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잠시 후.
한참 식사 중인 그들의 탁자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는 좀 전에 의식을 잃었던 사내였다.
“이야기 들었습니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법 정신을 차린 사내가 사홍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세상사 별것 없소. 너무 애쓰지 마시오. 몸만 상하니. 비장과 위장이 좋지 않으니 따뜻한 차나 물을 많이 마시도록 하시고.”
사홍이 다 이해한다는 얼굴로 사내에게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홍에게 반복해서 인사를 하던 사내는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으며 미간을 찡그렸다.
내내 말이 없던 가룡이 사내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고개를 돌려 작게 트림을 하고 목을 가다듬는 사내를 말이다.
“음… 잠깐 있어 보시오.”
가룡이 가볍게 말하더니 한 손으로 사내의 등 뒤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 사내의 배꼽 옆을 꾹 눌렀다.
사내는 아픈지 인상을 찌푸렸다.
“음…….”
금세 사내에게서 손을 뗀 가룡이 턱을 문지르며 가만히 생각을 하다 입을 열었다.
“평소 속이 미식거리고, 신트림이 잦고, 두통과 근육통도 있고, 쉬어도 피곤하고, 식욕도 없지 않소?”
가룡의 말에 사내의 눈이 커졌다.
“어찌… 아셨습니까?”
“담적병이오. 위장이 돌처럼 굳어 제 기능을 못하고 있으니, 뭘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고 조금만 신경 쓰면 탈이 날 것이오. 의원을 찾아가 제대로 치료하시오. 그대로 두었다가는 상태가 악화만 되고 더 힘들 게요.”
가룡이 덤덤하게 말했다.
“네. 그리 하겠습니다. 혹시 의원이십니까? 진료소가 어딘지 알려 주시면 찾아뵙고 싶습니다.”
사내가 가룡을 쳐다보며 말했다.
“의원이기는 하나 정처 없이 떠돌고 있어 찾기 쉽지 않을 것이오. 치료에 시일이 걸릴 것이니 가까운 의원을 찾아보시오.”
가룡의 말에 사내는 실망한 얼굴이 되었지만, 또 감사의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꼭 의원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사내의 말에 가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사홍과 가룡에게 몇 번이나 인사를 되풀이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사형, 저 사내가 담적병인 것은 어찌 알았어요?”
걸화가 존경심이 가득 담긴 눈으로 가룡을 쳐다보며 물었다.
“구취가 심하지 않았느냐? 속에서 올라온 냄새야. 입에 설태가 끼어 있고, 만성 두통에, 신트림을 하지 않았느냐? 거기다 비장과 위장이 약해 식체로 의식을 잃을 정도이니 의심해 볼 만하지. 만져 보니 위장이 딱딱하더구나.”
말을 하는 가룡은 덤덤했으나, 걸화의 눈동자가 커지고 있었다.
“역시… 난 평생 해도 사형 발뒤꿈치도 못 따라 갈 거요.”
사홍이 아주 부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나는 절대 탄지신공으로 침은 못 던질 게다.”
가룡이 장난처럼 말하고 맑게 웃었다.
“…….”
걸화는 두 사형을 번갈아 보며, 눈을 반짝였다.
‘둘째 사형과 셋째 사형이 저 정도면 대체 대사형이라는 분은 얼마나 대단한 분일까?’
기대감에 걸화의 가슴이 부풀었다.
* * *
그들은 같은 객잔에서 이틀을 묵었다.
북경에도 다 왔고, 그들이 객잔에서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형. 이제는 그만 갑시다. 어차피 가야 하잖아요.”
사홍이 아침을 먹으며 가룡에게 말했다.
“으흠… 그래. 네 말이 맞다. 이리 미룬다고 될 일이 아니지. 아침만 먹고 가 보자꾸나.”
내내 맑은 얼굴을 하고 있던 가룡이 묵직하게 답했다.
사홍의 얼굴도 덩달아 어두워졌다.
“무슨 일 있습니까?”
걸화가 두 사형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 아니. 아무 일도 없어. 아침 먹고 대사형 보러 갈 채비를 하자꾸나.”
