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세일소-7화 (7/201)

#   7 - 광세일소_한추영 - 1178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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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화. 무림맹의 외톨이 소년 (2)

난데없는 기하진의 공격에 잠시 얼이 나가있던 이덕방이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질렀다.

“이 잡놈의 새끼가!”

이덕방이 기하진의 턱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이덕방의 주먹이 날아오자 기하진이 피하려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기하진의 두 팔을 단단히 붙잡아 꼼짝 못 하게 했다.

퍽! 기하진은 그대로 이덕방의 주먹에 얻어맞고 말았다. 순식간에 코피가 터져 나왔다.

이덕방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두 번, 세 번, 네 번, 연속으로 기하진의 턱과 복부를 가격했다.

이덕방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몸무게가 훨씬 무거웠다. 그런 이덕방의 주먹이 복부에 꽂히자 기하진은 앞이 노래지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기하진이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숨을 헐떡거리자 그제야 기하진을 붙잡고 있던 팔이 풀어졌다. 기하진을 붙잡고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원성한이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체격이 훨씬 크고 힘이 센 원성한이 붙잡자 기하진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일단 풀려나자 기하진은 다시 이덕방에게 달려들었다. 이덕방은 기하진이 눈빛을 번뜩이며 달려들자 당황해서 뒷걸음질 치다가 의자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기하진이 그대로 이덕방의 몸에 올라타고는 주먹을 날렸다.

기하진의 눈빛이 맹수처럼 번들거리자 이덕방은 오싹 두려움을 느꼈다.

퍽! 퍽!

기하진의 주먹이 이덕방의 얼굴에 내려꽂혔다. 그러자 이덕방의 코에서 코피가 터져 나왔다.

“이 새끼, 무슨 짓이냐?”

옆에 있던 원성한이 기하진의 등을 발로 찼다. 원성한은 남천단주인 아버지에게서 착실하게 무공을 익힌 몸. 원성한의 발길질 한 번에 기하진은 줄 끊어진 연처럼 사오 척 앞으로 튕겨 나갔다. 그 바람에 입술이 터지고 얼굴에 생채기가 났다. 눈과 볼은 시퍼렇게 부어올랐다.

기하진은 아픈 것도 모른 채 벌떡 일어서더니 다시 이덕방을 향해 달려들었다.

“네가 뭔데 우리 부모님을 욕해! 이 돼지 새끼야!”

기하진이 마치 정신이 나간 듯이 다시 달려들자 이덕방은 더럭 겁이 났다.

“그만해. 이 미친 녀석아!”

이덕방이 소리쳤지만 기하진은 막무가내였다. 그러자 원성한이 다시 다리를 걸어 기하진을 넘어뜨렸다. 식당 안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아이들은 기하진과 이덕방, 원성한을 빙 둘러싸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소란을 들었는지 식당 안으로 무공사범 한 명이 뛰어 들어왔다.

“이놈들! 이게 무슨 짓이냐?”

무공사범은 엉겨 붙어 싸우고 있는 기하진과 이덕방을 따로 떼 놓았다. 둘 다 얼굴 모습이 말이 아니었다. 원성한은 뛰어난 무공실력으로 요리조리 피하면서 때리기만 해서인지 옷차림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놈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싸움질이냐? 심신을 수련해야 할 명문정파 놈들이 싸움질이라니. 당장 학당 당주님께 보고드리겠다. 그리고 네놈들은 앞으로 석 달간 매일같이 식당 청소와 화장실 청소다. 알겠느냐 이놈들아?”

무공사범은 애초에 남천단주의 아들인 원성한은 젖혀두고 기하진과 이덕방만 꾸짖었다. 그러자 한쪽 구석에서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천옥랑이 앞으로 나섰다.

“윤 사범님”

천옥랑이 나타나자 윤 사범은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쩔쩔매는 모습을 보였다.

“오, 옥랑이구나. 갈수록 신수가 더욱 훤해지는구나. 그래, 부맹주님은 편안하시지?”

