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 광세일소_한추영 - 117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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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세 아이의 소원
섬서성 화양현(華樣懸)의 북적거리는 시장통.
소년 둘이 시장통 한 모퉁이에서 포목점을 쳐다보며 소곤거렸다.
“하진아, 저기 저 포목점 보이지? 오늘은 저기로 정하자. 마침 저 아주머니 전낭이 아주 실해 보인다. 히히히.”
키가 큰 소년이 하얗고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열두세 살쯤 되었을까, 소년은 비쩍 말라서 그런지 나이에 비해 키가 커 보였다. 다 해지고 구멍이 숭숭 난 남루한 옷차림은 쌀쌀한 늦가을 바람을 막기에는 너무 부족해 보였다.
“늘 하던 대로 하는 거야, 알겠지? 내가 전낭을 훔쳐서 도망치다가 너한테 슬쩍 넘길 테니 너는 그걸 가지고 곧장 집으로 가야 해. 혹시 내가 붙잡히더라도 결코 지난번처럼 뒤를 돌아봐서는 안 돼. 알겠지?”
키가 큰 소년이 어린 동생에게 몇 번이나 확인했다.
하진은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꽉 다문 입술이 고집스럽게 보였다.
“그럼 갔다 올게.”
“추명이 형, 조심해.”
입을 열 것 같지 않던 하진이 아무래도 걱정스러운지 키 큰 소년에게 말했다.
추명이라고 불린 소년은 그런 하진이 귀엽다는 듯 하진의 앞머리를 손으로 쓱쓱 흐트러뜨리더니 포목점 앞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올해 열 살인 하진은 나이는 어렸지만 남의 돈을 훔친다는 것이 아무래도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추명이 훔친 돈으로 음식을 사 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 음식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
삼일을 쫄쫄 굶고 나서야 고집을 꺾고 추명이 가져온 음식을 먹었지만 남의 돈을 훔치는 것은 여전히 탐탁지가 않았다. 그것은 나쁜 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추명과 처음으로 ‘공동 작전’을 펼친 날, 이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돈주머니를 훔치는 추명은 그때마다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얻어먹기만 하는 것이 싫어서 추명과 처음으로 시장에 나온 날, 추명은 덩치가 크고 수염투성이인 남자의 전낭을 훔치다가 붙잡혀서 죽을 만큼 얻어맞았다.
남자는 솥뚜껑 같은 손으로 어린 추명의 뺨을 분이 풀릴 때까지 내리쳤다. 두 뺨이 부풀어 오르고 입술이 터진 추명이 매를 피하려고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팔로 머리를 감싸자 사내는 두 발을 들어 추명의 몸을 자근자근 밟았다.
그 모습은 하진의 눈에 너무도 무서웠다.
저러다가 죽을 텐데.... 누가 좀 말려주면 좋을 텐데....
하지만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은 멀뚱히 구경만 할 뿐, 아무도 나서서 말리지 않았다.
하진도 두려움에 두 발이 못 박힌 듯, 시장 한 모퉁이에 숨어서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한참을 때리던 사내는 그제야 분이 좀 풀렸는지 바닥에 쓰러진 추명의 등을 퍽, 하고 한 번 차더니 어슬렁거리며 사라졌다.
사내가 사라진 뒤에도 하진은 시장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서 선뜻 추명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추명은 그렇게 얻어맞고도 엉금엉금 기어서 모퉁이에 숨어 있는 하진에게로 왔다.
그때야 하진은 눈물이 핑 돌았다.
추명은 얻어맞아 퉁퉁 붓고 시퍼렇게 멍든 얼굴로 씩 웃었다.
“우지마, 하진아.”
입술이 터져 발음조차 분명하지 않았지만 추명은 웃고 있었다.
“아, 오느은 허탕이네. 예린이 배고프 텐데....”
추명은 자신이 아픈 것보다 오두막집에서 배곯으며 기다리고 있을 어린 여동생 생각을 먼저 하는 사람이었다. 기껏해야 자신보다 두어 살 많을 뿐인데 하진에게 추명은 아빠 같고 큰 형 같은 느낌이었다.
*
하진이 이렇게 걱정하는 것도 모른 채, 추명은 포목점에서 비단을 펼쳐보느라 정신이 없는 어떤 뚱뚱한 여인 옆으로 다가갔다.
이미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추명은 주위를 살피며 휘파람을 부는 등 능청을 떨다가 여인의 허리춤에서 흔들리는 전낭을 낚아채더니 부리나케 뛰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허리춤이 허전해진 여인은 전낭이 없어진 것을 깨닫고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도둑이야! 도둑놈 잡아라. 도둑이야!”
여인은 귀청이 떨어질 듯 소리를 질렀다.