가룡이 아무 일도 아닌 척 말하고 있었지만, 두 사형의 표정은 지금까지와 다르게 침울했다.
잠시 후.
반듯하고 깨끗한 건물 앞에 서서, 활짝 열린 문 너머를 바라보는 가룡과 사홍의 얼굴은 어두웠다.
걸화는 뭔가 미심쩍은 얼굴로 두 사형을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틀이나 묵은 객잔에서 이 건물까지는 걸어서 한 식경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사형! 얼른 들어갑시다.”
사홍이 가룡에게 말했다.
“그래. 가야지.”
가룡은 문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답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가만히 앞을 보며 서 있었다.
그냥 하염없이 서 있었다.
제법 시간이 흐른 후.
“사형들. 안 들어가세요? 저 다리 아파요.”
걸화가 다리를 두들겨 대며 말했다.
“그래. 가야지.”
가룡은 여전히 같은 말을 하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사형! 막내가 다리 아프대요. 들어갑시다.”
사홍이 가룡에게 말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세 사람은 여전히 문 앞에 서 있었다.
“오셨습니까?”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가룡과 사홍이 움찔거렸다.
그들의 등 뒤에는 대사형의 제자인, 고담이 서 있었다.
아마도 볼일을 보고 진료소로 돌아오던 모양이었다.
“사숙님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서 드시지요. 스승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고담이 가룡과 사홍을 알아보고 말했다.
“그래. 우리도 이제 들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가룡이 멋쩍은 얼굴로 드디어 문 안으로 발을 들였다.
사홍도 어그적대며 안으로 들었고, 걸화가 그들을 따랐다.
“스승님! 사숙님들 오셨습니다.”
고담은 세 사람을 큰 전각으로 안내하고는 안을 향해 말했다.
“어서 들라고 해라.”
안에서 들리는 차분한 목소리에 가룡의 얼굴이 굳어졌다.
“드시지요.”
고담의 말에 세 사람이 전각 안으로 들었다.
전각 안에는 반듯하게 앉은 사내가 자신의 앞에 자리한 세 사람을 바라보며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예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따뜻한 목소리는 듣기 좋았다.
그가 바로 가룡, 사홍, 걸화의 대사형이자, 신의의 큰 제자인 이훈이었다.
“대사형께서는 잘 지내셨습니까? 막내를 찾아서 데리고 오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가룡이 웃으며 말했다.
사홍도 가룡 옆에서 미소를 지었다.
“아! 네가 막내구나. 그렇지 않아도 스승님께서 너에 대해 걱정이 많으시더구나. 너만 불편하지 않으면 여기서 공부를 좀 더 하고 가는 것도 좋을 듯싶구나.”
대사형의 말투는 반듯하면서도 부드러웠다.
걸화는 인상 좋은 대사형을 보며 크게 미소 지었다.
“제 진료소가 있어서 오래 시간을 비우지는 못하지만, 있는 동안은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그래! 막내의 마음가짐이 참 좋구나. 막내야! 사형제 관계라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가족 못지않게 말이다.”
“네!”
이훈의 말에 걸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무릇 사형제라는 것은 한 사부를 모시는 제자를 일컫는 말이지만, 사형제간의 우애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걸화는 이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형제간의 우애가 도타울수록 서로의 배움에 좋은 영향을 미침은 물론이고, 사람으로서 지녀야 하는 품성과 성품에까지 긍정적인 작용을 하게 되느니라.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난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의 향이자 생선인 것이야…….”
가룡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인이란 사람 인(人)자에 위 상(上)자로 이루어진 사람 간의 관계를 일컫는 말이다. 공자께서는 그만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따돌림당하지 않고 지내는 것을 강조하셨다…….”
사홍의 눈동자가 풀리며 이훈을 보는 듯, 아닌 듯 아득하게 변했다.
“논어에는 덕스러운 사람은 외롭지 않게 된다는 말이 있다. 즉,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로 적대적인 감정을 품지 않는 것은 그만큼 힘들다는 의미이다…….”
걸화는 처음과 같이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로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대사형, 이훈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높낮이 없는 일정한 목소리는 사람을 편안하고, 안온하고, 무진장 잠이 오게 만들었다.
