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그저 다리에 박힐 것이라 생각했던 비도는 사내의 허벅지를 관통하고도 멀리 날아갔다.
“이, 이… 뭐…….”
놀란 걸화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비도에 맞은 사내의 허벅지에서 피가 품어져 나왔다.
당장 그 복면인을 지혈해야 할 것 같았지만, 주위에서는 여전히 격투 중이었다.
억지로 심호흡하면서 감정을 추스른 그녀는, 자신이 너무 놀라고 긴장을 해서 몸에 힘이 과하게 붙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작은 돌멩이를 주워, 나머지 복면인들에게 집어 던졌다.
복면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픽픽 쓰러졌다.
겨우 조그마한 돌멩이에 맞고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복면인들을 보며 이전 같았으면 기분이 좋아서 펄쩍펄쩍 뛰었겠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일었다.
잠시 후.
복면인들이 모두 쓰러지자, 은월의 무인이 걸화에게 다가왔다.
“의원님, 괜찮습니까?”
“네, 괜찮아요.”
걸화가 자신의 비도에 맞은 사내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비도가 통과한 자리에서 많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걸화가 혈을 눌러 빠르게 지혈했다.
“의원님! 가셔야 합니다. 이들의 패거리가 언제 또 나타날지 모릅니다.”
무인의 말에 걸화는 서둘러 응급처치만 끝내고 마차에 올라탔고, 무인들은 마차의 속도를 높여 달렸다.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그녀는 피가 묻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 * *
걸화와 은월의 무인들은 진료소로 가는 길에 객잔에 들러 몸을 씻고 옷도 갈아입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은 번화한 길로만 달려 진료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입구로 들어서는 걸화에게 영영이 제일 먼저 달려들었다.
“의원님!!”
걸화가 익숙하게 영영을 안아 올렸다.
어쩐 일인지 묵직하던 영영이 가볍게만 느껴졌다.
걸화는 뱃속에서 울렁거리는 불안감을 감추며 성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인사를 해대는 이들에게 일일이 알은체를 했다.
교준이 그녀에게 다가오자, 걸화가 영영을 내려놓았다.
“많이 늦어서 걱정했습니다.”
“에… 걱정할 게 뭐 있어요.”
걸화는 벌써 걱정하고 있는 교준에게 오는 중에 있었던 습격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별일 없었어요?”
걸화가 구질구질한 거지들이 버글대는, 익숙하고 편안한 자신의 보금자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하오문에서 보내준 의원님이 오셨어요. 아! 마침 저기 오시네요.”
교준의 말에 걸화는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키가 크지 않고 몸이 단단한 사내가 진료실이 아닌 부엌에서 나오고 있었다.
“백공 의원님! 걸화 의원님이 돌아오셨습니다.”
교준의 말에 백공이 걸화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의원 백공이라고 합니다! 가신 길에 처언천히 일 보고 오시지 뭘 이리 빨리 오셨습니까?”
“네? 아… 일은 다 보고 왔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걸화가 웃으며 말했다.
“뭐 그리 작별 인사처럼 말씀하십니까? 의원님 여독도 풀어야지요. 갑자기 너무 무리하시면 병 생깁니다. 편안하게, 푸―욱 쉬십시오. 제가 있으니 걱정 마시고…….”
백공이 얼굴에 맞지 않게 샐샐 웃으며 말했다.
걸화는 하오문에서 보내준 백공이라는 의원이 책임감이 강하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 * *
은월은 못마땅한 얼굴로 수하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아무래도 마방파 쪽 짓인 것 같습니다.”
무인의 목소리는 낮았다.
“하! 참! 내 그런 놈들을 믿고 영단을 구해왔다니.”
은월이 마치 무료로 사파 수장들에게 영단을 가져다 준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실상, 이번 영단 일로 가장 득을 본 것은 하오문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영단도 넉넉하게 챙기고, 사파 수장들에게 영단을 주며 제법 짭짤하게 수고비도 받았으니 말이다.
‘욕심이 목구멍 끝까지 찬 놈들이 영단 몇 알로 만족할 리가 있겠어?’
“다른 문파에서는 가만히 있더냐?”
“그게 아무래도 사흥문과 마방파, 혈륜궁과 흑사파까지 함께한 것 같습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자기밖에 모르는 놈들! 쯧!”
언짢은 표정을 지었지만, 은월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몰라. 놈들에게서 의원을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의원과 더 가깝게 지낸다면 여러모로 득이 될 게야… 차라리 다시 안가로 모셔올까?’
“큰일 났습니다!”