“누가 저놈 좀 잡아줘요. 아이고, 어머니, 아부지, 저놈이 내 돈을 훔쳐갔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여인이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길 가던 사람들이 울부짖는 여인을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아이고, 또 저놈이구먼. 저놈을 잡아다가 요절을 내야 하는데 워낙 발이 빨라서....”
시장 상인 하나가 달아나는 추명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돈을 잃은 여인이 추명을 따라 달려가며 계속 소리를 질렀다.
“저놈 좀 잡아줘요. 저놈이 내 전낭을 훔쳐갔소! 아이고, 어머니.”
추명은 날쌘 다람쥐처럼 재빨리 시장 골목 사이로 몸을 숨겼다.
‘에휴, 살았다. 잡히는 줄 알았네.’
추명은 돈주머니를 가볍게 던졌다 받았다 하면서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꽤 무거웠다. 이 돈이면 한 열흘 동안은 밥걱정 없이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쫓기던 것도 잊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주머니,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집에서 지금 우리 예린이가 며칠째 굶고 있어요. 적선했다 치세요,’
추명은 악을 쓰며 쫓아오던 여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드디어 저 앞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기다리는 하진이 보이기 시작했다. 추명이 웃으며 하진에게 달려가려고 하는 순간, 길옆 담벼락에서 누군가 새처럼 담을 훌쩍 넘다가 추명과 부딪치고 말았다. 그 바람에 추명은 손에 들고 있던 전낭을 놓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이쿠!”
추명이 놀라서 벌떡 일어서는데 갑자기 가슴 속으로 무엇인가가 불쑥 들어왔다.
추명이 깜짝 놀라 가슴에 든 게 무엇인지 확인하려고 하자 자신과 부딪친 사내가 추명의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삼 일 후에 찾으러 오마. 절대 다른 사람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에게 들켰다가는 살아남지 못할 거야.”
추명은 그 소리에 놀라서 대답도 못 하고 얼어붙은 듯 눈만 동그랗게 떴다.
사내는 한 손에 커다란 칼을 쥐고 있었는데 상처를 입었는지 장삼이 온통 핏자국이었다.
추명의 귓전에 빠르게 속삭인 사내는 훌쩍 앞으로 몸을 날리더니 모퉁이 너머로 사라졌다.
석추명은 무서운 마음에 하진의 손을 붙잡고 얼른 모퉁이를 돌아 달아났다. 두 소년이 모퉁이를 돌자마자 그 담벼락에서 하얀색 무복에 검은색 머리띠를 두른 무인 수십 명이 넘어왔다. 무인들은 하나같이 체격이 크고 기세가 범상치 않았는데 이마에 두른 띠 한가운데는 ‘맹(盟)’자가 적혀 있었다.
“멀리 가지 못 했을 게다. 어서 쫓아라!”
선두에 섰던 무인이 뒤를 돌아보며 말하고는 곧장 사내가 사라진 뒤를 쫓아서 사라졌다.
추명은 아직도 가슴이 콩닥거렸다. 관병들이 자신을 쫓아온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저 사람들, 엄청 빠르구나. 대체 누구지?”
추명의 말에 하진이 대답했다.
“저 사람들, 무림맹 사람들이야.”
“무림맹?”
추명이 의아한 얼굴로 하진을 쳐다보았다.
“응, 머리띠에 쓰인 글자가 무림맹을 뜻하는 ‘맹’자였어.”
아직 글자를 모르는 추명은 넋이 나간 듯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무림맹 사람들은 하나같이 일당백이라고 하던데 정말 그런가 봐. 하나같이 무시무시하네.”
하진은 무림맹 사람들이 사라진 방향을 계속 응시했다.
“아이고, 십 년 감수했네.”
추명은 다리가 풀린 듯 털썩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아까 도망치던 사람이 형한테 뭘 준거야?”
모퉁이에 숨어서 추명을 기다리던 하진은 쫓기던 사내가 추명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것을 봤던 것이다. 그제야 생각이 난 추명이 얼른 품 안을 뒤져 사내가 주고 간 물건을 꺼냈다.
사내가 추명에게 넘긴 것은 오래된 책이었다.
“뭐라고 쓰여있는 거야?”
추명이 묻자 하진이 겉장을 살펴보았다.
섬서의 무림명가에서 자란 하진은 세 살 때부터 글을 배웠기 때문에 웬만한 글자는 다 읽을 수 있었다.
“중양일지(重陽日誌)라고 적혀 있네.”
“중양일지? 뭐 일기 같은 건가?”
하진이 책장을 주르르 넘겨보았다.
“그런 것 같아. 보니까 날짜별로 기록되어 있네. 가만, 여기 일지를 쓴 사람의 이름이 있어.”
