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천마대회 당일.
하늘은 유난히 높고, 새파란 하늘에는 구름 한 점 끼지 않은 청명한 날이었다.
그저 하늘만 올려다보아도 속에 쌓인 모든 불쾌함이 씻기는 것처럼 깨끗했다.
상관량은 대단히 사치스럽게 장식된 커다란 의자에 앉아 앞을 바라보았다.
비무단 한가운데에 선 소무군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천마대회를 시작합니다!! 모두 알다시피 누구에게든 도전장을 내어 비무를 청할 수 있고, 이기는 자가 상위 서열을 차지합니다. 도전에 불응하면 패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서열이 바뀝니다.”
비무단 주위에 수많은 마교도들이 있음에도 조용했다. 단지 소무군을 바라보는 눈동자만이 형형했다.
“상대를 죽이거나 패배를 인정하거나, 상대가 비무장 밖으로 나가면 승리합니다. 여기 이곳 제일 높은 비무단이 서열 1위부터 100위까지에게 청하여 비무를 하는 곳, 우측은 101위부터 201위, 나머지는 좌측 비무장에서 합니다.”
모든 서열이 누구든 지목하여 비무를 할 수 있었으나, 가장 관심의 대상은 1위부터 100위까지의 서열이었기에 그들의 비무장만 단을 높였고 또 교주의 바로 앞에 위치했다.
“그럼! 천마대회를 시작합니다!!”
지이이잉잉잉―
소무군의 말이 끝나자 비무단 아래의 커다란 징이 울렸다.
그리고 천마대회에 진행과 심판을 함께 볼 장로 환긍이 올라갔다.
소무군은 비무단에서 내려왔지만, 최대한 가까이에서 비무를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럼 먼저 도전장을 낸 사람부터 시작합니다. 첫 번째 비무! 서열 73위 망화대 대주 공촌림이 서열 68위인 염마 표비진에게 도전장을 내었습니다. 두 사람은 비무대 위로 올라오십시오!”
좌측과 우측의 비무대에서도 누군가를 호명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어느 곳보다 상위서열의 비무단에 많은 이들이 몰려 있었다.
환긍의 양옆으로 두 사람이 나와서 섰다.
“표비진은 도전을 받아들이겠습니까?”
“물론이죠!”
소무군의 물음에 긴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비쭉비쭉 뻗어 있는 표비진이 답했다.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에 가려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으나, 절반쯤 감긴 그의 눈은 아주 유쾌한 듯 보였다.
“그럼 비무를 시작합니다!”
한긍이 말하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망화대 대주 공촌림이 배움을 청합니다.”
공촌림이 예를 갖추었다.
“가르쳐 주지! 하나! 나는 지금껏 나와 싸워서 진 녀석을 살려 보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목숨을 걸고 배우겠습니다.”
“크하하하! 마음에 드는군!”
말을 마친 표비진이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공촌림을 바라보았다.
공촌림도 빳빳하게 선 자세로 표비진을 쏘아보았다.
비무단 옆에 서서 위를 바라보며 누구라도 먼저 공격하기만을 기다리던 마교인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어후! 뜨거워.”
“쪄죽겠다.”
커다란 돌과 흙으로 만든 비무단이 불에 달군 돌판처럼 지글지글 끓어가고 있었다.
표비진 장로의 사방으로 뻗은 머리카락 끝에서 새하얀 연기가 몽글몽글 올라왔다.
표비진이 비무단 전체를 뜨겁게 달구자, 공촌림이 하반신에 냉기를 둘러 대항하고 있었다.
냉기를 사용하는 현무신공을 단련한 공촌림이 불의 기운을 다루는 해태신공을 익힌 표비진에게 도전장을 낸 것이었다.
비무단의 절반은 열기로 벌겋게 익어갔고, 절반은 허옇게 얼어서 그 중간쯤에는 바닥으로 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위로는 연기가 펄펄 피어올랐다.
공촌림이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의 손끝에서 뾰족한 고드름 수십 개가 쏘아져 나갔다. 표비진도 손을 휘둘렀다.
“으아악!!”
“앗! 뜨뜨뜨거!”
소리를 지른 것은 비무단 아래의 마교도들이었다.
그 소리와 거의 동시에 표비진의 손에서 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오며, 그에게 쏘아진 고드름이 빠르게 녹아 허연 증기로 사라졌다.
공촌림이 어른의 주먹만 한 얼음 공을 날리자, 표비진은 손바닥에 기를 끌어 모아 시뻘건 화염을 토해 냈다.
공촌림도 손바닥에 기를 모아 냉기를 뿜어냈다.