천옥랑은 윤 사범을 비웃듯이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잘 지내시지요. 윤 사범님, 방금 전 일은 저희끼리 장난 좀 친 겁니다. 별거 아닌 일로 시끄럽게 만들지 마시죠?”

“그, 그래야지.”

천옥랑에게 찍소리도 못한 윤 사범이 이번에는 기하진을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놈! 그렇게 천방지축으로 날뛰다가는 권학당에서 쫓아낼 테다. 처음 왔으면 정신 바짝 차리고 매사에 조심해야지, 무슨 싸움질이냐, 이놈아!”

기하진은 억울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윤 사범의 어깨너머로 천옥랑과 원성한, 이덕방이 모른 척 자신을 비웃는 모습이 보였다.

오후 권술 수련시간.

오후에는 권각을 수련하는 시간이었다. 남천단의 부단주를 오랫동안 역임했던 포거정(包巨正)이 무공사범이었다. 이미 은퇴한 지 십 년도 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포 부단주라고 불렀다.

기하진은 점심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무림맹에서 받은 옷도 더럽혀져서 별수 없이 무림맹으로 올 때 입고 왔던 초라한 누더기를 다시 입고 왔다. 아이들은 기하진이 다 해진 옷을 입고 나타나자 저희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거렁뱅이인가 봐’, ‘아휴, 정말 냄새날 것만 같아’ 하는 말들이 태연한 척 걸어가는 기하진의 귀를 비집고 들어왔다.

다들 번듯한 옷을 입고 있는데 혼자만 누더기를 입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자, 오늘은 어제 얘기한 대로 일대일 대련이다. 모두 둘씩 짝을 지어라.”

오자마자 대련이라니, 무공의 기초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기하진은 당황했다.

“신입생과는 누가 대련하겠느냐?”

포 부단주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천옥랑이 손을 번쩍 들더니 기하진 옆으로 왔다.

“제가 하겠습니다.”

포 부단주는 천옥랑이 나오자 껄껄 웃었다.

“좋다. 역시 부맹주님을 닮아 매사에 적극적이구나. 그럼 대련 시작!”

아이들은 각자 두 명씩 짝을 지어 그동안 배운 권각술로 대련을 시작했다. 포 부단주는 아이들 속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자세가 잘못된 것을 교정해주고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기하진과 천옥랑은 잠시 포 부단주의 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신입. 오늘 아침에 보니 글공부가 뛰어나던데 무공도 역시 뛰어나겠지? 어디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

천옥랑이 번개같이 다리를 걸며 기하진의 오른팔을 잡아당겼다. 허중생유(虛中生有)의 가장 초보적인 수법이었으나 아직 무공을 제대로 수련한 적이 없는 하진이 이 방법을 알 리가 없었다. 기하진은 그만 중심을 잃고 나뒹굴고 말았다.

천옥랑은 기하진의 무공이 형편없다는 사실에 내심 한껏 골탕을 먹이리라 작정했다.

기하진이 일어나자마자 다시 천옥랑이 발끝으로 기하진의 무릎을 차며 공격해 들어왔다.

또다시 넘어지지 않으려고 주의해서 천옥랑을 살피던 기하진은 얼른 뒤로 피했으나 천옥랑의 무공은 기하진이 피하려고 한다고 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천옥랑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사숙인 청성파 장문인 무욕자로부터 직접 무공을 전수받아 이미 그 실력이 상당했다.

기하진은 연이어 들어오는 천옥랑의 발차기를 피하지 못하고 다시 땅바닥에 쓰러져 나뒹굴었다. 이미 여러 번 나뒹군 터라 몸 여기저기 시퍼렇게 멍이 들었지만 기하진은 결코 아파하거나 그만둘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아랫입술만 더욱 꽉 깨물 뿐이었다.

어느새 원성한과 이덕방도 옆으로 와서 천옥랑의 손에 얻어맞는 자신을 바라보며 고소한 듯 낄낄거렸다. 아이들의 얘기 소리도 귀에 들렸다.

