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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213화 (213/230)

213화

“그날…….”

마부현은 이 한마디를 내뱉고 말을 멈추더니, 힘겹게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가슴 속 무언가가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막는 것 같았다.

아니, 그는 무언가를 떠올리는 것을 아파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황후가 살막을 찾아내서 쳐들어왔어.”

비교적 덤덤한 마부현의 말에도, 마유선의 눈동자는 말할 수 없이 크게 벌어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 위로 다시금 눈물이 흘러내렸다.

물기가 가득한 그녀의 눈에는 빨갛게 핏발이 일어났다.

“아버지는 그날 돌아가셨고, 어머니와 유모는 몸을 피했는데… 얼마 후 어머니도 아버지 뒤를 따르셨어.”

“으흐흐흐…….”

마유선이 어깨를 떨며 흐느꼈다.

머리를 동생의 가슴에 박고서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트렸다.

“난… 그날 다친 것이 아직 낫지 못해서…….”

덤덤하던 마부현의 눈도 젖어 들어갔다.

“미안해… 흑흑… 미안해, 나 때문에… 으어어…….”

마유선이 오열을 했다.

감정이 북받쳐 오른 얼굴은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져 온몸을 들썩여대며 통곡했다.

“괜…찮아, 우리 일이 그렇잖아.”

마부현의 목맨 목소리는 작고 거칠었다.

“으어억… 내가… 잘못했어, 으어어… 흑…….”

마유선은 쉼 없이 눈물을 쏟아내며, 소리높여 아프게 울었다.

“그때 아버지가 누이를 끊어내지 못했어. 걱정돼서 성내에 잠입조를 넣어둔 것이 발각되었나 봐…….”

“…….”

마유선이 고개를 떨구고 눈을 꼭 감았다. 감긴 눈 사이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 오래 못 산대.”

마부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마유선이 엉망이 된 얼굴로 동생을 쳐다보았다. 시뻘건 눈동자가 떨렸다.

“내가 죽으면 삼장로가 막주가 될 거야. 일부에서는 누이를 데려와서 막주 자리에 앉혀야 한다고도 해. 삼장로가 막주가 되면 누이를 살려두지 않을 게야. 자신에게 위협이 될 테니.”

“내가 왜? 난 이젠 막주가 될 욕심 같은 것 없어.”

마유선의 매끄럽지 못한 목소리에는 불안함이 담겨 있었다.

“누이의 존재만으로도 불안하겠지. 바뀐 개방의 정보체계가 살막이랑 워낙 비슷해서… 누이가 여기 있는걸 알아냈어.”

“내가 가서 잘 이야기할게. 절대 살막의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그게 될까? 삼장로는 원래 누이를 싫어했어. 괜히 만나러 갔다가 누이가 위험할 거야.”

마부현의 말에 마유선이 입을 꽉 다물었다.

“그럼, 내가 사라지면 되잖아. 내가 사라지면 문제없잖아.”

“…….”

마부현이 안타까운 얼굴로 누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

마유선도 흔들리는 눈동자로 동생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누이가 없어도 누이의 자식들이 위협된다고 생각할 게야.”

“……!!”

마유선의 머릿속이 띵하게 울렸다. 가장 두려웠던 말을 동생이 내뱉었다.

그 어린 것들이 무슨 위협이 되냐고, 그들은 어미가 살막 사람인 것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의미 없는 말이었다.

마유선의 일그러진 얼굴에 다시 눈물이 흘렀다.

이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아픔이 담긴 눈물이었다.

“…….”

“내가! 삼장로를 없앨게.”

마유선이 벌게진 눈으로 동생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으흠…….”

“…….”

단호한 마유선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누가 막주가 되어도 누이는 눈엣가시 같을 게야. 나보다도 누이가 막주 후계자로 더 유력했으니깐.”

“허어…….”

마유선의 미간에 깊은 골이 새겨졌다.

“누이의 아이들을 지키려면… 누이가 막주가 되는 수밖에 없어. 내가 살아있을 때 결정해야 해.”

“…….”

마유선이 일그러진 얼굴로 동생을 바라보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네…….”

마부현이 씁쓸하게 말했다.

“니가 왜 그런 말을 해? 나를 원망해! 나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 너까지 그렇게 되었다고 나를 원망하라고! 다 내 잘못이잖아. 내가 실패해서 이렇게 된 거잖아. 나 때문이야, 나 때문…….”

마유선이 담담한 마부현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말했다.

“…….”

마부현은 누이가 흔드는 대로 흔들리며 가만히 서 있었다.

“으흐흑… 미안해…….”

마유선은 동생을 안고 울었다.

자신 때문에 곧 죽게 될 동생에게 미안해서 울었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께 죄송해서 울었고.

와해되어 버린 살막이 안타까워 울었고.

자신의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길이 자신이 그들을 떠나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워 울었다.

불룩 나온 뱃속에서 아이가 요란하게 발길질을 해댔다.

* * *

마유선은 천상에게 부탁해서 자신을 키워준 유모를 총타로 불러들였다.

유모는 마유선이 어머니와 아버지, 동생 다음으로 살막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머니의 몸종이고 자신의 유모였던 여인으로, 무공을 할 줄은 몰랐지만 바지런하고 책임감이 강했다.

그녀라면은 자신의 아이들을 잘 키워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유선은 셋째 딸아이를 출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총타에서 사라졌다.

총타 거지들 사이에서는 마유선이 총타 뒷산으로 사내를 불러 만나더니, 자식도 버리고 도망을 가버렸다는 입에 담기 고약한 소문이 돌았다.

