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그때, 마철용이 연천을 향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외쳤다.
“천마를 뵙습니다!!”
그 뒤를 소강과 혈풍단, 그리고 모충일의 마교 세력들이 오체투지하며 외쳤다.
“천마를 뵙습니다!”
그를 따라 곳곳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천마를 뵙습니다!”
“네 이놈들!! 누구를 보고 천마라는 게야! 네놈들이 그러고도 목숨을 부지할 성싶으냐! 당장 저놈들을 잡아라!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두!”
상관량이 연천에게 무릎 꿇은 이들에게 악에 바친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연천에게 고개 숙였던 이들이 일어나 연천의 뒤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상관량과 마주하고 있는 연천의 뒤쪽으로 수많은 마교인들이 자리했다.
“저, 저… 쳐 죽일 놈들…….”
상관량이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바로 뒤에는 원로원의 장로들이 함께 있었다.
연천 뒤에 선 수많은 놈들보다 나이 지긋한 몇몇 장로들의 실력이 더 월등했다.
상관량과 눈이 마주친 측진과 장로들이 뒤로 걸음을 물렸다.
“내 이, 이…….”
씩씩거리며 두리번거리는 상관량에게 마교도들의 수많은 눈동자가 박혔다. 그들의 눈은 똑같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가서 싸우라고. 천마임을 스스로 입증하라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씰룩거리던 상관량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외쳤다.
“내 검을 가져오너라!!”
상관량의 외침에 그의 호위가 빠르게 검을 가지고 와서 내밀었다.
상관량을 위해 만든 검의 검집에는 천마검보다 더욱 화려한 색의 보석이 수없이 박혀 있었다.
상관량이 검을 들고 비무단으로 올라섰다.
“내가 네놈의 정체를 밝혀 주마!”
“…….”
연천은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만들고 지웠던 스승님의 원수이자 모든 일의 원흉인 상관량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상관량이 검을 뽑아 검집을 난폭하게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고, 연천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의 검이 빠르게 맞부딪혔다.
연천은 상관량을 마교 최고의 무공이라는 천마신공이나 스승님의 진신무공인 뇌전신공을 사용해서 단숨에 보내줄 마음이 없었다. 그를 마음에 담아두었던 만큼, 천천히 상대해 줄 생각이었다.
연천은 덤덤한 얼굴로 상관량의 검을 쳐 내고 있었다.
요란한 마찰음을 터트리며 충돌하던 두 사람의 검이 한가운데에서 교차하며 멈추었다.
연천은 얽힌 두 개의 검을 넘어 수만 번을 상상하고 지웠던 상관량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편하게 살아 반들반들한 얼굴, 누군가 정성을 들여 곱게 정리한 머리, 사치스러운 흑룡포.
상관량의 얼굴 위로 굵은 주름이 잡힌 스승님의 얼굴이 떠오르며 순간 불쾌한 감정이 치솟았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은 스승님의 것이었고, 이 작자는 그것들을 차지하고자 자신을 믿었던 스승님을 배신했다.
연천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의 검에 힘이 들어갔다. 상관량의 검신에 장인이 정성을 들여 하나하나 박아 넣은 밝은 보석이 떨렸다.
“읏…….”
상관량의 표정이 뒤틀리며 검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그의 눈부신 검신이 뚝 부러졌다.
카앙―
상관량은 손에 든 검을 바닥으로 집어던지고 연천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양팔을 벌려 내공을 한껏 끌어올렸다. 틀어 올렸던 그의 검은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변해 출렁거리며 거칠게 나부꼈다.
그의 몸을 감싸는 회빛의 뿌연 강기가 허옇게 귀신처럼 어른거렸다.
하얗게 변해 버린 얼굴에 비정상적으로 크게 벌어진 입 안으로 뾰족뾰족하게 돋아난 치아가 도드라졌다.
빨간 혀를 날름거리는 그의 쩍 벌린 입속에서 희뿌연 연기가 스멀스멀 뿜어져 나오더니 불쾌하게 얽힌 그것들이 연천을 향해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연천은 검을 들어 그에게 다가오는 것을 베었다. 연천의 깨끗한 내력에 상관량이 뿜어낸 연기가 공중으로 흩어졌다.
