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마교의 주인】
이제 겨우 나이 오십이 조금 넘은 소무군은 마교 서열 19위인 장로였다.
그는 많지 않은 나이에 벌써 장로라는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이는 그가 전대 부교주인 상관단월의 제자로 젊은 시절부터 상관량과 가까이 지냈기 때문이었다.
타인에 대한 신뢰가 없는 상관량이 거의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 소무군이었다.
수일검의 이야기가 무림에 퍼지면서 전대 천마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장로들이 대거 교를 나가거나 은둔하는 방식으로 상관량에게 등을 돌려버렸다.
소무군도 수일검의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교주가 정파인들과 손을 잡고 혈영천마를 제거했다는 그 헛소리를 말이다.
소문 속에는 상관량이 자신의 아버지인 상관단월까지 해했다고 했지만, 소무군은 절대 믿지 않았다.
이야기가 나온 것이 정파인들의 무슨 잔치에서였다.
오랫동안 마교를 흉악한 단체인 것처럼 내몰고, 자신들은 깨끗한 척, 고상한 척하는 것들이 정파였다.
하지만, 정작 그놈들이야말로 앞과 뒤가 다르고 구린내가 진동한다는 것을 소무군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헛소리에 유구하게 지켜온 마교가 흔들리게 절대 둘 수 없었다.
마교인들 중에 어리석은 몇몇이 그런 말에 휩쓸린다 해도 소무군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스승인 상관단월 못지않게 올곧은 소무군은 꼿꼿하게 상관량을 비호하며 마교를 지키고 있었다.
소무군에게 마교는 그의 전부였다.
상관량의 나이로 볼 때 앞으로 이삼십 년은 더 교주 자리에 있을 것이다. 마교를 지키려면, 교주인 상관량을 지켜야 했다.
곧은 걸음으로 걷던 소무군의 코끝에 비릿한 피비린내 확 끼쳐왔다.
서둘러 피 냄새가 나는 곳으로 달려가던,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혈향이 나는 곳은 교주인 상관량의 처소였다.
“꺄아아아악―”
가까이 다가가자 시녀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귓가에 꽂혔다.
“이런!”
짐작 가는 바가 있는 소무군의 걸음이 빨라졌다.
소무군이 교주의 처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주변의 마교도들이 몰려와 있는 상황이었다.
입구를 둘러싼 이들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간 소무군의 몸이 딱 굳었다.
교주인 상관량은 검을 빼어 들고 있었다.
상관량이 벤 사람은 시녀였다. 시녀는 넓은 탁자 위, 많은 음식들이 차려진 한가운데 쓰러져 있었다.
상관량이 시녀를 단번에 죽일 심산으로 대동맥을 베어, 피가 높이 치솟았다.
시녀의 뜨거운 피는 탁자 위에 잘 차려진 음식을 뒤덮고 오목한 접시들 속에 채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상관량의 전신을 뒤덮었다.
붉고 더운 피를 뒤집어쓰고 눈을 희번덕이는 상관량 앞에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으아악!! 악! 아악!”
반쯤 정신이 나간 다른 시녀가 바닥에 주저앉아, 새된 비명을 질러댈 뿐이었다.
소무군이 악을 쓰고 있는 시녀에게 다가가 훈혈을 점했더니, 시녀의 몸이 바닥으로 널브러졌다.
갑작스러운 고요함 속에 죽은 시녀의 피가 탁자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크게 다가왔다.
쪼르르르르르.
소무군은 눈을 꼭 감고 낮게 숨을 몰아쉬었다. 천천히 상관량 앞에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었다.
“소무군이 천마를 뵙습니다.”
허공을 향해 희번덕거리던 상관량의 동공에 초점이 맞추어지더니 바닥에 무릎 꿇은 소무군에게 향했다.
소무군을 내려다보던 상관량이 자신의 방 앞에 선 이들을 쳐다보았다.
상관량의 시선을 느낀 다른 마교도들도 급히 무릎을 꿇었다.
“주군. 어찌 된 일이십니까?”
소무군이 알면서 물었다.
“저년이! 저년이 내 음식에 산공분을 타지 않았더냐. 내가 저런 년을 어찌 가만히 두겠어!!”