두 사람은 점점 가까이 몸을 붙이며 냉기와 화염을 쏟아냈다. 그 한가운데서는 허연 연기가 펄펄 날렸다.
손바닥을 뻗고 각자의 기운을 뿜어내던 두 사람은 장이 거의 마주칠 만큼 가까운 거리에 다가서더니 어느 순간 손바닥을 마주 대고 냉기와 열기를 쏘아댔다.
한참을 같은 자세로 서 있던, 표비진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그의 발바닥부터 발등을 타고 투명한 얼음이 끼더니, 공촌림과 맞닿아 있는 손바닥도 얼어갔다.
손끝과 발끝을 타고 천천히 올라가던 냉기가 어느 순간 표비진의 배꼽 근처에서 만나더니 몸 전체가 꽁꽁 얼어붙으며 아무렇게나 뻗어서 연기가 나던 머리카락 끝까지 뻣뻣하게 변했다.
한참을 그 자세로 더 있던 공촌림이 손을 떼고 꽁꽁 언 표비진을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보다 손가락 하나를 들어 그의 이마를 눌러 밀었다.
꽝꽝 얼어버린 표비진의 몸뚱이가 바닥에 부딪히며 작은 얼음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공촌림이 교주 상관량을 향해 포권했다.
“망화대 대주 공촌림 승!!”
환긍의 커다란 목소리에 구경하던 마교인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휘파람을 불고 발을 굴려댔다.
공촌림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비무단에서 내려왔고, 마철용과 함께 대회를 돕는 혈풍단원들이 비무단을 정리했다.
“우와아아아!!”
저 멀리 우측의 비무장에서도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승패가 난 모양이었다.
“다음은 서열 62위 여의마 벌융이 서열 51위 철관 염인에게 도전장을 냈습니다. 두 사람 올라오시지요!”
환긍의 말에 두 사람이 높은 비무단으로 올라왔다.
명교도인들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도전에 응하시겠습니까?”
환긍의 물음에 염인이 씨익 웃었다.
“물론입니다!”
환긍이 물러나고 벌융과 염인이 마주보다 몸을 움직였다.
어른의 손바닥만 한 두 개의 막대기를 꺼내든 염인 주위로 바람이 휘익 불더니 갑옷처럼 두른 철편이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 그가 들고 있는 막대기 앞쪽으로 나란히 붙었다.
염인이 두 개의 막대기를 내젓자 그 앞에 출렁거리며 붙어 있는 철편들이 마치 채찍처럼 줄 맞추어 휘둘렸다.
벌융이 양쪽 끝에 불꽃처럼 생긴 날이 붙은, 중간 길이의 봉을 꺼냈다.
염인이 철편으로 된 채찍을 벌융을 향해 휘둘렀다. 벌융은 몸을 낮추어 그것을 피하고 염인을 향해 봉을 질렀다.
봉의 길이가 갑자기 늘어나며 불꽃같은 칼날이 염인의 복부를 찔러들자 염인이 빠르게 몸을 돌렸다.
염인은 두 개의 긴 채찍으로 벌융을 사정없이 휘갈겼다. 벌융은 자세를 낮추었다 높였다 하며 그것을 피했다.
염인이 채찍을 더욱 빠르게 내갈기기 시작했다. 벌융도 속도를 높여 몸을 움직이다 한순간 피하지 못하고 어깨를 맞았다.
날카로운 철편의 표면이 어깨를 가격하며 순식간에 옷이 해지고, 거칠게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하나 벌융은 상처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아랑곳 않고 염인을 향해 봉을 동그랗게 휘둘렀다. 봉에 붙은 불꽃 모양 칼날이 수십 개로 늘어나 염인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염인이 몸을 공중으로 띄우며 채찍 하나를 휘둘러 칼날을 막아냈다.
다른 쪽에 있던 채찍이 뱀처럼 날아가 벌융의 무기인 봉을 휘감아 당겼다.
봉이 당겨지며 칼날이 염인의 얼굴로 날아가자 그는 고개를 틀어 피했다.
다시 봉을 잡아당기려 하는 순간 봉의 몸통 끝이 열리며 엄청난 수의 은빛 침이 쏘아져 나갔다.
“읍!”
“독?”
구경하던 마교인들이 뒤로 물러나며 침을 피했다.
“윽”
순간, 몸을 돌려 피했으나 침 하나가 염인의 팔뚝에 박혔다. 침이 꽂힌 자리의 피부색이 진한 보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뒤로 물러난 염인은 침을 뽑아 바닥에 버리고, 비무단 한편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내리감았다. 염인의 얼굴과 몸에 바람이 휘감았다.