새하얀 얼굴을 한 상관량의 길게 찢어진 입꼬리가 잠시 삐뚤어졌지만 이내 제자리를 찾았다.
팔을 벌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상관량의 전신에서 탁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구름처럼 뭉게뭉게 커져, 깨끗한 해가 비치는 하늘을 온통 다 가렸다.
마교도들은 안개가 낀 것처럼 변해 버린 불투명한 색의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잠시 뿐, 곧 비무단을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흐흐흐흐.”
상관량의 찢어진 입이 만족스럽게 벌어지며 양팔을 휘저었다.
교내 하늘을 온통 채운 부연 연기들이 빠르게 움직여 연천을 둘러쌌다. 연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켜켜이 그를 감싸며 불쾌한 기운은 두껍게 응축되어 갔다.
비무단 위를 올려다보는 마철용이 초조하게 손을 비벼댔다. 그 옆의 소강도 불안하게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상관량은 멈추지 않고 더 강하고 거세게 몰아붙여, 연천을 꼼짝도 하지 못하게 압박했다.
연천을 휘감은 탁한 기운은 단단하게 한데 엉켜 돌덩이처럼 굳어갔다.
팔을 내린 상관량이 연천의 뒤에 선 마교도들을 노려보았다.
“네놈의 사지를 갈가리 찢어 산짐승에게 던져줄 테다. 이놈과 함께 짐승의 밥이 될 놈은 나오거라!”
상관량이 회백색의 돌덩이가 된 연천을 가리키며, 그의 뒤에 선 마교도들에게 소리쳤다.
“흥!”
상관량이 조용한 마교도들을 비웃으며, 돌이 된 연천에게 다가갔다.
그때, 마철용이 다급하게 비무단 위로 올라갔다.
“아니, 저…….”
미처 마철용을 말리지 못한 소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철용이 연천을 지키기 위해 그 앞을 막아섰다.
“네 이놈!! 뭘 하는 게야!”
상관량이 마철용에게 소리쳤다.
“천마를 지킬 것이다.”
“이런 쳐 죽일 놈! 뭣들 하느냐? 이 배신자 놈을 잡아 사지를 갈라라!!”
상관량의 큰 목소리에 그의 호위들이 우르르 비무단으로 올라왔다.
“에잇!!”
불편한 소리를 낸 소강도 비무단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의 뒤를 망설이던 혈풍단 단원 몇이 따랐다.
“하! 네놈들이 정녕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죽여라!!”
상관량의 목소리에 그의 호위들이 마철용 일행을 향해 달려들려는 순간, 어디선가 눈이 아프도록 밝은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상관량과 소강이 놀라 몸을 돌렸다.
단단하게 굳어진 상관량의 탁한 기운이 쩍쩍 갈라지며, 그 속에서 새하얀 빛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콰콰쾅―
회백색 돌덩이가 깨지며 환한 빛 속에서 연천이 걸어 나왔다.
마철용 일행에게 덤벼들려던 상관량의 호위들이 주춤거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저벅저벅 걸어 나온 연천을 보고 상관량이 악을 썼다.
“뭣들 하느냐? 어서 저놈들을 쳐 죽이지 않고!!”
상관량의 외침에도 그의 호위들은 멈칫거리며 나서지 않았다.
상관량이 분한 얼굴로 연천을 향해 다시금 탁한 연기를 마구 내뿜었다.
연천이 손바닥을 펼쳐 상관량을 향해 내밀자, 그의 맑은 기운이 터지듯이 쏘아지며 상관량을 둘러싼 불쾌한 연기를 흩트리고 곧장 그의 명치를 가격했다.
“으윽…….”
상관량이 입에서 붉은 피를 뿜어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연천은 멈추지 않고 상관량에게 걸어갔다.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던 상관량의 눈빛이 서늘하게 반짝이더니, 무언가를 꺼내 연천이 있는 쪽으로 뿌렸다.
비무단에 진한 초록빛의 가루가 비산했다.
“독이다!!”
“피해!”
비무단 아래의 마교도들이 소리를 지르며 멀리 물러났다.
