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 광세일소_한추영 - 1172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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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화. 운명의 수레바퀴는 구르기 시작하고 (2)
“아니 네가 그걸 어찌 아느냐?”
석추명은 황보의 얼굴을 꼼꼼히 보더니 품 안에서 책자를 꺼내었다.
“돌아가신 아저씨가 황보 아저씨에게 전해드리라고 했어요.”
황보는 석추명이 주는 책을 받아 살펴보았다. 절반이 없어졌으나 그 책이 중양일지임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황보는 책을 보더니 놀라서 다시 석추명을 바라보았다.
“네가 어찌 이것을 가지고 있느냐?”
“돌아가신 아저씨가 황보 아저씨에게 전해주라고 하셨어요.”
황보는 그제야 일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 깨닫고 추명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특하구나. 네 이름은 뭐고 몇 살이냐?”
석추명이 이름과 나이를 말하자 황보는 소년의 남루한 모습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신발조차 제대로 신지 못한 것을 보니 형편이 딱한 듯했다.
“부모님은 어디에 계시냐?”
황보의 말에 추명은 부끄러운지 말을 더듬었다.
“부, 부모님은 안 계세요.”
추명의 목소리가 뒤로 갈수록 작아졌다.
근래에는 몇 년째 기근이 들어 민심이 흉흉하고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다. 석추명은 나이도 어린데 혼자 산다고 하니 얼마나 고생했을까 짐작이 되어 황보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네게 은혜를 입었구나. 어떠냐? 나와 같이 가지 않겠느냐? 먹고 자는 것은 물론, 글과 무공도 가르쳐주마.”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말에 추명은 눈을 반짝였다.
“동생들도 데려갈 수 있나요?”
그 말에 황보는 난색을 표했다. 지금은 무림맹과 쫓고 쫓기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아이들을 여러 명이나 데리고 다니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추명은 황보가 얼른 대답하지 않자 황보의 뜻을 눈치채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동생들을 두고 갈 수는 없어요.”
황보는 추명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눈빛이 초롱초롱하고 맑은 것이 영특해 보였다. 게다가 마음 씀씀이가 훌륭하니 잘만 가르친다면 반드시 좋은 인재가 될 성싶었다.
신교(神敎)의 앞날을 위해 이 정도 인재면 위험해도 한 번 시도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황보는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러자꾸나. 동생들도 데려가마.”
황보의 말에 추명은 너무 기뻐서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 아저씨, 정말이에요?”
추명은 너무 좋은 나머지 그 자리에서 팔짝팔짝 뛰더니 몸을 돌려 하진이에게 달려갔다.
“하진아, 하진아, 좀 나와 봐. 여기 아저씨가 우리를 데려가서 밥도 먹여주고 글도 가르쳐 주신대! 네가 간절히 바라던 무공도 익힐 수 있어.”
기하진은 멀리 숨어서 추명과 황보가 하는 말을 다 들었다. 신이 난 추명과는 달리 하진은황보를 잔뜩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추명은 너무 기쁜 나머지 하진의 기분이 자신과 다른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황보는 기하진이 걸어 나오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귀공자같이 얼굴이 새하얀 소년이 이를 악다물고 자신을 노려보며 걸어왔다.
고집이 세 보이긴 했지만 똑똑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나는 저 아저씨랑 같이 안 가! 형이나 가.”
하진의 말에 추명이 어리둥절하여 하진을 쳐다보았다.
“안 간다니, 왜 안 간다는 거야? 너 무공 배우고 싶다며? 저 아저씨가 가르쳐 주신대.”
“흥! 나는 마교의 무공은 죽어도 배우지 않을 거야!”
하진이 황보의 얼굴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하진은 아까 암영단주가 하는 말을 듣고 육굉과 황보가 자기 부모님의 원수인 마교 소속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하진이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자 석추명은 당황했다.
석추명은 아직 어려서 마교와 무림맹이 뭐 하는 곳인지도 몰랐다.
황보는 기하진의 말에 뭔가 사연이 있음을 짐작했다. 하지만 어린 소년의 입에서 자신이 싫어하는 ‘마교’라는 말이 나오자 냉랭한 표정으로 기하진을 바라보았다.
“네 녀석이 무얼 안다고 그런 소릴 하는 게냐?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마왕(魔王)을 숭상하는 악한 단체가 아니다. 오히려 불쌍한 백성들을 돕고 불의에 대항하며, 경을 읽고 향을 피워 다시 오실 미륵부처님을 섬기는 교(敎)이니라!”
