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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203화 (203/230)

203화

거지들 틈에 자리 잡고 있는, 교준은 미령과 이야기 하고 있는 마부인을 께름칙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영영은 마부인이 선물한 새 옷을 입고 신이 나서 마당을 뛰어다녔고, 성소는 마부인에게 받은 서책에 머리를 박고 읽어 내리고 있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걸화에게는 노리개며 머리꽂이, 면경 같이 값나가는 선물을 꽤나 많이 한 모양이었다.

거기다, 겨우 손해는 안 보고 굴러가던 진료소의 살림이 마부인 덕분에 크게 풍족해졌다.

그녀가 진료소에서 제일 돈 많이 들어가는 곡식이며, 약재를 대량으로 구입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면 마부인에게 호감을 가질 법도 하건만… 교준은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지만, 그녀가 불편하게 신경 쓰였다.

교준은 살수 출신이었다.

어릴 때부터 살수로 훈련받았다.

살수라는 것이 그저 무공에만 능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가는 곳의 분위기와 사람에게서 풍기는 냄새, 사람들 간의 미묘한 기류… 그 모든 것을 몸으로 읽어 정확한 순간에 목표물을 제거해야 했다.

실전에 투입된 지 꽤 되었고, 한동안 살수와 상관없이 살았다고는 해도 오랫동안 쌓아온 감각과 지각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 그의 저 밑바닥에 깔린 무언가가 그녀를 경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작던 그것이 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조금씩 커지더니, 여러 번 그녀의 뒤를 밟다가 실패한 데다 그녀를 따르던 은밀한 호위들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마부인의 정체에 관한 생각으로 꽉 들어차 있었다.

교준의 눈은 집요하게 마부인의 뒤를 쫓고 있었다.

마부인의 반듯한 걸음걸이는 가벼우면서 부드러웠고, 손놀림은 빠르고 정확했으며 몸동작은 유연하고 기민했다. 무공을 배운 게 확실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녀를 의심할 수는 없었다.

부유한 집에서 아들과 딸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일은 허다했으니.

교준이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그녀의 기척이 순간순간 사라지는 것이었다.

교준과 같은 살수들은 기척을 숨기는 훈련을 끝없이 하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출 수 있었다.

‘한데, 저 귀부인이 왜?’

교준은 시끄러운 진료소 구석에서 깊은 생각에 빠졌다.

‘흠, 그저 태생적으로 저런가?’

걸화는 무공을 전혀 배우지 않았는데도 기척을 숨기는 것은 기똥차게 잘하지 않던가?

여전히 미심쩍은 교준의 눈이 마부인의 움직임을 쫓았지만, 그녀에게서는 딱히 의심할 만한 행동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저 거지들을 위해 자신의 할 일에만 몰두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저씨!!”

“어, 어…….”

교준이 영영의 부름에 잠시 대꾸하는 사이, 마부인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는 것은, 교준 자신도 거지들도 걸화도 마부인의 코앞에 있던 미령도 모르는 일이었다.

걸화가 마부인에게 다가갔다.

“마부인, 갈 때 이것 좀 가지고 가세요. 여인에게 좋은 보약입니다.”

걸화가 환단을 넣은 작은 상자를 내밀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의원님. 이걸 저만 받아도 되나요?”

마부인이 흙 묻은 손을 앞치마에 쓱쓱 닦고 상자를 받아들며 물었다.

“아휴! 저는 의원님이 자주 챙겨주시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미령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미령은 영양실조로 진료소에 들었고, 지금은 진료소에서 밥과 빨래 등의 일을 맡아보고 있었다.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람이기도 했고, 그녀의 건강이 염려되는 걸화는 미령에게 보약이며 몸에 좋다는 것을 신경 써서 챙겨주었다.

“그럼… 감사합니다.”

답을 하는 마부인의 목소리가 불편하게 터져 나왔다.

상자를 받아드는 마부인의 얼굴은 평소와 다르게 미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걸화가 마부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아니요… 너무, 너무 감사해서…….”

말을 제대로 잊지도 못한 마부인은 결국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쳤다.

그것을 바라보는 걸화는 마부인에게 미안했다.

그동안 그녀에게 그렇게 많은 것을 받았으면서 자기는 뭘 하나 해준 게 없어서 말이다.

‘별것도 아닌 환단에 저렇게 눈물을 글썽이며 좋아하는데 진작에 좀 챙겨드릴걸…….’

걸화가 미안한 얼굴로 바라보는 것을 의식한 마부인이 그녀를 보고 웃었다.

마부인의 감정을 건드리는 뭔가로 인해, 일그러진 얼굴이 웃으려고 하니 표정은 더욱 이상해졌다.

걸화는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 그저 마부인이라는 한 사람에 대한 호감을 담아 입을 벌려 웃었다.

“헤헤…….”

걸화는 마부인이 무척 좋았다.

그녀가 살림을 돕고 선물을 주고, 거지들을 위해 기부를 많이 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냥 옆에 있으면 따뜻하고 편안하고, 안정되고 기분이 좋아졌다.

교준 대협이 약간의 헛소리를 하긴 했지만, 그건 그가 여인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기에 해대는 소리일 뿐이었다.

진료소의 모든 이들이 좋다고 하는데 교준 대협만 싫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건 대협이 사람 볼 줄도 모르고 성격이 좀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그는 처음 이곳에 진료소를 여는 것도, 거지들을 받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 했으니.

