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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220화 (220/230)

220화

개방의 새 방주 배걸부는 개방도들을 이끌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악을 단죄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나 긍지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고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자신을 따르는 개방도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가슴에 꽂히며 십만대산을 향해 옮기는 걸음이 편치가 않았다.

종남의 문주 공엽방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화산이 오지 않다니. 대체 맹주는 그동안 뭘 한 게야. 쯧!’

이제 와서 화산이 참전하지 않으면 자신들도 함께하지 않겠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신의 문파 제자들만 죽어 나갈 것이 뻔한 곳에 발을 들이자니 마뜩찮은 마음이 터질 것처럼 부풀었다.

‘어쩔 수 없지. 최대한 몸을 사리는 수밖에…….’

종남도 십만대산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소림의 운상대사의 표정도 어두웠다.

‘화산이 없으니 우리 소림과 무당을 일선에 세울 텐데… 어찌 한담…….’

참전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소림은 반드시 이 전쟁에 함께해서 그 끝을 보아야만 했다. 그래야, 금월대사의 불미스러운 일을 묻고 중원의 정파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소림의 제자들이 일선에서 죽어나갈 것이 뻔한데, 그것을 알고도 전쟁통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니 마음이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무림 맹주 여송은 전쟁이 끝나기만 하면 화산을 어떤 방법으로 벌할지 고민 중이었다.

‘모든 문파의 넓은 도량을 무시하다니.’

생각할수록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화산과 함께할 수 없다면, 그들이 혼자 세력을 키우는 것이라도 막아야 했다.

중원 각 문파의 문주들은 문파의 제자들을 이끌고 모두 십만대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제 전쟁은 숨길 수 없는 일이었다.

누가 봐도 중원의 모든 정파들이 마교의 본거지로 향하고 있었으니.

마교가 자리한 십만대산 인근에 자리한 각 문파 문주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비장했다.

그간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그려 놓은 마교의 거점과 그곳으로 향하는 길이 그려진 지도는 여전히 미흡한 점이 많았다.

여송이 지도 옆에 놓인 작은 돌들 중에 두 개를 들어 지도의 한편에 각각 놓으며 말했다.

“입구로 보이는 곳은 두 곳입니다. 바로 이곳과 이곳. 소림과 무당이 앞장서고, 종남과 곤륜, 제갈세가에서 뒤에 남아 엄호하고, 이곳은…….”

맹주의 작전을 들으며 무당 정진의 얼굴이 미세하게 굳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

마교에서도 기관진식이든 매복이든 이미 공격에 대비하고 있을 것이다. 주력대로 나서는 문파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정진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뭐라고 반대할 수도 없었다.

“진시에…….”

맹주 여송의 말은 갑자기 방으로 든 지각주 곽가명에 의해 멈추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곽가명의 심상치 않은 표정에 여송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서렸다.

“금의위와 황제의 군사들이 주위를 에워쌌습니다.”

“무어요?”

여송이 생각지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진무사께서 맹주님의 소환을 명하셨습니다.”

“……?”

여송이 의아한 눈으로 지각주를 바라보다 천천히 답했다.

“알았습니다.”

각 문파의 문주들이 술렁거렸다.

* * *

진무사의 명으로 군사를 따라가는 여송의 얼굴에 긴장감이 일었다.

황제와 군부는 보통 무림의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오면서 본 군사의 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왜 우리를……?’

금색의 갑옷을 입은 군사를 따르는 여송의 마음이 불편하게 일렁거렸다.

군사의 안내에 따라 커다란 막사로 들어선 여송은 갑옷을 입고 앉아 있는 진무사 우신을 바라보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무림맹의 여송이라고 합니다.”

여송의 말에 우신이 흘깃 쳐다보다, 손짓으로 자리를 권했다.

“음! 무림 맹주시군. 잘 오셨소이다.”

우신이 여송을 보며 적당히 대꾸했다.

“당연히 와야지요.”

‘이렇게 우리를 포위하고 부르는데 어찌 안 와.’

여송은 못마땅했지만, 그 마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피차 바쁜 사람들이니 본론만 말하겠소.”

“…….”

“황상께서 천산에 계시오.”

“무어요?”

여송이 화들짝 놀랐다.

천산이라고 하면 마교가 있는 십만대산을 말하는 것 아닌가.

“아무리 무림인들은 무뢰배들이 많다 하나, 감히 황상께서 계시는 곳을 향해 칼을 들이대지는 않겠지요? 역적이 될 생각이 아니라면.”

“그, 그럼요.”

답하는 여송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럼 알아서 잘 처신하시리라 믿겠소이다.”

우신은 할 말이 다 끝난 듯 보였지만, 여송은 이리 돌아갈 수 없었다.

‘황제가 아무것도 없는 천산에는 왜? 그래. 그곳에 그리 오래 있지는 않을 게야.’

“혹여 황상께서 언제까지 천산에 계실지 알 수는 없겠습니까?”

“어허! 무엄한지고!!”

우신이 크게 소리쳤다.

“으흠…….”

여송이 낮게 숨을 몰아쉬었다.

* * *

금방 돌아온 여송은 문파의 수장들에게 우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전쟁 준비가 길어지는 통에 사기가 꺾일 대로 꺾였는데 여기서 더 기다리라니… 쯧!”

남궁현섭이 불평했다.

“그럼! 이제 뭘 어찌해야 된단 말이오!”

소림의 운상대사가 전쟁이 미뤄지는 것에 불만인 것처럼 말했지만, 그의 속마음은 달랐다.

