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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218화 (218/230)

218화

비무단을 넘어 흘러넘치는 기운에 구경하던 마교도들은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비무단과 그 주변의 땅이 흔들렸다.

힘을 끌어올린 마철용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땀이 맺힌 그의 목과 이마에 핏대가 솟아났다.

측진의 검푸른 얼굴에 돋아난 검은 핏줄은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빠르게 퍼져나가 그의 목과 얼굴에 빽빽하게 얽혔다.

“교주님! 피하시지요.”

장로와 호위들은 자신들에게마저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두 사람의 기운을 피해 교주 상관량을 데리고 자리를 옮겼다.

“으아악!!”

마철용이 소리를 지르며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그의 얼굴은 고통스럽게 뒤틀리고, 눈에는 벌건 핏발이 일어나고 번들번들하던 땀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윽…….”

검게 변한 측진의 입술에서 검붉은 핏물이 진득하게 흘러나왔다.

펑! 콰광쾅쾅―!!

폭발하는 것과 같은 굉음과 함께, 흔들리던 비무단 한가운데가 쩍 벌어지며 마철용과 측진 두 사람은 비무단 끝으로 튕겨 나갔다.

마철용은 한쪽 무릎을 꿇고 검을 바닥에 박았다. 엄청난 기운에 검이 박힌 채 쭉 밀려나다 겨우 비무단 끝에서 멈추었다.

한참 뒤, 뿌연 먼지와 정돈되지 않은 기운이 서서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깨진 비무단 바닥에는 측진의 발자국이 끌린 자국이 길게 패여 있었다.

그리고 터져 나온 기운에 밀린 측진은 비무단 아래에 서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수많은 마교인들이 바라보고 있는 큰 공간에는 작은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마철용과 비무단 아래에 서서 숨을 몰아쉬는 측진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몸을 피했던 환긍이 저벅저벅 비무단 위로 올라왔다.

환긍의 발자국 소리가 멀리 울리는 것 같았다.

비무단 한쪽에 선 환긍이 크게 외쳤다.

“서열 49위 혈풍단 단주 마철용 승!!”

환긍의 판정에도 누구 하나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마철용은 당황해서 입을 벌리고 눈만 껌뻑거렸다.

무려 서열 8위의 장로가 서열 49위에게 도전했다가 패하였다. 이것을 마냥 축하하고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천마대회에 참가할 마음 따위 없이 그저 연천만을 기다리던 마철용은 말할 수 없이 뒤가 찝찝하고 마음이 불편했다.

“음!”

목을 가다듬은 측진이 천천히 비무단 위로 올라갔다.

마철용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에게 다가오는 측진을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뭘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철용의 앞까지 다가온 측진이 입을 열었다.

“잘 배웠네. 그리고 내가 패하였어. 이제 자네의 서열은 8위일세.”

“아닙니다. 장로님. 이건 말이 안 되지요. 장로님은 실수로 비무단에서 떨어진 것뿐입니다.”

“무에 있어서 실수는 없네! 이긴 자와 패한 자가 있을 뿐!”

측진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고 제가 어찌…….”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면, 천마대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네. 그리하는 겐가?”

“당연히 아니지요.”

마철용이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서열 8위 마철용 단주! 축하드리오.”

측진이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며 마철용에게 존대했다.

“…감, 감사합니다.”

마철용이 엄청 불편한 얼굴로 답했다.

측진은 천천히 비무단에서 내려갔다. 뉘엿뉘엿 지는 해가 비치는 모든 것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거북한 표정으로 측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마철용도 비무단을 내려왔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천마대회는 내일 진정시(아침 8시 30분)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환긍의 말에 마교도들은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리며 어디론가 흩어졌다.

심란한 마철용에게 소강이 다가와서 말했다.

“단주님은 그만 들어가서 쉬십시요. 저희가 비무단을 정리하겠습니다.”

소강의 말에 마철용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대꾸 없이 자신의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마교에 처음 입교한 그날보다, 오늘이 더 마교라는 조직과 자신을 보는 이들의 눈빛이 낯설고 불편했다.