“어, 이 글자는 나도 알아. 왕(王)자 아니야?”
추명은 아는 글자가 나오자 신이 났다.
왕중양(王重陽).
그 책은 전진교의 조사인 왕중양이 자신의 모든 무공을 수록한 무공비급이었다.
왕중양은 활사인묘(活死人墓)에서 도를 닦다가 대오각성하여 약 250년 전에 마옥, 구처기 등과 함께 전진교를 세운 사람이었다. 당시 무공 천하제일이던 왕중양은 검선 여동빈 때부터 전해오던 무공과 자신의 모든 절학을 일지 형식으로 기록했는데 그 비급이 지금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추명과 하진은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사내가 이 책을 다른 사람에게 절대 보여주지 말라고 한 것으로 보아 중요한 책일 거라는 막연한 추측만 할 뿐이었다.
“삼일 뒤에 찾으러 온댔으니 어디 잘 숨겨두자. 하지만 그것보다.... 짠!”
추명이 품에서 훔친 전낭을 꺼내 하진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휴, 난 이거 놓치는 줄 알고 정말 놀랐네. 우리 간만에 예린이가 좋아하는 고기만두 실컷 사 가자. 너도 배고프지?”
추명의 말에 하진은 아무 말도 없었다. 여전히 입은 꽉 다문 채였다. 훔친 돈이라 찜찜하기 때문이리라.
그때 하진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하진은 순간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하하하, 우리 하진이 배는 거짓말을 안 하네. 너보다 낫네.”
추명이 한참 웃더니 하진의 어깨에 친근하게 팔을 올렸다.
“하진아, 우리 얼른 자랐으면 좋겠다. 그치? 그러면 이렇게 남의 돈 말고 우리가 일해서 먹고 살 수 있을 텐데. 근데 무슨 일을 하지? 장사를 해볼까? 아니면 요 앞 객잔에서 점소이를 해야 하나?”
추명과 하진은 일부러 다른 마을까지 가서 훔친 돈으로 고기만두를 잔뜩 사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집이라고 해봤자 다 쓰러져가는 폐가였지만.
추명과 하진이 집에 들어서자 어린 여자아이가 넘어질 듯 달려왔다.
“오빠, 왜 이제야 와? 나 무서웠단 말이야.”
눈이 초롱초롱하고 피부가 하얀 여자아이는 무척이나 귀여운 인상이었다.
“우리 예린이 잘 있었어? 오빠가 간만에 예린이 좋아하는 고기만두 사 왔다!”
“우와!”
고기만두란 말에 여자아이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이미 며칠을 굶은 아이들은 뜨끈뜨끈한 고기만두를 보자 사족을 못 썼다. 훔친 돈이라 꺼리던 하진마저 허겁지겁 만두를 입으로 가져가기 바빴다. 어린 동생들이 말도 못하고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추명은 그런 동생들을 보다가 자신의 몫을 슬그머니 예린이와 하진이 쪽으로 밀었다.
“물도 마시면서 천천히들 먹어. 나는 잠깐 볼일 좀 보고 올게.”
추명이 일어나려 하자 하진은 추명의 마음을 눈치채고 냉큼 자기 몫을 다시 추명 쪽으로 밀었다.
“이거 먹고 가, 형.”
“형은 배불러. 너 먹어라.”
“나도 배불러. 형은 별로 안 먹었으니 이거 형 먹어.”
추명과 하진이 남은 만두를 서로 먹으라며 한동안 티격태격했다. 그러자 멀뚱히 지켜보던 예린이 사이좋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지 말고 다 같이 먹어.”
예린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만두를 반으로 나누어주자 추명은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야, 그런 방법이 있었네? 우리 예린이 정말 똑똑한걸?”
추명이 예린을 보고 웃자, 인상을 잔뜩 쓰고 있던 하진도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그러자 세 아이는 너나 할 것 없이 갑자기 웃음꽃이 터져서 까르르 웃었다.
하하하.
세 아이는 사실 친형제, 남매지간이 아니었다. 셋 다 어찌하다 보니 같이 살게 되었을 뿐이었다.
제일 큰 아이는 석추명(惜秋鳴)으로 올해 열두 살이었다. 추명은 부모의 얼굴도 몰랐다. 어릴 때부터 혼자 살던 추명은 억척스러운 아이였다. 열두 살 어린 나이였지만 세상살이가 얼마나 팍팍한지 잘 알았다. 구걸도 하고 남의 물건도 훔치면서 살아가는 추명에게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물건을 훔치고 잡히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도망쳐야 했고, 혹시 잡히더라도 어떻게 맞아야 몸이 덜 상하는지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운이 없을 때는 건달들에게 붙잡혀 잘못도 없이 두들겨 맞기도 했다. 어떨 때는 자기보다 두 배는 더 큰 건달들에게 대들며 맞서 싸우기도 했다.
