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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200화 (200/230)

200화

얼마 후, 다시 모인 사파 수장들은 말없이 서로를 향해 은근한 경계심을 내뿜었다.

영단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반열에 오르면 크게 효과가 없지만, 영단의 수가 몇 개가 되니 수장들도 하나씩 먹고, 각자 나름의 효과를 본 모양이었다.

그저 소문의 영단이라는 것만으로도 욕심이 들끓었는데, 그 효능을 직접 맛본 지금은 영단을 향한 집념이 활활 불타올랐다.

‘아하…….’

사마경은 뻐근한 목을 돌리며 회의실에 모인 이들을 둘러보았다.

길게 볼 것도 없었다.

다들 눈가에 영단에 대한 욕심이 득시글득시글했다.

모두 함께 금고에 넣어둔 영단을 자신이 몰래 두 개를 빼먹은 것을 알면 난리가 날 게다.

사마경은 그 대단한 영단 덕분에 요 며칠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잘만하면 이번 기회에 환상루의 묘희를 첩실로 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장인이 만든 비취 비녀며, 서역에서 들어왔다는 노리개와 값비싼 면경 등 엄청난 선물을 들이대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묘희가 이번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영단의 기운을 받은 사마경에게 말이다.

걸화가 은월에게 지어준 영단은, 영단이 아닌 보약에 가까웠다.

약간의 내공 상승 기능이 있긴 했으나, 그보다는 원기를 돋워 허약한 몸에 기력과 정기를 채우는 기능이 컸다.

기력이 채워지면서 약간의 부작용이 있었는데 그것은 남성의 힘을 한시적으로 상승시킨다는 것이었다.

영단의 힘으로 정력이 한껏 치솟은 사마경은 지금까지 그 어떤 선물을 했을 때보다 묘희의 환대를 받았다.

그 영단의 아쉬운 점 딱 하나는 효력이 유한하다는 것이었다.

사나흘을 밤이고 낮이고 기운을 쏟아내면, 슬슬 영단의 기운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영단을 먹으면 힘이 솟아나기는 했지만, 가진 영단의 수가 정해져 있으니 한 알 한 알이 아쉬웠다.

사마경은 어떻게 해서든 영단을 많이 가지고 싶었다.

느긋한 얼굴로 회의에 참석한 사파 대표들을 둘러보며, 머리는 영단을 차지할 방법을 모색 중이었다.

사마경이 사파 수장들을 둘러보며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흠, 흠… 소문대로 거지촌 의원의 영단이 대단하더군요.”

사마경의 말에 하나같이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서 말인데… 그 귀한 영단을 함부로 사용해서야 되겠습니까? 만약을 위해 계속 금고에 보관해 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사마경이 잔뜩 힘을 주어 그럴듯하게 말했다.

회의에 참석한 이들을 잘 꼬드겨서 자신이 영단을 차지할 심산으로 말이다.

모두가 모여야 금고를 열 수 있게 열쇠를 나눠 가졌지만, 사마경은 금고를 주문할 때 은밀히 열쇠 하나를 더 만들어 두었기에 몰래 열 수 있었다.

“각 문파에 나눠주면 알아서 아껴 먹을 것이니 일단은 나누는 것부터 하시지요!”

호령이 턱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투로 말했다.

“으흠!”

사마경이 불쾌한 얼굴로 목을 가다듬었다.

“호령의 말이 맞습니다. 나누어야지요. 의원이 요구한 재료를 구입하는 데 제일 큰 비용을 지불한 우리 혈륜궁에 가장 많이 주어야 할 것입니다.”

혈륜궁의 궁주 등정이 힘주어 말했다.

“그런 것이 어디 있습니까? 생사를 함께 하기로 한 우리 모두가 공동의 운명체입니다. 공평하게 나눠야지요!”

흑사파 문흠의 목소리가 격양되었다.

“어허!! 이 모임을 만든 저에 대한 대우가 너무 부족한 것 아닙니까?”

사마경도 지지 않고 말했다.

하오문주는 열을 올리는 사파 수장들을 느긋하게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하여간 욕심들은… 쯧쯧…….’