* * *

연천과 모충일, 화칙은 천천히 십만대산을 오르고 있었다.

교내에서 모충일을 따르는 담상명과 우윤백이 함께였다.

침입자를 대비해 둔 기관진식이 곳곳에 깔려 있고, 외곽경비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피해 나아갔다.

십만대산 아래에는 우신을 중심으로, 금빛의 갑옷을 입은 관군이 십만대산으로 들어가는 초입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똑같은 창을 들고, 똑같은 자세로, 꿋꿋하게 서 있는 관군의 모습에는 압도될 것 같은 위용이 뿜어져 나왔다.

우신이 연천의 명으로 그를 따르지 못하고, 산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일은 절대 황궁이나 관에서 나서서 되는 일이 아닌, 무림인들이 그들만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무림의 습성을 아는 우신은 조용히 그의 뜻에 따랐다.

* * *

예부터 마교의 천마대회는 7일에 걸쳐 진행되었다.

제법 많은 이들이 상위서열을 제치고 서열을 뛰어넘었고, 또 많은 이들은 비무를 통해 자신의 서열을 지키고 있었다.

이번 천마대회에서 그 어느 때보다 파격적인 서열의 이동은 누가 뭐라고 해도 서열 49위였던 마철용이 서열 8위로 올라선 것이었다.

단숨에 40위가 넘는 서열의 상승도 놀라웠지만, 서열 8위인 측진이 한참 아래 서열인 마철용에게 도전했다가 패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마철용은 비무가 있었던 다음 날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천마대회의 진행을 맡고 있었지만, 그를 보는 이들은 조용히 쑥덕거렸다.

그것이 부러움이든, 칭찬이든 마철용은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말할 수 없이 불편하고 싫었다.

떠밀려서 맞지도 않는 남의 자리에 어정쩡하게 앉아 있는 것 같았고, 8위라는 서열도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저 그분이 빨리 오시기만을 목을 빼고 기다렸다.

매일매일 새로운 비무가 펼쳐지던 천마대회 마지막 날의 비무도 모두 끝났다.

“그럼 더 이상 도전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습니까?”

환긍이 확인차 물었다.

“…….”

오랜만에 열린 천마대회는 이렇게 마무리가 되는 듯싶었다.

그때, 저 멀리서 저벅저벅 걸어오는 이가 있었다.

말없이 걸어오던 사람은 아예 비무단 위까지 올라와 한가운데에 섰다.

환긍은 전혀 안면이 없는 도전자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비무단 한가운데에 선 사내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다 입을 열었다.

“서열 1위 상관량에게 도전합니다!!”

“뭐?”

“저 사람 누구야?”

“자기는 서열이 몇 위인데?”

비무단 아래에 있는 마교도들이 심하게 술렁거렸다.

천마대회의 원칙은, 누구라도 누구에게든 도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한테나 무작정 들이댔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기에 보통은 현재 자신의 서열보다 10위에서 20위 정도 상위 서열에게 도전하는 것이 거의 최고라 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마철용의 40위 이상 서열 상승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한데, 교주에게 도전이라니? 죽고 싶어서 환장하지 않은 이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음!! 조용히 해 주십시오!”

목을 가다듬고 좌중을 조용히 시킨 환긍이 비무단 한가운데 선 연천에게 다가갔다.

“본인을 먼저 소개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소? 서열이 몇이고, 어떤 직무를 맡고 있는지 본인에 대해 먼저 말하시오.”

“…….”

연천은 대답 없이 자리에 앉은 상관량을 쏘아보았다.

“…….”

연천을 보는 상관량의 얼굴도 불쾌하게 일그러졌다.

“나는 교내에 서열이 없소.”

연천의 말에 그를 보는 환긍과 마교인의 얼굴에 의구심이 일었다.

“하나, 내 스승님이 마교도셨소이다.”

