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총타의 개방도 하나가 방주의 움막으로 들었다.
개방의 15대 방주 위공보는 개방도를 바라보았다.
“방주님! 천상이 돌아왔습니다.”
“흠…….”
개방도의 말에 위공보는 낮은 숨을 몰아쉬었다.
천상이 총타로 돌아온 것은 그의 결심이 섰다는 뜻이리라.
“이리 오고 있느냐?”
위공보가 물었다.
“그것이… 우광 장로님을 뵈러 갔습니다.”
“어디 다치기로 했더냐?”
“그것이 아니옵고, 어디서 다친 거지 하나를 업고 왔습니다.”
“그래? 알았다.”
위공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총타로 오는 길에 다친 거지를 보았다면 천상이 데려올 만도 했다. 장로 우광에게 거지를 데려다주고 나면 자신을 보러 올 것이다.
개방도를 내보낸 위공보는 조용히 앉아 천상을 기다렸다.
며칠 뒤.
걸음을 옮기는 위공보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위공보는 저벅저벅 걸어, 총타의 수많은 움막 중 비교적 깨끗하고 커다란 움막의 거적을 들치고 안으로 들었다.
“네 이놈! 총타로 왔으면서 스승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여기서 뭘 하는 게냐?”
위공보의 호통에 천상이 스승을 쳐다보았다.
“스승님! 조용히 하십시오. 환자들이 있질 않습니까?”
천상의 태평한 말에 위공보는 그를 쏘아보았다. 그러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
위공보의 미간이 좁아졌다.
천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곳에는 몸 곳곳에 상처를 동여맨 여인이 누워있는 것 아닌가?
위공보가 뭐라고 말을 하려는 것을 천상이 막았다.
“스승님! 나가서 말씀하세요.”
천상과 위공보는 환자들이 있는 움막을 나와, 위공보의 움막으로 들었다.
위공보는 천상을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결정했으니 돌아온 것이겠지?”
“스승님,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방주가 되어 개방을 이끌 자신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방주가 되면 제가 옆에서 목숨을 걸고 보필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으흠…….”
위공보는 몇 달 전 총타를 떠나기 전에 했던 말을 똑같이 하는 천상을 향해 침음을 흘렸다.
“죄송합니다.”
천상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왜 돌아온 것이냐? 다른 이를 방주로 들이라는 말을 하려고?”
위공보가 못마땅한 얼굴로 물었다.
“죽어가는 사람을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천상의 작은 목소리에 위공보는 또다시 침음을 흘릴 뿐이었다.
“으흠…….”
위공보가 평소 높이 평가했던 천상의 솔직함에 속이 답답해져 왔다.
며칠 뒤, 위공보의 발걸음이 급했다.
흙먼지를 날리며 듬성듬성 지어진 움막을 가로질러 외곽의 작은 움막으로 다가가 입구를 가린 거적을 휙 들치었다.
움막 안에 있던 천상이 놀라 고개를 돌렸다.
위공보는 가타부타 말없이 천상의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움막에는 천상이 목숨을 살리겠다고 데려온 여인이 누워있었다.
진료를 보는 움막에 개방도들이 우글거려 불편할 것이라 생각한 천상이 여인을 자신의 움막으로 옮겨놓고 그는 다른 곳에서 지냈다.
그러면서도 매일같이 여인을 찾아와, 식사며 진료며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있었다.
위공보는 천상과 여인을 번갈아 보다,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 여인을 어디서 데려온 것이냐?”
“…북경 분타에 갔다가…….”
천상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의 스승을 보며 답했다.
위공보의 시선이 자신을 보고 자리에서 겨우 일어난 여인에게 향했다.
“넌 누구냐?”
여인을 보는 위공보의 눈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
마유선은 답 없이 그의 시선을 피했다.
위공보는 다시 천상을 돌아보았다.
“얼마 전, 황궁에서 황후를 살해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다. 그 일을 주도한 자가 황제의 스승인 황사라고 하더구나.”
“…….”
천상은 스승님이 왜 저런 말을 하는 것인지 의아해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황사와 그의 제자들, 그 외에 그 일에 가담한 자들이 줄줄이 처형되었다. 한데, 직접 황후를 죽이려다 실패한 시녀는 다친 채로 도망을 쳤다고 한다.”
“……!!”
위공보의 말에 천상은 목울대가 울렁거리게 마른침을 삼켰다.
“황후의 군사들이 시녀를 찾고 있어. 그 시녀와 함께 있다가는 역적이라는 죄를 면치 못할 게야.”
위공보의 근엄한 목소리가 마유선을 향했다.
“…….”
마유선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말이 맞았다. 자기 한 사람으로 인해 자신을 도운 이 사내와 그 주변의 모두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
위공보가 매서운 눈으로 마유선을 내려다보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조용히 이곳을 나가겠…….”
천상이 마유선의 말을 막았다.
“아니! 몸도 성치 않은데 어딜 가겠다는 게요?”
“그럼! 역적을 숨겨두겠다는 것이냐?”
천상을 향한 위공보의 목소리는 엄했다.
“그렇다고 도움이 필요한 이를 어찌 쫓아냅니까?”
천상이 위공보에게 대들었다.
“어찌 그리 철이 없어! 이것이 저 여인 하나만의 일이냐? 저 여인이 여기 있는 것이 들키기라도 한다면 너와 나는 물론이고 개방 전체가 위험하다는 것을 왜 모르는 게야!”
“이곳이니 안전한 게지요. 누가 개방을 의심하고, 총타까지 찾으러 오겠습니까? 스승님이 가르친 협의라는 것이 이런 것입니까? 도움이 필요한 약자를 내치는 것이요!”