갑자기 은월의 집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하오문도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은월이 미간을 찌푸리며 급하게 들어온 하오문도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이번에 의원을 친 자에 대해 조사하라고 보낸 이들 중 하나였다.
“웬 호들갑이야?”
은월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살막에서 움직였습니다.”
집무실에 들어온 하오문도가 앞도 뒤도 없이 말을 꺼냈다.
“살막이 어디로 움직여?”
의원을 납치하려던 자들에 대해 알아보라고 했더니, 뜬금없이 살막이 왜 나온다는 말인가?
“살막이 마방파를 쳤습니다.”
“뭐?!”
은월이 소리를 질렀다.
“처음에는 살막과 마방파가 함께 의원을 납치하려다 사이가 틀어진 것은 아닌가 했습니다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 두 곳에 연결고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마방파를 쳤단 말이야?”
이해가 되지 않는 살막의 행보에 은월이 날카롭게 물었다.
“아무리 파보아도 작은 이유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이런! 그게 말이 된다는 게야? 뭔가가 있으니 마방파를 친 게지?”
“마방파에서 거지촌을 몰래 습격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살막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게야?”
“그건 저도 잘…….”
“하아… 그래서 어찌 되었어?”
은월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마방파는 생존자 하나 남기지 못하고 멸문지화를 당했고, 살막은 이후 아무런 움직임도 없습니다.”
“살막과 마방파의 관계를 더 파봐!”
정보를 취급하는 은월이 가장 싫어하는, 앞뒤 상황이 납득되지 않는 보고가 짜증스러웠다.
* * *
같은 시각, 사흥문의 문주 사마경 또한 살막에 의해 마방파가 중원에서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마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마경은 영단 분배에 불만을 품은 마방파와 사룡파, 그리고 몇몇 문파와 함께 거지촌 의원을 끌고 올 계획이었다.
앞장서서 행동한 것이 마방파였지만, 혈륜궁과 흑사파, 녹림과 흑촌 모두 은근슬쩍 이번 일을 지지하고 있었기에 실질적으로는 사파 대부분이 함께한 행동이었다.
‘살막에서도 의원의 영단을 노리고 있는 겐가?’
“살막에 대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모두 알아내!”
사마경이 낮은 목소리로 명했다.
“살막의 움직임이 워낙 은밀해서 쉽지 않을 겁니다.”
당조였다.
“그 비밀스러운 살막이 정체를 드러냈어. 이번 일은 살막에서도 다급했던 게야. 알아봐, 더 나오는 것이 있을 게야.”
“네!”
당조의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사마경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 * *
걸화는 누워 있는 환자를 바라보며, 침을 들었다.
“어?”
걸화가 깜짝 놀라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나타난 손이 침을 든 그녀의 손목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의원님! 돌아오신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리 무리하십니까? 쉬십시오. 제가 할 테니 아―무 걱정 마시고 쉬십시오. 푸욱 쉬십시오.”
언제 들어온 것인지 탕약을 가지고 온 백공이 진료를 하려는 걸화를 말렸다.
“괜찮아요. 벌써 닷새나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더니 좀이 쑤셔요.”
“에이… 더 쉬셔도 돼요. 제가! 제가 하겠습니다.”
백공이 걸화의 손에 든 침을 냉큼 빼앗고는 그녀를 진료실 밖으로 밀어냈다.
건강을 생각해서 더 쉬라는 친절한 말과 함께.
진료실 밖으로 내몰린 걸화는 자신의 건강을 염려해주고 진료소 환자들을 성심껏 돌보며 거지들과도 잘 지내고 영영과 성소를 예뻐하고, 미령의 일도 열심히 도와주는 흠잡을 곳 없는 백공에게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곰곰이 생각해봐도 답을 찾을 수 없었지만, 뭔가 개운치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백공이 걸화의 방으로 들었다.
걸화가 백공을 자신의 방으로 부른 것이었다.
“하, 하, 의원님 부르셨어요?”
입을 저렇게 벌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크게 벌리고, 웃으려 애쓰는 백공의 얼굴은 어색했다.
“앉으십시오.”
걸화는 편안한 얼굴로 백공을 보며 자리를 안내했다.
“네.”
걸화의 맞은편 자리에 앉는, 백공의 입 벌린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백공 의원님! 제가 없는 동안 진료소를 잘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동안 힘드셨지요? 이제 제가 있으니 의원님은 돌아가셔도 괜찮습니다.”
걸화가 언제 백공에게 말해야 하나 하고 벼르던 것을 드디어 이야기했다.
하오문에서 보내준 의원 백공은 성심을 다해 환자를 돌보고, 거지들도 잘 챙겼다.