눈치 빠른 은월이 제법 많은 양의 영단을 남겨두고 내준 것이기에, 이 진흙탕 싸움에 하오문만은 고고하게 있을 수 있었다.

거기다 은월은 영단을 전달하기만 하고 의원을 직접 모셔다드리겠다고 안가로 돌아갔다.

의원과 관계를 잘 유지해 놓는다면 하오문에서는 다음에도 영단을 구할 수 있으리라.

“뭘 그리 고민하십니까? 의원을 보내주지 말고 잡아둡시다! 평생 영단을 만들게 하는 거지요!”

호령의 호기로운 말에, 사마경과 자리에 한 이들의 눈에 동조의 빛이 띠었다.

그리고 각파의 수장들은 다시금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대며, 하나라도 영단을 더 가지려 하고 있었다.

정마전쟁으로 정파와 마교의 세가 아무리 약해진들, 걸화의 저 영단을 가지고 사파가 중원에서 얼마나 힘을 키울 수 있을지…….

한참 후.

전쟁 같은 회의가 끝나고 마방파의 문주 흑지삼은 잔뜩 골이 난 얼굴로 회의실을 벗어났다.

‘다 늙은 영감탱이들이 이런 영단은 어디다 쓰겠다고! 쳇! 에잇… 이것으로는 부족해… 더 필요해… 더!’

흑지삼은 작은 상자에 든 네 알의 영단을 내려다보며 불만스러운 얼굴이었다.

머릿속을 뱅뱅 도는 영단의 효과를 떠올리며, 그것을 어찌하면 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 * *

걸화는 하오문의 안가를 나섰다.

석 달 가까이 있었던 곳을 떠나려니 왠지 섭섭했다.

“의원님! 제가 모셔왔으니 제가 모셔다 드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은월이 말했다.

“됐습니다, 저 혼자도 갈 수 있어요. 데려다줄 분들도 이리 계시잖아요. 괜찮아요.”

걸화가 은월이 데려온 한 떼의 호위무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은월이 진료소까지 직접 데려다주겠다는 것을 걸화가 거절하는 통에 호위들만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다.

걸화는 은월 덕분에 영단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은월이 진료소에 드나드는 것은 영 불편했기에 그녀의 호의를 계속해서 거절하고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다음에 진료소로 한번 찾아가겠습니다.”

은월이 진심으로 말했다.

은월은 백화루를 나가서 걸화와 연천이 어찌 지냈는지 궁금했다.

아니, 정말 솔직하게 지금 연천이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것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언제 어떻게 걸화와 헤어지게 되었는지라도 듣고 싶었다.

그 아이 같은 미소를 한 번 더 보고 싶고, 그 따뜻한 손을 한 번만 더 잡아보고 싶었다.

“오지 마세요! 거지들만 우글거리는데 뭐 하러 오시려고 그럽니까?”

걸화가 딱 잘라 말했다.

그녀는 은월에게 줄 것도 주었고, 그것에 대해 과분하게 사례금도 받았다.

혹시라도 진료소에 와서 별 볼 일 없는 환단에 대해 돈을 너무 많이 줬다고 돌려달라고 하지는 않을까 싶어 불안했다.

걸화는 은월과 이대로 만나지 않고 살기를 바랐다.

“그동안 의원님이 어찌 지냈는지 궁금하고… 뭐… 이런저런 얘기도 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은월이 예쁘게 웃었다.

은월의 눈에, 걸화의 얼굴 위로 연천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괜찮습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걸화는 질척질척 작별이 길어지는 은월의 말을 자르고 얼른 인사를 끝냈다.

“저야말로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럼 조심히 가십시오.”

은월도 걸화에게 인사했다.

걸화는 은월이 준비해 둔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가 출발하고 은월의 호위무사가 말을 타고 함께 했다.

걸화는 달리는 마차 안에서 기지개를 쭉 켰다.

뭔가 대단한 일을 끝낸 것처럼, 개운하고 커다란 성취감이 가슴을 채웠다.

오랜만에 영단에 대해 마음껏 공부하고 실험할 수 있어서 좋았고, 영단이 제대로 흡수가 되어서 그런 것인지 몸이 말할 수 없이 가볍고 상쾌했다.

걸화는 든든하게 채워진 배를 쓱쓱 문질렀다.