‘저런 정신 나간 놈을 봤나. 스승이 마교도였다고 천마대회에 찾아와서 교주에게 도전을 해? 대체 여긴 어찌 들어온 게야?’

비무단 가장 가까이에 서 있던 소무군이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연천을 쳐다보다, 비무단 위로 올라갔다.

소무군은 비무단을 올려다보는 마교도들의 의문이 담긴 눈동자에 일단 사정은 들어보고 놈을 내쫓기로 했다.

“네놈의 스승이 누구냐?”

소무군의 물음에 연천이 울림 큰 목소리로 답했다.

“전대 교주 혈영천마 주진관!”

“……!”

예상치 못한 자신의 소개에 비무단을 중심으로 정적이 퍼지기 시작했다.

“딸꾹… 딸꾹…….”

조용한 가운데 누군가의 딸꾹질 소리가 울렸다.

소무군은 예상치 못한 답에 놀라서 연천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뭣들 보고만 있는 게야! 저 미친놈을 당장 쫓아내지 않고!!”

발작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 것은 교주 상관량이었다.

그제야 소무군이 정신을 차렸다.

그렇지 않아도 어수선한 교내의 분위기를 천마대회로 겨우 수습하고 있는 중인데 난데없이 어디서 튀어나온 놈이 물을 흐리고 있었다.

“놈을 끌어내라!!”

소무군이 더 이상 들을 가치가 없다는 듯이 명했다.

연천이 그에게 달려드는 이들을 쳐다보며, 허리에 찬 검에 둘러놓은 천을 벗겼다.

평소에 사용하던 가죽 검집이 아닌, 영친왕이 선물한 진짜 천마검의 검집과 그것에 박힌 색이 선명한 보석이 눈에 확 들어왔다.

“헉!”

“저, 저거 천마검 아니야?”

“설마? 진짜?”

연천을 잡으러 가던 이들이 주춤거리며 멈추었다.

“검을 빼앗아! 당장!”

연천의 검을 본 상관량이 악을 썼다.

연천과 검을 바라보는 소무군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나는 혈영천마 주진관의 제자 백연천이다. 욕심에 눈이 멀어, 비열한 방법으로 내 스승님을 해한 상관량! 네게 복수하러 왔다. 내 검을 받아라!”

연천이 검을 쭉 뻗어 상관량을 가리키며 말했다.

‘천마검? 정파에서 시작한 그 소문이 정녕 사실인가?’

소무군은 마교 전체를 위해 절대 믿지 않으려 했던 소문에 대해 의구심이 들며 혼란스러웠다.

“네 이놈들!! 뭣 하고 있느냐? 당장 저놈을 쫓아내지 않고!!”

상관량이 소리를 질렀으나 천마검을 본 경비들은 머뭇거렸다.

그때, 상관량의 바로 옆에서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던 경문심이 날듯이 뛰어 비무단에 착지했다.

“어디서 미친놈이!!”

기괴한 모양으로 휜 곡도를 휘두르며 연천에게 달려들었다. 연천도 경문심을 향해 움직였다.

경문심을 향해 천천히 빼어든 연천의 검에서 밝고 붉은빛이 크게 번쩍이더니, 경문심이 서 있던 자리에는 혈운과 함께 길고 검은 핏자국만이 남았다.

혈운이 옅어지고 검은 핏자국이 더욱 길게 흐르더니 비무단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누군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피의 그림자… 혈영, 혈영이다!!”

“……?!”

흘러내리는 핏물을 뚫어질 듯 바라보는 소무군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혈영. 전대 교주인 주진관의 별호였다.

그에게 그와 같은 별호가 붙은 것은 전대 천마들과 달리 그가 천마신공을 쓴 자리에 남는 것이 저렇게 피의 그림자뿐이라고 해서 붙은 것이었다.

지금 저자가 사용한 것은 혈영천마의 천마신공이 맞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검 또한 천마검이 맞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소무군의 머리가 띵하게 울렸다.

다른 마교도들도 비슷하게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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