바람은 염인을 중심으로 점점 커다란 회오리를 만들더니 비무단 아래에 선 이들의 옷자락과 머리카락이 거칠게 펄럭거렸다.
벌융이 염인을 쏘아보며 봉을 툭 털자, 봉의 길이가 어른의 키만큼 길어졌다. 벌융은 그대로 봉 끝에 날카로운 칼날을 가부좌 튼 염인을 향해 찔러들었다.
그러나 벌융의 봉은 그의 의지와 다르게 바람을 따라 휘며 그가 바라는 경로를 이탈하여 허공을 찔렀다.
“응?”
벌융은 봉과 눈을 감은 염인을 번갈아보다 다시금 염인의 몸을 향해 정확하게 칼날을 쑤셔 넣었으나 이번에도 보이지 않는 힘에 밀려난 봉은 염인에게 닿지 못했다.
벌융은 열이 올라 봉을 마구잡이로 쑤셨으나 여전히 허공에서 홀로 허우적거리는 꼴에 지나지 않았다.
“크흐흐흐”
비무단 아래에서, 혼자 몸부림치는 벌융의 모습을 보고 웃는 이들도 있었다.
화가 난 벌융은 독이 발린 날카로운 비수 여러 개를 꺼내 염인에게 집어던졌다. 그의 비수는 염인의 주변을 따라 돌다가 비무단 바닥에 박히기도 하고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기도 했다.
“으윽!!”
구경을 하는 이의 몸에 박힌 것인지, 누군가 신음을 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혈풍단이 달려가 쓰러진 이를 진료소로 옮겼다.
여전히 눈을 감고 꼼짝하지 않고 있는 염인을 노려보던 벌융은 커다란 돌덩이와 흙을 다져 만든 비무단 바닥을 파내더니 구멍으로 기어 들어갔다.
잠시 후, 염인이 자세를 풀고 공중으로 높이 도약했다. 그의 아래쪽에는 바닥을 뚫고 나온 벌융이 바짝 붙어 떠올랐다.
염인이 멀리 떨어진 바닥에 착지했다. 해독이 여의치 않은 염인은 자신의 몸에 들어 온 독을 더 이상 다른 곳으로 퍼지지 않게 내공으로 둘러쌌다.
침이 박혔던 팔뚝은 여전히 보랏빛이었지만, 다른 곳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염인은 굳은 얼굴로 양손에 막대를 들고 휘둘렀다.
일렬로 나열되어 채찍처럼 움직이던 철편이 막대 끝에서 벗어나 벌융 주위를 회오리치며 빠르게 돌았다.
벌융의 눈동자에 지금까지와 다른 당혹스러움이 서렸다. 벌융이 봉을 들어 자신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철편들을 쳐 냈으나 힘차게 움직이는 철편에 튕겨 나갔다.
벌융은 포기하지 않고 철편을 쑤시고 두드려 댔지만, 그의 주위를 도는 것들은 더욱 위협적으로 속도를 높였다.
휘몰아치던 것들이 벌융의 몸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벌융은 잔뜩 긴장하면서, 몸 외곽으로 내공을 보내 단단하게 기막을 둘렀다.
염인이 뻗은 손을 펼치자, 철편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벌융이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숨을 몰아서 내뱉었다.
그 순간, 벌융에게서 멀리 떨어졌던 철편들이 화살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 벌융의 몸을 거세게 가격했다.
“으억!!”
아주 잠시 긴장을 내려놓은 찰나였다.
염인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벌융에게 공격을 가한 것이었다.
수십 개의 철편이 벌융의 몸을 뚫고 퍽퍽 박혔다. 제자리를 벗어난 벌융의 동공이 부들부들 떨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벌융에게 박혔던 수십 개의 피 묻은 철편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휴우…….”
긴장을 놓치지 않고 대전을 바라보던 마교인들 중 누군가 숨을 몰아쉬었다.
염인이 이긴 것이라 생각한, 마교인들이 웅성거렸다.
그 순간, 허공에 떠 있던 철편 하나가 빠르게 날아가 벌융의 미간 사이를 뚫고 그의 뒤통수로 빠져나왔다.
벌융의 이마에서 끈적한 핏물이 새어 나와 그의 눈을 타고 흘러내리더니, 그의 몸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덕분에 잘 놀았다.”
염인이 구멍 난 벌융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음!”
환긍이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철관 염인 승!!”
단 아래의 마교인들이 더욱 크게 웅성거리고, 혈풍단이 비무단으로 올라와 벌융의 시신과 그가 흘린 핏자국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