“흐흐흐흐. 흐흐흐흐.”
상관량이 번들번들한 눈으로 초록색이 가득 찬 곳을 보며 웃었다.
마교인들은 뒤로 물러나서도 비무단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들 눈에 보이는 것은 어두운 초록빛이 가득 채운 공간과 그 앞에서 반쯤 넋을 놓고 웃고 있는 상관량의 모습이었다.
“크흐흐흐… 이게 뭔 줄 아느냐? 혈영천마에게 쓴 산공분과 내 아비에게 먹인 독을 합친 것이야……. 누구도 살아남지 못해. 으흐흐흐.”
상관량이 중얼거리듯 말했지만, 그에게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소무군은 단 한 마디도 놓치지 않았다.
안력과 청력을 돋우어 비무단에 집중하고 있는 이들도 아마 들었으리라.
소무군의 머릿속이 멍하게 울렸다.
‘정녕 그 소문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상관량 저놈이 혈영천마와 스승님까지 해했다는 게.’
상관량과 소무군이 지금껏 서로 믿고 의지한 것은 두 사람이 형제처럼 지내 온 과거 때문이었다.
그 관계는 소무군의 스승이자, 상관량의 아비인 상관단월이 소무군을 자식 못지않게 아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소무군은 상관단월을 아비로 여겼고, 상관량을 형제로 생각했다.
그가 존경하는 스승이 아꼈던, 마교와 상관량을 보호하기 위해 직접 보지 않고 직접 듣지 않은 외부의 소문을 믿지 않았다.
한데 그런 소무군의 눈과 귀를 뚫고 다가온 잔인한 진실이 그의 마음을 산산이 조각내고 있었다.
‘내가 상관량 저놈을 어찌 지켜 왔는데…….’
상관량을 믿고 그와 마교를 지킨 결과가 끔찍하고 참혹했다.
초록색의 가루가 천천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정신을 반쯤 놓고 헤실헤실 웃던 상관량의 얼굴이 폭발할 것 같은 분노로 가득 찼다.
만독불침의 공력도 흩트리는 산공분과 몸에 닿으면 일각을 넘기지 못하는 독을 뒤집어쓰고도 놈들이 멀쩡한 것 아니겠는가.
연천이 자신과 혈풍단을 보호한 기막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화가 난 상관량의 눈은 연천에게 꽂혔지만, 연천의 시선은 미처 독을 피하지 못하고 중독된 소강에게 향했다.
연천은 온몸이 새파랗게 변해서 곧 숨을 거둘 듯이 헐떡이는 소강에게 다가갔다.
연천은 소강의 손을 잡고 빠르게 해독을 하기 시작했다. 소강을 해독시키면서도 눈은 상관량을 직시했다.
“하! 저놈이 나를 우습게 보고!”
상관량은 해독을 하는 여유를 부리는 연천을 노려보며 다가갔다.
마철용이 재빠르게 소강과 연천 앞을 막아섰다.
“저 찢어 죽일 놈!”
상관량이 마철용을 쏘아보며 그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등 뒤에서부터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지독한 통증에 숨이 막혔다.
천천히 고개를 내려다본 자신의 복부 한가운데에 낯익은 검신이 삐죽 나와 있었다.
상관량에게 익숙한 그 검은 아버지 상관단월이 평소 좋아하는 문구를 새겨 제자인 소무군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앙불괴어천.’
하늘을 우러러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다.
상관단월이 좋아하는 글귀였고, 상관량이 제일 싫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무인이면 이기는 게 우선이고, 힘을 가지는 것이 최고이지, 그놈의 하늘 타령은…….’
반듯하게 새겨진 글 하나하나에 상관량의 핏물이 고였다.
상관량이 비틀비틀 몸을 돌렸다.
그의 등 뒤에는 소무군이 서 있었다.
상관량이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소무군을 바라보았다.
소무군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눈은 젖어 있었지만, 상관량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나에게도 아버지였는데…….”
불편한 목소리는 거칠었다.
“하……! 하하하하…….”
상관량이 기운 빠진 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소무군은 고개를 돌리고 눈을 꼭 감았다. 다시 눈을 뜬 소무군은 이슬이 가득 맺힌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