 지기 싫었다.
“흥! 오 척이 아니라 아까 하던 데서 마저 하는 게 어떠냐?”
기하진이 오히려 마지막의 십이 척 높이에서 하자고 제안했다. 그 모습에 천옥랑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어리석은 녀석. 쓸데없이 자존심만 세어서.
“좋다. 사내놈이 한 입으로 두말하기 없기다!”
천옥랑은 기하진이 비무 결과에 대해 딴말을 하지 못하도록 미리 못을 박았다.
단상에 앉아 잠시 두 사람을 내려다보던 부맹주는 아들이 필승의 방법을 생각해내자 내심 흐뭇했다. 과연 자신의 아들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천계심은 당장 허락하고 싶었지만 아들이 한 제안을 아비가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수락하기에는 위신이 서지 않았다.
천계심이 난처한 듯 옆에 앉은 사마경을 슬쩍 쳐다보았다.
“총군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러자 사마경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옥랑이의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실전을 떠난 경공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도록 한번 해 보시지요. 두 아이도 모두 동의했으니 어차피 이번 비무 방식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사람은 없을 듯합니다. 이참에 기린회의 비무 방식도 새롭게 바꿔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합니다.”
총군사 사마경이 흔쾌히 동의하자 천계심은 그제야 마음의 부담을 든 듯 표정이 밝아졌다.
“총군사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니 그럼 그렇게 하리다.”
“이번 기린회는 참 재미있군요. 너무 시키는 대로만 하면 재미없지요. 저 두 아이는 앞으로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듯합니다.”
사마경이 다시 연보라색 수정 안경을 콧등에서 들어 올리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부맹주가 비무 방식을 변경해도 좋다는 허락을 하자 곧 비무장 한가운데에 어른 키 높이의 두 배보다 높은 대나무 다리가 다시 설치되었다. 사람들은 혹시 아이들이 떨어져 다칠까 걱정하면서도 새로운 비무 방식에 흥미진진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곧 최종 결승전을 알리는 용고 소리가 둥둥둥 울리더니 포 부단주의 우렁찬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천옥랑, 기하진, 비무 준비!”
포 부단주의 구령에 천옥랑이 다시 경공 신법을 발휘하여 십이 척 높이의 대나무를 두어 번 발길질 만에 금방 올라갔다.
사람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기하진은 그렇게 멋들어진 경공신법은 아직 구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손으로 대나무를 붙잡고 마치 원숭이가 나무를 올라가듯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그런 기하진을 바라보며 대나무 다리 위에서의 비무 결과가 벌써 눈에 선한 듯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두 사람이 대나무 다리 끝에서 서로 마주 보고 서자 아래에서 두 사람을 올려다보던 포 부단주가 시합 시작을 알리는 구령을 붙였다.
기하진과 천옥랑이 대나무 다리 중간으로 이동했다. 대나무 다리는 두 사람의 몸무게가 한꺼번에 실리자 가운데 부분이 아래로 살짝 휘면서 아래위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천옥랑은 대나무가 흔들리는 대로 몸을 맡기며 느긋했으나 기하진은 멈칫멈칫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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