천상도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자를 보는 위공보의 눈꼬리가 올라갔지만,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이 여인은 개방에 둘 수 없다. 당장 내보내거라, 방주의 명이다.”
위공보가 한마디 한마디 힘을 주며 천천히 말했다.
“…….”
천상이 반항심 가득한 눈으로 스승을 쳐다보았다.
천상과 위공보의 시선이 매섭게 얽혔다.
스승을 향한 눈빛을 거두지 않은 채 가슴이 들썩거리게 숨을 몰아쉬던 천상이 뭔가를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제가! 제가 방주가 되겠습니다. 그럼 저 여인의 거처는 제가 정해도 되는 것 아닙니까?”
“뭐라? 네 이, 이… 고얀…….”
천상을 꾸짖으려던 위공보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천상에게 방주 자리를 물려주고 싶었다.
수많은 개방도를 보아온 위공보였지만, 천상만큼 방주에 적합하다 싶은 인물을 발견하지 못했다. 딱 한 가지, 그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만을 빼면 말이다.
위공보는 단단하고 꿋꿋한 천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결심하고 그 일을 해나갈 때의 천상의 표정으로, 위공보가 정말로 좋아하고 신임할 수 있는 천상의 모습이었다.
저런 얼굴을 한 천상은 아무리 힘이 들고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일을 추진했기에.
천상의 말이 맞았다.
자신이 입단속만 잘 시킨다면 저 여인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들킬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했다.
그저 몸이 좀 나아질 때까지, 얼마간만 더 두었다가 내보내면 그만이었다.
여인을 조금 더 돌보아주는 대가는 그가 그렇게도 바라는, 천상이 방주가 되는 것이었다.
과정은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천상도 자리를 잡아갈 것이고 그때는 여인이 개방에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자신이 바라는 대로 흘러갈 것이다.
“으흠…….”
위공보는 천상의 얼굴을 보며 낮은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몸이 나을 때까지 만이다. 그리고 너는 방주가 될 준비를 하거라.”
“네!”
천상의 짧고 단호한 답을 들은 위공보는 천상의 움막을 빠져나왔다.
얼마 후, 배천상은 개방의 16대 방주가 되었다.
15대 방주인 위공보의 제자였고 개방의 체계와 중원에서 그들의 입장, 매년 꼭 해야 하는 일과 방주가 결정을 내릴 때 우선시해야 하는 것들까지… 천상은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위공보의 예상대로 천상은 그의 도움이 없이도 개방을 잘 이끌어나갔다.
천상은 무공도 출중했고 사람됨이나 풍채도 좋았지만, 그를 딱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의’ 그 자체였다. 바르고 의로웠으며 선량했다.
방주로서 천상의 모든 결정은 의를 숭상하라는 개방의 유일한 방규에 언제나 부합했고 합리적이었기에 개방도들은 그를 믿고 따랐다.
* * *
1년 후.
위공보는 심란한 얼굴로 즐겁게 들썩이는 개방도들을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천상에게 방주 자리를 물려 준 것이 잘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함이 일었다.
개방도로 산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방주의 혼례식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그 여인을 서둘러 내보냈어야 했는데… 천상이 그리 끼고돌 때 의심했어야 했는데… 이리 두어도 되는 것인가…….’
자신에게 절을 올리는 신랑 신부를 보며, 답 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맴돌았다.
방주의 혼례에 대한 장로들의 생각도 제각각이었다.
위공보조차도 선뜻 반대하지도 찬성하지도 못했다. 방주의 결혼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 전혀 예측이 되지가 않았기에.
하지만, 자신이 아끼는 제자이자 개방 방주의 핏줄을 배에 품고 있는 여인을 함부로 내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도리이기도 했고, 혹여 그리했다가 천상이 어찌 나올지 뻔했다.
천상이 흔들리면 개방이 흔들렸다.
위공보는 일렁이는 불안감을 누르고 천상이 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저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기를, 천상이 옳은 결정을 하기를 바랄 수밖에.
* * *
천상의 작은 움막에 앉은 마유선은 조금씩 커가는 배를 쓰다듬었다.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남아일지 여아일지 어떻게 생겼을지, 어떤 성격일지 궁금함과 기대감이 부풀었다.
‘그분을 닮았으면 좋겠어…….’
마유선은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운 천상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따뜻하고 올곧고, 믿음직한 그를 닮은 아이를 낳고 싶었다.
부른 배를 내려다보며 생각을 하던, 마유선의 시선이 자신이 앉아 있는 움막으로 향했다.
“으흠…….”
천상과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작고 지저분한 움막을 돌아보다 한숨이 터져 나왔다.
배가 불러갈수록 기대감과 더불어 불안함도 커져갔다.
‘여기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이 움막에서 지낸 것이 1년이 넘었다. 개방 방주의 아내로서 지금의 삶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태어날 아이를 이 작고 추운 곳에서 키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만 자라났다.
최소한 제대로 된 지붕이 있는 곳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고, 구걸한 음식이 아닌 아이를 위한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런 생각들이 자신의 욕심은 아닌지, 그것이 천상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여러 번 생각을 해 봤지만, 개방을 위해서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살막에서 나고 자라, 살막주인 아버지 곁에서 살막이란 조직의 체계를 오랫동안 보아왔었다.
마유선의 눈에 개방은 너무나 훌륭한 체계와 좋은 인력을 가지고 구걸하고 남을 돕는데 대부분의 시간과 힘을 소모하고 있었다.
조금만 변화를 줘도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내 생각을 이야기만 해 보는 거야… 결정은 그분이 하는 게지…….’
마유선은 오랫동안 생각했던 것은 천상에게 말해 보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