“아버지가 벽력검 기 대협이라고 하던데 어떻게 무공이 저렇게 형편없을 수가 있지?”

“우리 아버지가 그러시는데 기 대협은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도 입으로만 떠드는 인간이었대.”

“우와, 정말? 그런 사람 정말 질색이다. 하긴, 그러니 그 아들놈도 저렇게 형편없지.”

아이들의 비웃음 소리를 들으면서도 기하진은 아이들에게 덤벼들 기력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무림맹은 철저히 있는 자들의 편이었다. 그저 뜨거운 눈물만 흘러내렸다.

그날, 천옥랑과의 대련으로 만신창이가 된 기하진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겨우 자신의 숙소로 돌아왔다. 전신이 욱신거리며 아파서 제대로 누울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잠시 누워있던 기하진의 머릿속에 석추명의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늘 자기와 예린이를 위해 먹을 것을 훔치다가 사람들에게 쫓기고 맞아서 피멍이 든 얼굴로 와서도 씨익 웃던 그 모습이 너무 그리웠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형...!’

하필이면 이런 날, 대단한 아버지를 둔 명문정파의 아이들에게 온몸이 아프도록 얻어터진 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자신을 친동생처럼 돌봐주던 석추명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기하진은 누운 채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를 닦아냈다.

자신을 이해해주고 늘 웃어주던 그 모습이 보고 싶어서 가슴이 아려왔다.

‘형, 미안해. 정말 미안해.’

석추명과 헤어지던 날, 자신의 모진 말에 넋이 나가 있던 석추명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 내 본심은 그게 아니었는데....

‘형, 지지 않을게. 아무리 힘들어도 지지 않을게. 다시 형이랑 만날 때까지 꾹 참아낼게.’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나아졌다. 추명이 형도 무공을 익히고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그동안 잊고 있던 중양일지 앞부분이 생각났다. 뭔가 중요한 무공비결인 듯해서 석추명 몰래 찢어낸 부분이었다. 무림맹으로 들어올 때 혹시라도 들킬까 봐 속옷 안에 꼬깃꼬깃 구겨 넣어서 들어왔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어서 정신이 없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생각난 것이다.

기하진은 꽁꽁 숨겨두었던 중양일지 앞부분을 꺼냈다. 기하진이 찢어낸 부분은 내공심법에 관한 내용이었다.

- 천하의 무공은 반드시 내공을 닦아야 깊은 경지로 들어갈 수 있다. 내공을 닦아 소주천(小周天)을 얻은 사람은 상승무공을 익힐 수 있는 열쇠를 손에 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소주천에 이르는 방식도 백 가지 문파가 모두 다르니 어떤 방식을 따를 것인가? 나 왕중양은 태상노군의 보우하심으로 고대로부터 비밀리에 내려오는 기이한 호흡법을 얻었으니, 이 방법으로 수련한다면 누구든지 손쉽게 소주천을 이룰 수 있으며, 대주천을 이루어 반로환동하고 우화등선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기하진의 눈이 번뜩 뜨였다. 상승무공을 익힐 수 있는 열쇠라니 자신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기하진은 몸이 아픈 것도 잊고 십여 장에 걸쳐 적혀 있는 소주천을 이루는 방법을 빠르게 읽어 나갔다. 자신이 찢은 부분은 소주천을 이루고 난 뒤 다시 대주천을 이루는 방법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끝이 났다.

중양일지 내공심결을 펼쳐 든 기하진의 눈앞에 야비하게 미소 짓던 천옥랑과 원성한, 이덕방의 얼굴이 떠올랐다.

기하진은 그 모습을 머릿속에서 비우려는 듯이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미안하지만 네놈들 수작에 놀아줄 시간이 없어. 난 가야 할 길이 멀거든.’

기하진의 눈이 초롱초롱 빛을 내며 다시 중양일지의 내공심결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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