밥을 많이 먹어 배가 부른 것과는 달랐다.

뭔가 형체가 없으면서도 감각이 확실한 것이 배꼽 아래를 꽉 채우고 있었다.

마지막 영단을 먹은 후부터 그랬다.

그곳이 내공이 쌓이는 자리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와 다른 엄청난 크기의 기운을 느끼며 의아했다.

워낙 여러 개의 영단을 연달아 먹은 터라 무엇이 어떤 효능을 낸 것인지, 부작용은 아닌지 정확하게 자신의 몸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단지, 눈과 귀가 엄청나게 좋아진 것 같고 주변의 작은 움직임도 명료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차는 서두르지 않고 타박타박 앞으로 나아갔다.

지루하게 앉아 마차의 천장을 올려다보던 걸화는 다급한 목소리에 마차 밖으로 신경을 집중했다.

“누구냐!!”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마차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의원을 내놓아라!!”

걸화는 귀에 꽂히는 소리에 밖을 내다보았다. 복면을 한 사내들이 걸화를 지키는 은월의 무인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의원이면 나? 나를 내놓으라고? 나를 왜?’

자신을 데려가려는 무리들의 등장에 무섭기도 했고, 자기 때문에 은월의 무인들이 공격을 받는 것인데 마차 안에서 가만히 있어도 되나 싶었다.

마차의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며 비도라도 던져야 하나, 그냥 조용히 기다려야 하나 고민했다.

무공이 별 볼 일 없다는 것은 참으로 우울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으악!”

걸화는 갑자기 마차 문이 벌컥 열리는 통에 소리를 질렀다.

은월의 무인보다 숫자가 훨씬 많은 복면인들이 걸화를 찾아 마차로 들이닥친 것이다.

복면인 하나가 걸화의 손목을 잡고 거칠게 잡아끌었다.

걸화는 억지로 마차 밖으로 끌려 나갔다.

“의원님!!”

은월의 무인 중 하나가 걸화를 불렀다.

하지만, 그는 복면인을 둘이나 상대하는 통에 걸화를 도울 겨를이 없었다.

걸화는 자신을 어디론가 끌고 가려는 복면인을 노려보았다.

“저희를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따라오시지요.”

걸화는 무섭기도 했지만, 화가 났다.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무력으로 남을 괴롭히는 그들에게 말이다.

“안 가요!!”

걸화가 차갑게 말했다.

“모시거라!”

우두머리인 듯한 사내의 말에 복면인이 걸화에게 우르르 달려들어 그녀를 에워쌌다.

“건드리지 맛!!”

걸화가 복면인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잡힌 것을 풀려고 팔을 휘둘렀다.

순간, 주위로 세찬 바람이 지나가는 것을 느낀 것 같았다.

가까이 있던 이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기에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보았다.

걸화에게 달려들었던 복면인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그녀의 정면에 있던 사내는 입에서 피를 울컥울컥 쏟아내고 있었다.

“뭐… 뭐… 뭐야……?”

당황한 걸화가 말을 더듬었다.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구만!”

명령하던 복면인이 검을 뽑아 걸화를 향해 다가왔다.

“으아악!!”

놀라고 겁이 난 걸화가 악을 쓰며, 팔을 마구 내저었다.

“윽……!”

사내의 짧은 비명에 앞을 본 걸화는, 검을 뽑아 자신에게 달려들던 복면인이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왜, 왜 저래?”

걸화가 눈앞의 사내를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이들이 적당히 정리되자, 걸화는 은월의 무인 하나에 둘씩 셋씩 붙어 있는 복면인을 보며 비도를 끄집어냈다.

연천이 선물로 준 비도는 다섯 개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도저히 아까워서 들고 다니지 못하고 방 한편에 잘 모셔두었다.

지금 걸화가 들고 다니는 것은 교준이 마련해 준 것으로 보은장을 나서면서 만약을 위해 항상 지니고 있었다.

걸화가 비도를 들어 복면인 한 명의 다리를 향해 날렸다.

날아간 비도는 정확하게 사내의 허벅지를 맞추었다.

“으억!!”

비도에 맞은 사내가 비명을 질렀다.

“헉……!”

걸화가 놀라 뒷걸음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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