“아휴우… 저도 처음에 그랬지요. 의원님께 어찌나 고맙던지…….”

미령이 눈물까지 글썽이는 마부인을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으흠…….”

멀찍이서 마부인에게 시선을 붙박아 놓고 있던 교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아무래도 내가 감이 많이 떨어졌군. 저리 감성이 여리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여인을 의심이나 하고…….’

고개를 돌린 교준에게 심한 자책감이 밀려왔다.

“…….”

마부인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곧 해가 저물겠습니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시는 게 어떻겠어요?”

미령이 감정을 추스른 마부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미령도 마부인이 진료소에 와서 그녀의 일을 도와주고 말벗도 되어주는 것이 너무 좋았지만, 집이 워낙 누추하고 밤새 앓아대는 환자들도 있어서 차마 자고 가라고 권하지 못했다.

거기다 불빛도 없는 거지촌은 해가 지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깜깜했다. 해가 지기 전에 나서는 것이 좋았다.

“그러네요.”

마부인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해가 저물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남지 않은 듯했다.

“항상 고마워요.”

미령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마부인에게 아쉬운 듯 말했다.

“내일 또 올게요.”

마부인이 말했다.

그리고 걸화가 준 상자를 보물이라도 되는 양, 아주 소중하게 품에 끌어안았다.

마부인이 진료소를 나서려 하자 거지들이 우르르 일어나서 인사했다.

“아휴… 내일 또 올 건데 뭘 일어나세요.”

마부인이 자신을 배웅하는 사람들을 말리며 진료소를 나섰다.

걸화는 마부인이 진료소를 나가자 뭔가 아쉽고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겨우 환단 한 상자에 저렇게 감격하는 그녀를 위해 뭔가 좀 더 많은 것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환자들이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기던 걸화는 뭔가 생각난 듯 후다닥 자신의 방으로 들었다.

“아! 이것이랑 같이 먹으면 피부에도 좋은데… 내일 드릴까? 멀리 못 갔을 텐데…….”

잠시 생각하던 걸화는 말린 작은 약초들을 챙겨서 서둘러 진료소를 나가, 마부인이 사라진 방향으로 달렸다.

얼마 가지 않아 마부인의 뒷모습이 보이자, 걸화는 웃으며 뛰었다.

“응?”

걸화의 걸음이 느려졌다.

그녀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라?’

걸화는 인기척을 줄이고 천천히 다가갔다.

마부인은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는 바로 자신의 큰 오라비인 걸부였다.

걸부의 무섭도록 차가운 얼굴은 걸화조차 다가가기 힘들게 만들었다.

‘……?!’

걸화는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더 가까이 가지 못하고, 그들 근처에 있는 담벼락에 몸에 숨겼다.

그녀는 숨소리도 죽이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쳐다만 볼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한참 만에 입을 연 것은 걸부였다.

“…살아 계셨습니까?”

“…….”

마부인은 대답이 없었다.

걸화는 마부인의 어깨가 떨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

걸부는 차가운 얼굴로 마부인을 바라보았다.

“…….”

마부인의 어깨가 더욱 크게 흔들렸다.

“이제 와서… 보러오신 겁니까?”

걸부가 딱딱하게 물었다.

“그저… 잘 사는지…….”

마부인의 물기 묻은 목소리였다.

“다시는!! …마십시오.”

걸부의 고저 없는 목소리는 메말라 있었다.

“……!!”

걸부의 말에 마부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걸부는 할 말을 다 했다는 의미로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렸다. 그 모습은 더 이상 그녀를 보고 싶지 않다는 뜻인 것 같았다.

마부인은 자리를 뜨지 않고 고개 돌린 걸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후우…….”

걸부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는 듯싶더니, 이내 눈을 질근 감아버렸다.

걸화는 미간을 찌푸렸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이 상황에 말이다.

‘대체 걸부형과 마부인은 서로 어찌 아는 걸까?’

마부인이 걸부에게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는데 전혀 들리지 않았다.

‘아, 안 들리네…….’

두 사람을 향해 목을 쭉 빼다가, 자세가 불편해서 몸을 뒤척거렸다.

걸화의 부스럭거리는 작은 소리에 마부인과 걸부가 동시에 그녀를 돌아보았다.

“어허!”

두 사람의 시선에 깜짝 놀란 걸화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자신이 엄청난 잘못을 하다 들킨 것 같아서 말이다.

“아하.하.하…….”

걸화는 두 사람의 시선에 민망해서, 자신이 마부인을 쫓아온 이유도 까먹고 어색하게 웃었다.

마부인과 눈이 마주친 걸화는 더 이상, 부자연스러운 웃음도 흘릴 수가 없었다.

마부인의 눈에 그렁그렁하게 맺혀 있던 물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

그저 입을 벌리고 마부인을 쳐다보았다.

“죄, 죄송합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마부인이 허둥지둥 자리를 떠났다.

걸화는 멍한 얼굴로 빠르게 사라지는 마부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사라진 방향에는 걸부가 서 있었다.

멀어져가는 마부인에게 등을 돌리고 서 있는 걸부의 두 눈동자는 빨갰다.

“형…….”

걸화가 조심스럽게 걸부를 불렀다.

항상 자신을 보면 푸근하게 웃어주던 오라비의 굳은 얼굴이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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