천상은 누구도 마유선에 대해서 한마디라도 언급하면 엄벌로 다스리겠다는, 그답지 않은 엄중한 명을 내렸다.

마유선의 생각대로 유모는 그녀의 아이들을 살뜰히 보살폈다.

천상은 어미의 정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막내 딸아이가 안쓰러워, 그녀에게만은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성과 애정을 다해 키웠다.

다행히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라주었고, 개방은 나날이 발전했다.

천상은 가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 * *

30년도 더 지나 다시 만난 천상은 살막주, 마유선의 손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자신이 손을 놓으면 그녀가 다시 사라져버리기라도 할 듯이.

마유선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이던 천상이 입을 열었다.

“어찌 이리 하나도 변한 것이 없소.”

마유선은 듬성듬성 흰머리도 나고 눈가와 입가에는 주름도 자리 잡고 있었지만, 천상의 눈에 그녀는 처음 만났던 그 날과 같아 보였다.

새카만 머리카락을 흩트리고 핏기없는 새하얀 얼굴을 하고 있는, 보호해주고 싶은 자그마한 여인.

“…….”

마유선이 얼굴을 붉히며 천상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했다.

“미안하오…….”

천상이 앞도 뒤도 없이 사과했다.

“제가 죄송하지요. 아이들도 두고…….”

아이들이라는 말에 울컥한 그녀의 두 눈이 빨갛게 변했다.

“내가 찾지 않았소. 내가… 어리석게도…….”

천상은 마유선이 사라지고 그녀를 찾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녀가 자신을 배신한 것이 사실일까 봐 두려워서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을 가슴 깊이 묻어두고 살았다.

“…….”

“이리 다녀도 되는 것이오?”

그녀가 살막의 막주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전에 다친 걸부의 서찰을 통해서였다.

어미가 떠날 때, 걸부의 나이가 겨우 여덟이었다. 그 아이가 어미를 잊지 않고 찾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옹졸했던 마음이 아비로서, 지아비로서 미안하기만 했다.

“얼마 전, 제자에게 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그녀가 살막주의 자리를 내려놓고 처음 한 일이 걸화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그녀의 기억 속 자신의 막내딸은 조그마한 핏덩이였다.

지난 세월 동안 하루도 자신의 뱃속으로 낳은 아이들을 떠올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건강한지 어떤 모습으로 자랐는지, 어미를 원망하지는 않는지… 심장을 밖에 꺼내놓은 것처럼 걱정되고 아팠다.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폭발할 것 같은 어느 순간에는 아이들의 얼굴을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 부현이에 대한 죗값을 치르는 심정으로 아이들을 찾지 않고 살막만을 지키며 버텼다.

“그럼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된 것이오?”

천상은 마유선이 어디에 감금이라도 되어있었던 것처럼 말했다.

“…….”

마유선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기다려주시오. 조만간 개방을 걸부에게 맡길게요. 그러면 우리 이곳에서,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우리 둘만 삽시다.”

천상의 말에 눈물 맺힌 마유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걸부의 몸이 나아져, 거동을 할 수 있을 때쯤 천상은 그의 세 아이를 마유선이 있는 개방의 안가로 불렀다.

걸윤과 걸화는 아버지 옆에 있는 마유선을 보며 눈을 끔뻑거렸다.

장성한 세 아이를 바라보는 마유선의 가슴 속에서는 아이들을 잘 키워준 천상과 유모에 대한 고마움과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기특함이 가득 차 가슴이 터질 것처럼 벅차올랐다.

“아버지! 아버지가 마부인을 어찌 아세요?”

걸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입을 열었다.

“음……!”

천상은 ‘이분이 너희의 어머니이다’라는 이야기를 할 심산으로 아이들을 불렀으나, 막상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마유선도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속에서 솟구치는 무언가가 목구멍을 아프게 막았다.

어색한 적막 속에 걸윤과 걸화는 천상과 마유선을 흘끔거렸다.

그 정적을 깬 것은 걸부였다.

“음… 인사드려라, 어머니이시다.”

“에?”

걸화가 전혀 생각지 못한 걸부의 말에 멍하니 입을 벌리고 마부인을 바라보았다.

걸윤은 조용히 씨익 웃었다.

‘이야― 우리 아버지 대단하시다. 개방도가 돼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대단해…….’

생각하던 걸윤이 인사했다.

“배걸윤이라고 합니다. 저희 아버지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마부인이 겨우 답했다.

‘아… 그래서 나한테 잘 보이려고 진료소에 오셨던 거구나…….’

걸화는 이제야 마부인이 거지촌 진료소에 와서 지원하고 일을 도운 이유를 명확히 알 것 같았다. 바로 자신과 잘 지내보려는 것이라고.

처음부터 마부인이 좋았던 걸화는 웃었다.

“그럼 이제부터 어머니라고 불러요?”

“음! 그렇지.”

걸화의 물음에 천상이 어색하게 답했다.

걸화의 입에서 나온 어머니라는 그 한마디에 마유선은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살막의 막주가 아닌 한 사내의 아내로, 세 아이의 어미로 쌓아 놓았던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왜 우세요? 아버지가 잘 안 해줘요? 그럼 저한테 일러요. 제가 아버지를 혼내줄게요.”

걸화의 장난스러운 말에 마유선은 아주 오열했다.

천상과 걸부의 눈가도 젖어 들었다.

걸윤과 걸화는 좋은 날에 눈물을 보이는 세 사람을 보며 자기들도 울어야 하는 건가, 아닌가 고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걸부가 개방의 17대 방주가 되었고, 이후 천상은 개방 총타에서 멀지 않은 안가에서 마유선과 둘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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