악에 받친 고함을 내지르는 상관량의 눈빛은 초점을 찾았다고는 하나, 여전히 번들거리는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뭣들 하느냐? 정리하거라!”
소무군의 말에 무릎을 꿇었던 마교도들이 일어나 시신을 수습하고 핏물로 얼룩진 그릇들을 치웠다.
“주군! 주군의 음식에 산공분을 넣은 것은 가벼이 볼 일이 아닙니다. 소신이 철저히 조사해서 그 배후를 밝히겠나이다.”
소무군이 상관량에게 믿음직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그래! 그래야지. 철저히 밝혀내라. 그 누구든 이 일을 도모한 자를 절대 살려 두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말하는 상관량의 눈동자에 섬뜩한 광기가 서려 있었다.
며칠 뒤,
자신의 전각을 나온 소무군은 또 다른 피비린내에, 몸을 날려 혈향이 나는 곳으로 향했다. 소무군의 몸이 굳었다.
“아……!”
며칠 전에 본 모습 그대로였다.
단지 탁자 위에 피를 뿜으며 쓰러진 자는 시녀가 아닌 교내의 호위무사 옷을 입은 자였고, 비명을 질러대는 시녀가 없었을 뿐이었다.
“저놈이! 저놈이! 내게 산공분을 먹이려 했어! 저 찢어 죽일 놈이!!”
검을 든 상관량이 길길이 날뛰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소무군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상관량의 처소 문에서 지켜보던 마교도 누구도 무릎을 꿇거나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다.
그저 암울한 표정으로 유혈이 낭자한 교주의 방을 들여다볼 뿐이었다.
소무군의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가 내려앉는 것 같았다.
“소무군이옵니다.”
소무군이 몸을 낮추어 예를 다했다.
상관량이 소무군을 내려다보았다.
“제가 교주의 음식에 산공분을 탄 자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만 고정하십시오.”
시뻘건 선혈이 뚝뚝 흐르는 상관량이 검을 휘두르며 악을 써대는 것을 멈추었다.
소무군의 눈짓에 시체가 사라지고 빠른 속도로 주위가 정리되고 있었다.
상관량이 비틀어진 입매로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철저하게 처리하도록 하라”
“존명!”
천마의 처소를 나오는 소무군의 마음이 묵직했다.
맨 처음 식사를 가지고 간 시녀를 죽이고, 산공분을 운운했을 때는 정말 교주를 해하려는 자가 있는 줄 알았다.
하나 아무리 조사하고 살펴도 의심이 될 만한 정황도 없고, 가지고 갔던 음식에도 이상이 없었다.
그 후, 교주에게 내는 음식을 더 철저하게 확인했음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교주의 식사 시간에 같은 일이 일어났다.
더욱이 최근 들어서는 식사 시중을 드는 시녀를 죽이는 일이 더 잦아지고 있었다.
이에 아무도 교주에게 식사를 내려 하지 않았고, 종종 교에서 도망치려던 시녀들이 붙잡혀 오기도 했다.
지금의 마교 돌아가는 꼴이 정상은 아니었다.
상위 서열 중 교주 곁에 있는 이는 소무군뿐이었다.
상관량은 이런저런 이유로 상위 서열을 중원 곳곳으로 흩어 놓았다.
소무군은 교주의 불안한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정파에서 퍼트린 그 소문으로 인해 너무 많은 이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모두 함께 마교를 지킬 생각을 해야 함에도 어리석게 정파의 계략에 놀아나고 있으니, 교주가 불안할 수밖에.
상관량의 광기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었다.
교내의 일반 교도들조차 교주 상관량이 미쳤다고 쑥덕거렸다.
앞으로 마교의 앞날이 어찌 될지 걱정이 앞섰다.
* * *
지금의 마교에는 무조건적인 신심을 가지고 교를 부흥시키고자 하는 이들이 드물었다.
눈치만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을 뿐이었다.
소무군이 마철용을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그는 마교의 몰락을 막고 번영에 힘쓰고자 하는 몇 안 되는 이들 중 하나였다.
서열은 겨우 50위 안에 들었지만, 지금 교내에는 인재가 드물었다.