추명이 기하진(奇夏盡)을 만난 것은 이 년 전이었다. 하진은 당시 부잣집 도련님 같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부모님이 한날한시에 악인의 손에 죽었다고 했다.
“우리 부모님의 원수는 마교 놈들이야. 크면 반드시 복수하고 말 거야!”
하진은 평소에는 말이 없다가도 마교 얘기만 나오면 이를 갈았다.
임예린(林藝隣)은 일 년 전에 유일하게 어머니와 함께 이 마을에 왔었다. 당시 병이 위중하던 예린의 어머니는 얼마 못 가서 어린 예린만 혼자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다. 예린의 모친은 마지막 숨을 쉬며 석추명의 손을 꼬옥 잡았다.
“얘야, 우리 예린이를 좀 보살펴다오. 미안하구나. 어린 너에게 이런 부탁을 해서. 그리고 예린이 좀 더 크면 이 손수건을 전해다오.”
예린의 모친이 숨을 거두자 두 소년은 산기슭에 예린의 모친을 묻었다. 엄마가 죽었는지도 모르고 혼자서 놀던 예린이 엄마를 찾으며 울자 두 소년은 당황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한참을 울던 예린이 배가 고파 지쳐 쓰러지자, 석추명이 어딘가에서 고기만두를 구해왔다. 그때부터 예린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은 고기만두가 되었다. 다행히 그 뒤로는 그렇게 자주 엄마를 찾지 않았다.
혼자서 쓸쓸하게 살던 석추명은 갑자기 동생이 둘이나 생기자 너무 좋았다. 자신도 다른 사람들처럼 가족이 생긴 것만 같았다. 그리고 동생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밤낮으로 온갖 궁리를 다 짜내었다. 하지만 소매치기 외에 어린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었다.
남의 물건을 훔치다가 들켜서 두들겨 맞아도 동생들을 위해 먹을 것을 들고 올 때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석추명은 퉁퉁 부어올라 밤탱이가 된 눈으로 환하게 웃었다.
임예린은 석추명의 상처에 호, 하고 입김을 불어 넣어 주었다. 자기가 아플 때마다 엄마도 늘 그렇게 해주었다면서.
기하진은 퉁퉁 부은 석추명의 얼굴 보기가 미안하고 마음이 아파 늘 밖으로 나가서 혼자 있었다. 나이에 비해 조숙하고 생각이 깊어 내색은 안 했지만, 기하진은 석추명이 옆에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고기만두로 실컷 배를 채운 세 아이가 방바닥에 등을 대고 나란히 누웠다. 지붕에 숭숭 뚫린 구멍으로 밤하늘의 별이 보였다.
“우리 소원 하나씩 말해볼까? 하진아, 네 소원은 뭐야?”
총총한 별을 바라보며 석추명이 물었다.
“나는 무공을 배워서 강해질 거야. 누구도 무시 못 할 만큼! 그래서 누구든 나를 무시하면 열 배, 백 배로 갚아줄 거야!”
“우와! 멋있다! 나중에 누가 나 때리면 꼭 네가 복수해줘?”
석추명이 웃더니 예린이에게 물었다.
“예린아, 넌 소원이 뭐야?”
“나는 오빠들이랑 평생 이렇게 같이 살고 싶어.”
“응? 평생 이렇게? 그러면 맨날 굶어야 되는데?”
추명이 되묻자 예린이 초롱초롱한 목소리로 말했다.
“맨날 굶어도 좋으니까 오빠들이랑 평생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나 나중에 크면 큰오빠하고 작은 오빠한테 시집갈래. 그래서 우리 평생 같이 살자.”
“바보야, 형이랑 나랑 둘 중에 하나만 골라. 두 사람 다한테 시집갈 수는 없어.”
하진이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피! 왜 못 가? 난 큰오빠도 좋고 작은 오빠도 좋은데?”
깜찍한 예린의 말에 추명은 참지 못하고 껄껄 웃었다.
“그래그래. 우리 다 같이 살자. 예린이가 그러겠다고 하면 그런 거야. 하하하.”
이번에는 하진이 물었다.
“형은 소원이 뭔데?”
“나? 나는 우리 셋 모두 굶지 말고 매일매일 배부르게 먹을 수만 있으면 좋겠어.”
석추명의 소원은 너무 소박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두 동생을 보살펴야 하는 소년에게는 가장 큰 고민이기도 했다.
“빨리 자자.”
세 아이는 어느새 귀뚜라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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