황보가 준엄한 표정으로 얘기했지만 기하진은 증오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황보를 노려보았다.
“거짓말! 우리 부모님은 당신들 때문에 돌아가셨어! 저 아저씨도 마교인 줄 알았다면 절대 돕지 않았을 거야!”
기하진이 죽은 육굉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석추명은 몇 번이나 하진을 달래어 보려고 했으나 기하진이 꿈쩍도 하지 않자 당황스러웠다.
황보는 기하진이 어린 소년이나 고집이 세서 꺾을 수 없자 기하진을 데려가는 것은 포기했다. 황보는 육굉의 시신을 수습하며 말했다.
“저토록 싫다는데 억지로 데려갈 수는 없구나. 어쩔 수 없지. 추명아, 그만 가자꾸나.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무림맹에서 분명히 시신을 확인하러 한 번 더 올 게다. 시신이 없어진 사실을 알면 이 일대를 샅샅이 뒤질 테니 너희들도 위험해질 거야. 어서 빨리 달아나야 한다.”
그 말에 다급해진 석추명이 기하진의 팔을 잡아끌었다.
“하진아, 고집 좀 그만 부리고 같이 가자. 위험해질 수도 있다잖아!”
“형이나 가. 예린이도 마교로 데리고 가느니 그냥 내가 데리고 있을게. 형이나 가. 가버려! 마교 놈을 도와주다니 형 같은 사람, 꼴도 보기 싫어!”
하진의 말은 아직 어린 추명에게 상처로 다가왔다.
평생 셋이서 함께 지내자고 했는데 이제 자신에게 가버리라고 하니 속에서 서운한 감정이 울컥 올라왔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가버리라니.... 하진아!”
하진은 입을 꾹 다문 채 땅바닥만 바라볼 뿐 추명을 바라보지 않았다.
“하진아, 나를 좀 바라봐. 그게 무슨 소리야?”
추명의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 나왔다. 늘 씩씩한 척하던 추명이었지만 추명도 결국 어린 소년이었다. 함께 자고 함께 먹고, 무엇이든 늘 함께하던 기하진에게서 가버리라는 말을 들은 추명은 억울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때 멀리서 은은하게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황보가 대경실색해서 석추명에게 소리쳤다.
“추명아, 시간이 없다. 얼른 가야 한다.”
황보가 재촉하자 석추명은 하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황보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아저씨, 저도 안 갈래요. 괜찮아요. 동생들에게는 제가 있어야 해요. 어쨌든 말씀은 감사합니다.”
석추명이 허리를 숙이고 꾸벅 인사를 하는데 짧은 화살 수십 대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암영단이 다시 온 것이었다.
석추명은 갑자기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오자 놀라서 얼른 기하진을 끌어안고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기하진은 발버둥을 치며 석추명을 밀어내려고 했으나 기하진은 완강했다. 황보가 검을 꺼내 바람개비처럼 돌리며 화살을 막아냈지만 빗발치는 수십 개의 화살을 검 한 자루로 모두 막아낼 수는 없었다.
석추명은 기하진을 보호하려고 자신의 몸으로 덮고 땅바닥에 엎드렸다. 순식간에 화살 하나가 날아와 석추명의 어깨에 꽂혔다.
“악!”
석추명이 비명을 지르자 기하진이 놀라서 바라보았다. 석추명의 어깨에서 붉은 피가 흐르자 기하진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말을 더듬었다.
“혀, 형, 화, 화살이 형 어깨에 꽂혔어.”
“괜찮아. 나는 끄떡없어. 형 맷집 센 거 알지? 이런 화살 하나쯤은... 아무것도 아니....”
석추명은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하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어느새 석추명의 등에는 화살이 또 하나 꽂혀 있었다.
“이놈들! 네놈들 눈에는 이 어린애들이 보이지도 않는단 말이냐? 어찌 애들에게 활을 쏘느냐?”
황보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고함을 질렀다. 어느새 황보 앞에는 암영단 수십 명이 다가오더니 활시위를 당기고 포진했다.
“크크크. 역시나 예상대로군. 마교 놈들은 내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저놈의 시신을 일부러 내버려 두었더니 과연 나타났구나. 응룡검 황보. 어서 중양일지를 내놓거라!”