그가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되긴 했지만, 자신의 진료소도 있다는 백공을 언제까지 이곳에 잡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의원님! 제가 가면 이 많은 환자를 의원님 혼자서 어찌하려고 그러십니까? 왕진도 자주 가시는데 의원이 하나 더 있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백공이 걸화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거지촌에서 돈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제가 죄송해서…….”
돈도 명예도 바라기 힘든 이곳에 어찌 그를 잡아둘 수 있겠는가?
걸화로서는 그를 하루빨리 내보내는 것이 그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아휴우!! 그런 말씀 마십시오. 여기서 힘든 사람을 돕는 것이 의원으로서 얼마나 보람되고 즐거운 일인데요. 의원님만 허락하시면 저는 쭈욱 함께 있고 싶습니다.”
백공은 처음 거지촌 진료소에 들어, 미령을 본 순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걸화에게 했다.
언제까지나 함께 하고 싶다는 그 말을 말이다.
“그리해도 되겠습니까?”
걸화가 미안한 얼굴로 되물었다.
“되다 마다요! 저는 정말 이곳에 있고 싶습니다.”
백공이 큰 목소리로 침을 튀겨 가며 말했다.
“…….”
걸화는 바로 답을 하지 않았다.
백공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멀쩡한 의원을 이곳에 잡아둬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
백공은 걸화가 끝끝내 자신을 밀어낼까 봐 불안했다.
걸화의 눈치를 보는 백공이 어색하게 웃었다.
“백공 의원님! 의원님의 뜻이 그러시다면 저는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떠나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걸화가 백공에게 고마운 뜻을 전했다.
굳이 그의 의로운 마음을 말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이곳에 있다가 나가고 싶다고 하면 그때 보내도 되니.
“그런 말씀 마십시오. 그럼 저는 계―에속 여기 있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하하하하! 그럼 그만 나가보겠습니다.”
백공이 걸화를 향해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의 방을 나왔다.
‘아휴우…….’
밖으로 나온 백공이 걸화의 방을 쳐다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걸화에게는 말할 수 없지만, 백공은 이곳에서 하루를 지낼 때마다 하오문에 빌린 돈 중 한 달 치 이자만큼이 감면되었다.
얼마 전 하오문에서 연락이 왔기에, 걸화 의원이 그가 더 있기를 원한다고 거짓말을 해버렸다.
하오문에서 돈을 감면해주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아무도 없는 그 외롭고 쓸쓸한 자신의 진료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찾는 이도 거의 없는 촌골 진료소에서 혼자 늙어가는 것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선녀를 꼭 닮은 미령과 세상 모든 걱정을 덜어주는 영영의 미소, 서책의 시시한 내막만 이야기해줘도 자신을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바라보는 성소와 별 볼 일 없는 자신을 의원이라고 떠받들어 주는 거지촌 환자들…….
이들을 두고 떠나고 싶지가 않았다.
다행히 하오문에서는 걸화 의원이 원하는 만큼 더 있어도 좋다는 답변이 왔다.
백공은 할 수 있는 만큼, 이곳에 있고 싶었다.
죽지 못해 하루하루 버티는 자신의 삶에 웃음을 주고, 텅 비었던 마음을 채워 주는 이들 옆에 있고 싶었다.
거지들을 위하는 의원이네, 미령의 일을 도와주는 성실한 사람이네, 아이들을 잘 돌보아주네 하며 모두 자신에게 감사해했지만, 정말로 감사한 것은 백공 자신이었다. 정말로 위로 받고 있는 것은 바로 그였다.
거지촌에서의 이 충만한 만족감과 즐거움을 알아버린 그는 이제 다시는 자신의 진료소에서 고독한 삶을 살 수 없으리라.
슬그머니 미소를 지은 백공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뭐 필요한 것이 있으세요?”
미령이 부엌으로 드는 백공을 보고 물었다.
“뭐… 필요한 것은 없고… 저기 이것…….”
백공이 부끄러운 듯 작은 단지를 내밀었다.
“이것이 뭐예요?”
미령이 그가 내민 것을 받아들며 물었다.
“그… 자기 전에 얼굴과 손에 바르면 피부가 보들보들해질 것입니다.”
백공이 쑥스럽게 웃었다.
“의원님, 매번 이리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구!! 과부 마음은 홀애비가 아는 것 아니겠소? 하하하하!”
백공이 벌게진 얼굴로 어색하게 웃었다.
“…….”
미령이 민망한 듯 고개를 돌렸다.
“그, 그럼… 일 보시오…….”
백공이 서둘러서 부엌 밖으로 나왔다.
부엌을 다시 한번 쓱 돌아보고는 어디가 모자란 사람처럼 실실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