소무군의 부름으로 그의 방에 든 마철용의 표정은 묵묵했다.
그는 교내의 분위기나 마교도들의 생각을 종종 소무군에게 보고하곤 했다.
지금처럼 상층부가 흔들릴 때일수록 마교 전체의 뜻을 읽고 분위기를 살펴 나아가야 했다.
“어떤가?”
소무군이 짧게 물었다.
교주의 손에 죽어 나간 시녀와 호위의 수가 벌써 여럿이었다.
소무군도 마교 전체가 그 이야기로 들썩이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교주님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들이 돌고 있습니다.”
마철용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으흠…….”
소무군도 이미 예상한 바였다.
이대로 두는 것은 좋지 않았다. 분위기를 바꿀 뭔가가 필요했다.
“장로님!”
마철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소무군을 불렀다.
“말하라.”
“천마대전을 여는 것이 어떻겠습니다. 벌써 3년이나 미루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불만도 많습니다. 천마대전이 개최된다면 모두 자기 수련에 신경 쓰기 바쁠 것이고, 모든 신경이 그곳으로 쏠릴 것입니다.”
“…….”
“천마대전에서 승리하여 서열을 높이고자 하는 기대감도 클 것입니다. 하여, 천마대전이 미뤄지는 데 대한 불만도 잠재우고, 교주님에 대한 소문도 돌릴 수 있을 겁니다.”
“흠…….”
마철용의 말에 소무군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천마대전은 마교에서 5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대대로 내려온 서열 쟁탈 대회였다.
마교도들에게 강해지고자 하는 의욕을 불어넣어 주는 대회로, 능력만 있다면 서열 밖에 있는 자도 단숨에 한 자리 숫자의 서열을 가질 수 있고, 교주에게도 도전해서 그 자리도 차지할 수 있었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말이고, 실제로는 이삼십 위의 서열을 뛰어넘는 것도 대단한 것이었다.
혈영천마가 교주로 있을 때는, 천마대전이 굉장히 활성화되었었다.
특히 서열이 크게 올라선 자에게는 혈영천마가 직접 상대를 해 주며, 그의 무공에 대해 평가해 주는 엄청난 기회가 주어졌다.
혈영천마의 화려한 무술 실력을 구경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그가 해 주는 한마디 한마디는 무인에게 천금 같은 가르침이었다.
그랬기에, 천마대전을 위해 더 치열하게 정진했고, 모두가 열심히 하니 한 단계 오르기도 힘들었지만 마교 전체의 실력은 나날이 높아져 갔다.
한데, 교주가 상관량으로 바뀌고 나서 천마대전은 그저 형식상, 마지못해 여는 것에 불과하게 되었다.
그마저도 최근에는 십 년 가까이 열지 못하고 있었다.
상관량의 상태가 저 모양이니 뭔가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천마대회를 위해 노력한 이들이 많았기에, 대회가 계속 미루어지는 것에 대한 불만 또한 높았다.
“교내에 흉흉한 분위기를 쓸어낼 새바람이 필요합니다. 천마대전만 한 것도 없을 겁니다.”
마철용이 망설이는 소무군에게 말했다.
“그래. 괜찮은 생각이야.”
소무군이 믿음직한 얼굴로 마철용을 바라보았다.
* * *
음식이 담긴 접시를 든 시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시녀는 떨리는 손으로 음식 그릇을 소무군이 앉은 작은 탁자 위에 올렸다.
젓가락을 든 소무군이 야채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그리고 상관량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녀는 소무군이 기미한 음식을 상관량 앞에 내었다.
꽤 많은 음식이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소무군은 차 한 잔도 남기지 않고 모두 기미한 후 교주에게 올렸다.
상관량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곧 개최될 천마대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교내에는 오랜만에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공기가 술렁거렸다.
각자의 무공에 집중하느라 불안한 소문과 교주에게 쏠렸던 이목이 흩어졌다.
소무군은 마철용의 바른 판단 덕분에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는 교내를 천천히 돌아다녔다.
이번 천마대전에서 마철용의 서열이 오르지 못한다고 해도, 교주께 말씀드려서 그의 서열을 높이고 더 가까이 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