“유가에서는 이미 인간관계에 불화가 생길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형제간은 그 관계를 뛰어넘는 것으로 가족보다 더 도타운…….”
걸화는 뻐끔뻐끔 움직이는 대사형의 입술이 금붕어를 조금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우리의 인연이 얼마나 깊고 소중한 것이냐…….”
꾸르르르르―
걸화의 뱃속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사형! 막내가 배고픈가 봐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힘없이 앉아 있던 가룡이 이훈의 말을 끊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렇구나. 우리 막내가 시장했구나. 내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그럼 식사를 하도록 하자. 자세한 이야기는 식사를 마친 후에 마저 하도록 하자꾸나.”
이훈이 따뜻한 미소로 걸화와 사제들을 바라보며, 일어났다.
걸화는 눈을 비비며 입맛을 쩝쩝 다셨다.
방금 대사형이 뭔가 좋은 말을 많이 하셨던 것 같은데, 걸화는 왠지 엄청 피곤해진 기분이 들었다.
* * *
걸화와 가룡, 사홍은 대사형인 이훈의 진료소에서 며칠째 묵고 있었다.
마음이 넉넉하고 사제들을 아끼는 마음이 큰 이훈은 사제들에게 의술에 대한 교육뿐 아니라, 품성이나 도덕에 대한 것도 가르쳐 주었다.
대사형의 큰 가르침에 대한 결과로, 걸화는 눈을 뜨고 꼿꼿이 앉아서 조는 기술을 습득했다.
“대사혀엉… 그놈 안 와요. 지난번에도 안 왔잖아요.”
덩치 큰 사홍이 이훈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며 보채고 있었다.
“사형제간의 약속이다. 당연히 지켜야지. 넷째도 곧 올 게다.”
이훈이 부드럽게 말했다.
“아휴우… 그 녀석이 와도 골치 아파요. 나는 그놈만 보면 목구멍이 따끔거려서 밥이 안 넘어가요.”
사홍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나도 그래. 아무리 독에 관심이 많다지만 사형제들 밥상에 독을 넣는 놈이 어디 있냐?”
가룡도 사홍의 말을 거들었다.
“…….”
걸화는 말을 하는 가룡과 사홍을 빤히 쳐다보았다.
대체 넷째 사형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엄청 궁금해졌다.
“어허! 내가 그리 일렀거늘. 무릇 사형제라 함은…….”
대사형인 이훈이 자리에 없는 넷째 험담을 하는 두 사제에게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사형! 대사형! 그거 며칠 전에 말씀하셨어요. 압니다. 알고 있어요.”
사홍이 이훈의 말을 막으며 말했다.
“맞아요. 대사형. 제가 잠시 실언을 했습니다. 당연히 넷째를 아끼지요. 얼마나 아끼는지 그놈이랑 있으면 살이 쭉쭉 빠진다니까요.”
가룡도 사홍의 말에 얼른 덧붙였다.
“그 녀석이야 독물이 버글대는 곳에 처박혀 있지 않겠습니까? 아마 전갈을 못 받았을 겁니다.”
사홍이 말했다.
“지난번에도 달포나 기다려도 넷째는 결국 안 왔잖아요. 셋째 말대로 대사형의 연락을 못 받았겠죠. 연락을 받았으면 그놈도 바로 왔을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저를 기다리고 있는데…… 하.하.하 ”
가룡이 말을 끝내며 어색하게 웃었다.
걸화의 넷째 사형인 을령은 호기심이 많고 해독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
을령의 시독과 해독에 대한 이해와 그 깊이는 중원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높은 경지에 있었다.
독에 대해서라면 최고라 자부하는 당가에서조차 그의 실력을 인정해서 어떻게 해서든 그를 당가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하지만, 을령은 당가고 뭐고 관심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귀찮아했다.
그저 해독제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그런 곳에 있고 싶어 했다.
해독을 하려면 일단 중독된 것이 필요했고, 그러려면 독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어딘가 사람이 들지 않는, 독을 구하기 편한 곳에 틀어박혀 있곤 했다.
연락이 닿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