‘황상이 아니면, 십만대산에는 소림과 무당의 피로 물들 게야. 이미 참전했으니 됐지. 이대로 황상이 천산에 머무른다면 제자들을 지킬 수 있어.’

“조금 기다려 봅시다. 황상이 언제까지고 천산에 있기야 하겠습니까?”

백리진헌의 말이었다.

“대체 언제까지요!! 전쟁 준비로 벌써 몇 달을 허비했습니다. 이 바쁜 사람들을 언제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할 셈이오!!”

종남의 공엽방이 언짢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의 머릿속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화산을 일선에 세울 수 없다면 차라리 전쟁을 하지 않는 게 낫지. 우리만 죽어나갈 순 없어.’

“으흠…….”

여송은 불편한 침음을 흘릴 뿐 뭐라 말을 꺼내지 못했다.

“…황상은 대체 볼 것도 없는 천산에서 뭘 한다고…….”

구강경이 혼잣말인 듯 중얼거렸다.

“…….”

걸부는 시름 가득한 여송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 *

걸화는 자신의 진료소로 드는 멀끔한 두 사내를 쳐다보았다.

은월과 마부인이 다녀가서 그런 것인지 거지가 아닌 이들이 진료소에 드는 것에, 진료소 거지들은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걸화는 환자처럼 보이지도 않고, 밥을 얻어먹으러 온 것 같지도 않은 이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물었다.

“네가 막내구나!”

밝은 목소리로 말하는 사내는 호리호리하고 키가 컸다.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인상은 호감이 가는 형이었다.

“막내?”

걸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를 처음 보지? 내가 너의 두 번째 사형이야.”

말을 하는 사내의 깨끗한 얼굴은 유쾌했다.

“아!”

그러고 보니, 보은장을 나설 때 스승님이 가능하면 사형들을 찾아보고 인사를 하라고 했던 말이 이제야 떠올랐다.

‘가능하면이라고 하셨지, 꼭 하라는 것은 아니었어.’

스승님의 말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걸화는 스스로를 두둔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배걸화라고 합니다.”

걸화가 사내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가룡이라고 한다.”

사내가 시원하게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우와― 스승님께 말씀만 들었지 처음 뵙습니다. 너무 반갑습니다.”

걸화는 스승님의 다른 제자이자, 자신의 사형이 정말로 반가웠다.

“나도 반갑다. 여긴 셋째!”

가룡이 옆에 있는 키도 덩치도 큰 사내를 가리키며 말했다.

“난 사홍이라고 해.”

곰 같은 사내가 울림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배걸화라고 합니다.”

걸화가 포권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 징그러운 넷째 놈한텐 막내가 안 어울렸어. 네가 딱이다!”

굵고 낮은 목소리는 사홍의 커다란 덩치와 잘 어울렸다.

“사형들 안으로 들어가세요!”

걸화가 서둘러 가룡과 사홍을 안으로 안내하고 차를 내었다.

“계황초인가?”

가홍이 차를 들며 중얼거렸다.

“음… 금은화와 묘조초도 함께 넣었구나. 향이 좋네.”

걸화의 두 사형은 느긋하게 차를 들었다.

걸화는 두 사람을 보며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사형들이 왜 왔지? 멋도 아닌 환단을 영단이라고 돈을 너무 받은 것 때문에? 아니면… 지난번에 두들겨 팬 거지 때문에? 그 놈이 먼저 딴 놈을 괴롭혔는데……. 그것도 아니면…….’

걸화는 머릿속으로 자신이 잘못한 것들을 하나하나 나열해 보고 있었다.

‘이제 와서 또 쫓아내려나? 정식 의원이 됐는데 그럴 수도 있나?’

“한데… 사형들께서 이 거지촌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걸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스승님께서 대사형께 연락을 하신 모양이야. 너를 독립을 시키긴 했지만, 아직 배울 것이 많으니 시간이 되면 데려다 좀 가르치라고. 대사형이 이번 기회에 우리를 다 불렀어. 너와 인사도 하고 대사형 얼굴도 좀 보자고…….”

가룡의 말에 잔뜩 주눅 들었던 걸화의 표정이 펴졌다.

“너 소문이 엄청나더라. 신의께 쫓겨난 의원이 거지촌에 진료소를 차렸다던데?”

사홍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소문이 그래요?”

걸화는 처음 들어보는 자신에 대한 소문에 불쾌한 얼굴이 되었다.

물론, 자신이 스승님께 쫓겨난 적이 있기는 했지만, 다시 스승님이 받아주셨고 이리 잘 배워서 독립까지 했건만 쫓겨난 제자라니!

어디서 시작한 소문인지 몰라도 엄청 기분 나빴다.

“저 안 쫓겨났어요! 아니… 딱 한 번 쫓겨나기는 했는데 스승님이 다시 받아주셨어요…….”

버럭 하던 걸화의 목소리는 뒤로 갈수록 힘이 빠졌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지 않는다고, 쫓겨난 적이 있으니 그런 소문이 날 법도 하기는 했다.

“으하하하. 이야! 너 대단하다. 스승님이 마음먹은 일을 번복하시는 분이 아닌데.”

가룡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웃지 마십시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어휴우…….”

걸화는 그때의 막막하고 무서웠던 생각이 떠올라, 진저리를 쳤다.

“역시! 스승님의 안목은 대단해. 어찌 거지촌에 진료소를 열 생각을 했어?”

“음…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걸화가 부끄러운 듯 입을 헤벌쭉 벌리고 웃었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으로 거지촌에 든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언젠가 자신을 두드려 팼던 두침 패거리를 찾고 싶어서 이곳으로 든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너 마음에 든다. 하하하하”

가룡이 고개를 젖히고 시원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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