암영단주 석문이 낄낄거렸다. 석문의 눈에는 화살에 맞은 어린 소년들은 보이지도 않는 듯했다.
황보는 검을 고쳐 들었다.
“네놈은 누구냐?”
“이 어르신은 무림맹 암영단주, 석문이라고 한다. 들어보았느냐?”
석문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하자 황보가 콧방귀를 뀌었다.
“네놈이 귀영검객이라는 놈이로구나. 오냐, 오늘 이 자리에서 아예 귀신으로 만들어 주마.”
황보가 검을 쳐들었다. 황보는 백련신교 참룡대의 실질적인 주인. 육굉의 참룡도만큼 크지는 않았으나 검의 기상은 더욱 압도적이었다.
“좋다! 자칭 사대검왕이라는 작자들의 검이 얼마나 고명한지 한번 볼까?”
석문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황보의 가슴을 찔러 들어갔다. 일검삼휘(一劍三輝)라는 절정의 기법이었다.
파바박. 검을 휘두른다 싶었는데 검이 순식간에 빛줄기 세 개로 변해 황보의 몸에 꽂혀 들어갔다. 귀영검객이라는 별호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쾌검이었다.
그러나 황보는 백련신교 내에서도 손꼽히는 고수. 석문의 쾌검에도 전혀 놀라지 않고 여유롭게 검을 휘둘러 석문의 공격을 막아냈다.
검이 서로 부딪치며 땅, 하고 소리를 냈다. 석문은 대번에 안색이 바뀌었다. 한차례 검을 부딪친 것만으로도 황보의 실력이 자기보다 훨씬 윗길임을 알아챈 것이다.
이번에는 황보가 검을 휘두르며 공격에 나섰다. 검 자체에서 용울음 소리와 함께 어마어마한 기운이 폭사되어 나왔다.
석문은 두려운 마음에 감히 황보의 검을 맞받아 칠 생각은 못 하고 자신의 별호대로 몸을 귀신 같이 놀려 검을 피했다. 이미 놀란 가슴은 독수리 앞에 선 병아리마냥 쉬지 않고 두근거렸다.
‘육굉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수로구나!’
석문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맹주에게서 직접 사사 받은 무공, 섬전십삼검뢰(閃電十三劍雷)를 펼쳐냈다. 쾌속함의 극치를 추구하는 무공이었다.
파바박. 불꽃이 튄다 싶더니 석문의 검이 황보를 순식간에 열세 번이나 찔러 들어갔다. 쾌검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종남파의 분광검법(分光劍法)이나 화산파의 매화검법(梅花劍法)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검법이었다.
석문은 검을 최대한 빠르게 펼쳐 공격하되 황보의 검과는 부딪치지 않으려는 듯, 그토록 빨리 검을 휘두르면서도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강호에서 이 정도로 검을 구사하는 고수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황보는 사대검왕(四大劍王) 중의 한 명. 석문의 번개 검법이 통하지 않는 최절정 고수였다.
콰쾅. 검이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황보의 검에서 폭음이 일어났다. 순식간에 무형의 기세가 화산이 폭발하듯 석문을 향해 쏟아졌다. 그러자 석문은 빽빽한 대나무숲에서 검을 휘두르는 듯 검로가 대번에 막히기 시작했다. 쾌속하게 뻗어야 할 검이 암초에 걸린 듯 움찔거렸다.
맹주의 섬전검법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대경실색한 석문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석문은 맹주의 검법이 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력이 맹주보다 낮아 검법이 극치에 닿지 못했음을 몰랐다.
“이놈! 감히 신교의 제자를 해쳤으니 네놈도 목숨을 내놓아라!”
마른 체구 어디에서 그런 소리가 나는지 황보의 목소리가 우레처럼 울렸다. 황보의 검이 치켜 올라간 순간, 다시 수십 발의 화살이 황보를 겨냥해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단주가 위험에 처하자 단원들이 활을 쏘기 시작한 것이다.
“강호의 법도도 모르는 놈들 같으니라고!”
황보는 노성을 지르며 활을 쏘아대는 암영단원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시퍼런 검기가 쾅, 벼락 치는 소리를 내며 뻗어 나갔다. 검기에 맞은 단원들은 순식간에 몸이 두 동강이 나서 땅바닥에 뒹굴었다.
“네놈들이 그러고도 감히 정파의 우두머리라고 칭하느냐?”
다시 황보가 검을 휘두르자 시퍼런 검기가 반월을 그리며 폭사되어 나왔다.
“아악!”
여기저기서 단원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다급한 단원들은 한 번에 두세 발씩 화살을 장전하여 쏘기 시작했다.
“애, 애들을 쏴라!”
석문은 황보만 겨냥해서 공격하다가는 당해내지 못하리라 판단하여 황보의 뒤에 있는 아이들에게 눈을 돌린 것이었다. 화살이 아이들을 향해 날아가자 성난 사자 같은 황보의 고함이 다시 터져 나왔다.
“이놈들아! 이게 무슨 후안무치한 짓이란 말이냐! 정도 무림의 지존이라는 무림맹이 힘없는 어린아이들을 공격하다니!”
그러나 석문의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아 황보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황보는 기막을 펼쳐 아이들을 구하는데 공력을 집중하느라 아까와 같이 무지막지한 공격을 퍼붓지 못했다. 그때 멀리서 펑 하는 소리가 나더니 초록색 연기가 허공으로 치솟아 올라갔다.
“용봉단의 지원병력이 곧 도착한다. 더욱 힘을 내라.”
연기를 본 석문이 말에 암영단원들은 용기백배했지만 황보는 나직한 신음을 냈다. 용봉단은 무림맹의 최정예고수들로만 이루어진 집단. 그들이 도착한다면 빠져나기가 더 어려워질 게 뻔했다. 게다가 화살을 두 대나 맞고 정신을 잃은 석추명도 위험해 보였다. 한시라도 빨리 응급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여전히 기막을 펼친 상태여서 화살이 닿지는 못했지만, 문제는 이 기막을 무한정 유지할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결심을 굳힌 황보는 아이들을 하나씩 양팔에 안고는 몸을 날렸다. 용봉단이 도착하기 전에 이 자리를 피해야 했다.
“앗! 황보가 도망친다.”
암영단원들이 쏘는 화살이 벌떼처럼 황보를 향해 날아왔다. 그러나 황보가 펼쳐낸 기막을 뚫지는 못했다. 그러나 황보도 이제 공력이 상당히 소진되어 암영단원들을 공격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무조건 달아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황보가 경공을 펼치려는 순간, 기하진이 갑자기 황보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악!”
황보는 혼신의 힘을 다해 기막을 펼치고 있다가 기하진이 돌연 자신을 깨물자 순식간에 공력이 풀어지며 기막이 흩어져 버렸다.
“나를 내려줘. 이 악당아!”
기하진이 발버둥을 쳐댔다. 그 바람에 황보는 기하진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암영단원들은 그새 검을 빼 들고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용봉단도 이쪽으로 달려오는 듯 멀리서 은은한 발자국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쩔 수 없구나. 다음에 보자꾸나, 꼬맹아!”
황보는 정신을 잃은 석추명만 안고 공중으로 신법을 펼치더니 한 마리 새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황보가 사라진 방향으로 다시 화살이 수십 대 날아갔다. 기하진은 화살이 너무 무서워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기하진을 겨냥하고 날아오는 화살은 없었다. 수십 대의 화살이 핑핑핑,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현기증이 잃었다.
“멈추어라!”
석문이 명을 내리자마자 용봉단 부단주 구휘가 용봉단원 오십여 명을 이끌고 도착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구휘의 물음에 석문은 검을 집어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이런 제기랄!”
석문의 반응에 상황을 짐작한 구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예리한 검기에 갈라진 시신 몇 구와 다친 암영단원들이 신음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누워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구휘의 눈에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채 울고 있는 기하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기하진은 석추명이 몸을 던져 화살로부터 자신을 막아주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자기 대신 석추명이 화살에 맞은 것이다. 죽지 말아야 할 텐데.... 형아, 제발 죽지 마. 기하진은 석추명의 목숨이 걱정되어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훌쩍였다.
구휘가 ‘저 아이는 누구냐’는 듯한 표정으로 암영단원 중 하나를 쳐다보았다.
“황보와 같이 있던 아이입니다. 황보가 달아날 때 버리고 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구휘가 기하진에게 다가갔다. 아이는 구휘가 다가와도 고개조차 들지도 않았다.
“얘야, 여기서 왜 우느냐? 방금 도망간 사람과는 무슨 관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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